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주님의 결단>(눅 22:39-46)

마라나타!!! 2016. 2. 1. 09:11

<예수님의 결단>

벌써 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 일월달에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일생을 통하여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마음을 헤아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삶이 었으며 동시에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결단하여 사시는 모습임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의지하며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안에서 그 기쁘신 소원을 우리에게 일으키시고 우리들의 인생을 이끌어 나가십니다. 그럴때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로 결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결단하고 바벨론 왕궁에서 주는 좋은 음식을 먹지 아니하셨습니다. 우상에서 바친것들이요 율법에 금지된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결단하고 이집트의 왕궁에서의 부유한 삶을 버리고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기를 택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기로 결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려 기도하시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드리시는 결단을 하셨습니다. 물론 미리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바로 눈앞에 다가온 십자가의 고난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도 물론 굳게 정하신 뜻이 있었기에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까지 복종하실수가 있었습니다. 뜻을 굳게 정하지 않으면 무슨일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님의 일생을 살펴 보면서 뜻을 정하신 교훈을 따라서 우리들도 뜻을 굳게 정하고 올해를 아니 일생을 살아감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우리들의 삶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주님은 결단으로 이 죄악 세상에 오셨습니다.

(1) 예수님은 우주의 창조자시오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창 1:1-3)

(요 1:1-5)

(잠 8:22-31)


(2) 주님은 메시야를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사 6:1-8)

우리들도 주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요 20:19-23)


(3)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셨고 인간 중의 하나가 되셨습니다.

(빌 2:5-11)

(요 1:14)

(마 1:18-25)


(4) 주님은 육신을 입고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습니다.

(눅 2:3-7)

(미 5:1-2)


(5) 주님은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습니다.

(눅 2:39-40)

(마 2:19-23)


(6) 주님은 100 퍼센트 완전한 인간이시오 100 퍼센트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오직 하나의 중보자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예수님이 그 영광을 버리시고 이 죄악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야만 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이 타락하여 죄와 사망에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마귀 권세아래 있고 지옥을 심판받아 떨어질 운명에 처하여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죄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막 10:45)

(마 10:35, 개역)

(눅 19:10, 개역)

(요 10:10, 개역)

(요 12:47, 개역)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도 동일합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인간들을 지옥에서 구원하시려는 목적입니다.

(막 16:15-16)


(7)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수님 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자들이 됩니다.

(벧후 1:3-9)

(벧후 1:3-9)

(갈 5:22-24)

(롬 8:29)

(엡 4:13)

예수님은 결단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영광의 자신을 비우시고 이세상에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의 자기 비우심을 생각할 때 인간들이 무엇이 잘났다고 교만한것을 보면 참으로 우습기만한 모습입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더욱 자신을 비우고 감사함으로 주님의 뜻에 순복하여 사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결단하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아기로 이세상에 오셨을때 그 의식의 과정을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아버지와 성령님과 함께 사랑의 사귐 영광의 사귐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시고 이 죄악세상에 인간으로 오신다는 것은 주님께는 마치 죽음에 넘기우는 것 같은 체험이었을것입니다. 아기 예수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의식이 희박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차 성장하시면서 인간 예수님의 의식속에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지식이 자라났을 것입니다. 죄없는 거룩한 성품과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의신과 자신이 왜 왔는지 성령님을 통하여 점차 깨달아 가셨을것입니다. 이전에 있던 아버지와의 교통을 통하여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이런 예수님의 성자과정을 잘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오직 누가 복음에만 주님의 12살 시절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눅 2:40-52)

이제 세례요한이 나타나 세례를 베풀면서 회개를 외치자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나타나실 때가 왔음을 인지하시고 결단하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를 받는 다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죄를 씻는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이며 옛사람을 장사지내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그당시 세례요한의 세례의 의미는 회개의 의미가 강하였습니다. 물에 묶은 때를 씻어 버리듯이 마음을 회개하여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역시 결단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님을 영접할수 있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 40:3-8)

(눅 3:3-6)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므로 사실 회개와 정결함을 위하여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들 처럼 세례를 받으신것은 바로 예수님이 인간들을 처럼 되시는 것이요 인간들 대표하시고 대신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인간들의 죄짐을 대신 지시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인간들의 죄짐을 대신지시는 결단의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짐을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마 3:13-17)

(요 1:29-34)

주님은 인간들의 죄악의 짐을 대신 지시기로 결단하신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도 원망 분노 복수심으로 가득차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맡기며 참아낼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벧전 4:12-14)

(벧전 3:19-25)


3. 예수님은 결단하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1)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창 3:1-6)

주님은 두 번째 아담으로 인류의 대표로써 첫 번째 아담이 타락하여 넘어진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롬 5:14-16)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승리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요 예수님 안에서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는 오늘도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을 같은 방법으로 서험하여 넘어 트리려고 합니다.

(요일 2:15-17)


(2) 이스라엘의 광야 실패를 만회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원망 불평과 우상숭배와 반역을 일삼음으로 애굽에서 나온 첫세대 중에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땅에 들러갈수 있었습니다. 실패한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승리하신것은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써 과거의 수치는 씻는 의미다 있으며 이스라엘의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사명에 실패를 하였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성공적으로 이루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것입니다.

(민 14:1-10)

(사 9:1-7)


(3) 성령의 권능을 얻는 사건이었습니다.

(눅 4:14-15)


(4) 마귀가 예수님을 무서워하기 시작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눅 4:13)


(5) 하나님의 나라가 마귀의 나라를 침공하는 본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바로 마귀의 왕국을 침공하는 성공적인 상륙작전이었다며 예수님의 광야시험의 승리는 바로 마귀의 나라의 임금인 마귀가 메시야 예수님께 패배를 당하는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침공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된것입니다.

이 때 부터 주님은 가시는 곳마다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마를 물리치시면 죽은자를 살리심으로 마귀에게 눌린자들을 해방시키기 시작하신것입니다.

(행 10:38)

(마 9:35)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에 확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권세를 주셔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마 10:1-2)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마귀의 권세를 결정적으로 깨트리시는 사건이요 마라하자면 이 세상나라의 수도에서 왕을 몰아내시고 하나님 나라의 깃발을 세운 사건입니다.

(골 2:14-15)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구속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을 부으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본격적으로 이 세상에서 확장되기 시작한것입니다.

(행 2:37-42)


(6) 예수님은 결단하시고 40일을 금식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들의 힘으로는 마귀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해야 하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피상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마귀가 나의 기도의 수준과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처럼 마귀가 두려워하는 기도의 사람들 권능의 사람들이 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막 5:1-8)

(눅 4:31-35)

우리들도 주님처럼 결단하고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금식과 기도에 힘씀으로 권능을 얻어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고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를 확장하여 나가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결단하고 항상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생활은 우리들의 기도생활의 모범이 됩니다.


(1) 주님은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막 1:35)


(2) 주님은 밤을 새워기도하셨습니다.

(눅 6:12-16)


(3) 주님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막 1:45)


(4) 주님은 습관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눅 22:39-46)


(5) 주님은 중요한 순간 마다 기도하셨습니다.

나사로

(요 11:41-44)

오병이어

(요 6:11)


(6) 겟세 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마 26:36-41)


(7) 기도하실 때 하늘문이 열리고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눅 3:21-22)(계 4)


(8) 기도하실 때 변화를 받으셨습니다.

(눅 9:28-30)


(9)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마 4:1-2)


(10) 기도하실 때 천사들이 수종을 들었습니다.

(눅 22:42-43)

(마 4:11)


(11) 주님은 기도를 가르치셨고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눅 11:1-3)

(눅 18:1-3)


(12) 종말의 시대에는 더욱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눅 21:34-36)

주님은 기도로 기도로 사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대로 행하시기 위함입니다.

권능을 행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생명줄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기도로 사셨다면 그를 따르는 우리들은 더욱 결단하고 기도에 전념해야 할줄로 믿습니다.

결단하고 기도함으로 하늘의 능력과 기쁨이 충만한 한해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주님은 결단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장서서 나아 가셨습니다.

(눅 9:51-52)

(눅 19:28)


사도바울도 예루살렘에서 환난과 핍박이 기다림을 알았지만 주님께 받은 사명을 결단코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행 20:17-24)


주님은 결단하고 사명의 길을 향하여 나가셨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기다렸지만 주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 사명을 잊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려워하여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위한 발걸음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어렵고 두렵고 무거운 짐같이 생각되는 사명들도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멈추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 10:32-39)


문제들과 핍박을 바라볼것이 아니라 나에게 지금도 힘주시고 나를 응원하시며 기뻐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6.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자신을 드리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자신의 두려움과 한계를 넘어설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고난을 알고 계셨지만 막상 눈앞에 닥친 고난 앞에서 아버지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극심한 고난임을 알았고 그만큼 중요한 사명임을 알았습니다. 온인류의 운명이 자신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결단도 중요하지만 아버지의 도우심을 구하였고 자신을 완전히 드릴수 있는 마음의 각오와 평강이 필요하였습니다.

(눅 22:39-46)

(마 26:36-41)


7. 결단하고 십자가에서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1) 주님은 조롱과 모욕과 고통을 참아 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내려와 보아라

(눅 23:35-38)

(마 27:27-31)

(마 27:45-46)

(마 27:50)

어버지여 아버지여 왜 나를

맡기나이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사명과 아버지의 뜻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절대적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2)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심으로 참아 내셨습니다.

(히 12:1-3)


(3) 아버지께서 자신을 다시 살리실줄로 믿었습니다.

(히 5:7-10)

죽은자를 살리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때 이삭을 다시 살리실것을 믿었습니다.

(히 11:17-19)

이것을 믿어야 순교할수 있습니다.

그냥 주님이 나와 함께계시며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정도의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주님을 위해 순교당하여도 다시 살리실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마의 목숨을 내어 드릴수 있습니까?

죽어도 산다는 부활신앙은 우리의 믿음의 기초입니다.

(행 26:4-18)

(고후 1:9)


(4) 죽은자도 살리시는 전능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죽은 교회를 능히 살리실수 있습니다.

주님은 죽은 가정을 능히 살리실수 있습니다.

주님은 죽은 사업을 능히 살리실수 있습니다.

(롬 4:17-25)

(롬 10:9-10)

(요 11:25-26)


(5) 주님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주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들의 모든죄가 사하여졌음을 증거하는 사건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망 권세가 깨졌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고전 15:51-58)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능력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주님은 인류를 살리시려는 사명을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고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완전히 깨트려 버리셨습니다.

(고후 4:7-10)

(고후 12:10)


(6)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히 7:25)

(롬 8:32-34)

(히 1:1-3)


8.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기로 결단 하셨습니다.


(1)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릴 사랑하시고 위하여 피흘려 구속하신 주님은 이제 구속의 완성을 위하여 다시 오십니다.

우리들의 영혼은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육신은 구원을 받지 못했고 아직 천국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우리는 몸과 영혼이 홀연히 변화받아 주님을 만나 뵙게 됩니다. 이것을 영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구원의 완성입니다.

(빌 1:21-24)

(살전 4:16-17)

(빌 3:20-21)


(2) 구원받은 성도들을 추수하시기 위함입니다.

(마 13:36-43)

(계 14:14-16)

(마 24:29-31)


(3) 이 세상에서 모든 악을 멸하시기 위함입니다.

(계 18:1-3)

(계 20:10)

(계 19:17-21)

(살후 1:6-9)


(4) 모든 진실을 밝히시기 위함입니다.

(계 1:7)

(고전 4:1-5)

(딤전 5:24-25)

(히 4:13)

(벧후 3:10)


(5)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살후 1:10)


(6) 성도들에게 한없는 위로와 안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계 7:9-17)


(7) 성도들에게 천국과 상급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계 20:4)

(마 25:23)

(마 25: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삶은 결단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순종의 결단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명의 결단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랑의 결단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충성의 결단을 하셨습니다.

책임을 완성하는 결단을 하셨습니다.

희생의 결단을 하셨습니다.

자신을 버리는 결단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영광과 뜻만을 나타내시기로 하셨습니다.

주님은 승리의 확신 소망의 결단 확실한 비젼을 가지셨습니다.

주님은 기쁨으로 결단을 하셨습니다.


특별히 주님은 광야에서 40일 금식하며 기도하심으로 승리하셨고 그때부터 마귀가 주님을 두려워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침투요 승리입니다.

마귀는 나의 영적인 수준을 알고 있습니다.

마귀가 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마귀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깊은 기도로 권능의 삶을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끝까지 참아 내셨습니다.

목숨을 아버지께 맡기는 절대적 복종의 결단이었습니다.

자신을 죽은 자가운데서 다시 살리실것을 믿었기에 완전히 맡기셨습니다.

내가 핍박으로 순교의 위기에 있을때 나의 목숨을 내어줄수가 있을까요?

니는 내가 죽어도 나를 능히 다시 살리실것을 믿으십니까?죽은 자도 다시 살리신다는 이런 믿음이 있어야 능히 순교할수 있습니다.


오늘도, 결단의 삶을 살아가신 주님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을 굳게 정하여 주님 얼굴 뵈올때 까지 흔들리지 아니하고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