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삭개오의 구원이야기>(눅 19:1-10)

마라나타!!! 2012. 10. 29. 22:51

                                          <삭개오의 구원 이야기>

(눅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의 삭개오의 구원 이야기는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의 삶이 전체적으로 바꾸어지는 감동 스토리입니다.

삭개오는 예루살렘에서 약 22마일 떨어져 있는 여리고성의 세무서 소장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여러 상업의 교차로였기에 이곳에서 거두어 들이는 세금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자연히 삭개오는 부자가 되었고 권세와 지위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불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반역자로 불렀고 그의 친구들은 창녀가 거리의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외로움과 영혼의 갈증이 있고 그의 양심이 그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죄책감과 열등감등이 자신을 누르고 있었고 자연히 평강이 없었습니다. 삶의 의미도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여리고성 자신의 동네를 지나신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여러 소식통을 통하여 잘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여리고성 입구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다는 소문도 들려왔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궁금증이 더하여 갔습니다.


참을수 없어 거리로 나갔지만 이미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 싸고 있었고 자신은 키가 작아 예수님이 어떻게 생기신 분인지 볼수가 없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예수님이 지나가시려는 길 앞으로 달려가서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의 행렬이 다가 왔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멈추어 서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올려다 보시고 삭개오야 부르십니다.

예상치 못한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신 주님은 자신의 집에 들어와 오늘 밤을 머무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을 기뻐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삭개오는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자신을 이 모든 인생의 문제와 모든 것에서 구원해주실 분이시며 해답을 주실 분이심을 깨닫게되었습니다. 당장 회개하였고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이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님으로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삭개오의 마음을 아시고 오늘 이집에 구원이 임하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구원의 감격과 분명한 변화를 체험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간은 변화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이 감격을 되찾고 더욱 큰 감사와 찬송가운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삭개오는 누구였습니까?

(1) 여리고 세리장이였습니다.

세금을 백성들에게서 징수하여 로마에 바치는 자였기에 국민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정당한 경우도 있었 겠지만 로마에 바치고 남은 것으로 자신이 채워야 하기에 착취하는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매국노의 소리를 들었고 백성들의 미움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2) 부자였습니다.

삭개오는 부를 모으는데 성공 하였습니다.

재산을 모으는 것이 그의 재미요 삶의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는세상 정고 욕심을 따라사는 자였습니다.

성경은 재물에 대하여 많은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물질의 축복을 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왔던 부자청년은 부를 포기할수 없어서 슬픈 기색을 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통하여 경고하셨습니다.

(마 19:22-24)

(전 5:10)

(마 6:31-33)


(3) 권세 있는 자였습니다.

세금을 거둘 권세를 가졌기에 어느정도의 지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존경받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삭개오는 이 세상에서 성공을 위히여 사는 자였던 것입니다.


(4) 외로왔습니다.

그 결과 그는 외로 왔고 진정한 친구가 없었던 것입니다.

돈만아는 자요 세상 욕심으로 가득 찬 자를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며 베풀고 살았다면 결코 부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5) 사람들의 비방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뒤에서 욕하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매국노며 민족의 원수같은 자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자연히 무거웠고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6) 만족 없었습니다.

그는 부자요 지위를 가진자였지만 그의 영혼은 만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족을 하나님 자신 외에 그 어느것으로도 만족할수 없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결코 만족할수 없습니다.

마귀는 인간들을 속이고 계속하여 끝없는 정욕가운데 살도록 속이고 있습니다. 재물을 얻으면 만족하고 행복이 올것으로 속이고 있습니다.

(엡 2:1-3)

(요 8:44)


(7) 삭개오는 이 세상에 속하고 마귀에게 속한자였습니다.

(요일 3:10)

(고후 4:4-6)


(8) 삭개오는 소망이 없는 자였습니다.

(엡 2:12)


(9)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습니다.

(요 3:18-19)

(요 3:36)

삭개오는 비록 부자요 지위도 있었지만 그 영혼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고 갈증이 심하였습니다.


인생의 의미와 소망을 잃은 불쌍한 자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마귀에게 속하여 방황하는 불쌍한 인생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그를 고치시고 만족을 주실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그런속에서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줄로 믿습니다.

(행 4:12)

(고전 6:9-11)


2. 예수님을 찾는 삭개오입니다.

(1)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의 소문을들었다는 것은 누군가 예수님에 대하여 말했다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 소문을 내야 합니다.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이요 예수님 갈증을 일으키는 삶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마 5:16)


(2) 키가 작았습니다.

작은 키는 삭개오에게 열등감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려고 하였지만 키가 작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날려면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열등감입니다.

자존심입니다.

죄책감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는데 있어서 우리는 아무것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십니다.

(마 15:27-28)


(3)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삭개오에게 또 다른 장애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찾는 일에 절대로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막 2:3-5)

(눅 18:1-3)

(잠 8:17)


(4)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작은 키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자신이 숨어 있어 들키지만 않는다면 자유롭게 예수님을 구경할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또 부자요 지위도 있는 사람이 나무위에 올라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들키면 크게 수치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수치를 무릎쓰고 뽕나무에 올라간것입니다.


(5) 사람들 앞서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려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조금있으면 예수님이 마을 밖으로 가버리실수도 있습니다.

앞서서 달려 가서 뽕나무오 올라갔다는 것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반드시 만나야 하겠다는 결단과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노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들도 전심을 다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고 주님을 찾아야 할줄로 믿습니다.

(잠 8:17)

(사 55:6-7)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히여 작은 키과 많은 사람들 의 장애물을 극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결단과 최선의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만큼 삭개오의 연혼의 갈증이 심각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항상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3.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입니다.

(1) 예수님이 삭개오를 우러러 보셨습니다.

뽕나무위에 숨어 구경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행렬이 갑자기 뽕나무 아래서 멈추어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뽕나무위에 숨어 있던 삭개오를 발견하신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쳐다 보셨습니다.

예수님과 예상치 않게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눈은 사랑으로 가득찬 눈이었습니다.

나를 바라보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눈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눈은 우리를 꿰 뚫어 보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숨길수가 없습니다.

이 순간은 바로 삭개오의 비참한 영혼의 상태와 마음이 주님에게 그대로 들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계 1:13-14)

마치 공한 검색대에서 온몸을 스캔하는 것 같이 주님은 삭개오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주님의 통찰력과 사랑과 권능과 매력 앞에서 삭개오는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자신을 진심으로 찾는 자들을 미리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삭개오의 영혼에 역사하셔서 갈증이 나게 하시고 생각을 주장하셔서 예수님을 만나려는 의지를 주신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방황하는 영혼을 감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먼저 찾아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들의 구원은 창세전부터 준비되고 예정된것이요 우리를 먼저 찾아 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엡 1:3-6)

(요일 4:7-11)

(롬 5:8)

예수님이 어떻게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을 까요?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예수님이 삭개오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부모의 소원도 담고 있습니다.

삭개오라는 말은 의로움 그리고 순결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삭개오의 부모는 삭개오가 그렇게 의롭고 순결하게 살기를 소원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계시로 삭개오의 이름을 아셨고 그가 예수님을 찾는 목마른 인간임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시 139:1-4)

(고전 2:12)

삭개오야 부르시는 순간입니다.

눈이 마주치고 삭개오는 부르시는 그 순간 삭개오는 주님과 첫사랑에 빠져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알량한 자존심도 수치심도 죄책감도 열등감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앞에 나의 마음을 쏟아 놓고 항상 사귀어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시 62:5-8)

(마 6:4)

(마 6:6)

(마 6:8)

(마 6:32)

여러분 지금 주님이 나를 바라보시고 스캔하시며 내 이름을 부르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아시고 나는 사랑하시며 나를 사랑하사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신 강력한 사랑의 주님 앞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나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지 않을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3)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숨어 있지말고 공개적으로 내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숨어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앞에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우리들의 교만과 거짓과 정욕을 내려 놓고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들의 자존심과 수치심과 핑계를 다 버리고 주님앞에 나와야 합니다.

나의 모든 권리와 자랑을 버리고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마 11:28)

(계 22:17)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히 11:6)

(출 3:5)


(4)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처음에 삭개오는 예수님을 구경하러 나갔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고 자신의 집에 영접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구경꾼에서 예수님과 사귀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예배에서 교회에서 구경꾼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과 사귀는 참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 4:22-24)

마음을 열고 주님을 내영혼에 믿음으로 모셔들이고 사귀어 사는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계 3:20)


(5) 삭개오는 급히 내려왔습니다.

주님을 만난 그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된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해답을 얻은것입니다.

더 이상 지체할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냥 가버리실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순간에 일어나난 일이었습니다. 감격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은 순식간에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씀이 믿어지고 주님이 믿어지면서 일어나게 됩니다.

(히 4:12)

(약 1:18)

(롬 10:9-10)

(롬 10:17)


(6) 삭개오는 예수님을 기뻐 영접하였습니다.

온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이 삭개오는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첫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미치려거든 세상 정욕에 미칠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미쳐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인생의 모든 해답을 얻었고 모든 갈증이 해결되는 큰 은혜를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여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셔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순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 1:12)

(요일 5:12-13)

(갈 2:20)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회개하는 삭개오입니다.

(1) 삭개오가 서서 선언하였습니다.

서서하였다는 것은 그 뜻이있습니다.

진지하게 선언하였다는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결단이요 용기입니다.

주님 앞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주님을 만난 사실을 간증하며 전파하며 살아야 할줄로 믿습니다.

(행 1:8)

(마 28:18-20)

(막 16:15-20)]


(2) 토색한것 있으면 4배나 갚아주겠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남의 것을 착취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것이 발견되면 것으로 법이 정하는 대로 배상하겠다는 말입니다.

정직하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입니다.

(마 3:7-8)


(3) 재산 반을 을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이것은 이제 삭개오가 이전에 세상 정욕을 따라사는 삶을 청산하겠다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철저한 가치관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세상 정욕을 십자가에 못밖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이 애굽에서 나와야 합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행 2:42-47)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살면 주님이 나의 일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마 6:33)

(빌 4:19)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딤전 6:7-10)

(딤전 6:17-19)

삭개오는 세상 물질이 자신을 만족케 할수 없으며 해답이 될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헛된것이며 자나가는 것임을 알게 된것입니다.

철저한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전 1:2-8)

세상의 본질을 깨닫고 철저하게 주님 중심 천국 중심 말씀중심으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구원이 이 가정에 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이 이 가정에 임하였다고 하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로왔던 삭개오의 마음을 잘아시는 주님께서 치유의 말씀을 주신것입니다. 이제는 외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1) 구원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사망은 죄의 저주와 형벌과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벧전 1:18-19)

(엡 1:7)

(막 16:15-16)

(롬 6:23)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2) 구원은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요일 3:8)

(골 2:15)


(3) 구원은 현재의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롬 8:1-2)

미움교만 음란 등등이 마음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4) 구원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벧전 2:9-11)

(빌 3:20-21)


(5)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생명을 을 얻는 것이요 거듭나는 것입니다.

(요 3:5)

(요일 5:12)

(롬 6:4)


(6) 구원은 현재의 문제에서 구원을 주시는 주님이 함께 계신것입니다.

(마 7:7-8)

(요 14:13-14)

(마 1:21)


(7)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롬 6:23)

(엡 2:8-9)


(8) 구원은 내안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된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이제 내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된것입니다.

나가서 부활의 사람이 된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3:16)

(고전 6:19-20)

(롬 8:9)

(롬 8:10-11)


(8) 구원은 이제 나의 모든 가치관이 변하여 사는 목적이 바꾸어진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것입니다.

(롬 14:7-8)

(고후 5:17)

삭개오는 이 세상에 소외되었고 갈곳이 없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의 일원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천국시민이 되었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기쁨가운데 살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6. 인자가 온것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삭개오집에 들어가자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거하러 들어 갔도다 비난하였습니다. 시기심과 예수님이 저런 자를 용납하시고 그 집에 들어가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않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배반자 반역자 죄인의 집에 주님이 들어가서 머무셨고 구원이 임하였다는 사실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자들도 구원을 얻을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웃을 외모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갈것입니다.

(마 7:1-5)

(마 21:31-32)


다른 사람들은 모두다 몹쓸 놈이라고 손가락질 하였지만 주님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시

고 자신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시고 자신의 집에 들어와 식사하시고 잠까지 주무셨습니다!

웬 은혜입니까?


나같은 죄인을 찾아 오시고 용서하시며 안다고 하시며 인정해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딤전 1:12-17)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막 10:45)


(2) 전도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막 1:38)


(3)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4)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요일 3:8)


(5) 포로된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눅 4:17-19)


(6) 눈먼자를 보게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7) 눌린자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8)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9) 주님은 아버지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을 온 세상에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신것입니다.

(요 3:16)


(10) 주님은 주님처럼 사는 비결과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눅 9:23)

(요 14:12)


주님께서 받으신 사명은 오늘날 우리에게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잃어 버린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주님의 심장을 헤아리며 영혼구원을 위하여 살아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 20:19-23)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의 증인이 되어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주님께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입니다.


7. 이런 큰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물론 삭개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알수가 없지만 분명한것은 그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큰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애 안에 살아계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갈 2:20)

(히 11:6)

(고후 5:7)

(고후 13:5)

(엡 3:17)


(2)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갈 5:13-16)

(눅 9:23)

(시 1:1-3)


(3)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고후 5:14-15)


(4) 감사하며 살아여 합니다.

(살전 5:16-18)

(골 3:15-17)


(5)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 12:14)

(벧전 1:13-17)


(6)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골 3:9-10)

(엡 4:22-24)


(7)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골 3:1-3)

(벧전 1:3-4)

(벧후 3:11-13)

(계 21:3-4)


(8)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 22:37-40)

(고전 13:1-3)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을 얻은 우리들입니다.

새 사람된 우리들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주님을 닮아가며 사랑으로 살아야 할것입니다.


오늘 삭개오는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 살았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무엇 보다도 내안에 계신 주님과 사귀어 사는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히여 사는 삶을 버리고 주님을 위하여 사는 헌신되 삶을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과 사랑에 빠져 주님을 위하여 사는 그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요 가장 가치있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삭개오는 부자요 지위도 있었지만 죄책감과 열등감과 외로움에 지쳐있는 자였습니다.

삭개오는 소망도 없고 인생의 의미도 모르는 방황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삭개오는 주님을 만났고 인생의 해답을 얻었으며 구원의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완전한 회개에 이르렀습니다.

완전히 가치관이 변하였습니다.

주님은 오늘 이집에 구원이 임하였다고 선언 하셨습니다.


나의 구원이야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구원의 확신과 감격가운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같은 죄인 구원받은 사실에 감사하며 더욱 주님을 위해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잃어 버린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셨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심장을 헤아리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전도와 선교를 위하여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삭개오 처럼 구원의 감격이 충만하여 더욱 감사하며 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