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라>(눅 24:1-12)

마라나타!!! 2013. 4. 1. 04:55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라>

(눅 24:1-12)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4]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고하니라) [11]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주님은 지난 목요일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잡히셔서 밤새 심문을 받으시고 금요일 아침에 십자가에 못밖히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세시에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리마데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그 모진 고통과 배반과 모욕과 침뱉음 함성과 채찍과 슬픔과 통곡을 뒤로 하고 주님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 되셨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지나가고 새날이밝으면서 모든 것이 바꾸어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을때 무덤은 열려 있었고 주님의 시체는 무덤안에 없었습니다.

대신 주의 천사를 만났습니다.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왜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는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연들은 그때서야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주님은 죽으실 것이지만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깨닫고 기쁨과 두려움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이소식을 전달하였지만 모두 믿기지 않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요한과 베드로가 달려갔습니다.


결국 무덤에서 주님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에서 기다리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었고 그날 오후에 주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못밖히신 손과 발을 보여 주셨습니다.


다시 사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감격의 부활절을 맞아 주님의 부활이 가져다 주는 엄청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아야 우리는 부활의 능력과 확신과 기쁨 가운데 살수가 있습니다. 부활의 중요성과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소망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능력과 기쁨을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주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시체를 지키려고 무덤을 봉인하고 군사들을 보내어 지키었지만 시체는 없었습니다.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일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미 선지자들이 예언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무도 막을수가 없습니다.

(시 16:9-10)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의 하나님 이십니다.

모든 것을 미리알고 계획하시는 전지의 하나님이십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창 1:1)

(시 103:19-22)

(계 1:8)

(창 50:20)

(계 4:11)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신 주님이십니다.

죽은자를 살리십니다.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주님이 살아나신 것은 죄가 없으시고 죽으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출 14:21-22)

(롬 4:17)

(눅 1:37)

(히 1:3)

(히 11:3)

주님의 무덤을 돌로 막았지만 그것은 너무나 헛된 일입니다.

주님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불가마 가운데서 건지셨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건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적정하신 일은 아무도 막을수가 없고 그대로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빌 1:6)

(요 10:28-29)

(계 21:6)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인간들이 가장 불행한 자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집니다.

(잠 3:5-6)

무덤은 열렸고 주님을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무도 하나님의 뜻을 막을자가 없습니다.


(2) 무덤이 열렸습니다.

무덤에 갇힌 시체같은 삶을 버리고 자유함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율법주의의 무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의 무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포기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있지는 않습니까?

염려의 무덤, 두려움의 무덤, 정욕의 무덤,

미움과 원망과 음란과 시기와 각종 죄악과 여러 가지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요 8:31-32)

(갈 5:1)

(롬 8:1-2)

(히 12:1-2)

(고후 3:16-17)

겔 37장에서 바벨론 포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내가 네 무덤을 열고 너희를 살려내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안에서 자유함이 있습니다.

주님안에서 자유함이 있습니다.

(수 1:5-6)

주님의 무덤은 열렸습니다.

무덤 까지도 나를 막을수가 없습니다.

(살전 5:16-18)


2. 왜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는냐?


(1)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은 주님의 일생을 쭉 따라 다니고 섬기고 있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때에도 광야시험 때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도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무덤에서 돌이 옮겨 진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것이 아니라 천사들에 의한 초 자연적인사건 이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천사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히 1:14)

(행 1:9-11)

(마 18:10)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천군 천사와 함께 오십니다.

(마 24:29-31)

우리는 나 혼자가 아니며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이 파견하신 천사들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

주님은 여인들이 주님을 사랑하여 무덤까지 새벽에 온 것을 보면서 산자를 왜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어뚱한데서 주님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하늘 보좌에 계시지만 동시에 그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찾되 말씀 말씀 하면서 문자적으로 예수님의 행적과 하신 말씀을 배우고 그대로 살려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잘 알고 많이 아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착각입니다.

주님은 2000년전의 주님이 아니라 지금 내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교훈과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은 문자를 알고 교훈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후 3:16-17)

(고후 3:6)

(고후 13:4-5)

(요 17:3)

(롬 8:9)

(요 10:27)

(갈 2:20)

주님이 이제 내안에 살아 계십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살아 계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는 삶이 진정한 성도의 삶입니다.

(마 4:4)

주님 자신을 사모하고 찾고 사귀어 사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시 42:1)

(시 18:1)

(잠 8:17)

여인들은 살아계신 주님을 무덤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내 마음에서 생명으로 계시면서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살아 계신 주님이심을 깨달을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날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찾고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여인들은 주님을 사랑 때문에 그 새벽에 주님의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의 축복이나 교훈이 아니라 주님 자신을 사랑하고 만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나타나 주십니다.

죽은 신앙 생활이 아니라 진정한 살아계신 주님과 사귀어 사는살아 있는 신앙 생활을 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 14:21-23)


3. 갈릴리에서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천사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1) 십자가에 못밖히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항상 묵상 해야 합니다.

기록 된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다함이 없습니다.

(시 1:1-3)

(시 119:9)

(시 119:11)

(시 119:105)

(행 20:32)

(엡 6:17)

(히 4:12)

(약 1:18)

(벧전 1:23)

(요 1:1-3)

말씀의 부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천사의 말을 듣고 여인들은 드디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천사가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계시가 없으면 깨달을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연구 하여야 합니다.

사모하여야 합니다.

(딤후 3:16-17)

(벧전 2:2)

(시 119:97)

(시 119:131)

(시 119:147-148)

우리는 말씀을 먹고 다시 예언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계 10:8-11)

특별히 우리는 이 종말의 시대에 종말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 24:45-46)

말씀 안에서 바로 서서 주님과 사귀어 살아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바로 배워야 합니다.

특별히 말세에는 배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납니다.

(딤전 4:1)

(딤후 4:3)

말씀에 바로 서서 승리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빈무덤과 천사를 만나 들은 부활 소식을 다른 제자들에게 전하였습니다.


(1) 열한 사도와 다른 이에게 무덤에서의 일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여야 합니다.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일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옛날에 이루어 놓으신 일도 전하여야 하지만 지금 살아 계신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내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눅 24:44-49)

(행 1:8)

흔히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살아계신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는 것입니다.

(마 28:18-20)

(막 16:15-20)

(행 1:22, 개역)

(행 2:31, 개역)

(행 4:2, 개역)

(행 4:33, 개역)

(행 17:18, 개역)

(행 17:32, 개역)


(2) 허탄한 이야기로 알고 믿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죽은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마가 복음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믿지 않았다고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죽으신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 16:10-14)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때의 제자들 뿐만아니라 오늘날 사람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전혀 믿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이요 말씀을 들을때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믿음을 가질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헤요 선물입니다.

(롬 10:17)

(살전 1:5)

(행 2:38)

(롬 10:13)

(요 3:5)

도마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는데 결국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심으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기적을 보고 체험하고 믿는 믿음보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통하여 주님이 내안에 새생명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바로 참된 거듭남이요 구원합니다.

주님 부활의 확신 그리고 거듭남의 확신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3)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 확인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성격을 말해 주십니다.

무엇인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습니다.

우리들도 환신에 서야 합니다.

거듭남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안에서 주님이 하시는 음성을 들으며 사는 것입니다.

(요일 5:10-12)

제자들은 주님이 부활했다는 여인들의 소식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의 부활 뿐만 아니라 나의 부활도 믿음으로 확신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예수 부활의 의미와 결과는 무엇입니까?

(1)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려고 여러 가지로 거짓을 조장하였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믿어지는 초 자연적 사건이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론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철학자는 기절했다가 살아났다는 등의 이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과 순교자들과 기독교의 역사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 살아나셨음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무려 약 11번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엠마오 가던 두 제자입니다.

**도마가 없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때 나타나셨습니다.

**갈릴리에서 고기 잡이 한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승천하실 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부활 하신것입니다.

(고전 15:3-8)


(2)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 갚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죄로인하여 죽으신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죄값을 갚으시기 위하여 죽으신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만약 죽으신 주님이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주님은 자신의 죄로인하여 죽으신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진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심판이 지나간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나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이제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게된것입니다.

할렐루야!

(롬 8:1-2)

(엡 1:7)

(막 10:45)

(계 5:12)

(요 5:24)

(골 1:13-16)

(행 26:18)


(3) 우리의 죄값이 완전히 갚아 졌다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죄를 대신 지신 주님이 죄값을 완전히 갚지 못하셨다면 절대로 다시 살아 나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남김없이 모두다 완전히 갚아 버리신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죄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양심에 거리낌을 없앨수 없었고 사단의 참소를 없앨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죄가 완전히 갚아 졌기에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히 4:15-16)

(히 9:13-14)

(히 10:16-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제사는 바로 완전한 제사요 영원한 제사요 단 한번 밖에 필요없는 완벽한 제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습니다.

(롬 8:34)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에 우리에게 심판은 지나간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고 이제 자유함입니다.

할렐루야!


(4) 부활의 의미의 하나는 바로 그 주님이 지금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죽으셔서 어디 멀리 계신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계시고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우리와 함께 역사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히 7:25)

(요 14:1-3)

(막 16:19-20)

(계 1:12-16)

주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함께 역사하고 게시며 재림 준비를 하고 계시며 교회들을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계시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힘든 자들을 위로하시며 우리들의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마 11:28)


(5)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히 1:1-3)

(마 28:18)

(빌 2:9-11)

(행 2:33-36)

부활 승리하신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6) 사망과 마귀의 권세가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부활은 예수십자가의 능력과 효력을 입증하는 하는 사건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다시 사시지 못하였다면 죄사함도 없고 우리는 다만 헛것을 믿는 불쌍한자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십자가에서 죄가 효력을 잃었습니다.

예수십자가에서 사단의 권세가 깨졌습니다.

예수십자가는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생명입니다.

십자가는 자유를 줍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이 모든 십자가의 효력은 주님의 부활로 입증되었습니다.

(골 2:15)

(계 12:7-9)

죄를 가지고 인간들을 사로잡고 사망으로 이끌고 가던 마귀의 사업이 이제는 그 효력을 상실하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흘리신 피로 인하여 마귀는 이 세상에서 성도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그 근거를 잃어 버리고 만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써 사망의 독침인 죄가 그 효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죄가 그 독기가 없어 졌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잡은 마귀가 그 권세를 잃어 버렸습니다.

참소하지 못하고 정죄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의 귀중함과 능력을 깨닫고 나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마귀를 내어 쫓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을 받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벧전 1:18-19)

(눅 10:19)

(막 16:17-18)


(7) 우리는 이제 부활의 생명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난것입니다.

내안에 있는 생명은 주님의 생명입니다.

내안에있는 새생명은 부활 생명이요 예수님과 연합된 생명이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뜻 대로 살기를 원하는 거룩한 생명입니다.

(롬 6:3-4)

내안에 있는 생명은 주님을 닮아가는 생명이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수 있는 생명입니다.

이것은 바로 새 언약이 내안에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전 2:16)

(렘 31:33-34)

우리는 이제 이새 생명으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겔 36:26-28)

(골 3:9-10)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주님을 위하여 사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8) 이제 우리는 예수님 처럼 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요 14:12)

(요일 4:15-17)

예수님 처럼 살게 되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과 예수님과 연합되어 사는 것과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살게 된었다는 사실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질수 있게 된것을 의미합니다.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9)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죄는 바로 인간아담이 저지른 죄였기에 인간이 죽게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값도 인간이 갚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그 죄값을 다 갚아 버리셨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다시 살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대표자로써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활의 첫열매라고 하는 이유도 우리들도 예수님 처럼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 11:25-26)

(고전 15:20-22)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들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삽니다.

여러분, 인류의 최대적은 사망입니다.

사망은 슬프고 절망하게 하고 허무하게 합니다.

삶을 무의미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으면 무덤이 끝이 아니라 다만 주님을 만나러가는 문이요 천국가는 문일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우리들의 소망이요 생명이십니다.

할렐루야!


(9) 우리는 부활의 소망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부활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부활되는 것입니까?

마지막 나팔 불때 부활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부활합니다.

주님의 몸같이 됩니다.

(빌 3:20-21)

(고전 15:51-52)

(살전 4:16-17)

(계 20:4)

(벧후 3:11-13)


(10) 우리는 부활의 능력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 4:7-10)

(고후 12:10)

(엡 1:17-20)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고 그의 이름을 주셨고 말씀을 주셔서 이 세상에서 능히 주님과 교통하며 사명을 감당할수 잇게하셨습니다.


(11) 우리는 이제 남은 삶을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밖혀 죽은 우리들이요 주님과 함께 살리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므로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 14:7-8)

(고전 6:19-20)

(고후 5:14-15)

(계 2:10)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써 이루어 놓으신 이 놀라운 사실들을 바로 깨닫고 확신에 서서 늘 주님과 사귀어 살아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부활의 확신과 소망과 능력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 온것입니까?

오늘 여인들이 주님을 사랑하여 새벽에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자고 있었던지 두려워 숨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여인들은 주님을 사모하였고 주님이 비록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시체라도 뵙고 싶었습니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무덤은 열려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일을 막을자가 없습니다.

무덤은 열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시대 성령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율법주의 부정적인 생각 정욕과 죄악 등등의 무덤에서 나와서 자유함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천사들이 나타나서 왜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주님은 이제 내마음에 계시고 나와 항상 함께 계십니다.

엉뚱한데서 주님을 찾지 말고 성령과 말씀속에서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아 계신 주님과 사귀어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가까이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배우기를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능력과 축복가운데 살게 됩니다.


여인들은 천사에게 주님의 부활소식을 듣고 다른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부활을 확신하고 부활을 전하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믿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내 영혼에 일어난 초 자연적인 역사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1)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2)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대속의 죽으심이라는 사실입니다.

(3) 우리의 죄 값이 완전히 갚아졌다는 것입니다.

(4) 주님이 지금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5) 그 주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권세를 가지셧다는 사실입니다.

(6) 사망권세가 깨졌다는 것입니다.

(7) 우리는 이제 부활생명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8) 이제 우리는 주님 처럼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9)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10)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이제 부활의 능력 가운데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2) 이제 우리는 나를 위하여 험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위하여 남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얼마나 큰 은혜를 입은 것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입은 것입니까?

아무 공로 없이 다만 예수믿어 이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평생 다 갚아도 갚을수가 없는 은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나의 주님을 위하여 일생을 드리는 복된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부활의 확신과 능력과 기쁨을 가지고 더욱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사랑하고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주님 다시 오실 때 기쁨의 감격으로 주님 얼굴을 뵈옵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