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고난주간 주님의 행적>(눅 19:28-40)

마라나타!!! 2016. 3. 21. 22:25

<고난주간의 주님의 행적>

(눅 19:28-40)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날입니다.

이런 고난주간을 만나서 해야 할 일은 주님의 행적은 더욱 깊이 살펴보고 묵상하며 나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내어 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며 더욱 주님을 위하여 살기로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안일한 삶을 회개하며 더욱 충성을 다짐하는 주간입니다. 주님의 고귀한 덕을 기리면서 자신을 쳐서 더욱 주님을 을 닮기 위하여 기도와 말씀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난주간 동안의 주님의 행적을 살펴 보면서 은혜를 얻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복음서들을 살펴 보면 주님의 일생 중에서 마지막 한 주간의 예루살렘에서의 행적에 짐중되어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공적인 생활 삼년 반동안의 가간중 일주일 밖에 되지 않지만 마태복음은 28장중에 8장이, 마가복음은 16장 중에 6장이 누가복음은 24장 중에 5장이 그리고 요한복음은 21장중에 무려 9장이 예루살렘에서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일주일의 행적을 살펴 보는 가운데 주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부어져서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이시간이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종려주일입니다.

(1)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나귀는 겸손과 평화의 상징입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이시오 평강의 왕이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이세상에 평화는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들 심령마다 주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슥 9:9)

(벧전 5:5-6)

(롬 14:17)

(2) 예루살렘을 보시고 울음을 터트리셨습니다.

(눅 19:41-44)

주님의 사랑과 안타까운 심장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월요일은 권위의 날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도전하였습니다.

(1) 성전 청결입니다.

(눅 19:45-48)

(2)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마 21:18-22)

(3)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대하여 도전함(마 21:23-27)

(마 21:23-27)

(4) 두아들의 비유

유대인들의 도전에 예수님은 세자기 비유의 말씀을 가지고 응답하셨습니다.

(마 21:28-32)

물론 큰형은 바리새인들과 대 제사장들을 작은 아들은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5) 악한 농부들의 비유

(마 21:33-46)

여기서도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이스라엘 농부들은 유대지도자들을 종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마저도 죽이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심판을 변치 못할것입니다.

(6) 혼인잔치의 비유입니다.

(마 22:1-14)

청함을 받은 자들은 유대인들이요 나중에 길거리에서 온 절름발이 소경들은 모두 이방인들입니다.

물론 이방인들도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믿어 의의 옷을 입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3. 변론의 날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여러 가지 질문을을 가지고 도전하였고 주님의 지혜에 그들이 할말이 없게 된것입니다.

(1) 세금에 관한 질문입니다.

(마 22:15-22)

(2) 부활 논쟁입니다.

(마 22:23-33)

(3) 율법에 관한 질문입니다.

(마 22:34-40)

(4) 시편 110편으로 예수님의 반대질문입니다.

(마 22:41-46)

다윗은 성령이 충만하여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님을 언급하였던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그 해석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5) 일곱가지 화를 선언하심(마 23장)

예수님은 이런 악한 유대인들 특별히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일곱가지 화를 선언하셨습니다.

(마 23:23-28)

(6) 예루살렘 멸망과 세상심판을 예언하심(마 24장)

이어서 주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고 아울러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셨습니다.

(마 24:15-24)

(마 24:29-31)

(7) 종말에 관한 세가지 비유들(25장)

(마 25:1-13)

결국 주님은 유대인들의 도전에 응답하시면서 그들에게 화를 선언하셨고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이와같이 누구든지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3. 음모의 수요일입니다.

(1)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하는 유대인들

(마 26:1-5)

예수님의 반격으로 할말이 없게 된 대제사장들과 버리새인들은 회개는 커녕 이제는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2) 향유옥합을 깨트린 여인

이런 와중에도 아름다움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한 여인이 향유옥합을 깨트린것입니다.

(마 26:6-13)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당하실 고난을 감지하고 그 사랑에 감동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부어드리는 일을 감행한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더욱 헌신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가룟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하고 돈을 받음

(마 26:14-16)

가룟 유다는 직접 대 제사장들을 찾아서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팔아 넘겼습니다. 마귀의 사주를 받은 자입니다.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을 다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준비의 목요일 입니다.

(1) 유월절 식사입니다.

(마 26:17-19)

(2) 세족식입니다.

(요 13:4-11)

(3) 성만찬 제정입니다.

(마 26:26-29)

(4)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요 13:34-35)

(5) 다락방 강화입니다.

(요 14:1-9)

(6)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마 26:36-46)

(7) 가룟유다의 입 마춤과 잡히심입니다.

(마 26:47-54)

5. 수난의 금요일입니다.

(1) 가야바의 법정입니다.

(마 26:57-68)

(2) 베드로의 부인입니다.

(마 26:69-75)

(3) 빌라도의 법정입니다.

(마 27:11-26)

(4) 가롯유다의 자살입니다.

(마 27:3-10)

(5) 채찍에 맞으시고 모독을 당하셨습니다.

(마 27:27-31)

(6)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가셨습니다.

(마 27:32-33)

(7) 오전 아홉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오후 세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요 19:28-37)

(눅 23:39-46)

(8) 백부장의 고백입니다.

(눅 23:47-49)

(9) 예루살렘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갈라졌습니다.

(마 27:51-56)

(10)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마 27:57-61)

6. 안식의 토요일입니다.

파숫꾼들이 무덤을 인봉하고 굳게 지킵니다.

(마 27:62-66)

7. 부활절 주일입니다.

(1) 여인들이 먼저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고 빈무덤을 보았습니다.

(2) 베드로와 요한도 와서 빈무덤을 확인하였습니다.

(3)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납니다.

(4) 제자들이 다른 제자들의 증거를 믿지 않습니다.

(5)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6) 예루살렘에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7) 의심하는 도마의 믿음을 책망하셨습니다.

(8) 나중에 주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9) 지상명령을 하시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10) 부활의 주님이 사울에게 나타나십니다.

8. 주님의 마지막 행적을 통하여 주님의 가신길을 알수가 있습니다.

(1) 주님이 가신 그 길은 의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의 삶은 의로운 삶이었으며 하나님의 의를 인간들에게 전해주시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성전을 청결케 하시고 자신의 의로우심을 타협하시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불의한 자로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밖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주님의 심판대 앞에 그들의 불의함 때문에 영원한 심판에 처해질것입니다.

(요 16:7-11)

(롬 3:23-28)

(고후 5:10)

(2) 주님이 가신 그 길은 도전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올라가신것은 유대지도자들에게 뿐만아니라 주님에게도 큰 도전의 길이었습니다. 특별히 주님은 자신이 당할 일들을 모두 아시면서도 앞장 서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그들에게 맞서서 그들을 꾸짖으셨고 경고하셨고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우리자신의 길이 바르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도전 정신과 담대함으로 살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앞길에 어떻한 도전과 핍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해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충성을 다할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요 16:33)

(계 2:10)

(행 20:23-24)

(3) 주님이 가신 그 길은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고후 5:14-15)

(엡 3:17-19)

(4) 주님이 가신 그 길은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히 10:15-20)

(히 9:13-14)

(막 10:45)

(5) 주님이 가신 그 길은 순종의 길이었습니다.

(빌 2:5-8)

(롬 5:17-21)

(6) 주님이 가신 그 길은 구원이 길이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그 길을 가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길만이 인간들을 구원할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 14:6)

(사 53:5-6)

(엡 1:7)

(롬 6:4)

(7) 주님이 가신 그 길은 순교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갈 1:4-5)

(계 5:12)

(고전 5:7-8)

(8) 주님이 가신 그 길은 승리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마귀의 권세가 깨어졌습니다.

(골 2:14-15)

(요일 3:8)

(빌 2:9-11)

(롬 8:1-2)

(9) 주님이 가신 그 길은 고독의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이런 최후의 비장한 일정가운데서도 주님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하는 자들을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자들까지도 누가 더 큰가를 가지고 논쟁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여정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모르는 주님과의 비밀의 여정이 있습니다.

(고전 4:1-4)

(골 1:24-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한주간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깊이 묵상할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나도 가야 합니다.

주님을 깊이 사랑하고 더욱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는 한주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안일함과 이기심과 교만을 버리는 기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가신 그길은 사랑과 순종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이 가신 그길은 핍박과 순교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이 가신 그길은 구원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각자 있는 자리에서 사랑과 충성을 다하고 더욱 주님의 심장과 고난에 동참하는 영적인 발전이 있으시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