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7)

마라나타!!! 2011. 2. 22. 09:3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1-7)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오늘은 팔복의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주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하십니다.
천국 시민의 성품은 긍휼히 여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게 되고 애통하는 자가 되며 온유한 자가 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바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품들은 억지로 된 것이 아니고 바로 거듭난 생명으로 주님을 사모하고 항상 바라보며 주님 처럼 되기를 사모할 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내 안에 형성되는 열매입니다.

팔복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울수 있는 데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내가 무엇을 하느냐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의 행실이 나타나게 될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바로 이웃을 불쌍하게 여기고 측은 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주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말씀을 통하여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서 사랑으로 살면 주님의 향기를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배부르게 하십니다. 그 다음 그 사람은 이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으로 바꾸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의 사람이 됩니다. 내가 은혜받지 못하고 굶주려 있다면 이웃의 형편을 알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이제 비로소 나는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연단의 결과 나타난 주님의 성품입니다.

 

(1) 긍휼히 여긴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표현 될수 있습니다.
자비하다. 마음이 동한다. 불쌍하게 여긴다. 도와 준다. 인애, 사랑, 등등입니다.
인자한, 깊은 애정 등등 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라헴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창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마음의 감정이 일어나는 곳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불쌍하게 여기것 이상의 깊은 애뜻하고 측은한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 지는 것입니다.
애타는 심정입니다.
이 긍휼의 마음은 그냥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의 마음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빌 1:8,고후 11:28-29)

지난번 페루선교를 갈 때 그 수련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 주님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셔서 간절히 기도하게 하셨고 따르는 표적으로 주님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관계된 아들딸 친구 교인 등등만 사랑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보통이지만 성령께서 감동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면 모든 사람들을 긍휼로 대하게 됩니다. 이런 긍휼의 마음을 살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긍휼히 여기는 것은 이웃을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며 삽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마 6:12,마 6:14-15,눅 23:34)

긍휼히 여기는 것은 내게 잘못한 사람을 내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나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이나 둘다 불행하게 됩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자가 탕감을 받았지만 자신에게 백데나리온 빚진자를 용서하지 않음으로 다시 용서받지 못하고 감옥으로 잡혀 갔습니다.
주님은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마 18:21-24)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내 죄를 용서받았다면 그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거꾸로 내 죄도 용서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이웃을 용서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3) 긍휼히 여기는 것은 이웃을 판단하거나 정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내 맘대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그런 처지가 되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산상수훈은 팔복을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마 7:1-5)
우리는 쉽게 다른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편견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해지고 죄 때문에 애통하며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가 되면 자연히 이웃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과 인간을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요 자신을 보는 눈도 달라져서 겸손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우리는 정죄하기 보다는 먼저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긍휼을 소유한 성도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은 죄와 마귀가 가득하여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있는 광야임을 생각하면 우리는 정죄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며 살아야 할줄로 믿습니다.

 

(4)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그래서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사람입니다.(엡 4:31-32)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 사람의 깊은 감정이 나에게 전달되고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사실적에 인간들의 죄악과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고생하며 허망한 가운데 사는 것을 보면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시며 오병이어로 먹여주시고 질병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주시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마 9:36)(오병이어)(마 20:34)(소경)(막 1:41)(문둥병자)(요
11:33)(나사로)(습 3:17) 스데반 집사가 돌에 밪아 순교당할 때 사랑의
주님은 그의 영혼을 응원하시면서 그를 받으시려고 친히 보좌에서 일어나
보고 계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이와 같이 동정하고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5) 긍휼은 생각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희생하면서 도와 주는 사람입니다.
생각과 마음 뿐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요일 3:18,히 13:16,약 1:25-27,딤전 6:17-19)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주심으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 3:16,롬 5:8-9)

(6) 긍휼은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누군가 "그럴수도 있지"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정죄나 판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온 인류의 죄짐을 지시고 그 아픔과 고통을 짊어 저시고 온 인류의 대표자가 되셔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려 눈물로 통곡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직접 격어 보시고 우리들의 입장에 되셔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기도와 함께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신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간구하고 계십니다.(히 7:25,롬 8:34)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웃의 입장에서서 기도해주고 사랑해주어야 합니다.(벧전 2:9-10)

주님은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 처럼 이웃을 대신하여 희생하고 사랑하는 대속의 사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주님처럼 긍휼히 여기며 사랑으로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7) 긍휼의 사람은 죄와 죄를 구분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죄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태어난 이 세상은 죄가 가득하고 마귀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패역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훈련과 세상의 환난가운데서 천국을 사모하며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빌 4:11-13,요 16:33,딤후 3:12,행 14:22)
이 죄많은 세상에서는 누구나 실수가 있고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항상 주님만을 바라보고 경건의 연습을 하지 않으면 죄를 이기지 못하고 마귀를 이길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속에 선한 것이 없다고 탄식하고 자기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악을 행항함을 발견하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아니라 죄라고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죄인을 구분하여야 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롬 7:22-24)

 

(8)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내 이웃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인생을 불쌍히 여기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히 불쌍하게 여기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 생 가운데 가장 복된 일은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부귀영화 모둔 가졌다고 해도 예수님이 없으면 불쌍한 인생입니다.
허무한 인생입니다.
비참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심장은 지금도 잃어 버린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우리가 주님의 음성과 열정을 받아서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눅 15:20-24,딤전 2:4,행 26:18,딛 3:5,마 28:18-20,막 16:15-16,행 1:8)
그러므로 진정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주님의 생명과 마음을 가지게 되고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게 될것입니다.

 

내안에 긍휼의 마음이 있습니까?
용서와 사랑과 동정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까?
믿지 않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까?
내 중심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1)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용서를 받습니다.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며 살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마 6:14-15)
 이 말씀은 억지로 용서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죄사함과 용서를 받았다면 용서의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요 용서 받지 못합니다.(행 2:38,엡 1:7,요일 1:9)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어주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 생명을 가진것이며 예수님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전에는 누구를 용서하는 것이 힘들고 되지 않아서 이를 악물고 참으며 노력을 하고 세월이 약이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새생명은 원수도 용서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웃을 용서하기가 쉽게 됩니다.
이미 용서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내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런 마음을 주셔서 용서가 되게 하십니다.(요 3:5,고전 3:16,고후 5:17,롬 6:4,롬 8:16,롬 8:29)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이미 은혜를 아는 사람이요 용서의 사람이요 긍휼로 살수 있는 사람입니다.
긍휼로 살 때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이미 긍휼하심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이웃을 용서하며 긍휼로 살게 되고 하나님의 계속되는 용서와 긍휼 가운데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죄를 가볍게 여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에는 그 결과가 있고 나뿐 영향력이 이 우리들의 삶에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을 바라보면서 성령으로 말씀으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마음을 부어주시고 죄를 이기는 삶을 살게 하시며 용서하며 살게 하십니다.

 

(2) 긍휼로 살면 기도응답을 주십니다.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죽게 되었을때에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면서 주 앞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사 38:1-5)
결국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15년을 수명을 더하여 주셨습니다.(히 4:15-16)
하나님 앞에서 긍휼로 살아야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수 있습니다.(호 6:6)

 

(3) 긍휼로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형통함으로 복을 주십니다.
(사 58:7-11,마 10:42,시 37:26,시 41:1-4,시 112:4,시 112:9,잠 19:17,잠 14:21)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사랑을 베풀며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축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빛을 비추어 주시고 축복을 주시며 위험에서 건져 주십니다.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주의 자비하심을 입음(삼하 22:26,시 18:25)***자손이 복을 받음(시 37:25,시 37:26,잠 14:21)***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음(잠 21:21)

그러므로 사랑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랑이 내가 가진 어떤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내게 주시는 새로운 성품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며 불행한 이웃을 향하여 기도하고 도와 주는 삶이 필요합니다.(요일 4:7-11,고전 13:1-7)
주님의 심장을 닮은 사람 주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은 능력이요 행복이요 기쁨입니다.(시 18:25-26)

 

(4) 긍휼이 여기는 것 외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으려면 요구되는 자세가 있습니다.***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옴(사 55:7)***주의 이름을 사랑함(시 119:132)***바라고 기다림(시 123:2) ***타인을 긍휼히 여김(마 5:7)***인내(약 5:11)***기도(히 4:16)***우상과 가증한 것을 제함(신 13:17)***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신 30:2-3)***공의를 세움(암 5:15)***복음의 규례를 행함(갈 6:16)***선을 도모함(잠 14:22)

(5) 긍휼함으로 살 때 최후 심판때 긍휼을 얻습니다.
(약 2:13,계 20:11-15)
우리가 긍휼히 여기며 선을 베푸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긍휼의 사람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왜 우리는 긍휼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까?
계산 적으로 긍휼함을 받고 축복을 얻기 위하여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당연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이 놀라운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긍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고후 1:3-4,시 103:8-11,애 3:22,딛 3:5,시 136:1-3,약 5:11,신 4:31,미 7:18-20,히 8:12,시 119:64,대상 16:34,라 3:11,시 100:5,출 34:6,겔 33:11,벧후 3:9,출 3:7,라 9:9,엡 2:1-5,시 145:9,왕상 8:23,느 1:5)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요일 4:7-11,요일 4:19,요 3:16,벧전 2:9-11,롬 5:8-9)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이미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로 살아야 합니다.

 

(2) 긍휼은 주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우리는 긍휼로 살게 됩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우리가 에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 났다면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마귀가 역사하고 있고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에 처하여 있는 인생들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죄의 정체를 모르고 마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무슨짓을 하고 있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죄와 마귀의 종노릇하는 불쌍한 인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성품을 가지고 우리는 긍휼히 여기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을 가지기 위하여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주님 제일로 살아야 합니다.
(요 14:12,요일 4:17)

(3) 이 세상에서 모두가 고난가운데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긍휼로 살아야 합니다.(벧전 5:8-10,벧전 4:12-14)
이 세상은 광야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있습니다. 풍랑이는 바다입니다. 사람의 여러 가지 어려움 뿐 만 아니라 말세에는 핍박고도 있습니다.
(마 10:16-23,마 25:31-36)
삶이 어려워 지고 핍박이 일어나는 때일수록 사랑으로 도우며 살아야 합니다.
(벧전 4:7-11)

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인간들은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특별히 말세에 성도로 사는 것은 핍박과 고난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집니다. 이런때에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더욱 서로 불쌍하게 여기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4)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요 13:34-35,마 22:37-40)

(5)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웃을 정죄하고 미워하며 살면 다른 사람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정작 자신이 불행해집니다. 병이 생기고 축복을 받지 못하며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실 마음이 없으셨다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으셨을것이요 우리의 죄도 용서함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자신의 피를 흘리셔서 우리 죄값을 대신하여 갚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용서함을 받은것입니다.(마 18:18)

만약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는 다면 하늘에서도 그 사람의 죄가 용서되지 않을 것이요 그 사람은 불행해 집니다. 그 사람은 죄 값을 받게 될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은 마음에도 괴로움과 죄 책감으로 은혜가 없습니다. 기도응답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용서하면 하늘에서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만약에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를 갈며 죽어 갔다면 스데반을 죽인 자들은 살인죄를 지고 그 심판을 담당하였을 것입니다. 그 악한 일을 도모한 사울도 바울이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그 마음과 얼굴이 천사같이 되어 그들을 용서하며 순교하였고 하나님은 하늘에서 풀어 주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큰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용서하며 용서받고 긍휼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행 7:55-56,행 7:59-60,딤전 1:13,딤전 1:16)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으로 오신 주님과 교통하여야 합니다.(골 3:12)

 

우리는 다 죄인으로 지옥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주셨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의 성품을 가지고 사랑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긍휼의 마음을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나에게는 긍휼이 있습니까?
나는 중심으로 이웃을 용서하였습니까?
나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어떤 선을 베풀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긍휼의 마음 항상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긍휼은 자비, 측은, 사랑, 은혜 등등입니다.
긍휼의 사람은 이웃을 정죄 하지 않습니다.
긍휼의 사람은 이웃을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긍휼의 사람은 내 입장이 아니라 이웃의 입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긍휼의 사람은 이웃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깁니다.
긍휼의 사람은 사랑을 실천합니다.
긍휼의 사람은 죄와 조인을 구분합니다.
긍휼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용서함을 받습니다.
기도응답입니다.
여러 가지 축복입니다.
흑암중에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고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반드시 상급을 주십니다.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왜 긍휼함으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원하고 무궁한 긍휼하심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에게 베풀어 졌습니다.
긍휼함으로 사는 것은 거듭난자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성품이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는 것은 주님의 새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긍휼함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늘도 나를 불쌍히 여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는 모든 인생들은 다 고난가운데 있는 불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긍휼함으로 사랑과 용서로 살 때 진정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항상 바라 봄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주님의 심장, 긍휼함의 마음으로 선을 베풀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