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두려워 하지 말라(눅 12:4-9)

마라나타!!! 2010. 9. 30. 01:17

                                        <두려워 하지 말라>
(눅 12:4-9)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불안한 시대를 맞이하여 앞날을 생각하면서 알수 없는 두려움 가운데 처하여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시대가 올 것을 알고 계셨고 제자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은 오늘도 여전히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시면서 왜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 하는 삶을 산다면 결국 주님을 배반하게 될것이며 승리하지 못하게 될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두렵게 함으로 주님께 영광돌리지 못하게 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며 결국 주님을 배반하는 자들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종말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담대한 신앙이요 주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신부의 삶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말씀을 통하여 세상에 나를 핍박하는 자가 나타나도,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도 주님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순교자의 신앙으로 승리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왜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까?
(1)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목적은 바로 우리 안에 새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요 죽어도 사는 부활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성령을 통하여 영원한 존재로 거듭난것입니다.
(롬 6:23,요 11:25-26,고후 4:16-18)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가장 잘못될수 있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우리의 끝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은 영원하고 천국가에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벧전 1:3-4)
 
(2) 머리카락 까지도 세신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보호하심을 의미합니다.
(시 121:5-6,습 3:17,시 139:1-5,말 3:17,신 32:10,슥 2:8)

 

(3) 하나님이 나의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시 27:1-5)
빛은 소망, 빛, 기쁨, 에너지, 생명입니다.(요일 1:5,요 8:12)

하나님이 빛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물질을 나누고 나누면 분자 원자 양자 중성자 전자 미립자 등등이 됩니다.
그 미립자의 세계는 시간 공간을 초월하는 세계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이요 빛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빛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의 근본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보이는 모든 세계는 빛으로 되어 있고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을 붙잡으면 그 빛으로 인하여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흑암이 나를 둘러싸도 우리에게는 빛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창조자가 계십니다.
나의 창조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끝까지 어느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움 없이 담대할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마 28:20,시 23:4,요 14:16,고전 3:16)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과 성령으로 연합이 되어 있습니다.

 

(5)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롬 8:38-39,롬 5:8-9,요일 4:7-11)

 

(6)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나를 빼앗을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요 10:28-29)

(7) 손바닥에 새긴바 되었기에 우리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 49:16)
손바닥에 새겼다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하심과 관심을 말씀합니다. 나를 알고 계시고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8) 나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 할 핑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린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그 보잘 것 없는 것들 조차도 알고 계시고 그것들의 운명을 주관하고 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물며 예수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사신바된 하나님의 소유 된 자들을 얼마나 아끼고 보호하고 사랑하시는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사 43:1-3,고전 6:19-20)

한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절대 적인 사랑과 보호하심과 귀하게 여기심과 관심과 사랑을 믿고 나의 모든 것을 던져 맡기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9) 하나님은 전능자 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 49:26,사 60:16,습 3:17,요일 4:4,창 17:1,창 28:3,사 9:6)

 

(10) 두려움을 주는 것은 마귀입니다. (딤후 1:7)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물적인 것이 있습니다.
먹고 자고 숨쉬고 성관계를 하는 동물적 욕구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것에 의하여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먹기 위하여 살고 살기 위하여 먹습니다.
그러므로자신의 보호와 의식주 생활 등이 위협을 받게 되면 자연히 두려움을 느낍니다.

마귀는 의식주 문제 세상에서 소유와 지위와 등등을 통하여 위협하고 두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공중 나는 새를 보라고 하셧고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마 6:30-33)

사람들은 또 사고 당하지 않을까, 불치병에 걸리지 않을까 해고당하지 않을까 등등으로 인하여 불안하여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두렵게 하여 아무데도 쓸데 없는 자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 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담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0)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수 1:5-6,대상 29:11-13)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강하고 담대하게 됩니까?
비결은 하나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면 됩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면 세상에 두려울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강한 훈련을 시키십니다. 죽음 통과하게 하십니다.
세상을 버리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고후 1:8-9,
요 16:33,행 23:11,히 4:16,요일 3:21)

우리는 항상 위대하신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강하심과 능력과 사랑과 신실하심을 묵상해야 합니다.
죽음을 통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강하고 담대하게 됩니다.(사 40:27-31)

여러분 우리는 왜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아무도 나의 영혼을 망하게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머리카락 까지도 세신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시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환난과 죽는 체험을 통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됩니다.
항상 전능의 주님, 위대하신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때 강하게 됩니다.
이 불안의 시대에 담대하게 두려움 없이 확신가운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누구를 두려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두려워 할 분은 지옥에 던져 넣으실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이십니다.
두려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존귀하심과 위엄과 존귀 때문에 경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우리 주님이 이리들의 친구도 되시고 신랑도 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을 함부로 가볍게 생각하면 않됩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하나님 아버지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 구원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히 2:3-5, 엡 1:3-6,엡 1:17-19)
우리의 구원은 너무나 놀라운 사건입니다.
창세전에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인간이 되어 찾아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까지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의 피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을 부어 주시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지옥 시민이 었는데 천극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크고 놀라운 구원을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시 130:3-4)

 

(2) 하나님을 마땅히 경외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은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 제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창 22:12,출 1:21,신 5:29,신 6:2,신 13:4,삼상 12:24,시 2:11,시 103:13,시 128:1,시 128:4,잠 1:7,잠 8:13,잠 10:27,잠 14:26,잠 22:4,잠 23:17,전 12:13,말 3:16,말 4:2,행 10:2,계 11:18,계 19:5)
내 마음과 정욕대로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살수 있는 비결은 바로 내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거룩한 마음을 주시고 세상의 더러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 대로 살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항상 앙망하여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3) 기쁨과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빌 2:12,롬 8:29,벧전 2:21)

 

(4) 거룩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거룩의 개념은 도덕적인 것 보다는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십니다.
그 위대하심과 능력과 아름다움과 완전하심에 있어서 우리가 생각할수 조차도 없는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사 6:1-4,계 4:8,레 11:45,벧전 2:9-10,벧후 3:11-13)

 

(5) 광대하신 하나님 이십니다.(시 150:1-3)

(6) 전지 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나의 장래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시 139:1-3)

(7)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며 피할곳이 없습니다.(시 139:6-8)

(8) 영원하신 하나님 이십니다.(시 90:1-4)

(9)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이십니다.(단 4:17)

(10) 영광과 아름다우신 하나님 이십니다.(계 4:1-5)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과 권능을 항상 바라 보면서 찬양하고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제일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며 사랑과 충성을 다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놀라우신 하나님
위대하시고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심을 인하여 감사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하나님이 이제 나의 몸을 성전 삼고 계신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깊이 깨달을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으로 나도 거룩한 존재가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살면 않됩니다.
죄를 버리고 항상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앙망하며서 찬양하면서 의지하면서 전파하면서 살아야 합니다.(빌 4:13,갈 2:20)

 

3.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시인한다는 것은 고백한다 선언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공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롬 10:9-10,빌 2:9-11)

 

(2) 시인한다는 것은 맹세한다는 뜻입니다.
공개적으로 예수그리스도에게 충성 사랑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인하는 것입니다. 결단이요 주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3) 시인한다는 것은 동의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시인 하는 사람은 당연히 주님의 뜻에 동의하고 주님의 말씀을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께 순종하여 살아가야 합니다.(딛 1:16)
예수님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에 동의하는 것입니다.(요일 4:2-3)
에수님의 동정녀 탄생, 신성, 십자가 대속, 부활, 재림 등등에 동의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4) 시인한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시인하는 자들은 당연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주님이라면 당연히 복종해야 합니다.

 

(5) 예수님을 시인하면 주님이 내안에 계신것입니다.
(요일 2:23,요일 4:15)

 

(6) 시인한다는 것은 찬양한다는 뜻이 있습니다.(히 13:15)
항상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자랑하며 담대히 사는것입니다.

 

(7) 주님을 시인하는 것은 주님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주님의 것임을 아는 자들은 자기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담대하게 전파해야 합니다.(행 1:8)

 

(8) 주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나를 부인한다는것입니다.(눅 9:23)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삶은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밖고 나의 뜻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은 곧 나는 죽고 예수그리스도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9) 시인한다는 것은 주님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을 때 예수냐 황제냐 결단할 때 주님을 증거하면서 담대히 주님을 택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절하라고 할 때 주님을 택하고 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의 표를 받거나 절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부인하는 행위가 됩니다.(계 14:11-12)

(10) 시인한다는 것은 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셔서 심문 받으실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안다고 증거하고 담대히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주님도 나는 시인하여 주십니다. 안다고 하여 주십니다.(행 4:12)

주님이 나를 안다고 해 주십니다.(계 3:5,마 7:21-23)
그러므로 시인한다는 것은 고백, 결단, 순종, 사랑과 충성 선택 등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찾고 예수그리스도로 살아야 합니다.

 

(9)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삶을 살면 천사들이 일하게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저를 시인할것이요 누구든지 사람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주님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부인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대답한자들이 종말에 지옥에 가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종말에 뿐만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주님이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영적인 결과를 가져 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주님이 천사와 함께 나를 살펴 보고 계시다가 내가 주님을 부인하는 쪽으로 행동하면 주님은 슬퍼하시고 천사에게 부인하신다는 뜻입니다. 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을 보류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천사가 아니면 무엇이 작동 되겠습니까?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결단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을 인정하고 높여 드리는 선택을 하고 순종을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고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나를 위하여 일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항상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있으며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깨닫고 의식하고 내 맘대로 사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알고 보고 계실 뿐만아니라 여러 영적인 존재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천사들이 지켜 보고 있습니다.(히 12:22-25)
***하늘의 성도들이 나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히 12:1-3)
주석가들은 마치 경기장에서 구경하는 것 같이 하늘의 성도들이 우리를 지켜 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도 나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벧전 5:8-9,엡 4:25-28,약 4:7)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인정하는 길로 결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주님이 보고 계시고 천사들과 마귀와 하늘의 성도들이 지금도 나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살아야 합니다.(롬 12:1-2,엡 4:22-24,시 1:1-3,빌 2:12-13,수 24:15-16,삼상 7:3,왕상 18:21,엡 5:16-18,갈 5:16-18,마 4:19,눅 9:23,창 12:4,시 119:9,시 119:11,시 119:105)

 

주님만을 바라 보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성령으로 주님으로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생활 예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택하고 나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앞세워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나를 보고 계시고 천사와 마귀 나가서 천상의 성도들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항상 의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여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택하고 결단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면 천사가 동원되고 기도응답을 주시며 놀라운 일들로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게 될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하지 말고 담대히 주님은 인정하고 높이며 고백하고 전파하는 삶을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여 괜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두려움은 나의 꿈과 기쁨과 능력을 빼앗아 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확신과 담대함과 기쁨 가운데 살기를 원하십 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위협을 받을 까봐, 사고나 질병 등등을 두려워 합니다.
사람들은 또 위협적인 사람이나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그 어느 것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우리는 그 어느 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까?
세상은 나의 몸은 죽일수가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요 나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머리카락 까지 세신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오 만유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손바닥에 새기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담대하게 될 수가 있습니까?
강하고 담대하신 나의 전능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음을 통과하는 체험을 통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과 신실하심과 내 안에 계심을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 가운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십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죄사함의 권세 지옥에 던져 멸하시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제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위엄과 영원하심과 광대하심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은 바로 여러 가지 죄악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 제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순종하는 삶입니다.

위대하신 주님을 깨닫고 바로 그 하나님이 내 몸을 성전삼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 내 몸을 성전 삼고 살고 계신다는 말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고전 3:16-17)

내안에 계신 위대하신 주님을 항상 의식하고 높이며 의지하며 순종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한다는 의미는 바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은 바로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밖고 나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 처럼 사랑과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핍박과 위협 가운데서도 담대히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자시오 만왕의 왕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타협 하지 않는 것이요 배반하지 않는 것이요 주님 사랑을 죽기까지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 때, 주님께서도 천사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여 주시고 천사를 동원하시며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나를 위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은혜로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과 천사와 마귀와 하늘의 성도들 까지 나를 지켜 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의식하면서 의지하고 사랑과 충성을 고백하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 다시 오실 때 나를 안다고 시인하여 주시고 칭찬과 상급 주실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나를 사랑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지금은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위대하신 예수그리스도 께서 내안에 계심을 깨닫고 두려워말고 담대하며 큰 확신과 감사와 찬송가운데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전파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