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예수님의 초청>(마 11:25-31)

마라나타!!! 2017. 4. 8. 23:30

<예수님의 초청>

(11:25-30, 개역)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우리 모두가 잘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초청의 음성을 듣고 세상에서 나와서 교회안에 예수님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모르는 자들이 많고 주님께로부터 멀어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가서 주님의 초청은 오늘도 계속되는 음성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배경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때에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앞의 말씀을 하신후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세례요한에 대한 말씀을 마치시고 주님의 음성에 무관심한 이 세상을 책망하셨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았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은 세례요한은 귀신 들렸다고 비방하였고 예수님이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 비방하기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는 즐기는 사람이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많이 베푸신 도시들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이 회개하거나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이 임할 것을 선언하셨습니다.(11:16-24)

이런 배경에서 주님은 초청을 하고 계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초청은 이 복음에 무관심한 세상이요 초청에 무관심한 세상에 대하여 그 간절함과 급박함이 담겨있는 초청입니다. 사랑으로 호소하고 계신것입니다.

우리는 여리고 소경이 겉옷을 던져 버리고 주님께로 달려 나갔듯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로 달려 나가 우리들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새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찾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들의 짐을 지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로 가면됩니다. 주님을 찾으면 됩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승리합니다.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께로 나오면 구원을 얻고 쉼을 얻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에 귀를 닫고 거역하면 삼킬자를 찾는 사자처럼 우리를 대적하고 틈을 엿보고 있는 마귀에게 잡혀살고 말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로 한걸음 더 나가는 복된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지혜로운 자와 어린아이 같은 자들이 있음을 감사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자들과 무시하고 반대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슬기로운 자들은 바로 지혜있고 똑똑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의미합니다.

 

(1) 천지의 대 주재이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주의 창조자시오 통치자시며 소유자이시며 심판자 이십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대상 29:11-13, 개역)

 

(4:24, 개역)

 

(17:24-25, 개역)

 

(8:3-9, 개역)

 

(2)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감추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슬기로운 자들은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보았지만 보지 못하였습니다. 들었지만 듣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들을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보는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3:13-17, 개역)

 

(24:1-2, 개역)

 

(2:7, 개역)

 

항상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어린아이 같은 자들에게 밝혀 주셨습니다.

어린아이의 상징적 의미는 바로 어른 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때가 묻지 않았습니다.

***솔직함에 있습니다.

***전적인 의존입니다.

***겸손합니다.

***순종입니다.

이런자들에게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것입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고후 1:9, 개역)

 

(벧전 5:5, 개역)

 

(대하 16:9, 개역)

 

(대하 32:7-8, 개역)

 

(4) 항상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음성을 사모해야 합니다.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요일 3:20-22, 개역)

 

(5:26, 개역)

 

(5:24, 개역)

 

(삼상 3:10, 개역)

 

(18:1-3, 개역)

 

(21:15, 개역)

 

(요일 1:7-9, 개역)

 

(1:1-3, 개역)

 

항상 주님의 음성을 사모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거역하고 자신이 하나님 되어 자기들 마음대로 살려고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하든지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찾고 찾으면 만나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찾으면 반드시 음성을 들려주시고 분별할수 있게 하여 주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과 사람들과 성령님과 말씀 등등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간들이 듣고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지 때문에 찾지 않기 때문에 들을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이룩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셨음을 감사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심판과 생명을 주는 일 등등 예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유일하고 특수한 관계가 강조 되고 있습니다.

 

(1)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에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28:18, 개역)

 

(5:22, 개역)

 

(5:19-24, 개역)

 

(2) 예수님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아버지를 알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14:6, 개역)

 

(4:12, 개역)

 

(딤전 2:4-5, 개역)

 

(3)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입니다.

(10:30, 개역)

 

(1:18, 개역)

 

(17:21-23, 개역)

 

(4) 아들을 본자는 아버지를 본것입니다.

(14:9, 개역)

 

(5) 예수님 안에는 아버지의 충만함이 있었습니다.

(14:10-11, 개역)

(1:19, 개역)

 

(6) 주님은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1:35, 개역)

 

(11:1, 개역)

 

(6:12, 개역)

 

(22:42-44, 개역)

 

(7) 항상 순종하셨습니다.

(8:29, 개역)

 

(8:28, 개역)

 

(5:30, 개역)

 

주님은 항상 아버지와 동행하셨고 자기 속에 계신 아버지로 말이암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들도 내 안에 계신 주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합니다.

 

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인생의 삶은 여러 가지 문제들의 연속이요 수고입니다.

창세기에서 에덴동산 아버지 집에서 쫓겨난 이후로 인생들을 쉼을 잃어버렸습니다.

방황과 수고요 가덤불입니다. 광야 세상입니다. 풍랑이는 바다입니다. 원수마귀에게 사로잡힌 상태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세상에 주님이 오셔서 인생들을 해방하시고 쉼을 주시는 것입니다.

 

(1) 죄악의 짐입니다.

할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는 짐입니다.

양심의 짐이요 죄책감입니다.

아무리 하여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수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삭게오는 주님을 만나 이런 죄의 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19:5-10, 개역)

 

(8:10-11, 개역)

 

(2) 율법의 짐입니다.

율법대로 살려고 해도 살수가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율법을 진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거짓입니다. 겉으로는 지키는 것 같지만 속은 변하자 않았습니다. 이것이 위선입니다.

(23:21-23, 개역)

 

(2:16, 개역)

 

(3:23-24, 개역)

 

(10:4, 개역)

 

(3) 염려 근심의 짐입니다.

인간들은 누구나 염려 근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로 가면 그 짐을 벗겨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문제들을 가지고 나가지만 주님만을 찾고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의 위대하심을 묵상해야 합니다. 문제들을 주님께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6:31-33, 개역)

 

(벧전 5:7, 개역)

 

(68:19, 개역)

 

(4) 환경의 짐입니다.

한경이 가로 막혀 꼼짝할수 없는 절망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에게 둘러 쌓여 있습니다. 기도하면 천군 천사 동원하시고 악령들이 떠나가고 막혔던 길들을 열어주십니다. 주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소망을 주시고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4:29-31, 개역)

 

(5) 관계의 짐입니다.

여러 가지 인간 관계가 깨어졌고 부담스러운 관계 억압 핍박 등등의 관계가 있을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다듬으시기 위하여 특별한 사람들을 붙여주실때가 있습니다. 원수라고 생각하지 말고 훈련의 기회라고 여기며 주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주님은 인간을 의지하는 것도 싫어 하시고 인간을 두려워하는 것도 싫어 하시며 미워하는 것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주님 만을 사랑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과 긍휼로 인내로 승리해야 합니다. 이 훈련이 통과되면 새롭게 하여 주시고 자유함을 주십니다.

(요일 4:7-11, 개역)

 

(4:31-32, 개역)

 

(6) 경제의 짐입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하여여서라도 쓸 것을 채워주십니다.

주님 만을 의지하고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얘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성도들의 삶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보좌에서 교회를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내 영혼과 인격을 치유하시고 나의 삶을 복되게 해주십니다.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축복이 신앙의 목적은 아니지만 복음의 결과는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이요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에 충실 하십시오. 이것이 비결입니다.

(4:19, 개역)

 

(고후 8:9, 개역)

 

(7) 질병의 짐입니다.

(8:17, 개역)

 

(16:17-18, 개역)

 

(5:13-16, 개역)

 

(8) 인생 허무함과 목표의 짐입니다.

(12:13-14, 개역)

 

(1:2-3, 개역)

 

(9) 슬픔의 짐입니다.

우리는 인간들이이기에 이 세상에서 슬픈 일을 많이 보고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안에 계시는 주님을 말미암아 능히 이기고 하늘의 기쁨으로 살수가 있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의 다심오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천국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살전 4:13-18, 개역)

 

(살전 5:16-18, 개역)

 

(10) 사명의 짐입니다.

(고후 11:23-27, 개역)

 

(딤후 4:7-8, 개역)

 

이와같이 여러 가지 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언제나 거기계셔서 우리들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문제자 문제가 되지 않게 하십니다. 감당치못할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당할즈음에 능히 피할 길을 주십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결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여러 가지 문제와 시련의 바다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항상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4.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있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다른 데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1)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2:20, 개역)

 

(2)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도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28:18, 개역)

 

(2:9-11, 개역)

 

(3)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신 분도 예수님 뿐이십니다.

(139:1-5, 개역)

 

(4) 나의 형편을 가장 잘 알고 계신분도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2:18, 개역)

 

(5) 나를 모든 문제에서 건지시는 분도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18:1-3, 개역)

 

(6) 나의 앞길을 새롭게 하실분도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27:1-4, 개역)

 

(112:1-4, 개역)

 

(58:10, 개역)

 

(7) 예수님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2:1-3, 개역)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찾을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5. 쉼을 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어떻게 쉼을 주실수가 있습니까?

평화를 가져오고 쉼을 가져 올수 있는 길은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와 사랑을 원하지만 원수들이 있어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길은 원수를 없애는 것이요 원수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두가지를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쉼을 주실수가 있습니다.

아니 오직 예수님 만이 우리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실수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은 마귀를 없이 하셨습니다.

(2:14-15, 개역)

 

(요일 3:8, 개역)

 

(2)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벧전 1:18-19, 개역)

 

(1:7, 개역)

 

(3) 하나님의 진노를 없이 하셨습니다.

(5:8-10, 개역)

 

(4)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5:5, 개역)

 

(41:10, 개역)

 

(20:1-2, 개역)

 

(33:1-3, 개역)

 

(10:29-31, 개역)

 

(43:1-3, 개역)

 

(5) 주님은 전능하십니다.

(4:8, 개역)

 

(9:6-7, 개역)

 

(1:1-5, 개역)

 

(6) 전지하십니다.

(5:6, 개역)

 

(26:10, 개역)

 

(7) 신실하십니다.

(13:1, 개역)

 

(19:30, 개역)

 

(22:7, 개역)

 

(3:12-14, 개역)

 

(8) 내 일생 전체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

(딤후 4:7-8, 개역)

 

(1:21, 개역)

 

(9) 주님을 항상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12:1-3, 개역)

 

(10) 주님은 세상에있는 자보다 크십니다.

(요일 4:4, 개역)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능히 승리하고 주님은 우리에게 쉼을 주실수가 있습니다. 쉼을 줏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피할 바위시요 우리는 그 틈에서 편히 쉴수가 있습니다.

(18:1-3, 개역)

 

(46:1-3, 개역)

 

(56:1-4, 개역)

 

(4:7-8, 개역)

 

(11) 오직 주님이 다시오셔서 새하늘과 새땅을 주실 때 만이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이 이루어 집니다.

(21:1-7, 개역)

 

주님 앞에 부지런히 나가 천국의 안식과 평화를 맛보며 사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6. 내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로 나와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인격과 말씀과 본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우리들도 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멍에를 메라는 말씀은 함께 가자는 주님의 초청입니다.

주님이 옆에서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시고 그러므로 주님의 멍에는 가볍습니다.

그러나 가는 방향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1)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이십니다.

바이블 렉스의 온유에 대한 정의입니다.

 

온유한 자는 본능과 충동, 격동 등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훈련된 인격자이다. 이 단어의 통상적 용법은 인간에 대한 태도, 특히 자신을 평가 절하하고 부당하게 대우하며 해롭게 하는 자들에 대한 마음의 성향 및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다.

온유는 그리스도의 통치의 표시이다. 정치적 메시야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져오기 위하여 힘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이 메시야 왕으로 예측하지 않는 형태로 자기를 모든 기대에서 어긋나게 처신하셨다. 즉 투구와 갑옷을 입고 군마를 타고 무장하여 무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지상에서의 주님의 사역은 힘이나 전쟁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구원을 가져오는 왕의 사역이었다. 메시야의 인간적인 빈궁함을 강조한다. 루터는 메시야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방도도 없고 궁극적으로는 갖가지 불의에 수난을 당했던 분이셨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로 통치하고 통치 방법은 온유이다.“

 

주님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온유하심은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주님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리는 날마다 묵상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5:22-24, 개역)

 

(5:5, 개역)

 

(2) 주님의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2:7-8, 개역)

 

(3) 주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2:5-7, 개역)

 

(4) 주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고후 5:14-15, 개역)

 

(3:17-19, 개역)

 

(5) 주님의 열심을 배워야 합니다.

(1:45, 개역)

 

(2:13-17, 개역)

 

(6) 주님의 담대함을 배워야 합니다.

(18:6-9, 개역)

 

(18:37, 개역)

 

(7) 주님의 희생을 배워야 합니다.

(10:45, 개역)

 

(8) 주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5:1-3, 개역)

 

(7:28-29, 개역)

 

(9) 주님의 본을 배워야 합니다.

(13:14-15, 개역)

 

(벧전 2:18-25, 개역)

 

(9:23, 개역)

 

주님의 위대하심 앞에 우리는 겸손히 항상 배우는 자세로 주님을 사모하며 따라야 합니다.

 

7. 우리는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과 함께 사명의 멍에를 지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지는 멍에는 가볍습니다. 주님이 함께 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부르신 그 뜻을 알고 멍에는 함께 져야 합니다.

 

(1)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4:19, 개역)

전도와 선교에 힘을 쓰라는 말씀입니다.

 

(2) 선한 일을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5:15-16, 개역)

(2:10, 개역)

 

(3)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죄를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벧후 1:4-11, 개역)

 

(벧전 1:13-19, 개역)

 

(4) 교회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출애굽하여 나와서 교회가 되어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고전 1:1-3, 개역)

 

(5) 십자가를 지고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9:23, 개역)

 

(6) 생명수를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성령으로 새힘을 부어주시고 하늘의 기쁨을 부어주십니다.

(22:17, 개역)

 

(7)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되고 새로운 능력과 지혜로 채워주십니다.

(1:13-16, 개역)

 

(벧전 2:9-10, 개역)

 

(8) 천국을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21:1-7, 개역)

 

(3:26-29, 개역)

(9)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집니다.

그냥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8:26-28, 개역)

 

(10)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8:29-30, 개역)

 

(11) 우리는 주님의 입술이 되어 이웃을 초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심장을 가졌다면 우리는 주님이 하시고 하시는 말을 하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심장으로 이웃을 초청해야 합니다.

교회로 주님께로 초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음성입니다.

(14:22-23, 개역)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초청의 음성에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초청의 음성에는 간절함이 담겨있습니다.

주님의 초청의 음성에는 주님의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을 배우라고 부르셨습니다.

쉼을 주시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길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이웃을 초청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초청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사귀어 살면서 이웃을 주님께로 항상 초청하는 우리들이 될수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