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구원의 비밀>(요 3:1-15)

마라나타!!! 2016. 7. 22. 23:36

<구원의 비밀>

(3:1-15)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니고데모는 동료 바리새인들이 모두가 주님을 대적하는 상황가운데서 주님을 찾아 온것입니다. 나름 용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어느정도 인정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온분이 아니면 예수님이 행하신 이런 일들을 하실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조금 엉뚱한 이야기를 니고데모에게 하십니다. 네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겠다고 하신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어떻게 다 큰 사람이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수 있습니까? 하면서 전혀 이해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바람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모세가 구리뱀을 장대에 달아 올린 것 같이 자신도 나무에 들릴 것을 말씀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잃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가서 구원을 누리지 못하고 구원받은 자로써의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들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랍고 큰것인지 깨달으며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되찾아 기쁨과 능력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니고데모는 구원받지 못하였습니다.

(1)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사회에서 아주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말씀에 능통하고 그 기록된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로마서에 말씀한대로 말씀을 지켜 구원을 얻는 다고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아무도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을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율법대로 살지 못하는 자들은 정죄하고 무시하는 태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심각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문자적인 율법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을 성령을 통하여 믿고 의지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2:16)

(3:23-24)

(3:28)

(23:13-15) 

(고후 3:3-6)

아무리 율법대로 산다고 해도 그 마음이 할레를 받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았다면 구원을 받지 못한것입니다. 

(7:51)

 

(2) 니고데모는 유대관원이었습니다.

유대관원이라면 그 당시 산헤드린 즉 지금의 국회의원입니다.

재물도 있었을터요 권세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고 자기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권세있고 힘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것이요 복은 받은 자들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님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자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에게 심각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5:3) 

(19:21-22) 

(12:16-21)

(딤전 6:10) 

(고전 1:26-29)

돈과 권세로 구원을 얻을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재물이 우상이 되어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19:23-26)

 

(3)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밤에 찾아온 이유는 몇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동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몰래 예수님을 찾아 온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의 눈치를 보느라고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이 지장을 받아서는 않됩니다.

두 번째는 낮에는 예수님이 너무나 바쁘시기 때문에 밤에 찾아 온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찾되 시간을 내어 한적한 곳에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불신 세상에 살다가 보면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저하는 사람들이 기회가 있을 때 교회에 나오도록 초청하고 권하며 전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14:15-24)

 

(4)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니고데는 오랬동안 어려서부터 종교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다고 해서 그기록이 구원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물론 구원받을 기회를 많았을 것입니다.

오직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1:12)

 

(5) 성경을 많이 아는 것도 구원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능통한 자들이었지만 정작 예수님을 거부하였고 십자가에 못밖아 죽이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신학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 자신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구원이 아닙니다.

(2:34-38)

 

(6) 착하게 사는것도 구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강도짓도 하지 않고 이웃에게 사회에 선한 일을 많이 하였으니 그 공로로 천국에 들어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이 착각입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이 선하다고 판단하셔야 합니다.

나가서 자신의 힘으로 하는 선행은 자기만족과 죄의식을 누그러 트리며 타현하게 하고 자기 자랑과 교만으로 이어져 하나님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도적질 하는 것도 죄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우리들의 선행의 의로움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비교할 때 걸레와도 같이 더럽습니다.

(64:6)

 

해적선에서 해적 한명이 다른 해적에게 선을 행하였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선행은 값없이 구원을 받은 자들이 감사함으로 주님의 힘을 입어 마땅히 해야 하는 반응입니다.

 

(7) 성령체험도 구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병고침을 받았다 무슨 성령체험을 하였다고 하여 그것을 구원과 연관 시킵니다. 그런 것은 사랑의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일수 있지만 구우너의 표징은 아닙니다. 구원은 반드시 마음의 변화가 와서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는것이라야 합니다.

 

(17:17-19) 

(7:21-23)

 

(8)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도 구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자동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많은 이점이 있지만 구원은 개인적입니다. 말씀안에서 자라나서 교회안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각각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2:38)

 

(2:28-29)

 

(9)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비참한 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지옥갑니다.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습니다.

***마귀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습니다.

***기쁨과 만족이 없습니다.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각종 염려와 두려움에 가운데 삽니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우상등 헛된 것만 의지합니다.

***결국 자신이 죽는 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영원히 살것같이 살아가지만 너무나 어리석은 삶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적인 것인지를 안다면 구원을 받은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하며 살게 될것입니다. 인간은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구원의확신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2. 구원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우리는 한마디로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 가운데서 우리는 구원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을 찾아 볼수가 있습니다.

 

(1) 구원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창조자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물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지만 말씀, 회개, 세례와 관련이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2:38)

 

회개하여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자들에게 거룩하신 성령께서 임하시고 새생명을 주셔서 가듭나게 하십니다.

(3:11-12)

(3:16-17)  

(47:1-5) 

(7:38-39)

 

(2) 구원은 위로 부터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원어적 의미입니다.

아노덴입니다. 위로부터 즉 하나님에게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로 새롭게 라는 뜻이있습니다.

처음 출생은 육신적 부모에게서 태어나 아담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자체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저질러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타락한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죄를 저지르는 죄인이 된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5:17-21)

 

(3) 성령께서 바람같이 역사하심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바람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수는 있습니다.

바람은 힘이있습니다.

바람은 어떻게 역사할지 모릅니다.

성령님은 자신의 주권을 가지시고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십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영혼에 역사하셔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십니다.

인간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자세히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알수가 있습니다. 느낄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 같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거듭났다고 그 시각을 알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마 분명한 마음의 변화가 있습니다.

설교말씀을 듣는 가운데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면서 믿음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는 그 당시 깨달을수가 있고 나중에 자신의 변화를 깨달을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영이시므로 예수님이 믿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4:12) 

(6:17)

(8:1-2) 

(1:18) 

(15:26)

 

(4) 구원은 주님이 위로 들리심으로 주십니다.

들림은 모세가 뱀을 들은 것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원망을 하다가 모든 백성들이 뱀에게 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처다보는 자들마다 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쉬운 방편이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순종할 때 구원을 받게 된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온 인간들이 마귀에게 물려서 죄의 독이 영혼에 퍼져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해독은 단순히 장대에 달린 뱀을 쳐다보면 사는 것입니다. 단순히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회개하고 믿을 때 구원을 받게 되고 그의 흘리신 십자기의 피로 죄사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가서 주님이 하늘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21:4-9) 

(1:7) 

(벧전 1:18-19) 

(요일 1:7)

(9:22)

(4:12) 

(53:5-6)


(5)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6:23)  

(요일 5:11-12)

 

(6) 구원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17:20-21)

하나님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악령이 떠나가고 성령께서 임하시므로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12:28)

 

(2:14-15)

 

(요일 3:8)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우셨습니다. 자신의 십자가와 순종과 피와 성령과 말씀으로 세우셨습니다.

 

(16:18-19)

 

하나님 나라는 바로 교회요 결국 새하늘 새땅으로 완성됩니다.

 

(7) 구원은 오직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얻을수 있습니다.

(3:13)

 

(4:12)

 

(14:6)

 

(8)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3:6)

 

아무리 육신적으로 노력하고 수련해도 인간은 변할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죽을수 밖에서 없고 죄를 벗어버리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태어난 자들만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 볼수가 있습니다.

 

(9) 구원은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는것이요 나의 인생의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20:27-29)

 

(10:9-10)

 

(2:21)

 

(10) 구원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는것입니다.

(1:12)

 

(11)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됩니다.

(2:8-9)

(1:3-14)

 

(12) 구원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17:1-3)

 

(13) 구원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21:1-4)

 

(14) 구원은 예수님이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2:20)

 

(15) 구원은 인간의 모든 문제에서 구원을 얻음을 의미합니다.

구원이 왜 필요합니까? 이미 말씀드린대로 너무나 비참하고 무섭고 두려운 상태가 바로 구원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특별히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즉 사망과 마귀와 죄와 지옥의 문제등에서 구원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26:18)

(5:24)

 

(1:13-16)

(11:25-26)

 

(16) 구원받은 사람의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단지 죄사함을 얻은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소극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적극적인 면 즉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잃어 버렸던 보든 축복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기쁨과 능력과새로운 소망과 지혜와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8:15)

(14:13-14) 

(14:26-27) 

(4:13)  

(16:17-18) 

(10:19) 

(9:23)  

(1:3-5)

(8:28)

(고전 10:13)  

(고후 4:16-18)

 

구원받은 자의 상태가 얼마나 복된것인지를 안다면 우리는 하루에 수백번이라도 감사하며 살게 될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살게 될것입니다.

 

3. 구원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살전 5:16-18) 

(3:15-17)  

(136:1-3)  

(50:14-15)

 

(2)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직 거룩하신 주님을 바라 봄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고후 3:16-18)

(12:10-11) 

(12:14) 

(벧전 1:13-19) 

(4:22-24)

 

(5:26-27)

 

(살전 3:13, 개역)

(살전 4:3)

 

(살전 3:13)

 

(3) 구원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구원을 누린다는 말은 바로 내안에 계신 주님을 누리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모든 것이 되어주십니다.

 

지혜가 되어주시고 능력이 되어주시며 기쁨이 되십니다.

주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사 내안에 함께 거하고 계십니다.

많은 경우 믿음이 없어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만나는 일에 실패하기 때문에 믿음 생활에 실패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만큰 나를 잘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능히 불가능한 모든 것도 해결해 주실분은 이 세상에 없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주로 우상숭배, 그리고 다른 나라들을 의지하는 것 나가서 그 결과로 모든 부도덕한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의지하며 주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12:1-3)

 

(3:1)

 

(살전 5:16-18)

(7:7)

 

(12:6)

 

(40:27-31)

(2:18)

 

(4)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1:6)

 

(살전 1:4-5)

 

(고후 1:22)

 

(딤후 1:12)

(8:38-39)

 

(5)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16:15-20)

 

(6)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2:12-18)

 

이 말씀은 구원을 받으면 영적인 생활의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기 때문에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동적으로 저절로 신앙의 발전을 이룰수 없습니다. 퇴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6:18)

 

(10:27)

(6:6-10) 

(딤전 6:11-12) 

(14:9-12)

 

(7) 이제 남은 삶을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고후 5:14-15) 

(벧전 4:1-3) 

(14:7-8) 

(고전 10:31)

(딤후 4:7-8) 

(25:19-21)

 

(8) 주님이 주시는 마음 즉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22:37-40)  

(고전 13:4-7) 

(요일 4:7-11)

 

(9)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5:16) 

(딤전 6:17-19)

 

(10) 인격의 변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5:22-24)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셨습니까?

얼마나 큰 구원인지 알고 계십니까?

어디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구원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나는 구원을 누리고 있습니까?

나는 구원을 받은 후 어떻게 달라진것입니까?

감사가 있습니까?

기쁨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가 나온 세상만 바라보며 한숨만 쉬는 것은 아닙니까?

 

구원은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구원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 다시오시는 그날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도, 구원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다시한번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내안에 와 계신 주님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