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

마라나타!!! 2015. 4. 17. 02:24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요 20:19-23)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두려워하여 문을 잠그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주님은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있을지어다 말씀을 하시고 너희를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시면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 주님의 나타나님은 필수적인것이요 주님의 음성을 영원합니다. 주님이 엄연히 살아계신데도 불구하고 두려움의 감옥에 같혀 사는 사람들이이 있습니다. 왜 이세상에 사는지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은 오늘도 주님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와 함께 계시며 나타나고 계십니다. 함께 계신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수 있습니다. 승리하신 주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 나를 죽도록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나타나 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새롭게 만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안식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이 모인곳에 나타나심

(1) 안식후 첫날 저녁에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날 저녁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날이 주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율법이요 주일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계 1:10)

(고전 16:2)

(골 2:16) 


복음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마 22:37-40) 

(요일 4:7-11)

(롬 13:10) 

(롬 10:3-4) 

(요 13:34-35)

(행 20:7) 

율법과 복음을 바로 구분하여 자유함과 사랑으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서로 함께 모였을때 나타나셨습니다.

교회는 함께 모여야 합니다.

함께 모일때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마음으로 믿음과 사랑과 사명으로 하나가 된곳에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히 10:25)

(행 2:1-4) 

(행 10:33) 

(레 23:1-3) 


주일날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감사함으로 열심히 모일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었을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1) 주님이 나타나심으로 두려움을 물리쳐 주십니다. 

성경말씀은 수없이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눙력의 주님이 나타나실 때 두려움은 떠나갑니다.

빛이 나타나면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 41:10) 

(사 43:1-3) 

(창 15:1) 

(시 27:1-5)

(마 14:24-33) 

(계 1:13-19) 


(2) 주님이 제자들 가운데 서셔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운데 계십니다.

(마 28:18) 

(요 14:16)

(갈 2:20)

(골 2:1-3) 

(골 1:27) 

(살전 2:13)

(고후 13:1-5)

(살전 5:10) 

(행 18:9-10)

(행 23:11) 

(행 27:22-25) 


(3) 주님이 나타나시면 문을 열고 나올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눌려서 살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에 눌려 있습니다.

담대함이 없고 기쁨이 없고 용기가 없습니다. 자유함이 없습니다.


(마 11:28) 

(롬 6:6-7) 

(롬 8:1-2) 

(요 16:33) 

(갈 5:1) 

(고후 3:17) 

(빌 4:13) 

(고후 6:8-10) 

(빌 1:18-21) 

(대하 16:9) 

(롬 14:7-8) 


(4) 주님의 위대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마 28:18-20) 

(빌 2:9-11)

(계 1:13-16) 

(행 7:54-57)

(히 1:1-3) 

(히 7:25) 

(롬 8:33-34) 

(행 2:33-36) 

(사 9:6-7) 

(마 8:29) 

(마 8:26-27) 

(요 11:43-44) 

(마 16:16) 


3.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우리의 평강이십니다.

주님이 나타나시면 모든 악한 존재들은 떠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주님을 만나는 능력입니다.

(히 11:1-6) 

(요일 5:1-5) 

(빌 4:6-7) 

(엡 3:17-19)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요일 4:18-21) 

주님의 임재하심이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주님의 임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말씀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 충만에 힘을 써야 합니다.


(마 4:4) 

(골 3:12-17)


4. 주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죽어 장사까지 지낸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해 본일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나타나시자 유령으로 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상처난 손과 발을 보여 주셨으며 만져 보라고 하셨으며 음식을 잡수기까지 하셨습니다.

(눅 24:36-43)


(1) 주님의 부활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살아나셨고 40일간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것 만해도 열두번입니다.

(고전 15:1-9)

(눅 24:30-32) 

(요 21:1-6)


사도 요한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난 감격과 확신을 요한일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일 1:1-4) 

특별히 주님이 사도바울에게 나타나신 사건은 너무나 극적입니다. 

(행 9:1-6) 

주님의 부활의 확신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의 부활의 확신

주님의 부활은 곧 우리들의 부활입니다.

(고전 15:51-58) 

(살전 4:16-17) 

(계 20:4) 

(고전 13:12-13) 

(고후 5:1-5) 

(롬 8:9-11) 

(계 21:3-4)

부활 소망에 서서 흔들리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끝까지 충성을 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살아계신 주님과 사귀어 살아야 합니다.

(요 10:27) 

(마 4:4) 

(살전 5:10)

(갈 5:16-19) 

(롬 10:13-14) 


(4) 연속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찬송가 231장 처럼 우리 주님을 만나 뵈올때 우리는 주님의 손과 발의 못자국난 상처를 보고 주님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그 영광과 사랑의 상처는 남아 있었습니다. 부활한 몸은 완전한 신령한 몸이지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 모습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순간에 구원을 받은 강도와 순교자의 받을 상급이 전혀 다른것입니다. 다른 모습의 영광의 모습으로 부활할것입니다.

(골 3:1-3) 

(빌 3:19-21) 

(갈 6:17) 

일생을 통하여 주님을 사랑하여 희생하며 십자가를 지고 따른 그 흔적을 남기시기를 축원합니다.

(눅 9:23) 


5. 나타나신 주님은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하셨습니다.

(1)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요 17:14-16) 


(2) 우리는 천국 대사들입니다.

(벧전 2:9-10)

(행 13:1-5) 


(3) 우리의 시민권은 천국에 있습니다.

(빌 3:19-21) 


(4) 각자 이 땅에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고전 9:24-25) 

(딤후 4:1-2)

(딤후 4:6-8)

(행 20:24) 


6. 나타나신 주님은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시고 숨을 내어 쉬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 가지 해석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앞으로 받을 성령님을 미리 부어주신것이며 미리 성령님을 체험하도록 일부 부어주신 것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단순한 상징적인 행동만은 아닙니다.


(1) 숨을 내어 쉬신 사건이 성경에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숨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처럼 자연에서 나타나는 듯한 어떤 다른 능력이나 생기가 아니고 성령님의 생명을 주시는 특별한 능력을 일컷는 말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창 2:7) 

(겔 37:7-10) 


(2) 주님은 미리 성령시대를 예고하셨습니다.

(행 2:1-4) 


(3) 성령님은 주님 대신 오신 분이십니다.

(요 16:7)

성령님은 보혜사라고 합니다. 옆에서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 평에서 항상 계시면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셨고 도와 주셨습니다.

마찬 가지로 성령님은 우리 옆에 항상 계셔서 우리는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요 14:16-17)

(요 14:26-27)

(요 15:26) 

(요 16:13-14) 


(4) 우리는 성령의 전입니다.

(고전 3:16) 


(5)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비결

회개, 순종, 안수, 말씀, 기도입니다.

모두 사도행전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신령한 노려를 부르며 기도하는 분위기가 될 때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방언으로 기도할때도 성령님이 강하게 임하십니다.

우리들도 지금 여기서 같은 심령과 같은 방법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충만은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 1:4-5) 

(행 1:14) 

(행 2:1-4)

(행 2:38) 

(행 5:32)

(행 8:14-17)

(행 19:4-7)

(행 10:44-46) 


(6) 성령충만의 중요성

**주님을 고백할 때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고전 12:1-3)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성령의 임재하심과 음성

(계 2:7)


**말씀을 깨달을때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딤후 3:16-18) 


**사명을 위하여 성령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행 1:8) 


**악령들을 내 쫓을때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마 12:28) 

우리들의 모든 신앙생활에서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8)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명령형입니다.

성령님을 체험할려면 마음을 열고 성령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수동적이 되어야 하고 몸의 힘을 빼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성령님께 몸과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엡 5:16-18)


항상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7. 죄를 사하면 사하여 지리라.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제자들에게 혹은 교회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를 주신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직접적인 죄사함의 효과가 있고 제자들에게나 교회에 죄사함의 권세를 주신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천주교는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

이것은 선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교회나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 믿고 받아 들이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는 것이고 거부하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첫째는 인간의 죄를 사할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막 2:5-7) 

(눅 7:48-49) 


두 번째는 성경어디서도 사도들이 다른 사람의 죄를 직접 사하여 주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행 2:38) 

(행 8:22) 


그리고 타락한 인간들에게 죄사함의 권세를 주신다는 것은 말도 않됩니다. 자신이 항상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아야할 판에 누구의 죄를 용서해준다는 것입니까? 그사람이 진실로 회개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수가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 만이 인간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삼상 16:7) 

(잠 16:2)

(고전 9:16) 

이 말씀은 복음 전파의 반응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막 16:15-20) 

(행 4:29-31) 

(행 4:7-8)

(행 7:54-56)

(벧전 1:12) 

죄사함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로만 가능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벧전 1:18-19)

(요일 1:7-9)

(히 10:15-20) 

(엡 1:7) 

성령의 은사로 어느 사람이 회개하였는지 죄가운데 있는지 알수도 있습니다. 이럴때 그 여부를 선언할수도 있습니다. 안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에서 베드로는 그들이 성령을 속이 죄를 지은 사실을 알았습니다.(행 5:1-11)


오직 나를 판단하실 분은 예수님 뿐이십니다.

(고전 4: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날이 바로 부활의 날 임을 알고 계십니까?

나는 두려움에 문을 잠그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까?부활의 주님이 나에게 어떻게 나타나시고 계십니까?

주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을 확신하고 계십니까?

나는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임을 알고 계십니까?

나는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를 판단하실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확신하십니까?

부활의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깨닫고 주님을 더욱 찾고 의지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셔서 모든 의심과 두려움과 슬픔을 물리치시고 진정한 평강과 기쁨과 능력을 누릴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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