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예수님을 기다린 시므온과 안나>

마라나타!!! 2014. 12. 31. 09:09

                                                 <메시야를 기다린 시므온과 안나>

(눅 2:22-40) [[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39]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성탄절이 끝나고 이제 올해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기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시므온과 안나 두 선지자들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고 성령님의 계시로 시므온은 아기 예수그를 알아 보았고 기뻐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기 예수님이 아니라 영광과 권능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시므온과 안나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시인하는 비상한 종말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시므온과 안나가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인내와 경건의 삶의 끝에서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끝에도 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립니다. 물론 지금 성령님과 말씀으로 내안에 계시지만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합니다. 따로 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과 권능의 모습을 들어내실 때 우리들의 감격과 기쁨을 최고의 경지에 다다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오실 때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 감격의 눈물로 주님을 만나 뵙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나심 예수님

(1) 결례의 날에 가셨습니다.

결례의 날은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부정하게 됨으로 그 기간안에 하나님께 보이고 제사를 드리게 하신것입니다. 레위기 12장의 말씀입니다. 결례의 날 은 남자아기를 낳으면 7일동안 부정하였고 40일이 지나야 성소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를 낳으며 80일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생후 8일에 할례를 받게 하고 40일이 지난 후에 제사를 드리러갔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레 12:1-5)


아이를 낳는 것이 왜 부정하게 됩니까?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물론 산모의 몸의 산혈이 깨끗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죄인으로써 또 하나의 죄인을 이 세상에 퍼트리는 일이 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을 다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성령님의 도우심과 주님의 심장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가신것은 여러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제 재림하셔서 예루살렘에 천년왕국의 보좌를 세우시고 온세상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 부활. 성령강림. 재림 모두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사건들입니다.

결국 우리는 새예루살렘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것입니다.

(사 25:6-8) 

(슥 14:16-17)

(계 21:1-4)


(3) 아기를 주께 드리고

하나님은 애굽에서 장자를 치실 때 이스라엘 집안에서는 장자를 죽이지 아니하셨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하나님의 것으로 인식되었고 장자들을 지키려면 그 값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민 3:11-13)


우리들도 주님의 피값을 주고 사신 바된 주님의 소유입니다.

(고전 6:19-21)

(롬 14:7-8)


(4) 제사 드리며

예루살렘은 베들레헴에서 5마일정도 떨어졌기 때문에 그곳까지의 여행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둘기로 제사를 드린것은 가난하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정결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죄인의 죄를 짊어지셔야 했기 때문이요 모든 율법을 지키심으로 죄인중의 하나와 같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도 역시 정결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산제사를드려야 합니다.

(롬 12:1-2) 

예수님이 태어나셔서 처음 가신 곳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항상 예루살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구속사업을 완성하시며 그곳에 부활하시고 승리하실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배반과 조롱과 채찍과 십자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장 서서 가셨습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사랑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은 천년왕국의 보좌를 그곳에 세우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실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천년왕국을 세우시며 새하늘 새땅 예루살렘에 이르기 까지 참아내고 승리하며 끝까지 충성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2. 메시야를 기다린 시므온

(1) 의롭고 경건하였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안에서 살아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창조약이 깨어졌지만 하나님은 계속하여 노아언약 시내산 율법언약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까지 계속하여 자기백성과의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 관계를 계속해 오셨습니다. 바벨론을 통하여 징계하시기도 하셨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매였습니다.

(히 12:5-8)

(렘 31:31-33)

그러나 이스라엘은 제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율법과 제사는 형식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관계는 바로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백성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의롭다는 것은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아니라 완전하지 않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이어가는 상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언약을 말씀하시면서 성령으로 마음에 말씀을 기록하여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음성을 들으며 의롭게 살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그 음성을 듣고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말세에는 기계적인 기복신앙을 버리고 진정한 살아계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다려야 함을 알수가 있습니다.

(히 10:15-20)

(히 8:10-13)

(신 30:6)

(요 21:15, 고전 8:3)


그리고 경건하다는 것은 그런 영적 마음의 상태가 겉으로 나타나서 바르게 살고 거룩하게 살며 항상 기도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던 시므온의 신앙 처럼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들도 의롭고 경건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벧전 1:15-16)

(벧후 3:11-13)


점 없고 흠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살전 5:23) 

(살전 3:11-13)


(2)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림

이스라엘의 위로는 바로 참된 안식의 날이요 원수를 갚아주신느 날이며 더 이상 원수들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날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셔야 결국에 나타나게 될것입니다.

(계 7:13-17)

(사 66:10-14)

한 없는 위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3) 성령이 그위에 계심

이런 육신적으로 힘든 어려운 삶이지만 마음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능히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종말시대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의 능력과 권세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몸은 이미 성령의 전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매일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아 성령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확고해지고 담대해지며 말세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엡 5:16-18)

성령충만의 비결은 사모하며 기도하는 것이요 회개에 힘쓰는것이요 순종이요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도행전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눅 11:13) 

(욜 2:28-32)


(4) 성령의 계시를 받음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기 위하여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시므온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인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계 2:7)

(행 13:1-3) 


(5)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감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성전에 들어갈려는 소원과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즉각 순종하여 주님을 만나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순간의 감동에 민감하여야 합니다. 항상 주님께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잠 8:34-35) 

(마 10:20)


(6)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깨어 기도할 때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다리는 자들은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지금 성령으로 믿음으로 보고 만날 수 있습니다.

(살전 5:1-10) 

(벧전 1:8-9)


(7) 예수님을 안았습니다.

그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만날 때 그 감격은 실로 놀라운 것일것입니다.

주님을 감격으로 만나 뵙기 위하여 오늘 충성을 다하며 살아계신 주님과 항상 사랑과 믿음의 관계를 누려야 합니다.

그 때에는 우리가 주님의 품안에 안기워 세상 모든짐을 내려 놓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기다립니다.

(계 19:7-9)


3. 시므온의 찬양과 예언

시므온은 예수님을 안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찬양을 하며 예언의 말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 찬송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님을 뵈올때 자동적으로 기쁘고 감사하여 찬송이 나옵니다.

(시 150:6) 

(계 7:9-12)

주님을 만나면, 주님의 아름다우심과 영광과 권능과 사랑의 향기 때문에 주님을 기뻐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자신을 부어주셔서 우리는 그의 위대하심에 추하여 주님을 찬양할것입니다.


(2)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오직 우리는 천국에서만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늘 안팍으로 싸움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까지 우리들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딤후 4:7-8) 


(3) 내눈이 주의 구원을 보는도다.

주님은 온세상의 구원자

심판과 구원으로 오실 예수님

(계 22:3-4)


(4) 만민앞에 예비하신것

창세전에 이미 어떻게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실것인지 그 계획을 예비하신것입니다.

역사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실천하신것입니다.

(창 3:15) 

(사 53:5-6)

(엡 1:1-3) 


(5) 이방을 비추는 빛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안에 같혀 버린 이세상입니다.

무지함으로 캄캄하고 죄악으로 캄캄하고 죽음이 있기에 절망으로 캄캄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

(요 8:12)

(마 5:14)

(행 26:18)

(골 1:13-16)


(6)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

온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이 자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높이고 사랑하고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상것은 자랑할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렘 9:23-24)


(7) 많은 사람의 폐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받는 표적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됩니다.

천국과 지옥이 결정됩니다.

(막 16:15-20)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느냐에 따라서 그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마 16:16-17)


(8)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마리아는 그 마음에 주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말미암아 큰 날카로운 고통을 당하였을것입니다.

어느 면에서 마리아는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아픔을 경험한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사랑하던 모든 것들을 주님께 내어 드릴때 아픔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또 다른 위로를 보여주셔서 견디게 하십니다.

동시에 이 칼 같은 아픔은 주님의 슬픔과 고통을 자신이 직접 느끼는 고통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맛 보았습니다. 육신적인 어머니로써의 고통도 있었겠지만 온 세상의 죄악의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는 메시야로써의 예수님의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이 두가지가 합하여 칼로 찌르는듯한 고통을 체험하였을것입니다.


우리들도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동감하여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고통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심장을 헤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을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한편 주님은 우리들의 모든 고통을 친히 느끼시고 아파하시는 분이십니다.

(히 4:15-16)


(9)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 낼 것이다.

주님은 우리들의 중심을 보십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모든 것이 다 들어납니다.

동기와 외식과 모든 가면이 벗어집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고후 5:10, 개역)

(딤전 5:24, 개역)

(딤전 5:25, 개역)

(히 4:13, 개역) 

(벧후 3:10, 개역) 

바리새인들은 거룩하다고 생각하였고 사람들도 그렇게 평가하였지만 주님의 눈은 그 심장의 외식과 교만과 독선의 모든 잘못된것을 보셨습니다.

(마 23:21-23)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시므온은 예수님을 알아 보았고 찬양과 예언을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오직 주님으로 충만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주님의 마음으로 살수 있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고 사랑하시는지를 먼저 묵상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볼때 그 마음을 부어주십니다. 거룩한 마음 사랑과 능력을 부어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이기게 하십니다.

주님으로 승리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예수님을 기다린 안나.

성전에는 아기 예수님 메시야를 기다리던 또 하나의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안나였습니다.


(1) 과부였습니다.

과부는 성경에서 힘없고 가난한 자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과부는 아무 의지할곳이 없는 자입니다. 어느면에서 우리는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과부들입니다. 이세상에는 아무도 우리가 의지할곳이 없습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항상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할분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의지하고 사귀면서 살아야 합니다.

(눅 18:1-8)

(대하 20:12)

(고후 1:9)


(2) 84년을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84년을 수절하면서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평생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님을 기다릴때 무한한 인내가 필요함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길을 가다가 지치거나 낙심하여 포기하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안일함에 빠지거나 세상쾌락에 빠져도 않됩니다. 오직 주님 얼굴 뵈올그 감격의 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능력으로 새롭게 되어 주님을 바라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벧후 3:8-9)

(약 5:7-11)

(사 40:27-31)


(3)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씀은 이 종말의 시대에는 반드시 교회중심의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면서 마음을 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생각들 때문입니다. 교만입니다.

말씀중심, 교회중심, 예수님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왜 귀한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자의 행복과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행 1:4-5) 

(엡 1:20-23)

(마 16:16-18) 


(4) 주야로 금식하며 섬겼습니다.

이것은 세상 쾌락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주님께 집중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며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종말의 시대에 우리는 세상적인 모든 미련과 욕심을 던져 버리고 오진 주님을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세상 사랑과 주님 사랑은 함께 갈수가 없습니다.

(요일 2:15-17) 

(갈 5:24)


(5)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야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종말의 시대는 주님을 체험하고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급박한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듣든지 말든지 때를 얻든지 말든지 전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행 1:8) 

(고전 1:21) 

(딤후 4:1-2) 


(6) 갈릴리에 가셔서 사셨습니다.

이것은 예언성취를 위한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사야서 9장에 보면 메시야가 아이로 태어나서 어두움을 물리치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 할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사 9:1-7) 

(마 28:6-10)

우리는 여기서 성경말씀은 기록된 대로 반드시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여러 가지 징조들이 나타날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때를 분별하고 주님을 사모하며 깨어기도 하며 이웃을 일깨우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성경말씀의 예언들이 이미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더욱 경건에 힘쓰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요 14:1-3)

(눅 18:8) 

(계 10:7) 

(단 9:1-3) 

(눅 21:29-3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나와 시므온은 종말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 어떠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주님을 항상 바라보고 의지하며 사귀어 살아야 합니다.

그 주시는 감동과 사랑과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의롭고 경건한 삶입니다.

그것을 위하여는 기도와 말씀은 필수입니다.


무엇 보다도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과 예수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만날 소망가운데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기웃거리지 말고 오직 세상 미련을 버리고 주님을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과부처럼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시므온 처럼 성령충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의 얼굴을 친히 뵙게 될것입니다.

이 확신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달려갈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고 주시는 말씀과 능력과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며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말씀과을 충성을 다하자가 다시오실 주님을 감격가운데 만나 뵙는 복된 우리들이 다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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