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세상과 성도들>(요일 2:12-17)

마라나타!!! 2013. 8. 21. 07:51

                                            <세상과 성도들>

(요일 2:12-17)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오늘 본문을 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제자요 다른 사도들처럼 순교당하지 않고 일생을 마친 사도입니다. 이 서신을 쓰고 있을 때는 아마도 그의 나이가 90은 넘어섰을것이요 영적인 통찰력과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주님과 사귀어 사는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을 썼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계시록을 썼습니다.


요한 복음도 강조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세상이냐 주님이냐를 분명하게 선택할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며 이 세상 즉 적국 안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바른 영적인 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들을 셋으로 구분하면서 성도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왜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원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다른 것을 알수가 있는데 그것은 처음에는 “쓰는것은“ 이라고 되어 있고 뒤에 말씀들은 ”쓴것은“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로 된것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관계 처럼 요한복음을 가르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어느 사람들은 2장 11절까지가 ”쓴것”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둘다 가능한 해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요한일서를 쓴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는 바로 영지주의 이단아래서 성도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하여 쓴 서신입니다.

(요일 1:3-4)

(요일 5:13)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사귐 그리고 영생이 있음을 확신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이단을 경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단은 주장하기를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 성령이 강하게 임하셔서 예수역할을 한것이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 성령께서 떠나신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나가서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주장하여 영과육은 함께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부인한것이요 성육신을 부인한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것을 부인한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서두부터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즉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았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세상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정립하고 나가서 주님 만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감사 찬양하면서 사귀어사는 살아 있는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자녀들아 아이들아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본문에서 자녀들 아이들 청년들 아비들이라고 구분한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같은 교회의 성도들을 가지고 다른 관점에서 부르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서신의 여러곳에서 성도들을 “나의 자녀들아” 라고 부르고 잇기 때문입니다.

(요일 2:1)

(요일 4:4)

(요일 3:18)

다음은 자녀들 이라는 말은 전체 상대를 이르는 말이고 청년들과 아비들 두로 나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세 가지 다른 영적인 성숙을 가진 자들을 구분하여 쓴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어느 구분을 따르던 세가지 성숙도를 가진 성도들이 있는것이 교회입니다.


(1) 그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았다

그 이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사함을 주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인류는 치명적인 죄의 질병에 걸려 있고 이 세상 어떤 약도, 재물도, 노력도, 의술로도 고칠수 없는 질병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이 죄사함을 얻게 합니다.

(엡 1:7)

(벧전 1:18-19)

(히 9:22)

(요일 1:7) (히 9:13-14)

(히 10:19-20)

이름이라는 말은 바로 이름을 가진 사람 자체를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과 흘리신 피로 우리가 죄사함을 얻고 용서함을 받았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들의 구원입니다. 다른 분은 없습니다.

(행 2:38)

(행 2:21)

(행 10:43)

(롬 10:13)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공로로 죄사함과 구원을 얻는다는 뜻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주님으로 인정하고 내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 까지를 의미 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안에 계실 때 바로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컽는 크리스챤이 된것입니다. 구원은 이와 같이 피상적인것이 아니고 모양만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안에 계셔야 합니다.

(요 14:16)

(갈 2:20)

(행 3:6)

(고후 13:5)

(엡 3:17)

(요 14:6)

(행 4:12)

구원의 첫단계는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2) 아버지를 알았다.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거듭난 것이요 바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만드셨고 하나님의 숨을 내어쉬심으로 우리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아서 죄를 지었고 반역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된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듯이 우리들을 사랑하셨고 기다리셨고 결국 우리 인간 자신들이 자신들의 힘으로를 구원을 얻을수가 없기에 자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들이 믿기만 하면 죄사함과 구원을 얻을수 있는 길을 내어 주신것입니다.


구원은 떠났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내버려 두신것이 아니라 자녀가 되게 하셔서 창세기 3장에서 잃어 버렸던 모든 능력과 사랑과 축복을 회복시켜 주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감격으로 아바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요 3:16)

(요 1:12)

(요일 4:7-11)

(요일 3:2)

(마 6:31-33)

(롬 8:15)

(갈 4:6)

(눅 15:20-24)


(3) 아이들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녀들은 그냥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아이들이라는 말은 무언가 성숙하지 못하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의 특징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러므로 교회중심 예수중심 말씀중심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고전 6:9-11)


(4) 아이들은 선악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아직 영적인 지식과 성경말씀 지식이 성숙하지 못하기에 잘잘못을 알지 못하고 말썽만 부립니다. 아직 기저귀가 필요한 자들도 있습니다. 교회의 성숙핮 자들에 의하여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엡 4:22-24)


(5) 영적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기도와 말씀과 순종입니다.

교회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고전 3:6-7)

(벧전 2:1-3)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영적인 성장도 비슷합니다.

밥을 먹고 자라면서 학교다니며 생활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상처를 입으면서 내면과 육신이 자라가게 됩니다.


성도들도 교회에서 거듭나서 말씀과 기도와 순종 섬김으로 자라납니다. 억울하고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를 영적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분별력을 주십니다.


계속 영적인 성장에 자라나고 주님을 더욱 닮아가며 주님께 가까이 가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청년들아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청년들은 자신있고 강합니다. 힘이있습니다.


(1) 악한 자를 이기었다고 말씀합니다.

악한자는 바로 마귀를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이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한자들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창 3:15의 성취입니다. 청년들은 승리의 기쁨과 확신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정체와 역사와 결국을 보아야 합니다.

(창 3:15)

(계 12:9)

(계 20:10)

(계 20:10)

(골 2:14-15)

(요일 3:8)

(약 4:7)

(벧전 5:6-9)


(2) 청년들은 강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강하게될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말씀입니다.

능력의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엡 6:10-13)

(수 1:5-8)

(히 12:1-2)

(고후 4:7-10)

(고후 12:10)


(3)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바로 주님이 내안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로 새 언약이 내안에 이루어진것을 말씀합니다.

(신 30:11-14)

(렘 31:31-33)

(렘 32:38-40)

(겔 11:19-20)

(겔 36:26-28)

(히 8:10-11)

(히 10:15-18)

(롬 10:6-10)

(고후 13:3-5)

(마 4:4)

(요 10:27)

(계 2:7)

(요 14:12)


(4) 이시기에는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항상 겸손을 염두에 두고 더욱 주님을 닮아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말씀의 깊은 곳으로 나가야 합니다.

(벧전 5:5-6)

(딤후 3:16-17)

(롬 8:29)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주님을 항상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며 사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요 15:1-7)

(갈 5:22-24)


(5) 사랑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청년들은 믿음은 충만할지 몰라도 사랑이 부족할 수가 있습니다.

폭넓은 사랑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마음을 품도록 자라가야 합니다.

사랑은 바로 주님의 마음이며 최고의 덕목입니다.

(벧후 1:4-7)

(고전 13:4-7)

(엡 3:17-19)

(고전 13:13)

(마 5:46)


청년들입니까?

겸손과 사랑으로 더욱 주님을 닮아갈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넘어질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고전 10:12-13)


3. 아비들아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아비들은 이제 어느정도 성숙하여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잇고 본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하였듯이 아비의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을 보살피고 헌신하며 제자들을 기르는 자들입니다.


(1) 태초부터 계신이를 알았다.

태초부터 계신이는 바로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요한일서와 요한 복음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 1:1-3)

(요일 1:1-3)

이말씀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던 이단자들을 향하여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 깊이 확실하게 알아야 하고 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원전부터 계시고 스스로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자시며 통치자시며 심판자 이십니다.

(계 19:16)

(요 1:14)

(요 1:18)

(계 3:7)

(계 3:21)

(잠 8:30-31)

(계 1:17-18)

(사 9:6-7)

(마 28:18)

(요 8:58)

(엡 4:13)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야 합니다.

그의 신비함과 아름다움과 권능과 사랑에 취하여야 합니다.

갈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아는 만큼 우리들의 사랑도 넓어지고 자유함이 오고 확신과 기쁨도 충만합니다.

(요 8:31-32)


(2) 아비들은 마음이 깊고 영적인 주님의 깊은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영적인 분별력이 잇고 주님의 가슴을 이해하고 느끼며 사는 자들입니다.

(빌 2:5)

(고전 2:9-12)


(3) 어른들은 단단한 식물을 먹습니다.

어릴때는 단것을 좋아하지만 나중에는 고기를 좋아하게 됩니다.

축복의 말씀 확신을 주시는 말씀 등등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편식을 하면 않됩니다.

책망의 말씀과 종말의 말씀과 헌신을 요구하시는 말씀그리고 거룩함을 강조하는 말씀들을 소화하고 기뻐할수 있어야 합니다.

(히 5:13-14)


(4) 어른들은 게으름에 빠지기 쉽습니다.

(롬 12:9-13)


(5)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참아내고 감당해야 합니다.

(롬 12:7-8)

(눅 9:23)

(고후 5:14-15)

(빌 1:21)

(고전 10:31-33)

(벧전 2:20-25)

(계 22:12)


(6) 우리는 아이들로 시작하지만 결국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계속 성장하고 자라나야 합니다.

(빌 3:10-14)


(7)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하여 짐작할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알았다고 말씀합니다. 청년들은 강하고 마귀를 이겼다고 말씀합니다. 아무래도 성령의 은사와 믿음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아비들은 태초부터 계신자를 알았다고 말씀합니다.

잘살펴 보면 그리고 제 경험으로도 영적으로 나라가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같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러나 세 인격으로 존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을 살펴보면 그 강조점이 다른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성령님과 예수님을 알고 믿으면서도 하나님 아버지가 내 마음에 편하게 이해되고 믿어지고 가까이 와 계십니다. 어느 사람은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강하게 느껴지고 더욱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잘 믿고 있고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시기가 지나가면 더욱 성숙한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이제 그의 관심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은사의 나타남 보다는 주님과의 사랑의 사귐에 중점을 둡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갈망하고 주님을 닮아가기 소원합니다.

주님은 주님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만을 원합니다.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주님을 닮아 사랑으로 성숙해져 갑니다.

오직 예수로 살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소원합니다.

구원의 열정으로 불타고 주님의 얼굴을 뵈옵는 재림을 사모합니다.

더욱 성숙해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1) 세상의 정의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세상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습니다.

주로 세가지를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만드신 지구 전체입니다. 우주안에 아름다운 장식으로 세상 물리적인 세상 즉 코스모스를 만드셨습니다. 어느때는 우주만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요 1:10)

그 다음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을 세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는 도적적 개념이 없습니다. 그냥 인간 모두를 말하는 단어로 쓰인것입니다.

(요 3:16)

(요일 2:2)

(요 4:42)

(요일 4:14)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없는 이세상의 영역입니다. 하나님 없는 가치관과 마귀가 역사하고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세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은 바로 세상의 가치관과 마귀가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죄악을 부추기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거짓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2)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없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면 않됩니다.

주님은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 6:24)

(약 4:4)

세상의 죄악됨과 허무함과 마귀아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이 새상의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바로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욕심입니다.

세상의 쾌락과 재물과 아름다움과 성적인 욕심과 기으름 등등 여러 가지입니다.

(롬 8:5-8)

(갈 5:19-21)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쓴 방법이 바로 육신의 정욕입니다.

(창 3:6)

먹음직 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주님을 광야에서 시험할 때 쓴 방법도 바로육신의 정욕이 처음시험이었습니다.

(마 4:3-4)


(4)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것은 바로 눈으로 보고 욕심을 가지게 됨을 의미합니다.

견물 생심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보면 가지고 싶어 진다는 말입니다.

역시 마귀가 창세가ㅣ에썼던 방법이요 지금도 마귀가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쓰고 있는 수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롬 8:24-25)

(고후 4:16-18)

(마 4:8-10)

(히 11:1-3)

보이는 것으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주님과 사귀어 살면 저천국을 사모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벧후 3:11-13)


(5)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들어내고 싶어하는 것이요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들어내기를 좋아하는 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 위에 높아지려는 욕구입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높이고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지식과 미모와 재산과 여러 가지를 자랑하며 그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삽니다.

(렘 9:23-24)

(마 4:5-7)


주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죽으실수가 없을 것이요 순식간에 인기 가 높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올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인기를 위하여 오신것이 아니라 자신을 많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대속물이 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막 10:45)


마귀는 지금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 성도들을 공격유혹하고 있습니다. 깨어기도하며 말씀과 믿음으로 무장하여 마귀가 역사하는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세상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마 12:39, 개역)

(마 12:45, 개역)

(마 16:4, 개역)

(마 17:17, 개역)

(막 8:38, 개역)

(눅 9:41, 개역)


(6) 세상을 십자가에 못밖아야 합니다.

(갈 6:14)


(7) 아버지께로 온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만들어 놓은 세상 가치관이요 허영이요 교만이요 속임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마귀는 흑암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하고 있습니다.

(행 26:18)

(고후 4:4-6)

(요일 5:19)

(요 12:31, 개역)

(요 14:30, 개역)

(요 16:11, 개역)


(7)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갑니다.

이 세상은 지나갑니다.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며 않됩니다.

허무할뿐입니다.

(전 1:2-4)

(시 90:3-6)

(시 90:10)

(딤전 6:7-10)

(갈 5:24)


(8)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바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생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삽니다.

(요 10:28-29)

(빌 1:6)

(요 14:21)

(마 7:21-23)


(9)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요일 5:4)

(빌 4:6-7)

(요 16:33)

(딤후 3:12)


(10)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롬 12:1-2)


(10)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 5:16)

(막 16:15-20)

(마 5:13-15)

(벧전 1:13-16)

(벧전 2:9-10)

이와같이 세상은 마귀에게 속하였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며 복음을 대적하고 인간들이 복음을 듣고 구웝다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악하고 패역하며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상입니다.(빌 2:15)


성도들은 이런 세상에서 주님의 사명을 위하여 성령의 권능과 말씀과 믿음으로 무장하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상에 나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어느 단계에 와 있습니까?

아이입니까? 청년입니까? 아비입니까?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성숙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좁은 길이라고 주님의 본을 따라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어느 단계에 이르렀든지 주님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변화 시키는 복된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