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엠마오 길 부흥회>

마라나타!!! 2015. 5. 8. 04:05

                                <엠마오 도상의 부흥회>

(눅 24:13-35) [[13]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16]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19]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오늘 본문은 낙심과 슬픔에 쌓여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타나 주셨고 그들은 믿음을 회복하여 다시 그 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충성을 다하려는 성도들도 여러 가지 낙심과 과 슬픔을 격을수가 있습니다. 함께 계시는 주님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그래서 마치 부흥회의 한 장면과도 같습니다. 그들의 눈이 떠졌고 마음이 뜨거워졌으며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들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동행하고 계시면 나타나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만나면 슬픔이 기쁨이 되고 낙심이 위로와 용기로 바꾸어집니다.

오늘 본문을 따라가면서 함께 주님을 만나고 나의 믿음과 신앙이 회복되는 놀라운 부흥이 우리들의 심령과 교회에 일어 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낙심과 슬픔의 단계

두 제자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메시야로써의 예언 성취를 많이 기대를 하였지만 예수님은 힘없이 잡혀 죽으로 말았습니다. 그들은 낙심과 슬픔과 실망 등등입니다.

(1) 낙심의 두제자들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일을 하다가 낙심될때 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마귀가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바로 낙심입니다. 그래서 그만 두도록 포기하도록 부추깁니다. 우리는 힘을 내야 하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잘 싸워 이겨야 합니다.

(갈 6:9)

(요 16:33)

(요 14:1-3)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Come to Me, all you who labo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시 126:5-6)

(히 10:35-39)

(사 40:27-31)

(애 3:19-23)

(시 27:1-5)

(고후 4:1-2)

(고후 4:7-10)

(고후 4:16-18)

(살후 3:13)

(히 12:1-3)

(히 12:5-8)

(2)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신앙의 중심지요 영적으로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상징적으로 제자들이 엠마오로가고 있었다는 것은 교회에서 실망하여 세상으로 가고 있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사랑하고 지키고 헌신해야 합니다.

(룻 1:1-5)

(행 1:1-5)

(요일 2:15-17)

(약 4:4-7)

(3) 예수님께 대한 기대가 컷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 대한 기대가 컷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해방을 주실것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이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눅어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예수님께 대한 백성들의 기대는 극도에 달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물리적이고 세상적인 축복과 성공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실망합니다. 기복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막 10:45)

(눅 19:10)

(요일 3:8)

우리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주님을 이용만할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갈 2:20)

(고후 5:14-15)

2. 함께 계시는 주님을 못알아보는 단계

우리는 왜 이 두 제자들이 사랑하는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하였는지 몇가지로 생각해 볼수가 있습니다.

(1) 너무나 큰 슬픔과 낙심 때문에

(2) 하신 말씀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3) 주님이 자신을 나타내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며 보고계시며 알고 계십니다. 사실 성경 전체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죄를 짖고 쫓겨 났지만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즉시 구원을 선언하시며 그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과 인간사에 막힌 모든 악을 깨끗하게 하고 다시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될것입니다. 임마누엘은 그야말로 성경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시 인간들을 버리실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막고 있는 죄를 없이 하시며 성령을 보내셔서 다시 하나님과 연합되어 사는 놀라운 축복을 주신것입니다. 새하늘 새땅에서 하나님과 완벽한 하나됨이 이루어져 살게 될것입니다.

(창 3:15)

(창 3:21)

(창 15:1-3)

(창 28:16-18)

(사 6:1-5)

(출 40:34-38)

(마 1:18-25)

(마 28:20)

(행 18:9-10)

(행 23:11)

(계 1:13-16)

(계 21:1-4)

3. 말씀을 듣고 배우는 단계

이제 주님은 두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1)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딤후 3:14-17)

(행 17:10-12)

(2) 말씀을 배우면 마음이 뜨거워 집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엡 6:17)

(히 4:12)

(렘 23:29)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요 사람을 살리는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요 지혜와 기쁨을 주시며 마음과 생각을 지켜 길을 안내합니다.

(히 11:1-3)

(약 1:18)

(벧전 1:23)

(시 119:49-50)

(시 119:171-172)

(시 119:165)

(3) 말씀의 중요성입니다.

말씀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시 1:1-3)

(삼상 15:23-26)

(왕하 17:15)

(4) 말씀 속에서 도덕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눅 24:25-27)

(눅 24:44-45)

(5) 말씀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머리만 크고 가슴이 없는 사람은 비정상입니다. 성경말씀이 내 머리에만 가득하고 가슴에 없다면 그는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을 때 주시기 때문입니다.

(롬 10:17)

(롬 10:9-10)

(마 4:4)

(요 10:27)

(계 2:7)

이것은 마치 레위기에서 정하고 부정한 동물들을 구분하여 먹을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켜 주신 말씀과도 상통합니다. 눈으로 귀로 머리로 말씀을 읽고 듣지만 결국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내마음에 음성으로 들려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암기하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머리의 지식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바꾸어주십니다. 머리의 성경말씀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되새김질 되어 내 마음에 음성으로 들려져야 내 진정한 양식이 됩니다. 그리고 믿음이 되고 나가서 그 믿음대로 살게 됩니다.

(레 11:3)

(약 2:17-22)

(6) 듣기 좋은 말씀 뿐만 아니라 듣기 힘든 말씀도 읽고 들어야 합니다.

(히 5:11-14)

 

(7)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 119:131)

(시 119:103-105)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곧 그 말씀을 하시는 주님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거듭난사람은 영혼의 양식이 필요하고 배고픔을 느낍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거듭난 영혼은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영적인 갈망과 배고픔이 있습니까?

(마 4:4)

4. 은혜를 사모하는 단계

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었기에 두 제자는 도중에 하룻밤을 쉬어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냥 지나가시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함께 계시기를 강권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씀의 맛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냥 지나가시려고 하셨는데 이 상황을 보면 주님은 부드러운 인격이지시기에 절대로 강제로 무엇을 하시지 않습니다. 먼저 자원하는 심령을 주시고 기도하는 심령을 부어주셔서 일을 하십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십니다.

(빌 2:13)

(계 3:20)

(슥 12:10)

(1) 우리는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주님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만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대적 원수 마귀가 들 끓고 있는 이세상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힘든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그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대하 16:9)

(고전 15:10)

(마 7:7-8)

(잠 8:17)

(시 18:1-3)

(시 42:1-3)

(2) 주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호 12:6)

(미 7:7)

(히 12:1-3)

(시 33:18-22)

(시 62:5-8)

(3) 한 발자국 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다한 것 같다고 생각할 때 한번 더 열심을 내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을 붙잡는 기도입니다. 야곱이 붙잡고 기도하였듯이, 엘리야가 일곱 번 기도하였듯이 그리고 한나가 기도하였듯이 우리는 강권하여 주님을 붙잡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듯이 간절히 힘을 다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창 32:24-28)

(삼상 1:10-11)

(눅 22:42-44)

비록 약속하신 것이라고 해도 간구하여야 이루어집니다.

(겔 36:37)

(단 9:1-10)

5. 주님을 의식하는 단계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주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눈이 떠졌습니다. 아마도 주님의 손에서 못자국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주님이 떡을 떼시는 모습에서 마지막 성만찬식의 모습을 발견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주님이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계심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의식이야 말로 우리를 가장 강하게 만들고 보든 두려움과 염려를 쫓아 냅니다.

마 28:20

살전 5:10

골 1:27

고후 13:3-5

롬 10:13

행 18,23

창 28

사 41, 43

임마누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눈을 떠서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히 12:1-3

롬 1:16-17

히 11:6

호세아

미가

잠 8:17

렘 29:13

*눈을 떠서 살아계신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행 18:9-10) (히 12:1-2)

*눈을 떠서 천사들이 우리들과 함께 계심을 보아야 합니다.

(왕하 6:14-17)

*눈을 떠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보아야 합니다.

(사 6:1-5)

(행 7:54-57)

*눈을 떠서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계심을 보아야 합니다.

(수 1:5-6)

*눈을 떠서 세상의 헛됨을 보아야 합니다.

(전 1:1-7)

(시 146:1-3)

*눈을 떠서 주님의 다시오심과 그 영광과 권능을 보아야 합니다.

(마 24:29-31)

(계 1:7)

*눈을 떠서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고 계시며 사랑하시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습 3:17)

 

*눈을 떠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랑의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갈 3:1)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벧후 3:11-13)

 

6. 확신으로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단계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면 열심이 생깁니다.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돌아오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하여 제비 뽑으리라]

(대하 30:6, 개역)

(아 6:13, 개역)

(사 31:6, 개역)

(사 44:22, 개역)

(사 55:7, 개역)

(렘 3:12, 개역)

(렘 3:14, 개역)

(렘 3:22, 개역)

(렘 4:1, 개역)

(호 14:1, 개역)

(욜 2:12, 개역)

(슥 1:3, 개역)

(슥 1:4, 개역)

(말 3:7, 개역)

(행 14:15, 개역)

돌아가는 것은 바로 회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교회에만 나왓다고 되는 줄알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원하십니다. 말라기에서도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며 마음에도 없는 제물을 드리면서 의무를 다하엿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 마음을 드리는 가장 좋은 척도가 바로 마음을 담은 온전한 십일조 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낙심의 자리에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죄악의 자리에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절망과 슬픔의 자리에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의심과 원망의 자리에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안일함과 세상 쾌락의 자리에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돌아가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하 7:14)

(욜 2:12-14)

(호 14:1-3)

(사 57:15)

(눅 15:16-24)

(욘 2:1-9)

주님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겸손의 자리 감사의 자리 사랑의 자리로 돌아와서 주님을 더욱 열심히 섬길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욥 42:6, 개역)

(시 7:12, 개역)

(겔 18:30, 개역)

(마 3:2, 개역)

(마 3:8, 개역)

(마 3:11, 개역)

(마 4:17, 개역)

(마 11:20, 개역)

(마 11:21, 개역)

(마 12:41, 개역)

(막 1:4, 개역)

(막 1:15, 개역)

(막 6:12, 개역)

(눅 3:3, 개역)

(눅 3:8, 개역)

(눅 5:32, 개역)

(눅 10:13, 개역)

(눅 11:32, 개역)

(눅 13:3, 개역)

(눅 13:5, 개역)

(눅 15:7, 개역)

(눅 15:10, 개역)

(눅 16:30, 개역)

(눅 17:3, 개역)

(눅 17:4, 개역)

(눅 24:47, 개역)

(행 2:38, 개역)

(행 3:19, 개역)

(행 5:31, 개역)

(행 8:22, 개역)

(행 11:18, 개역)

(행 13:24, 개역)

(행 17:30, 개역)

(행 19:4, 개역)

(행 20:21, 개역)

(행 26:20, 개역)

(롬 2:4, 개역)

(롬 2:5, 개역)

(고후 7:9, 개역)

(고후 7:10, 개역)

(고후 12:21, 개역)

(딤후 2:25, 개역)

(히 6:1, 개역)

(히 6:6, 개역)

(히 12:17, 개역)

(벧후 3:9, 개역)

(계 2:5, 개역)

(계 2:16, 개역)

(계 2:21, 개역)

(계 2:22, 개역)

(계 3:3, 개역)

(계 3:19, 개역)

(계 9:20, 개역)

(계 9:21, 개역)

(계 16:9, 개역)

(계 16:11, 개역)

교만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따를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7.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누리는 단계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미 제자들이 모여서 주님의 나타나심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나타나신 주님과 간증으로 인하여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아름다운 성도들과 함께 모여 사랑으로 사귀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곳은 교회입니다.

교회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오실 때 까지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주님과 사귀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능력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생명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기쁨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소망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사랑이십니더.

주님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엡 1:17-23)

(엡 5:22-33)

(시 133:1-3)

(아 6:1-3)

(아 4:9-15)

“주님,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우리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며 한없는 위로를 주실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지금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에맘오입니까? 예루살렘입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알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닙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눈이 떠져야 합니다.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천국을 보아야 합니다.

가슴이 뜨거워 져야 합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까?한번 더 조금더기도하고 말쓰보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십니까?

오직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절대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의 작난입니다.

오늘도, 마음의 눈이 떠져서 살아계신 주님 부활승리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깨닫고 낙심의 자리에서 다시 사랑과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부흥의 역사가 있으시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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