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도마의 의심과 확신>(요 20:24-31)

마라나타!!! 2011. 5. 5. 00:15

                                     <도마의 의심과 확신>
(요 20:24-31) 『[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설교말씀 음성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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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부활후 여드레가 지났을 때에 일어 난 일입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확신을 주신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도마가 그런 의심에 빠졌는지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모였을 때 도마가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주님이 나타나셔서 확신을 주시면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잘 살펴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도마는 제자들이 주님이 나타나셨다는 증언을 믿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손을 만져 보고 옆구리 상처를 만져 보고나서야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30절 31절도 요한 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후 2천년이 지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령시대요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믿는 시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확신, 승리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입니다.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확신을 주신 주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이 자리에 나타나셔서 믿음주시고 확신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입니다.
도마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도마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였고 주님께 꾸지람을 들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막 16:11-14)
그런데 도마는 한발 더나가서 주님을 만져 보지 않고는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아주 결단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1) 도마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실 의심하는 도마라고 하여 도마의 신앙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긍정적인 면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도마는 어떤 믿음의 사람이었을까요?(요 11:16,요 14:4-5,막 14:50)
***도마는 자기가 믿는 바를 확증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요14:5)
***도마는 예수를 사랑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요11:16)
***도마는 예수 사랑에 동참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요11:16)
***도마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죽음이 기다리는 자리라 할지라도 주와 함께 동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2) 그러면 도마는 왜 의심에 빠졌을까요?
***첫째는 기대에 대한 실망입니다. 그 당시 제자들과 백성들 모두는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런 일을 하실 메시야라고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십자가에 힘없이 죽으심으로 큰 낙심과 실망과 함께 슬픔이 도마 뿐만 아니고 모든 제자들에게 몰려왔고 마음을 어둡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주님이 승천하실 때 까지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절히 바랐던 것을 알수 잇습니다.(행 1:6-8)

 

나의 주님께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고 해서 낙심하고 주님을 떠나거나 의심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나의 기대와 생각 보다 더 높은 곳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도마와 제자들은 주님이 원수나라 로마제국을 심판하실 것을 굳게 믿었고 자신들의 일생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여 영적인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롬 8:32,엡 3:20-21,사 55:8-9,고전 2:9-10)

도마는 자신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에 낙심하고 의심에 빠졌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능력과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끝까지 주님을 붙잡고 승리하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몰랐기 때문에 낙심하였습니다.
도마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주님이 십자가 고난후에 부활승리 하신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눅 24:25-27,눅 24:44-46)

 

그들은 말씀을 잘 몰랐습니다. 특별히 주님에 대한 말씀을 알지 못하였고 자신들의 상황에 비추어 주님을 생각하고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메시야가 오시면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 승리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런 사실을 몰랐기에 낙심하고 의심에 빠졌던 것입니다.(사 53:5-6)

말씀을 분명히 깨닫고  주님을 깊이 알게 됨으로 주님과 분명한 사귐을 갖는 복된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도마는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열명입니다. 유다는 배반하여 자살하였고 도마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잇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주님이 나타나신것입니다. 주님을 만날 기회를 놓친것입니다.

도마가 화장실에 갔다거나 무엇을 사러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이 될 정도라면 그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도마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
입니다. 있어야 할 사람이 그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이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히 10:25)

특별히 주님 다실 오실 때 있어야 할 충성과 사랑과 믿음의 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드리다가 전도 선교하다가 기도하다가 사랑봉사하다가 주님 만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도마는 제자들의 부활증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드레 전에 주님이 홀연히 모인 방가운데 나타나신 사실을 여러 제자들이 증언을 하는 데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증인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특별히 사도들의 증언인 성경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가 말하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딤후 3:14-17)
교회가 말하고 있는 성경말씀과 신앙고백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고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도마는 절대로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만져 보아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도마가 그 말을 할 때에 주님이 그 자리에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다시 나타나셨을 때 주님은 도마가 말한 그대로를 인용하시면서 도마에게 자신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을 바라 보면서 주님의 임재의식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믿음 없는 말을 하지 말고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들으셔도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마 28:20,갈 2:20,엡 3:17,계 2:2-3,마 6:32,시 139:1-4)
항상 주님 앞에서 주님과 사귀어 사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6)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낙심과 의심을 가져 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몰랐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깊이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생명이시며 길이시며 능력이십니다.
주님은 신실하십니다.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들의 일생을 모두 맡겨 버리고 자유함을 누릴수 있습니다.
(요 17:3,호 6:6-7)

주님을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 알 때 우리는 실망하고 낙심과 의심에 빠집니다.(마 16:16,롬 5:8-9,요일 1:3)
주님을 더욱 깊이 알고 사귀어 사는 일에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도마는 의심 많은 도마라기 보다 주님을 사랑한 진정한 제자였습니다.
다만 자신의 기대가 무너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실망하고 낙심하고 의심에 빠졌습니다.

잘못된 기대 때문에 슬픔과 낙심에 빠지고 제자들로부터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믿음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확신가운데 충성과 사랑과, 사명의 자리를 지킬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만져 보지 않고는 못믿겠다고 할 때 주님이 다 듣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임재의식 가운데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주님이 친히 나타나시고 확신을 주셨습니다.
처음 도마없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주님은 이제 도마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확신을 주셨습니다.

(1) 문이 닫혔는데 주님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하신 몸이 이전의 육신의 몸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마음대로 나타나실수도 있고 음식을 잡수실수도 있었습니다. 부활의 몸이요 신령한 몸입니다. 영원한 몸입니다.
(고전 15:51-52,빌 3:20-21,고전 15:42-44)
우리들도 주님처럼 영원한 몸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줄로 믿습니다.
부활의 확신과 소망가운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뵈옵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불안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감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눈에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그때 주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는 분 이십니다.(요 16:33,요 14:26-27)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우리들의 환경과 생각을 초월하는 평강입니다.
(빌 4:6-7,마 11:28,살후 3:16)
주님께 나가서 주님께 마음을 쏟아 놓으면 주님이 평강을 주십니다.
(시 46:1-3)
주님의 십자가와 사랑과 능력과 신실하심이 우리들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3) 도마에게 주님은 네 손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도마가 직접 주님의 손을 만져 보지는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눈 앞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주님이 나타나셨는데 무슨 확인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다른 복음서에 보면 주님은 다른 제자들에게 손과 발의 상처를 보여 주셨습니다.(눅 24:36-40)

 

주님의 몸은 부활의 몸으로 완전히 건강한 몸이었지만 손과 발의 상처만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받으신 상처가 바로 영광의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흔적과 상처가 있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갈 6:17)

여러분 나에게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회개의 흔적, 십자가의 흔적, 헌신과 사랑의 흔적이 있습니까?
우리들도 주님을 위한 영광의 상처가 있으면 그 상처는 영원할것입니다.
(고후 5:14-15,갈 5:24,눅 9:23,롬 14:7-8)

 

(4)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무엇이며 믿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확증입니다.
(히 11:1,롬 10:17)

그런데 믿음이 생기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인데 성령께서 믿어지게 하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으로 들려 올 때 내 마음에 믿음이 창조됩니다.
(엡 6:17,막 9:23,히 12:1-2,히 11:6)

살아계신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믿음을 가진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 고백하였습니다.(마 16:16)
***주 라는 말은 구약적인 표현입니다. 여호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주님 만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나의 주님이시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말은 그냥 믿고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말은 바로 예수님께 항복하고 예수님을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결단이요 고백입니다.
(계 1:5-6,계 5:12,갈 2:20)
주님께 나의 사랑과 충성을 항상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권능의 창조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입니다.
도마는 이 때까지 예수님의 정체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시는 순간에 그 앞에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요 1:1-3,요 14:9)

예수님은 하나님 만이 할수 있는 일을 하셨고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친히 말씀하셨으며 하나님 만이 하실수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 물위를 걸으셨습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죄를 사하시는 권세 죽은자를 살리시는 권세 심판하시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막 5:6-7,요 5:21-22,마 9:6)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며 확신가운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6)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음 복이 있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계셨을 때 눈으로 보았으면 믿었을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도마와 같이 보아야 믿겠다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은 성령시대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우리는 주님을 볼수가 없습니다.
주님 자신은 지금 하나님 보좌에 함께 앉아 계신 동시에 하나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히 7:25,롬 8:34,히 1:3,벧전 3:22)

그러면 지금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성령님을 통하여 만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만나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 현장으로 인도하시고 그 음성을 듣게 하시며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입 니다.
성령님은 내안에 예수생명을 창조하셔서 예수님을 알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예수님과 교통할수 있게 하십니다.
(고전 3:16,엡 3:17,요일 4:13,요 14:16,벧전 1:8)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시오 아들의 영이십니다.(롬 8:9,롬 8:15)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님이 우리안에 계신것과 주님이 내안에 계신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체험하였습니다. 병고침을 받았고 오병이어 떡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뿐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였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바로 지금 같이 성령시대에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일어나고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입니다. 거듭났고 생명이 있습니다.(요 1:12,행 2:38,요 3:5)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 한곳에만 주님이 계셨지만 지금은 그의 영 성령님을 통하여 주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어디에나 말씀이 전해지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듣는 자들의 마음속에서 회개가 일어나고 믿음이 생기며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더 복된 시대입니다. 더 확실한 시대입니다. 더 많은 구원과 종말에 관한 계시들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도마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확신과 믿음을 주셨습니다.
영광의 주님 사랑의 주님의 상처를 보고 주님을 더욱 사랑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령과 말씀과 믿음으로 항상 주님과 교통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이것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30절과 31절은 언 듯 보면 다른 말씀 같지만 오늘 단락에도 연결이 됩니다.
주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지 2천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에게 성경말씀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며 당연한 일입니다.
요한 복음을 기록한 목적 뿐만 아니라 주님의 부활과 도마의 이야기를 기록한 목적도 바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1) 예수님은 성경에 요한 복음에 기록되지 아니한 기적도 많이 행하셨습니다.
성경말씀은 역사적사실을 기록한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증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일일이 다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각 기록한 저자들의 관점에서 필요한것만을 기록한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에 관한 수많은 증거가 있지만 믿음과 영생을 얻기에 충분한만큼만 기록한것입니다.(요 21:24-25)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후손이심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말씀을 이루었다는 말씀이 많이 나오고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씀도 많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주로 유대인들을 위하여 쓰여진 복음서입니다.

그런 반면 마가복음은 로마사람들을 위하여 쓰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는 필요없습니다. 로마사람들은 힘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첫장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능력으로 질병과 귀신들을 내 쫓으시는 것이 나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참된 사람되심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과 과부 아이들과 여인들과 같이 힘없는 자들을 주님이 많이 사랑하신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 복음은 매우 철학적인 면이 있는데 그것은 요한 복음은 주로 헬라인들을 위하여 쓰여진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행적과 기적과 말씀과 십자가와 부활을 기록한 이 4 복음서를 무엇 보다도 귀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직접하신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잘 보여주고 잇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록하고 있고 주님의 성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능력과 사랑과 인격을 알 수 잇기 때문이요 주님을 만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가서 우리는 주님의 이 세상에 오심이 그냥 어늘 갑자기 오신 것이 아니라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구약의 뿌리깊은 상징과 제도와 말씀과 언약과 섭리와 인물들과 예표와 예언등등이 압축 되어 주님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구약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전체의 주된 목적은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행 28:23,31)

 

(2) 요한 복음의 목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심판에서 구원이요 죄에서 구원입니다. 사단 마귀에게서 구원입니다. 여러가지 문제에서 구원입니다.(마 1:21)

***메시야에 대한 구약 성경예언이 모두 정확하게 이루어진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 뿐이십니다.
(눅 4:18-19,눅 24:44,눅 24:27,슥 9:9)

 

***하신일이 예수님이 바로 약속하신 메시야임을 증명하고 잇습니다.
(마 11:4-5)

***십자가와 부활이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사 53:5-6)

 

(3) 요한 복음의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잉태케 하심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말씀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씀합니다.
(요 1:18,요 1:14)

그리고 구원자가 하나님의 아들이셔야만 하는 것은 인간의 죄가 피값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따라 태어난 모든 인간들의 피는 죄가 있는 피입니다.
죄없는 인간의 피 만이 인간들의 죄 값을 깨끗게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 9:22,히 10:19-20,히 9:13-14)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 인간들을 죄에서 구속하는 보배로운 피입니다.(엡 1:7,벧전 1:18-19)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 이십니다.(행 4:12)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동시에 그리스도가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죄사함을 가져오는 피를 흘리심을 믿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을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과 그 피가 나의 죄값이어싸는 사실과 죽은자 가운데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셧다는 사실등등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믿어 진다는 것이 바로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믿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요한 복음의 목적은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중요한 점은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참된 믿음은 예수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요 1:12)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구원이 지금 나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죽을 때 영생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요일 5:12-13)

결국 말씀을 통하여 성령으로 여기 와 계신 예수님을 믿고 내마음을 열고 영접하게 될 때 내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시고 생명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벧전 1:23,약 1:18,히 4:12)

그러므로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요 생명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곧 생명의 말씀입니다.(행 5:20,요일 1:1)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요 예수님과 분리될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생명이요 예수님이 곧 생명입니다.(요 14:6)

 

(5) 나에게 새생명이 있다는 사실은 새생명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8:1-2,고후 4:7-10,요 10:28-29)

 

(6) 우리는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딤후 4:1-2,막 16:15-120)
2000년전에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고 생명을 얻게 되는 이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도마처럼 육신의 눈으로 주님을 모지 않아도 오직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믿음의 눈을 가지게 되고 주님을 만나고 사귀어 살게 하신 것이 바로 기적중의 기적인줄로 믿습니다. (히 13:8)

2천년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영원토록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도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감사하며 섬기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도마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은 아닙니까?
성령께서 큰 확신과 기쁨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도마는 제자들과 같이 있지 않았고 주님이 나타나셨다는 제자들의 증언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잘못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요 말씀을 알지 못햇기 때문입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있어야 할 사명의 자리 사랑과 충성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지키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오실 때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 감격의 눈물로 주님 만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생각과 기대가 무너져도 낙심하거나 의심에 빠지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바로 이해함으로 확신에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도마의 불신앙적인 말에 주님은 마음이 아팠을것입니다.
항상 주님 앞에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확신을 심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도마에게 내 상처들을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몸이지만 못자국과 창자국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영광의 상처는 영원합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는 다 사랑한다는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버리고 희생한 흔적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말씀으로 거듭난 우리들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이시요 일생의 주님으로 모시고 고백하고 살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요한 복음의 기록 목적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참됨 믿음은 문자적인 성경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된 그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시대입니다.
그 기록한 말씀에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영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듭남이요 구원입니다.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기적이요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이 소유할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구원이요 생명입니다.

2천년전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 예수님을 오늘 내가 알고 믿게 되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영원하신 주님이시오 말씀이요 성령님의 역사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나에게 이 놀라운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더큰 믿음과 확신을 소유함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더욱 깊이 알고 사랑하며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