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예레미야 애가의 핵심 메세지>

마라나타!!! 2014. 8. 28. 08:20

                                 <예레미야 애가의 핵심 메세지>

(애 3:19-26)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애가는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의 멸망을 직접 목도한 예레미야가 쓴 슬픔의 노래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슬픔의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탄식을 하면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는 간구입니다.


애가는 5장인데 각장이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절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 알파벳은 22개입니다. 따라서 12. 4-5장은 22개 절이고 3장은 세배인 66절로 되어 있습니다.


유다 민족은 예루살렘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절대로 멸망할수 없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이방신도 함께 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자신들을 버리지 아니하실것이라는 이상한 이중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예레미야의 눈물의 호소도 소용없었고 그 전한 말씀대로 예루살렘에 멸망이 온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이 불타 버리고 없어진것은 그야말로 큰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큰 신학적 질문이 강하게 일어 났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셨는 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방신 바벨론의 신들보다 약하신것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길은 남아 있는 가? 어떻게 돌아갈것인가 등등입니다.

애가를 통하여 심판과 멸망을 달려가는 이 세상의 슬픔과 비극을 깨들으며 동시에 주님의 아픈 마음을 깨닫는 복된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애가의 내용입니다.

제 1장 . 제 1장은 이제 막 살륙과 파괴의 광기가 휩쓸고 지나가 아직도 처처에서 검은 연기와 거민들의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예루살렘 폐허의 현장에서 쓴 첫 노래로서 무엇보다 먼저 예루살렘 함락의 참상을 목도하는 선민의 걷잡을 수 없는 고뇌 자체를 직설적으로 표출하는데 치중한다. 그리하여 다섯 노래들 중에서도 가장 급박하고도 비감어린 노래라 하겠다.

제 2장 : 두번째 노래에 이르러 저자는 이제 처참한 패망을 몰고 온 원인인 자신들의 범죄에 눈을 돌린다. 이를 반영하여 이 두번째 노래는 예루살렘의 패망의 참상을 묘사할 때에도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심판의 의지를 우선적으로 부각시킨다. 그 후에 시인은 회개를 촉구하고 또 여호와께서 이 회개를 들어 주실것을 간구하고 있다. 즉 제 2장은 패망의 원인이 된 선민 이스라엘의 범죄의 관점에서, 그 결과로서의 예루살렘의 패망을 그리고 그 극복으로서의 회개와 구원을 노래하고 있다.


제3장 '애가서의 가운데 위치하는 동시에 분량상으로도 다른 시들의 3배에 해당하는 이제 3장은 그 내용면에서도 예루살렘의 패망을 노래하는 애가서의 여타 시들의 관점과 주제 모두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즉 이 제 3장에는 예루살렘의 패망에 즈음한 선민의 비탄, 과거 자신들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책망과 새로운 회개의 권면. 조속한 회복과 구원을 바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간구,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에 근거한 회복의 소망과 확신 등이 한 편에 모두 망라되어 있다.


제4장 . 애가서의 네번째 노래는 다시 한번 눈을 과거로 돌려서 얼마전 예루살렘 함락 당시의 그 공포와 기근의 처절한 고통을 다시 떠올리는 동시에 이런 패망을 몰고 온 가장 큰 책임자인 종교 지도자들을 집중적으로 책망한다. 나아가 이들에게 편승한 것은 물론 하나님이 아니라 주변 강대국을 믿고 의지하였던 선민 대중의 비참한 말로도 지적한다.

그러나 제 4장은 어 차피 선민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 의 징 계 심 판이 시 행 된 마당에 그저 과거 의 책임 추궁으로 끝맺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의 회복과 구원에의 소망으로 비약함으로써 끝맺는다.

제 1장이 주로 패망 직후의 참담한 상황을 직설적으로 노래했다면 제 4장은 패망 당시의 그 처참한 상황을 돌이켜 보며 그 원인과 이의 극복까지 노래했다 하겠다.


제5장 : 앞의 시들도 물론 회개를 통한 예루살렘 패망의 극복을 노래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의 패망의 비탄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이 마지막 노래는 처음부터 회개로 시작하여 구원의 간구로 끝맺는다. 이는 여호와 안에서만 그리고 여호와 안에서는 분명히 회복과 구원이 가능함을 전제한 것인 동시에 이제 오욕으로 점철된 쓰라린 과거를 일소하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새 역사의 창출을 위하여 재출발할 것을 간접적으로 촉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실로 예루살렘 패망에 즈음한 애가들이 하나님께 회복과 구원을 노래하는 것으로 마감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어떤 절망과 위기에 처하더라도 끝내 과거의 패배에 머물 것이 아니라 오직 영원한 종말론적 숭리와 구원이 있는 미래를 지향할 것을 강렬하게 시사하고 있다 하겠다(그랜드 주석의 내용입니다)


[1]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운명(1:1-22)

1.예루살렘의 참극(1:1-11)

1)심판의 내용(1:1-7).

2)심판의 이유(1:8-11).

2. 고통 당하는 예루살렘 (1:12-22)


[2] 예루살렘의 멸망(2:1-22)

3.성소와 성곽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2:1-10)

4.심판을 목격한 자의 애가(2:11-19)

5.선지자의 기도(2:20-22)


[3] 개인적인 애가와 기도(3:1-66)

6.예레미야의 고난(3:1-18)

7.예레미야의 희망(3:19-42)

8.예레미야의 기도(3:43-68)


[4] 고난 당하는 시온의 백성들(4:1-22)

9. 슬픔에 잠긴 시온(4:1-11)

10.고난의 원인(4:12-20)

11.에돔을 향한 경고(4:21-22)


[5] 여호와의 자비를 구하는 시온의 간구(5:1-22)

12.고백(5:1-18)

13.기원(5:19-22)


이와같이 애가는 슬픔의 노래이며 탄식과 회개와 소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회복을 간구하는 시요 기도입니다.


상상할수도 없었던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무너지고 불타 버렸다는 것은 믿기어려운 형실이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도 원수나라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다는 것은 말할수 없는 수치요 절망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드디어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고 우리를 아주 버리셨다는 두려움도 엄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인도하심을 받아 주님과 사귀어 살아야 합니다.


2. 예레미야 애가의 주제들

우리는 이 짧은 슬픔의 노래들 가운데서 들어나고 있는 몇가지 주제를 찾아 볼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어도 당장 무슨 재앙이 내려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그냥 많은 죄들을 넘어가시고 봐 주신다는 안일한 생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들의 죄를 그토록 엄중하게 심판하셨다면 이방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은 말할것도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잘못된 생각은 이 세상에 악울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어린 아이들이 죽는 등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생가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하나님은 멀리서 보고만 계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들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판단 심판하십니다. 인간들은 모든 사실을 모르고 한편 말만 듣고 잘못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우리들의 중심을 알고 계십니다. 이간들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공평하게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심판을 당하여 멸망한것도 갈국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 된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무한 것으로 참으시지는 않습니다. 이미 이세상의 심판의 날이 정하여졌습니다. 하나님은 조를 심파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가 고백하고 회개하면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그 죄악의 성품을 고치시기 위하여 징계를 행하십니다. 왜냐 하면 우리 인간들은 매를 맞지 않으면 체험이 되지않고 고쳐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심판과 회복이지만 예수님이 없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입니다.

(애 2:7-8)

(계 18:1-3)

(살후 1:6-9)

(계 1:7)

(계 16:17-21)

(히 12:8-13)

계시록 18장에는 이 세상의 심판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19장에는 그 심판이 의로우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계 19:1-3)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일로 인하여 억울한 일도 많지만 결국 주님께서 한없는 크신 위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때 가서 모든 것이 깨달아지고 이해되어질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성경의 진리와 오빅 예수님 만이 우리들의 구속자가 되시며 결국 다시 오실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를 아시고 나와 함께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계 7:13-17)

(갈 2:20)


공의의 하나님 이시기에 우리는 바르게 살고 거룩한 삶을 이룩해야 합니다.


(2) 인간 죄악의 끊질김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하고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땅에 들어 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 없이 반역 원망을 일삼았으며 우상숭배를 행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없이 경고를 받고 재난을 당하였지만 그들의 우상숭배와 반역의 성품을 고쳐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왕정 시대에도 다윗 왕 때만 잠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지만 그후로 계속하여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종교개혁도 있었지만 주로 왕의 명령아래 행하여진 것이기에 나라전체를 바꾸지는 못하였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고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물을 태우는 분명한 증거에도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들은 할수 없는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고칠수 없는 죽어 지옥가는 치명적인 죄의 질병에 걸린것입니다.


죄악을 치료할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피와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심 밖에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이 인간들의 소망입니다.

(요 1:12)

(요 3:5)

(요 3:16)

(엡 2:8-9)

(갈 1:4-5)

(롬 3:23-24)

(롬 6:23)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우리들입니다.

항상 감사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징계받을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성전마저 불타 바렸을때 백성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이 이제는 완전히 이스라엘을 버리셧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애 2:1-4)


그러나 우리는 징계를 받고 재난을 경험하여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번 택하신 백성들을 절대로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시 30:4-5)

(시 42:5)

(시 63:1-3)

(시 142:1-4)

(시 61:1-3)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시며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나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 23:4)

(시 18:1-3)

(요 10:28-29)

(히 12:5)

(갈 6:9)

(고후 1:9)

(욥 1:21-22)

(애 3:19-23)


(4)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장을 한번 느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불타는 사랑과 긍휼하심과 불쌍히 여기시는 느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절대로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 이시기에 질투고 극심하였습니다.

(애 3:19-26)


하나님은 이간들이 고난당함을 절대로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애 3:32-33)

(딤전 2:4-5)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 4:7-11)

(시 103:8-14)


(5)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절망의 때 낙심의 때에 우리를 도울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웃이나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의지합니다.

용서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애 3:25-26)

(애 3:50)

(시 121:1-4)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 130:1-4)


오직 예수님 밖에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행 4:12)


(6) 형식적인 예배를 그쳐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버리고 만것은 그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여러 가지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 1:11-13)

(렘 7:1-7)

(렘 6:13-15)

(요 4:22-24)


(7)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애가 4장에서는 지도자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게 맡은 자는 더 큰 책임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 4:11-16)


(8) 종교타락은 나라를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나라들 하나님이 없는 나라들 하나님을 배반하여 타락한 나라들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 나라와 제국이 멸망 당하는 것은 경제 약하여도 아니고 군사력이 약하여서도 아닙니다.


하나님 신앙이 무너지고 따라서 도덕이 무너지며 하나님을 떠날 때 그 나라는 반드시 멸망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잘섬겼던 다윗 솔로몬시대에는 온 세상을 제패하고 조공을 받으며 누렸습니다.


그러나 타락하고 우상을 섬기면서부터 대적들이 들고 일어나고 도덕이 타락하며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삼하 8:6)

(삼하 8:14)

(왕상 11:9)

(왕상 11:14)

(왕상 11:23)


이 세상에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건강 자녀 폭력 문제 등등 많은 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 법이 필요하고 결찰관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책을 연구하고 경찰을 많이 두어도 결코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돌아가 은혜를 구할 때 구원하여 주십니다. 치유가 임합니다.

(대하 7:14)

(사 57:15)

하나님은 국가의 흥망성쇠 나가서 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우선입니다.


(9)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재앙과 아픔은 세상 죄악의 슬픔과 고난이요 그것은 십자가에서 이 세상의 죄악의 짐을 대신 지신 주님이 느끼셨던 고통입니다.

예레미야도 민족의 슬픔을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애 3:1-6)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 세상의 죄악의 슬픔과 고통과 비참함을 친히 체험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의 짐이 주님께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요 1:29)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의 짐을 대신지시고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으시는 극단의 아픔을 맛보신 것입니다.


이 길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친히 십자가를 담당하시고 피흘리며 참아내시며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마 27:45-46)

(갈 1:4-5)

(고후 5:14-15)

우리들도 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고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10)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때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레미야는 애가에서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개의 첫단계는 물론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는 것입니다.

(애 3:40-43)

(애 4:13)

(애 5:16-18)

(호 14:1-8)

(호 5:15-6:3)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긍휼하심과 용서와 회복을 간구해야 합니다.

(암 4:11-13)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미 7:7-9)

(미 7:18-20)

(사 55:6-7)

고난의 때에 원망 낙심 포기가 아니라 오직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가장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11)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전을 지으실 때 이미 경고하셨고 예레미야를 동하여도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수없이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에도 벌써 그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기 자식까지 잡아 먹어야 하는 극한 상황이 올것을 하나님은 미리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새겨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신 28:53-55)

(신 28:15)

(애 2:20)

(애 4:9-10)

(시 119:9-11)

(왕상 9:5-9)

(단 9:1-2)

(시 1:1-3)

(딤후 3:16-17)


(12) 긍휼을 간구해야 합니다.

회개기도의 진정함을 보여주는 한편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죄를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지하여 간구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공로나 선함이나 어떤 의로움도 의지하여서 않됩니다.

다니엘이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느헤미야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여 간구하였습니다.

에스라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여 구하였습니다.

(단 9:17-19)

(느 1:2-10)

(에스라 9:5-10)


(13) 이 세상은 비극적인 세상이며 오직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소망과 사랑과 기쁨과 생명을 발견할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비극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비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세상에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일어나 비참하게 될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하여지고 믿는 자의 숫자는 적어질 것입니다. 종말의 징조들이 일어날것이요 난리에 난리가 일어날것입니다.


결국 주님 재림하시고 세상은 무섭고 슬프고 비참한 상태가 될것입니다.

그러나 해산의 고통이 지나면 아이를 나은 그 기쁨이 임하여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리듯이 주님이 다시오시면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기쁨과 사랑가운데 살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비관적인 동시에 낙관적인것입니다.

주님 재림하시고 세상 심판후에 새하늘 새땅이 이루어집니다.

(마 24:4-14)

(딤후 3:1-5)

(요 16:20-22)

(살전 5:3-10)

(계 6:12-17)

(계 21:3-4)


(14) 지금도 주님은 이 세상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시며 탄식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무너져 버린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두 번 반복하여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586년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70년만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시 돌아왔고 성전을 건축하고 다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두 번째는 AD 70년에 로마에 의하여 멸망 당하였습니다.

다시 백성들도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때 약 110만명의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지키러 왔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역사가 요세프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밖은 죄악의 값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을 선언하며 다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온것은 약속의 땅에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짖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다시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질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이성전을 우리는 환난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 성전에 적그리스도가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할것이며 결국은


이 성전은 다시 아마겟돈 전쟁으로 불타게 될것입니다.

아마겟돈 마지막에 주님은 감람산에 재림하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세상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멸망 사건들은 바로 세상 멸망의 예표가 되며 공의의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뿐 아니라 이 세상도 이제 노아의 때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아져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기에 주님은 이것을 바라 보시고 울고 계십니다.


황폐된 교회들을 보시면서 울고계십니다.

나의 죄악과 고통을 인하여 지금도 울고 계십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삼장으로 아파하고 전도의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비극적이지만 예수그리스도가 계시기에 그것을 이기고 승리하며 소망가운데 살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슬픔과 아픔과 죄악과 마귀를 이길 능력을 주시고 기쁨과 평강을 주시며 믿음으로 살게 하십니다.

(롬 14:17)

(요 16:33)

(요일 5:4)

(빌 4:4)

(살전 5:16-18)

(요 14:26-27)

(요 15:10-11)


(15) 전과 비교하여 하는 탄식입니다.

이전 상태와 지금의 비참함을 비교하여 상태를 묘사함으로 그 장면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ㄱ)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적막함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애 1:1)


(ㄴ)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음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애 1:1)


(ㄷ)열방 중에 공주되었던 자가 조공드리는 자가 됨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애 1:1)


(ㄹ)사랑하던 자 중이 위로하는 자가 없음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애 1:2)


(ㅁ)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됨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애 1:2)


(ㅂ)백성들이 사로잡혀 감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애 1:3)


(ㅅ) 백성들이 평강을 얻지 못함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애 1:3)


(o) 백성들이 헙착한 곳에 미치게 됨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애 1:3)


(ㅈ)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애 1:4)


(ㅊ)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애 1:4)


(ㅋ)모든 성문이 황적함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애 1:4)


(ㅌ) 제사장들이 탄식함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애 1:4)


(ㅍ) 처녀들이 근심함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애 1:4)


(ㅎ) 곤고를 받음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애 1:4)


(ㄲ) 대적이 머리가 됨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애 1:5)


(ㄸ) 원수가 형통함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애 1:5)


(ㅃ)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힘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애 1:5)


(ㅆ)모든 영광이 떠나감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애 1:6)


(ㅉ) 그 목백(牧伯)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음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애 1:6)

(그랜드 주석 참조)


3. 교훈들입니다.

이미 살펴 본대로 우리는 애가로 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울수가 있습니다.


(1)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바참한 광경을 보았지만 사실은 지금도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고통과 폭력과 살인이 저질러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는 아름다움도 많이 남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신음가운데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제대로 볼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고통을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슬픔을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절망을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허망함을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더러운 죄악을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악한 죄악을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당할 심판과 멸망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시고 이루실 새하늘 새 땅을 보아야 합니다.

(롬 8:18-26)

(벧후 3:11-13)

(고후 1:3-6)


(2)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가 느낀 아픔은 곧 성령께서 주신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알아 줄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이웃의 사정을 알아줄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차갑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면 변하여 새사람 됩니다.


새생명은 새 마음을 새마음은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항상 바라보며 그 주시는 마음으로 이웃을 볼때 원수도 사랑할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해 주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고전 2:16)

(빌 2:5)

(마 15:19)

(잠 4:23)

(요일 3:18)

(요일 4:10-11)

(요일 5:1)

(딤전 6:17-19)

(엡 4:32, 개역)

(벧전 3:8, 개역)


주님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는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롬 5:5)

(요 16:13-14)

(고후 5:14-15)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풍파가 많은 세상입니다.

타락한 세상이요 마귀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항상 주님의 마음으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잇지만 우리 성도들은 구원과 해방을 받았습니다. 신분과 소속이 바꾸어 졌습니다. 타락한 이 세상 심판과 멸망으로 달려가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항상 거룩하신 주님 전능의 주님, 사랑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타락했던 노아시대에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인정받았습니다(창 6:9)

(롬 12:1-2)

(계 18:4)

(벧전 1:15-17)

(벧전 4: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의 멸망당한 참상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예레미야가 체험하였던 충격과 슬픔을 느껴 보셨습니까?

그 울부짖는 소리와 찢어 지는 비명 소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고 피가 뿌려져 잇고 불타고 무너져 버린 집들 상황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왜 이런 비극이 온것입니까?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그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그리고 이 세상은 여러 가지 죄악을 인하여 심판과 멸망으로 달려 가고 있음을 보고 계십니까?


이 세상은 예루살렘의 멸망 보다 더욱 참혹한 곳이 될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과 멸망 후에 진정한 평화가 옵니다.

예수그리스도 만이 이 세상이 소망입니다.

이 고난의 세상 탄식의 세상에서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이웃을 사랑하여 급박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삼장으로 세상을 바라 보면서 사랑과 긍휼로 세상을 살아가며 이웃을 살리는 생명과 소망의 주님을 전하는 복된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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