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새 언약의 백성들이 이르른곳>(히 12:18-29)

마라나타!!! 2013. 9. 9. 23:04

                                  <새 언약의 백성들이 이른곳>

(히 12:18-29) [[18]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히브리서는 초대교회 당시 핍박이 심각하므로 많은 유대인 성도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그결과 유대교회 신약의 교회가 비교되어 있고 모세보다 주님이 얼마나 위대하신것이며 구약의 희생제사 보다 주님의 십자가 희생 제사의 영원함과 그 능력이 강조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옛언약과 새언약에 대한 비교 설명으로 통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맺으신 새언약의 탁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 힘든다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은 있을수 없는 것이며 우리는 계속하여 낙심하지 말고 주님 오실때까지 경주를 계속해 나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12장 서두에서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바로 경기하는 자들과 같으며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달려가자고 하였습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들을 바라 보면서 박수를 치고 응원을 하면서 때로는 안타까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 본문에서는 옛언약에 속한자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때의 모습과 신약성도 들의 모습을 비교하여 보야주고 있습니다. 옛언약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눈으로 보고 그 음성을 직접들음으로 무섭고 두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 언약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 앞에 있으며 시내산이 아니라 예루살렘산에 이른것이며 믿음으로 이사실을 깨닫고 더욱 확신 가운데 감사하며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새 언약의 백성들은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구름 같이 둘러싼 이미 경주를 마친 수많은 증인들 앞과 천사들 앞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동치 아니하는 나라를 유업으로 얻으라는 경고의 말씀이요 동시에 격려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안일한 생각들을 버리고 우리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하나님의 눈앞과 천사들과 증인들의 눈앞에 노출되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옛 언약 즉 율법과 새 언약 즉 복음을 비교해 보면서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가운데 있는지 깨닫고 더욱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과 충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옛 언약에 속한 사람들이 이른곳

예언약 즉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때의 광경입니다. 이것을 율법의 특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즉 새언약은 너무나 놀랍고 완전한 것입니다.

(1) 시내산의 광경을 일곱가지로 설명합니다.

(a) 만질 만한 산 (b) 불 붙는 산과 (c) 흑운과 (d) 흑암과 (e) 폭풍과 (f) 나팔소리와 (g) 말하는 소리 등입니다.

(출 19:16)

(출 24:15-18)

이런 것들의 특성을 세가지로 요약할수 있습니다.

첫째는 외형적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어두움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두려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외형적이 아니요 영적인것요 어두움이 아니라 빛이요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요 자유함입니다.

우리는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분명하고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 아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운 사랑과 축복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율법은 죄를 완전히 없이하지 못하지만 복음은 죄를 완전히 없이 합니다.

(히 7:19)

(히 10:11)

(히 9:8-11)

***그러나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드린 보혈의 제사는 완전한 제사요 죄를 완전히 없이하고 깨끗하게 하는 능력의 피입니다.

(히 10:12-14)


(3) 율법은 매년 제사를 드려야 하지만 주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히 9:23-28)

(히 10:11-18)

주님의 제사는 완전한 제사요 영원한 제사요 더 이상 아무 제사도 제사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4) 율법은 인간의 힘으로 지킬수가 없지만 복음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지킬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롬 3:20)

(롬 3:28)

(갈 2:16)

그러나 주님을 믿기만 하면 의롭다하심을 얻습니다.

주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죄를 위하여 우리 대신 형벌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엡 1:7)

복음은 곧 새 언약이요 새 언약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속에 새생명이 탄생한것이요 새 마음을 가질수 있게 된것입니다. 이 새생명은 주님의 마음을 가질수 있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할수 잇게 된것입니다.

(신 30:6)

(신 30:6)

(렘 31:31-33)

(히 8:10-13)


(5)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지만 복음은 죄를 싫어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심껏 살려고 노력하고 수련을 하고 별짓을 다하여 보지만 죄는 이길수가 없는 자신을 결국은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죄를 싫어하는 마음이 새생명으로부터 나오며 나가서 거룩한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있고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죄를 짓지 않을 자유함과 능력을 주십니다.

(롬 7:7-10)

(롬 7:24-8:2)


(6) 율법은 우리는 주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요 복음은 우리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합니다.

(갈 3:23-29)


(7)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 있지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율법은 구원을 받은 백성들이 지켜서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요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역할입니다. 절대로 다 지킴으로 구원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가나안땅을 주신다는 언약을 믿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했습니다. 의롭다함은 율법을 지켜서 얻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믿음으로 얻는 것이었습니다.

새 언약 복음은 바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요 시내산 언약은 다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나타내 보이신것이요 세상에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언약은 바로 세가지로 요약할수 있는데 그것은 (1) 아들 주신다 (2)그로 인하여 큰 백성을 만들어주시겠다 그리고 (3) 가나안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1)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주신다는 것이요 (2) 큰 백성 즉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를 만드신다는 것이요 (3) 나가서 새하늘과 새땅을 주신다는 내용인것입니다.

(롬 4:20-25)


(8) 율법은 돌비에 써서 주셨 지만 복음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써 주습니다.

이 것이 바로 복음이요 새언약입니다.

(고후 3:3)

(히 10:16-18)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게 되었습니다.

(요 10:27)

(고후 13:3-5)


(9) 율법은 문자 적이지만 복음은 영적입니다.

(고후 3:6-8)


(10) 율법은 수건과도 같습니다.

율법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의를 내세우기를 좋아 합니다. 자신의 공로를 의지합니다. 내가 기도하고 내가 봉사했으니 하나님이 나를 복주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며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생활은 율법적이요 문자적입니다.

진정한 신앙 생활은 바로 살아 계신 주님과의 관계요 사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나같은 죄인살리신 그 은혜가 고마워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알기에 힘을 씁니다.

(고후 3:12-18)


(11) 율법은 인간의 행위를 먼저 강조하고 있지만 복음은 먼저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사귐을 얻고 나서 그 주시는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히 12:1-2)

믿음은 바로 내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믿고 사귀어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 2:20)

(고후 13:5)


(12) 율법은 마음 밖에 있는 법이요 복음 내 마음안에 있습니다.

율법은 머리와 지식에 있고 육신의 힘으로 노력하여 그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영과 가슴에 있습니다.

복음은 바로 옛 생명이 새생명으로 바꾸어 진것입니다.

(롬 6:1-4)


(13) 율법은 동물의 피로 세운 언약이요 새 언약은 주님의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출 24:5-8)

(벧전 1:18-19)


(14) 율법은 하나님의 보좌와 임재 앞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히 9:7-10)

(히 10:19-20)

(히 4:14-16)


(15) 율법은 인간들이 제사장이었지만 복음은 완전하신 주님이 중보자 이십니다.

(히 7:22-25)

(히 8:1)

(히 7:22-25)

(롬 8:33-34)

옛날 시내산의 율법언약은 두렵고 의무적이며 눈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현현이 이었습니다. 그 율법은 인간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지도 못하며 거듭나게 하지 못하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와 성령님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이루어진 새 언약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부어진 놀랍고 신비한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보다 복음이 얼마나 더 탁월하고 놀라우며 완전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의 복음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가서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우리들에게 부으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새 언약의 백성들이 이른곳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새 언약을 믿는 새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이르른 곳 즉 지금 경주를 하며 달리고 있는데 그냥 혼자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수많은 증인들이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시온 산 앞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장차 하나님 보좌 앞에 이르게 될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될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좌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시 97:1-3)

(시 48:1-3)

(사 6:1-5)

(겔 1:26-28)

(단 7:13-14)

(단 7:9-10)

(시 103:19-21)

하나님은 그의 보좌에서 세상을 통치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계 4:1-5)

(계 20:11-15)

(계 22:1-5)


(2)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은 바로 장차 이루어질 예수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가까이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 것이 계시록 21장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거기에 이르지 않은 것 같지만 너무나 확실한 일이기에 현재 이루어진것과 같은 표현을 쓸수가 있습니다.

(계 21:1-4)

(계 21:9-14)

(계 21:22-24)

(빌 1:6)

(벧전 1:3-4)


(3) 천만 천사들 앞에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냥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의 눈 앞에 있습니다.

천사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 심부름을 하며 영적인 전쟁을 치루기도 합니다.

(마 18:10)

(히 1:14)

(히 1:7)

(단 10:12-14)

(계 8:1-5)


(4)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 이것은 이미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총회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이것은 축제를 위하여 모여 춤추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기록한 이라는 것은 생명책에 그 이름들이 기록된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한편의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눅 23:42-43)

(눅 16:23-25)

우리는 이미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이 기뻐하고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를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계 20:12)

(빌 4:3)

(계 3:5)

(사 4:3)

(단 12:1)

(눅 10:20)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지금 주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신상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을 구경하고 있는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입니다.


(6)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측면을 강조한 표현으로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시사한다(Lane). 또한 이는 그리스도의 피를 경히 여기고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배교자들이나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며(10:26-29)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 거룩해지고 깨끗하여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교제로 함께 하심을 시사한다(Hewitt, Bruce).


(7)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온전케 된 의인들이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완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영들이라고 한것은 그들이 아지 부활의 몸을 입지 못한것을 의미합니다.

(요 5:29)

(요 11:25-26)

(살전 4:16-17)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던 사랑의 주님 얼굴을 뵈옵게 될것입니다.

(고전 13:12-13)

(계 1:5-6)


(8)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 앞에 있습니다.

(히 8:1)

주님이 이세상에 오신 이유는 바로 새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새 언약은 바로 주님이 성령을 통하여 내안에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내안에 말씀을 써 주신다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것입니다.


거룩하신 성령님이 우리 죄인의 몸을 성전삼고 들어 오실려면 죄사함은 필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입고 성령님이 들어오시고 새생명이 탄생된것입니다. 즉 주님이 내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 새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히 9:22)

(요 3:5)

(약 1:18)

(히 10:9-10)

(롬 8:15)

(고전 3:16)

(요 14:16)

우리는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이 계심을 깨닫고 항상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8)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피는 땅에서 부르짖으며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창 4:7-12)

그러나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영원한 피요 지금도 우리의 죄 값이 그의 피로 인하여 깨끗함을 받았고 용서 받았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의 피를 가지시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앞에 영원히 계시기에 우리는 영원히 죄사함을 얻게 된것입니다.

언약 궤안에 하나님의 율법 돌판이 있습니다. 그 대로 살지 못한 죄인을 정죄 합니다. 그러나 그 위에 피가 뿌려지면서 하나님의 용서가 나타나고 은혜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하심과 음성이 들려 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흘리신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이 죽도록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리는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이 깨닫게 됩니다.

(롬 5:8-9)

(벧전 1:18-19)

(벧전 1:1-2)

(롬 5:5)

이와 같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있으며 수많은 증인들 앞에 있고 천사들 앞에 있습니다. 항상 주님의 임재하심을 의지하고 주님과 사귀어 살아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새 언약의 백성으로써 주님이 내 몸을 성전삼고 살고 계심을 깨닫고 큰 확신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귀어 사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새 언약의 백성들의 삶

25절 부터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새언약의 백성들이 어떤 사람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다고 말씀합니다.

항상 순종하기를 힘쓰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동을 주시고 기회를 주실 때 주님의 뜻에 항복하여 순종하여야 합니다.

내 뜻과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님과 교통하지 못하고 자기 중심 대로 살기 때문에 순종한다고 생각 하지만 그 중심은 전혀 순종이 아닙니다.

(갈 5:24)

(갈 6:14)

(행 5:32)

(눅 22:41-44)

(삼상 15:22-23)

(롬 12:1-2)

특별히 여기서는 복음을 믿고 버리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배도의 위험입니다.


사람을 통하여 전하여준 율법을 거역하였어도 형벌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주신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헤가 나타난 복음의 새언약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더 무서운 형벌을 피할수 없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주님께 사랑과 충성을 다하며 살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살후 2:3-5)

(딤후 4:7-8)


(2)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대로 우리는 모든 영적인 존재들 앞에 노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임재의식을 높아고 주님 앞에서 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정시 기도와 순간기도와 말씀 묵상과 영성 훈련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반드시 주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주님도 항상 기도하시기에 힘을 쓰셨습니다.

(막 1:35)

(요 5:19-21)

주님은 항상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셨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시 16:8)

(딤후 4:1-2)

어느 사람이 죄를 저지를 유혹에 빠졌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곳에는 자기 혼자 있고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악령들과 천사들이 있었고 주님이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실로 하나님 목전에 있습니다.

(창 38:10)

(신 9:18, 개역)

(신 12:28, 개역)

(신 13:18, 개역)

(신 17:2, 개역)

(시 139:1-5)

(3)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세상 심판의 날이요 주님 재림의 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 시내산에서는 땅이 진동하였지만 이제는 하늘과 땅 까지도 진동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했던 것 이상으로 두려움에 떨게 될것입니다.

(마 24:29-31)

(계 1:7)

(4) 우리는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습니다.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계 21:3-4)

(계 22:1-5)

(계 21:6-7)

(롬 8:17-18)

(고후 4:16-5:2)


(5) 은혜를 받자

이 말씀은 바로 은혜안에 살자는 것입니다. 은혜를 굳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돌아가거나 복음을 버리고 주님을 배반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율법적이 되기 쉽습니다.

자기의 공로와 의로움을 나타내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안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영원함을 알아야 합니다.

(요 1:16-18)

(벧전 5:10-11)

(고전 15:10)

(엡 2:8-9)

(살전 5:16-18)

(갈 5:4)


(6)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

(딤전 4:7)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함을 이루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 11:6)

(롬 12:1-2)

(약 1:26-27)

주님의 본을 따르며 세상과 벗하지 말고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약 4:4-8)

(엡 4:22-24)

(눅 9:23)

(벧전 1:15)

(벧전 2:21-25)


(7)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소멸하는 불은 바로 심판의 불이요 정화시키는 불입니다.

하나님은 가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더럽고 악한것들을 소멸하여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화시키십니다. 시련과 연단과 징계를 통하여 더욱 거룩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히 12:7-11)

(욥 23:10)

(롬 5:3-4)

새 언약의 백성들은 이와같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새 언약의 은혜를 이루어 주신 하나님 앞에 항상 감사하고 더욱 사랑과 충성을 다하여 살아야 합니다.

더욱 항상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경건에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딤전 6:11-14)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힘쓰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살고 잇지는 않습니까?

나는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울고 웃으며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까?

나는 복음을 잘 깨닫지 못하고 율법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예수 십자가에서 부으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보이는 것과 생각에만 매여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살아계신 주님과 사귐이 있습니까?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과 천사들과 수많은 증인들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까?

진동치 못할 나라를 유업을 받은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기를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경건에 힘쓰고 주님을 찾으며 사랑과 충성을 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능력과 사랑의 주님을 바라보며 그 음성과 뜻을 찾기에 힘을 쓰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새언약의 백성으로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고 진동치 못할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실을 깨닫고 항상 믿음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찾고 그 뜻을 깨달아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