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5:1-4)

마라나타!!! 2011. 2. 2. 00:43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1-4)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오늘은 팔복의 두 번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것임이요 라는 말씀을 가지고 피차 은혜를 받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심령이 가난해 진 다음에 우리는 애통의 단계로 들어갈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연약하고 무지하며 할수 없는 죄인이며 무가치한 자요 오직 주님의 은혜만이 나를 가치있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항상 주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자가 될 때 나는 애통할 수가 있습니다.

애통한다는 것은 깊은 슬픔, 힘이 없는 상태, 애도하다, 울고 있는 상태 등등으로 설명할수 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하면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웃고 기쁨으로 살아야 복된 삶이지 애통하는 것이 어떻게 복이 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눈물이 메마른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깊이가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는 애통의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받을수 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이 세상과 나 자신을 바로 볼수 잇다면 우리는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통은 결국 주님의 심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을 보시는 그 눈이요 간절한 마음이요 가슴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진정으로 애통하는 자가 되어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하나님의 위로하심으로 사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것의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자신에 대하여 절망한 자요 그래서 오직 주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그래서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통하는 것의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1) 진정한 영적인 애통이 아닌 것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에서처럼 축복을 못받아 억울하여 우는 애통이 아닙니다.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해주고 남은 것이 없다고 하자 억울하여 울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에서는 팝죽 한그릇에 장자 권을 팔아 먹은 망령된 자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것 신령한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창 27:38-40,히 12:16-17)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교회와 예배와 목회자 성도들을 귀하게 여기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이 그 마음에 계셔야 합니다.
영적인 애통은 에서처럼 축복을 잃어 버리고 억울하여 우는 울음이 아닙니다.
***또 한나 처럼 간구하며 우는 울음도 아닙니다.
한나는 첩으로 온 브닌나가 아들을 낳자 자녀없는 자로써 많은 무시함과 조롱을 받았고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삼상 1:10,삼상 1:15)
그러나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애통은 아닙니다.

***다윗처럼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애통하고 울었습니다.
비록 자기를 반역하고 죽이려고 했지만 그 못난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압살롬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울었습니다.(삼하 18:33)
이 세상에 지금도 탄식과 애통하는 것이 가득하지만 진정 세상 전체를 보며 애통하는 영적인 애통을 가진자는 많지 않습니다.

 

(2) 그러면 복이 있는 애통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죄인됨을 인하여 애통하는 자입니다.
이미 살펴 본대로 심령이 가난한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롬 7:18-19,롬 7:24)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히 깨달아 정말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자기 안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찾게 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데는 잘 훈련되어 있지만 정적 자기 자신을 살피지 않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는가?
나는 왜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가?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는 가?
나는 왜 화를 잘내는 가?
나는 왜 항상 원망에 빠지고 낙심에 빠지는가?
나는 왜 주님을 닮지 못하는가?
나는 왜 진실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등등을 직시하지 못합니다.(마 7:1-5)
주님께서 그 토록 큰 은혜를 주셨건만 나는 왜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먼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죄성과 무가치함을 깨닫고 철저히 절망하고 애통해야 합니다.
(막 1:15,욜 2:13,대하 7:14,행 2:38,행 3:19)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주님과 눈이 마주치자 통곡하며 울었습니다.(마 26:74-75,시 51:1-2,시 51:10-11,시 51:17,시 34:18-19,사 57:15,벧전 5:5)
철저히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절망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십니다.
거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세상의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악하고 더러운 이 세상에 오셔서 격으신 그 슬픔과 고통과 상처는 이루 말할수 없을것입니다.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고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고 전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었습니다.
(마 11:16-19)
(마 17:17,마 12:45,마 12:39,막 8:38,눅 11:29,롬 8:21-23,롬 8:26-27,전 1:2-3,전 1:8)
질병과 기근과 미움과 전쟁과 여러 가지 재앙으로 인하여 인류를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온 세상이 죄로인하여 썩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영원하지 못하고 썩어져 가고 늙어가고 고통가운데 있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한 저주 때문입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만이 이 세상을 썩어짐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시고 썩어짐에서 해방하여 천국에 이르게 하십니다.(고후 4:16-18)
지금도 병원에서 감옥에서 장례식장에서 전쟁터에서 여러 가지 삶의 현장에서 고통과 탄식과 애통이 가득합니다. 슬픔이 가득합니다.
이런 절망적인 이 세상을 바라볼 때 거기에 애통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바라 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애통으로 가득합니다.

 

***세상의 악함으로 인하여 애통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그냥 고통가운데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이 세상 임금이고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이 마귀가 사로 잡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고후 4:4-6)
악한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고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든지 트집을 잡아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천국 복음으로 권세 있게 가르치시고 질병을고치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 수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믿게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요 11:49-50,요 11:53)
그러나 주님은 이 악한 음모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요 12:24-25,요 12:32)
주님의 마음은 이 악한 세대를 인하여 슬퍼하시고 애통하여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팔아먹는 유다까지도 사랑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요 13:1-2,요 13:34-35)
지금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대적들에게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하고 있습니다.(계 6:9-11)
자살폭탄을 하여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천국에서 여러여자들과 술마시며 산다고 하는 악한 교리를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비방하고 죽이고 이 세상의 악함을 인하여 애통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조금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도 이단으로 몰고 정죄합니다.(빌 3:18)

 

주님은 원수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울면서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인하여 그 악을 인하여 애통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심판과 멸망을 인하여 애통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 보면서 탄식하고 애통하였습니다.
(렘 5:1,렘 4:19,렘 52:13,애 2:11,애 3:19-23,계 18:1-3)
(계 18: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계 18:7,계 18:10)

 

주님은 예루살렘 성을 바라 보시며 울으셨습니다.(눅 19:41-44,마 23:37-39)
우리는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끝내는 심판과 멸망으로 달려가는 이 세상을 보면서 애통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심장입니다.

 

***주님은 겟세마에 동산에서 십자가에서 애통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세상의 죄악됨을 보셨습니다.
느끼셨고 절망하셨습니다.
오직 이 세상을 죄에서 사단과 사망권세에서 구원할 길은 자신이 속죄 제물로 바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아셨고 끝까지 사랑으로 온 인류를 품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것입니다.
사랑을 안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하여 애통하시면서 끝까지 순종의 길로 나갔던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만이 인간을 구원할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사랑으로 승리하셨고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마 26:38-41,히 5:7,마 27:45-46,고후 5:14-15,요일 4:7-11)
주님의 사랑의 심장을 가지고 애통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지금 애통하지 않으면 나중에 애통하게 됩니다.
가슴에 애통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지 않은 사람이요 주님을 찾지 않은 사람이요 주님의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크리스챤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결국 심판때에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눅 6:25,요 16:20-22,약 4:9,계 18:7-8,계 18:19,마 13:41-44,마 25:29-30,계 1:7)
여러분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인 애통입니다.
자기 유익을 위한 애통도 아니고 그냥 삶이 고통스럽고 슬퍼서  우는 애통이 아닙니다.

죄로인한 절망의 애통입니다.
자신이 할수 없는 죄인이요 무능한자요 하나님 앞에서 가치없는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애통입니다. 그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만을 의지하게 되었고 주님 안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느끼는 자가 된것입니다.
죄로인한 이 세상의 고통과 절망 때문에 이 세상의 악함 때문에 고통하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심판과 멸망을 바라 보면서 애통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고통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상태 때문에, 교회들을 바라 보시면서, 사랑이 없음을 아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악함과 무정함을 아시기에 고통하고 계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을 보는 눈 이웃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사랑과 긍휼입니다.
우리는 애통을 소유해야 합니다.
나는 애통이 있습니까?

사랑이 있습니까?
주님의 심장을 소유하였습니까?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애통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1) 성령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이런 애통을 가진 자들을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고후 1:3-7,행 9:31,사 61:1-3)
성령께서 내 마음을 만져 주시고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소망을 주십니다.
삶속에서 실망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고전 3:16)

(2) 말씀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시 119:49-50,롬 15:4,시 119:49-50,사 40:1-2,살전 4:16-18,살후 2:16-17)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롬 8:1-2,사 41:10,요 10:28-29)
말씀속에서 위로를 받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확신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딤후 3:14-17)

(3) 주님이 친히 위로해 주십니다.

(마 11:28, 요 14:1-3, 요 16:33)

 

(4) 주 안에서 동역자들과 형제자매를 통하여 위로하여 주십니다.
성도들은 이웃을 통하여 오랜 친구들을 통하여 위로를 받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인생 마지막 시간을 보내면서 외로왔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속히 내게로 오라고 하였습니다.(딤후 4:9)
E한 바울은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에 보내면서 교인들을 위로하기를 원하였습니다.(골 4:7-8,고후 7:6-7,고후 7:13)

어느분이 단기 선교여행은 선교사들을 위로하고 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동감합니다. 서로 서로를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위로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천국에서 영원한 위로를 주십니다.(시 90:10)
우리가 이 세상사는 것은 수고와 슬픔 뿐이지만 이 광야 세상이 지나가면 영원한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눅 16:25,계 7:14-17,벧전 1:3-4,벧후 3:11-13,롬 12:12)
천국 소망 가운데 오히려 기뻐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6) 예수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애통과 동시에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고후 6:10,살전 5:16-18,빌 4:4)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수 있습니다.성령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초월하는 기쁨을 주십니다.(롬 14:17)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 16:24,요 17:13,행 2:28,행 2:46,행 13:52,고후 7:4,고후 8:2)

이와 같이 애통이 있는 자는 끊임이 없는 성령님의 위로하심과 말씀과 주님이 친히 우리하여 주심으로 복된자가 됩니다. 비록 슬픔 많고 죄많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슬픈일을 많이 보고 살지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넘치고 기쁨가운데 살수 있게 하셨습니다. 위로의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복된 자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소유하였기에 복된 자입니다. 

 

3. 위로를 받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1) 주님의 심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요, 순종의 마음이요 겸손의 마음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이런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함부로 이웃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긍휼을 가지고 삽니다.

모두 죄인이요 험한 세상을 살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빼면 별 수 없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빌 2:5,빌 1:8,고전 2:13-16,고후 3:3,고후 3:18)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삶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보고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2) 천국 소망을 굳게 잡게 됩니다.
애통하는 자들은 이 세상의 본질을 알기 때문에 결국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갈망하게 됩니다.
(계 22:1-5,벧후 3:11-13,요일 2:15-17)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천국에 있습니다.
주님과 주님계신 천국을 사모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애통하는 자는 사랑으로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 슬픔과 고통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사랑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또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고전 13:4-7,고전 13:13,갈 5:22-24)

 

(4) 주님이 재림하셔야 이 세상의 애통이 끝납니다.
(더 9:22,계 19:7,계 21:3-4,사 66:2,사 66:13,사 35:1-2,사 35:10)
애통속에서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오히려 기뻐하며 주님께 모든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들의 기쁨이 되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주님의 마음을 품은 자요 사랑으로 사는 자요 그 소망을 주님께 두는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말씀하셨습니다.
애통을 소유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 넘어서 부활이 있듯이 애통을 넘어설 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도 누릴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심령이 가난한자입니까?
나는 애통하는 것이 있습니까?
나는 눈물이 메마른자는 아닙니까?

 

애통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기적으로 자신의 욕심을 이루지 못한 애통이 아닙니다.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인됨을 깨달은 애통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절망한 애통입니다.
또한 세상의 죄악과 고통에 대한 애통입니다.
세상의 무정함과 악함에 대한 애통입니다.
세상의 심판과 멸망을 깨달은 애통입니다.
지금 애통이 없는 사람, 자신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절망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나중에 애통하게 됩니다.

애통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겉으로만 기뻐하는 것같은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깊은 곳으로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보며 세상을 볼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를 받을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에게 절망하고 세상에 절망하며 애통하는 자는 주님을 찾게 됩니다.
주님께로 가면 주님이 애통하는 자를 친히 위로하여 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십니다.
새힘부어주시고 소망을 주십니다.
말씀이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는 애통을 가졌지만 동시에 항상 기뻐할수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요 모든 죄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깨끗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결국 어떤 사람입니까?
애통하는 자는 주님의 심장을 가진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천국 소망을 굳게 붙잡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사랑과 긍휼로 살게 됩니다.
애통하는 자는 사람을 보는 눈과 다른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것입니다.
결국 주님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의 모든 애통과 슬픔과 고통이 사라질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닮아 애통을 소유하고 그 마음으로 겸손과 사랑과 긍휼로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 주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