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요 12:12-19)

마라나타!!! 2011. 4. 19. 08:23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요 12:12-19)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인 줄 생각났더라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거한지라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다음주일 새벽 부활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입성하시는 그 장면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심장을 한 번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아 보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의 의미는 무엇이며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살펴 보면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것입니다.

아무도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는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주님이 왕이 되시면 한자리를 차지하려고 시기와 다툼 가운데 있었고 군중들은 주님을 환영하였지만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주님을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렇게도 미워하고 시기나는 또한 두려운 존재였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 하시는 것을 막지 못하고 속에 분노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와 주님의 삼장을 깨달아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살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설교음성파일입니다 mp3)http://www.adrive.com/public/2fc8f7dbb0a083a80765fb176e575108013eef6623fa62491753c7a859f8f874.html

 

1.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1) 예수님은 유월절 명절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당시 예루살렘에 유월절이 되면 약 100만명 이상이 세계각국에서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유월절에 대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죽음의 사자가 넘어간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유월절을 새로운 역사의 시작으로 삼으라고 하셨고 그후 유월절은 매년 지켜졌습니다. 동물의 피를 의지하여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던 것이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완성된것입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그 의미가 큰것입니다. 예수님은 전정한 유월절 어린양으로 바쳐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계신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죄와 사망과 마귀의 종노릇하는 데서 완전한 해방을 받았습니다.(롬 6:23,롬 6:6,롬 8:1-2)
동물의 피는 죄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피는 죄를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히 9:13-14,히 10:17-20)
예수님의 피는 완전한 제물이요 그러므로 죄를 완전히 없애고 성령께서 임하실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을 주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새마음을 주셔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피조물되어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희생의 입성이요 사랑과 구원의 입성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을 대신하여 자신을 바치시러 예루살렘성에 유월절에 입성하고 계신것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연구를 통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일곱마디를 외치면 죽어 가고 계실 때 예루살렘 성과 유대 각집에서는 유월절 어린양이 죽어가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유월절 양이요 이제 나에게 사망권세는 넘어간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나는 새생명을 얻었습니다.(요 5:24,벧전 1:3-4)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담대히 입성하신 사랑과 구원의 주님을 영원토록 사랑하고 선기를 우리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여러 가지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나귀는 겸손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주님의 가장 귀한 성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잘난맛에 살고 잇습니다. 쓸데없는 우월감가운데 삽니다. 교만합니다. 남과 비교하고 비방하고 무시합니다. 교만은 마귀의 특성입니다.
(빌 2:5-8,벧전 5:5-8)

***나귀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전쟁 때는 말을 타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나귀는 평화와 화평을 의미하였습니다.(눅 2:13-14,사 9:6-7)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없애기 때문에 마음에 평화를 가져 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세상 욕심을 십자가에 못밖기 때문에 평활ㄹ 가져 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회개와 용서를 가져 오기에 평화를 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들이 한 형제가 되기에 평화를 가져 옵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왕이 되시고 모든 염려 대신 져 주시기에 나는 평안을 누립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전쟁이 없는 진정한 평화의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마 11:28,요 16:33,요 14:26-27)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성경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슥 9:9)
구약에 메시야에 대한 모든 예언은 예수님에게 정확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눅 24:25-27,눅 24:44)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도 성경말씀 대로 이루어 질줄로 믿습니다.
(계 10:7)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주님의 순종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속죄 제물로 바쳐짐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주님은 순종의 길을 가고 계신 것이었습니다.(삼상 15:22-23,롬 5:19-21,행 5:32,롬 6:12-14,히 5:8-9)
내 뜻과 욕심대로 살것이 아니라 주님의 본을 따라 하나님의 음성을 찾고 그 뜻을 구하며 순종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주님의 주권을 나타냅니다.(눅 19:29-31)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하셨고 누가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주란느 표현은 아무나 할수 있는 그런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이라는 말은 바로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요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명칭을 예수님 자신이 쓰고 계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대한 예언의 말씀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것을 믿으셨으며 나가서 자신이 주님이시기에 순종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나귀의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주님이 쓰신다는 말 앞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고전 3:16-17,고전 6:19-20,고후 5:14-15,롬 14:7-8)
우리는 나귀요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에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고 기뻐하니까 나귀가 착각하고 자기를 높이고 환영하는 줄로 생각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제자들은 모든 일의 의미를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성려의 조명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적으로 예수님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무너트리고 당장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실줄로 착각하였습니다.

영광을 얻으신후에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신후에야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도 전혀 예언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하여 알지 못하여 낙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만 알수 있는 예수님 이십니다.
(마 16:15-17,고전 12:8,요 16:13-15,엡 1:17-19)

우리는 이미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 생각과 염려에 눌려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있는 지 잊어 버리면 않됩니다.
창세전에 택하심을 입었고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주님오시면 영원천국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바로 구원과 승리와 예언 성취와 순종과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명해 주시는 놀라운 장면인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찬양하며 사랑하며 충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을 환영하는 큰 무리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며 따르는 자들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배울수 있습니다.

(1) 종려 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 하였습니다.
종려나무는 기쁨과 승리를 뜻합니다.
군중들은 메시야로 믿어지는 이 예수님이 로마를 물리치고 자신들을 그 압제에서 배항 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승리를 그런 물리적인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입성은 승리의 입성이었습니다.
죄와 사망과 사단을 이기시는 승리의 입성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마귀는 패하였습니다. 죄가 세력을 잃었습니다. 사망권세가 깨어졌습니다.(롬 6:6,롬 8:1-2,히 2:14-15,요일 3:8,고전 15:57-58,눅 10:17-19,막 16:15-20,고후 4:7-10)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승리의 찬송을 부르시기를 축원합니다.

 

(2) 군중들은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는 오 구원하소서 라고 외치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인식하고 자신들을 구원하실 메시야라고 믿었지만 죄에서 구원하시는 고난받는 메시야이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메시야라는 말의 다른 뜻은 바로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라는 말 자체가 구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마 1:21)
예수님은 인간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메시야 이십니다.

인간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사망입니다.
그리고 그 사망을 가져오는 근본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사망은 그냥 늙어 죽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권세는 물론 사람이 늙어가면서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사망권세는 서로 싸우고 경제적으로 분노하고 염려하는 모든 것을 가져 오는 것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나가서 사망권세는 죽어서 영원한 심판을 받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 까지 포함합니다.(계 20:11-15)

둘째 사망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사망권세는 인류의 최대의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망권세에서 해방되면 근본적으로 인간은 모든 압제와 문제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롬 6:23,엡 1:7)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나가서 죄사함을 얻음으로 자연히 사망권세도 깨어진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망권세가 가져다 주는 모든 문제들 허무함과 지옥 심판과 질병과 가난과 그 모든 문제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해결을 받은것이요 해방을 받은것입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거 지옥 시민이었지만 천국시민이 되었습니다.

늙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이제 영원토록 부활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죄를 이기고 얼마든지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과 축복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행 4:12,요 14:6,히 2:1-3)
이같이 큰 구원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우리들의 구원자 이십니다.
지금도 나를 여러 가지 문제에서 구원하시고 계십니다.
(마 11:28,마 7:7-8,시 50:15)
나의 구원자 나의 창조자 주님께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는 이미 말씀 드린대로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신는이는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자요 인정하신자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를 뜻합니다.
(시 118:24-26)메시야를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말씀합니다.(마 1:21)
사실 예수라는 이름은 아들 하나님에게 붙여주신 이름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의 권세와 영광을 아들에게 양도하여 주신것과 같습니다.
(요 5:43,요 10:25)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행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권세와 영광과 생명이 그에게 잇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보면 아버지를 본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이름을 가진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요 예수님이 내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 쫓으라고 하셨습니다.(요 20:21-23,요 16:23-24,요 14:13,막 16:17,행 3:16,행 2:38)

예수님의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바로 예수생명을 가졌다는 말이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요일 5:12-13)
예수이름의 권세가 예수님을 알고 믿는 나에게 있음을 깨달을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오 하나님 이십니다.

 

(4)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외쳤습니다.
군중들은 자신의 왕이요 로마압제에서 구원하실 왕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요 1:49,요 19:15,요 19:19-22,계 19:16)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님이십니다.

우주의 소유자가 되십니다.
주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충성을 다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나사로의 표적을 보고 주님을 환영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모인데는 큰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집이 예루살렘에서 가까웠고 그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였던 사람들과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 왓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더 큰 기적을 기대하고 있었고 역시 로마를 무너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제사장들과 빌라도에게 잡혀 있는 것을 볼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으라고 외치는 배반자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기적을 체험하였다고 해서 다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을 행하였다고 해서 참 선지가 아닙니다.

열명의 문둥병자들 가운데 몸은 다 깨끗함을 받았어도 구원을 얻어 천국 간 사람은 오직 한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당시에 열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회개와 거듭남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롬 10:8-10,롬 10:17,요 3:5)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내안에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서 예수님이 내안에 들어오심으로 나는 거듭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요 20:28-29)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의 원수는 마귀요 마귀는 우리 성도들을 속이고 참 진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거짓 신앙체계가 세 개가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합니다.(눅 18:9-12)

자신의 노력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신앙은 외식이 되어 버리고 형식적이 되어 버립니다.
(마 23:27-28)
힘이 없고 기쁨 이 없습니다,
전통에 얽매입니다.
형식을 중요시 합니다.
배우려는 자세가 없습니다.
관한 우월감에 빠져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판단합니다.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흘리신 피를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참된 신앙은 주님을 아는 것이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의 임재입니다.

 

***두번째 거짓 신앙 체계는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는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목적도 자기를 위한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방법도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모든일을 할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랑으로 삽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없습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습니다.
자기 방법으로 모든일을 할려 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인간을 의지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인본주의의 특징입니다.
(렘 9:23-24,렘 17:5-8)
기도를 해도 자기목적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습니다.
철저히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밖고 주님만 의지할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세번째 거짓 신앙체계는 바로 기복신앙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자기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기도제목도 오로지 자기 사업과 자녀와 건강과 여러 가지 문제 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시절에 많은 제물과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받지 아니 하셨습니다.
그들 속에 탐욕이 가득하여 하나님께 무슨 축복을 얻기 위하여 그 열심을 내고 예물을 드리고 봉사를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축복 받는 다는 것은 믿음의 결과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항상 부드러운 설교를 원하고 축복을 원합니다.
회개도 없고 교리도 없습니다.

변하여 새사람될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살려고하는 순수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것이요 탐심이요 우상숭배입니다.(마 7:21-23)
우리들의 진정한 축복은 주님을 아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살고 하늘에 상급을 쌓아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되시는 삶입니다.

 

우리 주님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수많은 무리들이 환영하고 찬송하였지만 몇일이 못되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밖으라고 외쳤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 인본주의 기복신앙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로 먹여주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셨기 때문이요 이스라엘을 로마압제에서 건져줄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은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것이 아니라 이제는 주님의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내가 직장 다니고 사업하고 밥 먹는 것도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을 위하여 운동하고 휴가가고 무엇을 하는 것도 다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사랑의 사귐이 바로 진정한 신앙 생활입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바리새인들의 반응입니다.

(1) 너희 하는 일이 쓸데 없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보내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트집을 잡아 감옥에 넣던지 죽여버릴려고 안간 힘을 썻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시험을 하였습니다.(요 8:3-6)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시는 지 시험하였습니다.(눅 14:1-6)

***부활에 관한 문제를 내어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릴려고 했습니다.
(눅 20:27-28)
그러나 예수님의 지혜를 당할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실패할수록 사람들은 예수님에게로 더욱 많이 몰려 들었고 따랐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의 본부가 있는 예루살렘에 까지 예수님이 입성하고 계신것입니다. 마치 도전장을 낸 것 같이 예수님은 당당하게 사람들의 찬송을 받으며 입성하고 게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과 분노가 가득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하는 일이 쓸데 없다고 한탄하고 분노를 들어 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발악을 하고 알케다 이슬람 등등이 세력을 얻는다고 해도 주님은 승리하십니다 그의 몸된 교회는 승리할것입니다.
저들의 모든 핍박과 소동은 헛되고 말것입니다.(시 2:1-6)
주님은 충성을 다하는 자들에게 상급과 최후의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계 2:10,계 7:13-17,계 14:3-4,계 21:3-4)

 

(2) 온 세상이 저를 쫓는 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 당시에 그들이 탄식하며 한 말이었지만 그것은 그대로 예언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면 온 세상이 주님의 나라가 될것입니다.
(계 11:15-17,사 11:9,합 2:14)
그 날을 사모하며 오늘 주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입성반대하고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마음이 닫혀 있어고 거부하였습니다.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심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가장 먼저 성전에 들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스러운 주간에 우리들의 마음의 성전을 열고 주님을 다시한번 내 마음과 집과 사업과 가정에 영접하고 모셔들이며 나의 주님을 사랑하며 살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삶의 모든 면에서 모든 주권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환영하며 사귀어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항상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4)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예언의 성취이자 또 하나의 예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셧지만 이제 주님 다시 오시면 영광과 권능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것입니다.(사 25:6,슥 14:3-8)

 

(5)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시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입성하시는 동시에 만왕의 왕으로 입성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잘 나타내고 있는 성경말씀이 바로 계시록 5장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책이 있는데 안팍으로 썼고 일곱인으로 봉하여져 있습니다. 아무도 그 책을 열거나 보거나 할 합당한자가 없어 요한이 울고 있을 때 유대지팡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기에 그책을 떼기에 합당하다고 하였습니다. 나가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보좌 앞과 네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나타난것입니다.(계 5:1-6)

계 5장의 일곱인으로 인봉한 작은 책은 구원과 심판의 계획과 내용을 적은 것입니다.
이책을 열거나 보거나 한다는 것은 바로 구원과 심판을 행할 권세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지파의 사자는 바로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그리스도 만왕의 왕이심을 나타내는 것이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에수님을 말씀합니다.
죽임당한 어린양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이 있기에 인봉을 떼고 책을 열을 권세가 있으십니다. 십자가로 자신을 드리신 사랑의 예수님 만이 우리를 구원하실수 있습니다. 나가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음으로  이 책을 열고 실행하신 권세가 있으십니다.

천안함 장병들을 위한 위로금 보상금이 나왔을 때 어릴 때 그 장병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가 위로금 나온 것을 찾으러 왔다고 합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사랑하셨기에 주님은 나의 구원자시며 나의 주님이시고 세상을 심판하실 권세와 능력을 가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찬양하며 더욱 사랑할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랑의 주님을 우리 마음속에 영접하고 기뻐하고 환영하고 나의 왕으로 섬겨야 할줄로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면 세상은 심판이요 온 세상이 주님의 나라가 되어 주님이 다스시는 그나라가 될줄로 믿습니다.
그때까지 사랑과 충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의 의미를 깨달으셨습니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어떻하였습니까?
주님은 유월절 명절에 입성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한 어린양의 희생과 구원과 생명의 입성이었습니다.
주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겸손이요 평화입니다.
순종이요 예언 성취의 길이었습니다.
사랑과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의 하나님되심과 주권을 보여주시는 입성이었습니다.
주님의 예루살렘입성의 의미를 제자들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성령의 조명을 받아 말씀의 눈이 밝아지는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나귀요 주님은 나의 주님이심을 잊지말고 순종과 사랑과 충성의 길을 갈수 잇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환영하던 군중들의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손에 종려 나무가지를 들었습니다.
주님의 입성은 승리의 입성이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죄와 마귀와 사망권세를 깨트려 버리셨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호산나 외쳤습니다.
구원하소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죄에서 뿐만아니라 모든 환난과 어려움에서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주님께 가까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십니다.

그들은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며칠후에 주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우리는 인본주의 율법주의 기복신앙을 과감하게 던져 버리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위해 사는 진짜 제자들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모습 이었습니까?
그들은 너희 하는 일이 쓸데 없다고 탄식과 분노를 들어 내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핍박하고 욕하고 비방하여도 결국 우리는 승리하게 되고 원수들은 심판 받게 될줄로 믿습니다.

온 세상이 저희를 쫓는다고 하였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면 온 세상이 주님의 나라가 되어 주님이 친히 다스리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영광과 권능으로 임하실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시오 권능의 주님이시오 오늘도 세상 인류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오직 주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고 오직 예수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예루살렘 입성을 통하여 들어난 주님의 모습과 군중들의 모습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위대하심과 사랑과 인격을 발견하고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확신을 가지고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