설교요약

<후회없는 삶을 위하여>(딤후 4:1-8)

마라나타!!! 2016. 1. 20. 01:10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딤후 4:1-8) [[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제 1월달도 중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일월달은 새해를 새롭게 출발하는 달이요 한해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사도바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서신 디모데 후서에서 마지막장인 4장을 살펴 보면서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결단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 마친후에는 웨슬리의 언약 결단식과 안수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결단과 축복으로 새해를 시작할수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을 후회없는 인생이라고 정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으라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의 삶은 주님을 본받는 삶이었으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본받으라는 말까지 할수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이 관제와 같이 부어드리는 주님을 향한 전적인 헌신의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려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드리신것 처럼 사도바울도 자신의 일생을 주님께 드린것이요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새해벽두에 우리는 다시 한번 후회없는 일생을 위하여 사도바울을 통하여 그의 삶을 살펴보면서 후회없는 일생은 어떤 것인지 우리들도 이시간 결단할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영적인 세상이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딤후 4:1)

(1) 하나님 앞에 있음을 잊지말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숨길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다 감찰하시고 알고 계십니다.

(시 139:23-24)

(창 16:13)

(창 28:16-19)

(출 3:7-8)

(롬 8:26-28)

(살전 2:3-4)

(히 4:12)

(출 4:31)

(대상 28:9)

(대하 16:9)

(욥 34:21)

(시 7:9)

(시 11:4-5)

(시 33:15)

(시 102:19)

(시 139:1-5)

(잠 15:3)

(잠 16:2)

(렘 11:20)

(렘 16:17)

사도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힘씀으로 후회없는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항상 신전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심판자 예수님 앞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마지막에 심판하실 재판장을 세웠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심판자라는 말씀은 물론 마지막 날에 심판하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도바울에게 있어서는 인간들의 모든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았습니다.

(행 17:29-31)

(단 7:9-10)

(단 7:13-14)

(요 5:22-23)

(계 20:11-15)

(시 119:75)

(요 7:24)

(요 8:15)

(요 8:50)

(행 4:19)

(롬 2:1-5)

(고전 4:4-5)

(고전 6:1-3)

(벧전 1:17)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

(삼상 16:6-7)

인간들의 눈치를 보지말고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그의 나라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영적인 세상에 있음을 항상 기억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항상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나라가 현재 이 세상에 임재하여 있고 결국은 온세상이 주님의 나라가될것을 알았습니다.

(히 12:22-24)

(요 17:14-17)

(빌 3:19-21)

(행 7:55)

(행 28:23)

하나님 나라는 지금 교회로 이세상에 존재하고 동시에 어디든지 하나님의 통치자 이루어진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가서 결국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 완성이 될것입니다.

(행 28:31, 개역)

(롬 14:17, 개역) ]

(고전 4:20, 개역)

(고전 6:9-10)

(고전 15:50, 개역)

(갈 5:21, 개역)

(엡 5:5, 개역)

(히 1:8, 개역)

(히 12:28, 개역)

(약 2:5, 개역)

(계 1:6, 개역)

(계 1:9, 개역)

(계 5:10, 개역)

(계 17:17, 개역)


하나님 나라는 능력과 사랑의 나라요 영원한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써 우리는 왕이신 주님께 충성을 다하여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전도와 선교에 힘을 써야 합니다.

(계 11:15-20)


하나님 앞에 있음을 잊어버리고 살 때 우리는 본본을 잊어버리기 쉽고 마음이 느슨해지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게 될 확률이 많습니다.

그렇나 이렇게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자주 오래 인식하며 살 때 후회없는 인생이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살전 5:16-18)


2.말씀을 열심히 전하였습니다.

한 생명을 구원하여 지옥에서 천국으로 보내는 일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함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믿음을 주셔서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사명이오 항상 해야 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잊지 않았고 생명의 말씀을 열심히 전파하고 가르쳤습니다.


(1) 항상 힘쓰라.

말씀을 전하는 것은 사도바울의 일생의 사명이었고 어디서든지 힘쓰는 일이었습니다.

어디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말씀전파의 사명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있었어도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빌 1:12-14)

재판석에서도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행 26:13-18)

말씀이 달음질 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속히 넓게 전파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살후 3:1-3)

어떻게 든지 예수님이 전파되기만을 소원하였습니다.

(빌 1:18-21)

(2) 범사에 오래참으라.

(약 5:7-11)

(갈 5:22-24)

(계 1:9)

(계 14:12)

참지못하고 포기하거나 분노하거나 한다면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수가 있습니다.

주님 오실때까지 인내하며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3) 말씀을 가르침으로 경책하라.

말씀을 가르쳐 진리를 지키고 성도들을 제자로 삼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딤후 3:14-17)

여기서 경책하라는것은 드러내다, 폭로하다. 조사하다 비방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잘못된것을 들어내고 꾸짖어 고쳐주라는 것입니다.

동사 엘렝코(Homer 이래)는 '꾸짖다(책망하다), 처벌하다, 정죄하다' 혹은 '유죄를 선언하다, 시험하다, 훈계하다' 등을 나타낸다.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주고 그들에게 회개하도록 권고하다'를 의미한다.

(계 3:19)

(요 16:8)


(4) 말씀으로 경계하라.

에피티마오는 비난하다, 꾸짖다, 견책하다. 의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강한 충고나 행동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나 사람들을 저지, 좌절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용납될 수 있는 유일한 질책은 겸손의 질책이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 중의 한 사람은 다른 강도를 질책한다(눅 23:41). 질책이 용서의 정신으로 행해질 때는, 한 신자는 다른 동료 신자를 꾸짖을 수 있다(눅 17:3). 질책은 특히 목회적 감독의 책임이다(딤후 4:2).


(5) 말씀으로 권하라.

파라칼레오는 소환하다, 초청하다, 권하다, 훈계하다, 격려하다, 애원하다, 간구하다. '자기 곁으로 부르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파라칼레오는 '소환하다, 초청하다, 구하다, 간청하다' ⒝ '권면하다' ⒞ '위로하다, 격려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파라칼레오는 '위로하다, 안위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바울은 고통 가운데 있는 교회들을 위로하는 것에 관해 관심을 갖는다(골 2:16; 골 2:17).


고후 1:3이하에서 바울은 환난과 고난과 사망에 대한 위로를 말한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

(바이블렉스 인용)


3. 허탄한 이야기를 쫒는 시대가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른 성경말씀에 굳게 섰습니다.

이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바른 교리와 말씀에 굳게 서야 합니다.


(1)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 때가 온다.

기복신앙이던지 율법주의 던지 영지주의 그리고 도덕 방임주의 같은 것들이요 특별히 종말시대에는 시한부 종말론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대로를 믿어야 하며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아야 합니다.

이단에 빠지면 일생을 바르게 살았던 것이 물거품이 되거나 심각한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벧후 1:20-21)

(살후 2:9-12)

(벧후 2:15-16)


(2) 귀가 가려워서 사욕을 쫓을 스승을 찾는다.

성경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심을 맞추어 주는 말씀만 찾고 들으려고 합니다. 결국 치우친 말씀만을 알게 되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갈 1:6-8)

(갈 5:2-4)


글자색

(3) 귀를 진리에서 돌이킨다.

(딤전 4:1-3)


(4) 허탄한 이야기를 쫓으리라.

(골 2:8-12)


(5) 특별히 종말시대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벧후 2:1-3)

(벧후 3:3-5)

(마 24:11)

(마 24:23-24)

(엡 6:14)


우리는 바른 구원론과 바른 신론 바른 종말론을 가지고 굳게 서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들의 욕심입니다.

쉽게 은혜를 받으려고 하고 쉽게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자신이 더욱 신령해 보이려고 합니다.


영적인 성숙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기도와 순종과 회개와 말씀연구에 힘을 써야 합니다.

바른 교훈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4. 네 직무를 다하라.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1) 근신하라

동사 네포(Soph., pta., Xen.이래)는 기본어이며, '술취하지 않다, 정신차리고 있다, 근신하다, 침착하다'를 의미한다. 비유적으로 '완전히 맑은 정신 상태', 또한 '맑은 정신에서 나오는 올바른 판단'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모든 것을 사려 깊게 회피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De. Ebr. 131).

임박한 파루시아에 요구되는 각성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벧전 1:13에서 예수님의 임박한 현현을 위한 적절한 마음 가짐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벧전 4:7에서 마지막 때의 기도를 위한 적절한 마음 가짐을 나타낸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5:8에서 마지막 날에는 악마의 흉폭한 대적 행위가 분명하게 나타나므로 이에 저항할 수 있는 각성이 필수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이와 같이 근신하라는 것은 자신이 누구이며 사명은 무엇이며 이 시대는 어느시대인지 등등을 잊어버리지 않고 의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렇될수 있는 길은 오직 기도와 말씀입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깨어있는 상태가 됩니다.


(2) 고난을 받으라

고난가운데서 낙심이나 원망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며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면 환난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을 견디어 내라는 것입니다.

(약 5:13)

(딤후 2:9)

(딤후 2:3)

(벧전 4:12-13)

(행 14:22)

(롬 5:3-4)

(계 2:10)

(계 7:9-17)

(고전 15:58)

(히 12:11)

(고후 11:23-27)


(3) 전도인의 일을 하라.

(행 1:8)

(막 16:15-20)


(4) 네 직무를 다하라.

주님께 받은 사명을 끝까지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사명을 무엇입니까?

나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찾아서 깨닫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계 2:10)

(마 25:22-23)

주신 사명을 가지고 충성을 다할뿐만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수 있는지 깨닫고 주니시는 감동대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5. 사도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요약하여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인생을 정리하여 놓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주님 얼굴을 뵈올것이다. 이것을 정하여 놓고 살아야 합니다.

(1)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고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

기름을 모두 제단에 부어드리는 것 같이 자신의 삶은 전적으로 주님을 위한 헌신의 삶이었으며 이제 끝날날이 가까웠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생명을 빚진 자로써 전적으로 주님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모두 목사 전도사 되라는 것이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말씀합니다. 다. 다.


(고후 5:14-15)

(롬 14:7-8)

(벧전 4:1-6)

사도바울은 자신의 때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들도 영원히 이 세상에 살것 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실한 삶을 살되항상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언젠가는 주님 앞에서 계산 할 날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눅 21:34-36)


(2)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며 억울하여도 주님께 맡기며 주님의 위로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영적인 싸움터입니다. 그러므로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말씀으로 성령님으로 믿음으로 십자가와 주님의 피로 이겨야 합니다.

(엡 6:10-20)

(계 21:6-8)

(벧전 2:19-25)

(벧전 4:12-14)

원망이나 낙심이나 분노에 사로잡히거 복수하거나 하지 않고 주님의 본을 따라 살았습니다.


(3) 달려 갈 길을 마쳤다.

(히 12:1-3)

(고전 9:24-25)

(빌 3:11-13)

(딤후 2:5)

마라톤입니다. 끝까지 앞을 보면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절제하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4)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의지하면서 음성을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주님을 믿음을 떠나서 자신의 마음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기도와 말씀이 없을때 믿음이 약하여 지고 주님께 대한 확신이 없어집니다. 히브리서에 있는 믿음의 영웅들 처럼 사도바울도 수많은 핍박과 유헉가운데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믿는 그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할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께 받은 은혜가 많았기 때문이며 감사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히 11:1-6)

(히 11:24-26)


(5)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

사도바울은 항상 이 세상을 넘어 천국을 사모하였고 그날에 주님을 감격가운데 만나 칭찬과 상급을 얻는 그날을 사모하였습니다.

(계 2:10)

(눅 19:17)

(마 25:21)

(벧전 5:3-4)

(계 20:4)


(6) 의로우신 재판장이 주신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사랑하여 달려온 인생이었습니다. 주님은 미쁘시기에 또한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아니하실것입니다 주님 나를 의롭게 판단하실것입니다.

(계 22:1-5)

세상 사람 아무도 나를 몰라주어도 주님이 나를 아시며 나도 주님을 알고 있습니다. 나의 사정과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사랑의 주님 나의 위로시며 나의 능력이시며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세상 아무것 하고도 바꿀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 보다 이 세상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더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7)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신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질문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가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이 다시오신다고 하시면 별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않됩니다. 정말로 주님을 알고 사모한다면 주님이 다시오심을 사모하야 합니다.


배도의 위험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주님을 사모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정체를 알면서도 주님께 순복하지도 않고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귀신의 믿음입니다.

(약 2:19-20)

(막 5:6-7)

(히 6:1-8)

(고전 8:1-3)

(마 7:21-23)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하사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사랑의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도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달려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바울은 최선을 다하여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항상 사명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항상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거짓 가르침이 올때를 경계하면서 바른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핍박이나 유혹이나 인간들의 평판에 개의치 아니하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달렸습니다.


완전한 헌신의 삶이었습니다.

영적인 전쟁의 삶이요 선한 싸움에 승리하였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주님을 위하여 죽는다고 정리하고 살았습니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일주일 일주일 한달한달 매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었을까요?그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것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오직 주님 밖에는 더 귀한 분이 없을을 진정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보다 더 아름다운것은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넘치는 은혜를 알았습니다.

지옥으로 천국으로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 모든 것을 값없이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사랑하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그렇게 달려갈수가 있었습니다. 나도 알수 없는 기쁨을 부어주시기에 그렇게 달려갈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주님께 받은 은혜를 알고 있습니까?

나는 나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그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우리들도 바울처럼 후회없는 삶을 위하여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항상 말씀 전파에 힘을 쓰는 쌂이 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신 크신 은혜를 깨달아 주님을 죽도록 사랑함으로, 후회없는 일생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말씀전파 영혼구원을 위히여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