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강도 만난자의 이웃(눅10:25-37)

마라나타!!! 2010. 7. 28. 01:45

                                    <강도 만난자의 이웃>
(눅 10:25-37)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아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입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과 연관이 됩니다. 율법사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까? 물었을 때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사는 자기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주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물었습니다. 이 율법사는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율법사 뿐만아니라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인들과 이방인들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고 버려진자로 취급하며 짐승같이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통하여 이 율법사의 생각과 가치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율법사 자신이 경멸하던 사마리아인이 바로 진정한 이웃이라는 해답을 들은 이 율법사는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것입니다.
우리는 이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통하여 착한일을 행하라는 식의 도덕적인 교훈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를 잘 깨닫고 영적인 교훈과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진단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통하여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한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은 높은 지대에 있습니다. 여리고는 낮은 곳입니다. 해발 높이의 차이는 약 1키로 되고 거리는 약 17마일 됩니다. 그 길은 험하고 종종 강도가 나타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인 의미를 알아 보아야 합니다.

(1)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성경말씀에서 항상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하고 다른곳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창세기로 적용을 하면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여 쫓겨난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말로 하면 교회에서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고 주님을 떠나고 말씀을 떠난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제자는 주님을 만났고 즉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떠나지 말고 말씀을 떠나지 말고 주님을 떠나지 말고 더욱 가까이 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행 1:4-5,약 4:4,약 4:8,히 10:25,골 3:16,시 1:1-3)
교회를 가까이 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인줄로 믿습니다.

 

(2)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강도를 만난자들입니다.
여기서 강도는 그냥 강도가 아니고 인생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 입니다.(요 10:10)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의 행복을 마귀에게 속아서 사기당하고 도적질한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웃고 좋아 보여도 속에 예수님 없고 영원한 생명이 없고 천국이 없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절대로 행복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만이 우리 인생들을 마귀의 손에서 구원하실수 있는 분이십니다.(요 3:16,요일 3:8,행 4:12,롬 10:13,골 1:13-14)
마귀가 역사하는 것은 죄를 근거로 해서 인간들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 인생들을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하는 능력입니다.(엡 1:7,갈 1:4-5)
강도 만난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우리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강도만난 영혼들을 구원하는 전도와 선교에 힘쓸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 믿는자들도 이 세상에서 강도를 만날수가 있습니다.(벧전 5:7-9)
우리 신앙 생활은 바로 영적인 전쟁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원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엡 6:10-20,약 4:7)
이 세상에서 마귀를 이기고 사명을 감당할수 있도록 주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자신의 이름의 권세를 주셨습니다.(막 16:15-20)
마귀는 우리를 항상 낙심 원망에 빠지게 할려고 온갖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세상 정욕과 여러 가지 죄악에 빠지게 하고 교만과 시기 미움을 주고 세상의 악하고 더러운 것을 따라가게 할려고 합니다. 분노 질병 두려움 게으름 등등으로 인생을 망치게 하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듣는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것입니까? 예배를 드릴 때 세상 악령들이 떠나가고 성령께서 충만히 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심방을 간다고 할 때도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영적인 전쟁을 치루러 가는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 세상은 강도가 출현하는 곳입니다.
(계 21:3-4)
이말씀은 우리의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끝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 보면 주님 오시기 까지는 이 세상에 눈물과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 12:39,마 17:17,막 8:38,막 9:19,행 2:40,빌 2:15)
마귀는 그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왕국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임금이 바로 마귀 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이 세상의 온갖 것을 보여주면서 예수님을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마 12:26,요 12:31)
우리 성도들은 천국 시민인데 지금은 이 마귀의 적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출하여 천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함입니다.
이 강도 만나자는 다 죽게 되었습니다.
강도만난자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요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밖에서 구원자가 나타나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요 해방자이십니다.
왜냐 하면 오직 주님만이 사단과 죄와 사망권세를 깨트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마 28:18,빌 2:9-11,골 2:15,히 1:3,행 26:18)
주님께서 적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말씀 주시고 성령주시고 교회주시고 예수님이 항상 함께 계시며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를 부어 주신줄로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어 올려 구원받지만 이세상은 심판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눅 10:17-19)
이 세상은 영적인 강도 악령들이 출현 하는 곳임을 알고 교회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며 주님을 사랑하며 더욱 가까이 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웃에 강도 만나자를 도와 주님께로 인도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당시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강도 만난 사람을 그냥 두고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1) 그들이 그냥 지나간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수 잇습니다.
자기들도 강도를 만날까봐 두려워서 급히 도망갔다고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이미 죽은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을수 있습니다.
율법에 죽은 시체를 가까 이하면 부정탄다고 하니 그냥 지나간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자신이 그 사람에게 연루되어 여러 가지 손해볼 것을 두려워 하여 그냥 지나갔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의 행동은 이기적이며 사랑이 없는 행위 였습니다.

 

(2) 이 것은 바로 영적으로 종교는 이웃을 구원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종교행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자신의 노력과 방법으로 구원을 얻으며 진리에 이르려는 모든 행위를 가르켜 종교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계시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 인간들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롬 3:23-24,롬 3:28,엡 2:8-9)

(3) 율법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롬 7:12,롬 7:7-8,갈 3:24)
율법의 목적은 인간들이 자신의 힘으로는 선하게 살수 없을 깨닫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목적입니다. 죄를 드러나게 합니다. 율법은 그러므로 우리가 할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가정교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며 우리 성도들의 사람의 규범을 제시하여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항상 율법책을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수 1:7-8)

(4) 율법주의는 거짓 신앙의 뿌리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 가장 주의 하여야 할 거짓 신앙은 바로 율법주의, 기복 신앙, 인본주의입니다. 기복신앙은 신앙을 자기의 축복을 얻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는 인간 자신의 힘으로 할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는 이 둘을 합친것과 같습니다.
율법주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보다 자신의 종교행위 자체를 공로로 삼고 의지합니다.
율법주의는 형식과 규칙을 강조합니다. 인격체 이시며 살아계신 성령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규레와 규칙을 강조합니다.(눅 18:10-13)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당시 철저한 율법주의 자였단 바리새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마귀에게 속고 있었습니다.(요 8:44,마 23:23-24)
그러므로 율법주의는 무서운 것입니다.(갈 3:3)
*** 율법주의는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웁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할줄로 믿습니다.(갈 2:16,롬 5:9)
***율법주의는 영적인 우월감을가지게 합니다.
***율법주의는 전통에 의지하게 합니다. 주님은 안식일문제로 바리새인들과 많은 논쟁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형식적으로는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지키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들 마음속에 없었습니다.
***율법주의는 할례받지 못한 마음입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사 66:2,행 7:51)
***율법주의는 능력이 없습니다.
형식과 외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마 23:25-28)
가인의 예배는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에배 였습니다.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감사하는 예배 였습니다.(히 11:4)
마음이 변화를 받고 마음에 주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시고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율법주의 의 특징은 바로 눈먼 소경이라는 사실입니다.(마 23:24,요 9:31,요 9:40-41)
아무리 성경 지식이 많다고 해도 살아계신 주님을 알지 못하면 소용 없습니다. 오히려 교만하게 만들 뿐이요 영적으로 소경이 되고 맙니다. 모든 성경말씀은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는 믿음이 없습니다.(요 5:42,요 5:45-47)
참된 믿음은 문자적인 성경을 믿는 것이라기 보다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복적이고 율법적이며 인본주의 적인 것들을 단호히 물리치고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안에 살아계신 주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해야 할줄로 믿습니다.
말세의 특징은 기복적이고 인본적이되고 율법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고 형식적입니다.(딤후 3:1-5)

신앙 생활의 기본은 바로 살아계신 주님을 더욱 깊이 아는 것입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욱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 갔습니다.
형식적인 종교행위로는 구원을 베풀수가 없습니다.
말 뿐이지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형식적입니다.

내 의로움과 공로와 노력이 아니라 내안예 계신 주님을 더욱 의지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능력으로 사랑을 실천할수 있습니다.(빌 4:13)
율법주의에 빠지지 말고 항상 감사함으로 항상 주님을 의지함으로 항상 주님을 사랑함으로 살아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선한 사마리아 인은 강도 만난자를 도와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 강도만나자를 도와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율법사에게 물으시기를 누가 강도만나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도 그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선한 사마리아 인은 예수님입니다.
강도만난 인생을 진정으로 도와 주실수 있는 분은 바로 예수님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중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재물이나 인간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 121:1-3,시 18:1-3,시 146:1-5,렘 17:5,렘 17:7-8,빌 1:21,빌 1:18)

오직 예수로 살아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선한 사마리아 인은 기름과 술을 상처에 붓고 싸매고 치료해 주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은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며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살려 주십니다. 그의 사랑으로 싸매어 주십니다.
(마 11:28,요 14:13-14,요 14:26-27,요 16:13-14,롬 8:15)
성령님은 우리 속에 계셔서 끊임 없이 우리를 위로하시며 용기를 주시며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십니다.
주님을 만나면 그의 사랑의 능력 앞에 다 변화를 받습니다.
니고데모도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고 우물가의 여인,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도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의심많은 도마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도 감싸주시고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을 찾고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3) 율법사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 물었는데 주님은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 인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마리아 인이 바로 네 이웃이라고 말씀하신것과 같습니다.
내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이웃이 누구입니까? 물었는데 주님은 바로 너는 사랑을 누구에게 베풀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사 너도 강도 만난자다. 마귀에게 속고 있는 자요 행복이 없고 심판과 멸망으로 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앞에 있는 나는 너를 도와줄수 있는 선한 사마리아 인이다.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강도 만난 것을 모릅니다.
마귀가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도만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고 살아계신 주님을 전파해야 할줄로 믿습니다.

 

(4) 강도 만난자는 어려움 가운데 처한 우리 성도들을 상징할수 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세상에 만나는 여러 가지 고난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일수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난일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 어느 종류의 고난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인간들은 깨닫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회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교회에서 세상을 나가다가 강도를 만난것인지 생각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욜 2:12-13,사 55:6-7,대하 7:14,호 14:4-5,계 3:19,막 1:15,행 3:19)
회개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축복입니다.
우리의 교만과 원망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미움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이기심과 주님의 일에 불순종한 것등등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말세의 특징이 바로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고후 7:10,마 3:2,마 3:8,눅 5:32,계 2:5,계 2:16,계 9:20,계 9:21,계 16:9,계 16:11)
고난을 당할 때 먼저 해야할일은 바로 화개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시 139:23-24)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욥 23:10,고후 12:10,약 1:2-3,롬 8:28)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약 4:7,요 16:33,롬 8:1-2,고후 6:8-9,고후 1:8-9)
이와같이 고난의 때에 회개하며 말씀을 붙잡고 마귀를 대적하며 더욱 주님께로 가까이 나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 바라보며 의지해야 합니다.

 

(5) 주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선을 행할려고 하면 않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힘으로는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지금 이 율법사에게 가서 이 사마리아인처럼 해 보라 어디 할수 있는가? 하시면서 도전을 하고 계신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경멸하는 사마리아 인들 보다도 더욱 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율법사는 사마리아 인처럼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속으로 분노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예수님 처럼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어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자신들 에게는 이런 능력과 진정한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예수마음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수 잇는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마음을 품을 때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주님께로 가까이 나가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롬 5:5,고후 5:14,막 9:23,빌 4:13,고후 4:6-7,엡 5:18,갈 2:20,빌 1:8)

말만하고 행할 능력이 없음으로 외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심장을 소유해야 합니다.
주님의 인격, 주님의 사랑, 주님의 능력으로 행하면 모든영광을 주님께 돌리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마 25:40,행 3:16)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께 하듯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칭찬 받을것도 자랑할것도 공을 내세울것도 없습니다.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행하신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주님의 인격과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행 10:3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나는 강도 만난자 입니까?
내 이웃에 강도만난자가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지금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강도는 바로 인생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입니다.
이 세상에 악령들이 들 끓고 있으며 우리는 영적전쟁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피를 의지하고 항상 깨어서 마귀를 대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형식적인 종교는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외식뿐이요 지식뿐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 벗어 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자기의 의로움과 공로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신앙 생활은 바로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심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아계신 주님이 바로 나의 생명이며 능력이며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선한 사마리아 인은 강도 만난자를 도와 주었습니다.
강도만난 우리 인생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실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인생길에서 강도를 만난 것 같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하여 있습니까?
주님을 찾으십시오.
회개하면서 주님을 찾으십시오.
말씀을 붙잡고 주님을 찾으십시오.
마귀를 대적하면서 주님을 찾으십시오.
반드시 승리를 주실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수 없습니다.
우리힘으로 할려고 하면 바로 율법적 형식적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라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나를 통하여 나타시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인격으로 살고 주님의 사랑으로 살고 주님의 능력으로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이 죄많은 세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역사하는 이 세상에서 항상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깨어 기도하며 주님 처럼 사랑과 능력의 삶을 살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