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눅 19:41-44)

마라나타!!! 2016. 3. 18. 07:18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주님>

(눅 19:41-44)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다음 주일이 벌써 종려주일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며 주님을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은 예루살렘을 보시자 울음을 터트리신 것입니다.


인간들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주님이 하시려는 것에 대한 차이가 많습니다.

주님은 왜 갑자기 예루살렘을 보시고 울으셨을까요?

지근 세상을 보시면 주님은 울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지금 우리 나라를 보시며 우리들의 교회들을 보시며 울고 계시지는 않을 까요?

혹신 나를 보시며 슬퍼하시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들의 될수있기를 축원합니다.


1.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르기에 울으셨습니다.

(1) 인간의 타락으로 이 세상에 평화가 깨졌습니다.

(창 2:17)

(2) 예수님은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사 9:6-7)

(눅 2:13-14)

(3) 예수님은 십자가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엡 2:16-18)

(롬 5:8-10)

(롬 3:25-26)

(요일 4:7-10)

(4) 주님이 다시오실 때 온 세상에 평화가 임합니다.

(사 2:4)

(사 11:6-9)

(사 35:1-2)

(5) 주님이 나를 주장하실 때 평화가 임합니다.

(요 14:26-27)

(빌 4:6-7)

(6) 예루살렘은 평화를 위하여 오신 주님을 거부하였습니다.

(눅 19:35-38)

(7) 평강과 안식은 천국의 상징입니다.

(롬 14:17)

예루살렘이 평강의 왕이신 주님을 거역하고 교만과 독선과 위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안타까움에 울음을 터트리신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이 주님을 배반하고 죽일 것을 아시기에 주님은 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 복음 23장에서도 예루살렘을 보시고 탄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23:37-39)

(1)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셨습니다.

(2) 예루살렘은 그 선지자들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3)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4)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대하 36:11-16)

(4) 결국 무서운 심판을 당하였습니다.

(대하 36:17-20)

(5) 이스라엘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의 역사원리라고 합니다.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 나라로써의 가치가 상실되었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고 세계 곳곳에 흩어 버리십니다.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다시 모으십니다. 다시 하나님을 섬길수 있게 하싣나는 것입니다.

(신 4:25-31)

(느 1:5-10)

(신 30:1-6)

(6) 결국 하나님의 아들 까지도 죽이고 말았습니다.

마 21장 악한 농부의 비유입니다.

배반

채찍

침 뱉음

뺨을 때렸습니다.

옷을 벗기고 조롱하였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못밖았습니다.

(마 21:33-46)

(7) 주님은 이미 자신의 십자가의 고난을 알고 계셨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1-26)

주님이 우신것은 이런 고난이 두려워서 우신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타깝고 불쌍하여 우신것입니다.


3. 무서운 심판이 예루살렘 임힐것을 아시기에 울으셨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은 실지로 AD 70년에 일어났습니다.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오순절을 지키러 온 유대인들을 죽이고 예루살렘성과 성전을 부태웠습니다. 무려 백만명이상이 죽임을 당한것이 유대 역사가 요세퍼스에 의히여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님이 예언하신 두려운일이 그대로 일어난것입니다.


(1) 날이 이를지라

역사적으로 반드시 일어 난다는 말씀입니다.

AD 70년에 예루살렘의 멸망이 왔습니다.

성경말씀에는 “그날“ ”여호와의 아시는 한날“ ”주의 날” “여호와의 날”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 이 세상 심판의 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날이 매우 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슥 14:1-7)


(2) 네 원수들이

하나님이 원수들을 방망이로 사용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킨것을 로마군대였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하는 것은 로마군병들은 지금의 이슬람나라들에서 모집한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것은 바로 이삭과 이스마엘에서부터 시작되 뿌리깊은 증오심인것입니다.

말세에도 이스라엘과 교회를 미워하는 원수들에 의하여 핍박을 받게 될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교회를 정화시키는 일이 될것입니다.


(3) 토성을 쌓고

예루살렘 둘레에 흙으로 성을 쌓아 도망갈수 없도록 포위하는 것입니다.

그당시 이 말씀대로 일어났습니다.


(4) 사면으로 가두고

도망갈곳이 없었습니다.


(5) 그 가운에 있는 자들을 땅에 메어친다

금을 먹고 뱃속에 숨겼다고 생각하여 배를 가르는 무섭고 잔인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6)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을 것이다.

성벽을 쌓은 돌 속에 금이 순어 있고 녹아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다 파혜쳐졌습니다.

무려 백만명 이상이 살해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습니까?그러나 주님은 말세에는 더 무서운일이 일어날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남은자가 되어 새하늘과 새땅을 차지하게 될것입니다.

(계 19:11-18)

(계 21:7-8)

(계 20:4)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것 같이 세상의 심판과 멸망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4. 예루살렘심판은 세상심판의 예표입니다.

(1) 주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심판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마 24:15-22)

(눅 21:20-28)


(2) 예루살렘의 멸망과 회복은 세상 종말의 시간표입니다.


(3) AD 70년 멸망 당한 이스라엘은 1948년에 회복되었습니다.

(마 24:32-36)


(4)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 본격적인 종말의 징조가 시작됩니다.


(5) 그리고 대 환난이 있습니다.

(마 24:29-31)


(6) 이어서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계 1:7)

(살전 4:16-17)

(고전 15:51-52)


(7) 주님 다시 오시면 세상은 심판입니다.

(계 18:1-8)


(8)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구원입니다.

(살후 1:8-10)

(계 7:14-17)


5. 예루살렘을 사랑하시기에 주님은 우셨습니다.

(1)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택하신 곳입니다.

(삼하 24:25)

(대하 3:1-2)


(2)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대하 5:11-14)


(3)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곳을 바라보고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대하 7:15-16)


(4) 그곳에서 기도하면 그리고 그곳을 향하여 하는 기도도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왕상 8:46-50)


(5)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셨습니다.

(대하 36:15-16)


(6) 오늘날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주님이 성전이시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이 성전입니다.

(요 2:19-22)

(고전 3:16)


(7) 하나님은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셨습니다.

(계 21:2)

(계 21:9-11)


(8) 주님은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엡 5:22-33)

주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셨고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권고 하셨지만 결국 우상숭배를 돌이키지 않았고 그 교만과 외식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나가서 오히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밖는 어처구니 없는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애타는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이요 택하신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피값을 주고 사신바되 백성들이요 생명을 주시고 신부를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귀하게 여기고 끝까지 충성되이 섬길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6. 권고받는 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셨습니다.

(1) 권고받는다 는 말은 방문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오신 그날을 예루살렘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메시야입니다.

구원자 이십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의 메시야를 알지 못하였고 영광의 메시야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님을 알되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가서 주님의 오시는 때 즉 종말에 관한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 25:1-13)

(눅 17:26-30)

(눅 12:54-56)


(2) 조사받는 다는 말입니다.

감독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보살피고 은혜를 베풀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셔서 선악간에 모든 것을 심판하실것입니다.

(고후 5:8-10)

(살전 2:3-4)

(히 4:12)

(시 11:4)

(잠 16:1-2)


(3) 방문하여 심판하시는 날을 말합니다.

재림의 때를 알아야 합니다.

시대를 분별하고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 24:1-14)

(눅 21:34-36)

(살전 5:1-10) ]

(롬 13:11-14)

때를 분별하고 항상 깨어 기도하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7. 주님의 심장과 열정과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무려 50여년 동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았기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끝까지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자신의 눈으로 처참한 심판의 광경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주님 오시기전 586년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눈물로 외쳤고 심판 받은후에는 눈물로 애가를 썼습니다.

그 예레미야의 심정은 바로 세상의 심판을 바라보는 주님의 심정과 같습니다.


(1) 말세에는 무정한 시대가 될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실주의 자기 중심주의, 이기주의입니다.

이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정하고 차갑습니다.

(딤후 3:1-5)


(2)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벧전 2:19-25)

(약 5:13-14)

(행 14:22)

(눅 9:23)

(롬 8:17-18)

(빌 1:29)

(빌 3:10-12)

(골 1:24)

(벧전 4:12-14)

(살후 1:5, 개역)

(딤후 1:8, 개역)

(딤후 1:12, 개역)

(딤후 2:3, 개역)

(딤후 2:9, 개역)

(딤후 3:11, 개역)

(딤후 4:5, 개역)

(벧전 5:8-11)

(고후 12:10)

(고후 4:7-10)

(계 2:10)


(3) 주님의 심장과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아파하며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엡 4:31-32)

(벧전 3:8-12)

(벧전 4:7-11)

(요 13:34-35)


(4) 주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울으셨습니다.

여기서 울으셨다는 것은 그냥 울으신것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소리내어 통곡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실것이라는 잘못된 기대에 차서 기뻐하고 있었지만 정작 주님은 울음을 터트리신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있는 주님의 재림과 대환난의 때를 더욱 분명하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최후의 승리과 그 감격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믿지 않는 내 형제와 이웃과 나라들을 위하여 울어 본 적이 있습니까?

성령께서 예레미야의 심정, 주님의 심정을 부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렘 8:18-9:2)


(5) 내 이웃 내 가족이 영원한 고통의 지옥불에 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무관심할 수가 있습니까?

(눅 16:19-31)


(6)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세상 끝까지 주님의 심장으로 복음을 전하여 한생명이라도 살리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막 16:15-20)

(행 1:8)

(딤후 4:1-3)

주님오시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들리지 않습니까?

(막 1: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예루살렘성을 보시고 울음을 터트리셨습니다.

그 주님은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실까요?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울음을 터트리신 주님.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 현실을 보시면서 주님은 지금도 울고 계심을 알수가 있습니다.

어느 때는 기도합니다.

이 세상 어두움 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 누가 어떻게 구원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의 권능과 심장을 부어 주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나를 향하여 울고 계신것은 아님니까?

우리교회를 보시고 울고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호팻콩을 보시고 울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순전하신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뻐하고 있을때 주님은 울으셨습니다.

주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하니다.

무관심한 삶 이기적인 삶을 청산하고 아파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이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시고 주님의 심장을 부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울음을 터트리셨던 그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