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계 3:14-22)

마라나타!!! 2017. 10. 30. 04:40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신 주님의 편지>

(3:14-22, 개역)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지난주일에 이어서 관련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마치 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와도 같이 느껴집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은 하나도 없고 미지근 하여 토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학자들은 라오디게아 도시가 부요한 도시에 있어서 세상에 물들어 성도들의 믿음이 열심이 없고 자만심에 빠져 자시의 상태를 보지못하고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주님이 교회의 문밖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음의 문을 의미한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영향력을 잃어 버린 명목상의 교회를 향하여 안타깝게 문을 두드리시면서 사랑한다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오늘 날 교회는 사회를 변화시키기는커녕 비방과 박해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등졌습니다. 어느 통계는 미국에서 진정한 성도는 약 8퍼센트라고 합니다. 마지막시대의 징조입니다.

계시록의 일곱교회는 최대교회로부터 각시대의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들의 상태를 점검하여 주님의 칭찬을 듣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강력한 권고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권고의 말씀을 듣고 힘을 얻어 다시 열심을 내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주님의. 자기소개입니다.

주님은 각 교회에 자신을 다르게 소개하셨는데 그것은 주님의 모습과 그 교회의 모습이 달라서 비교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완전하신 모습이 1장에 나와 있는데 각 교회에 그 모습의 부분적 모습들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아멘이십니다.

아멘은 진실로 그러하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확실하시고 틀림이 없으신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확신할수 있는 분이십니다.

전적으로 신뢰 할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내 일생을 완전히 믿고 맡길수 있는 분이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과 구분이 되지 않을뿐 아니라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교회였던 것입니다. 신뢰성을 줄수 있는 우리들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확고하신분이십니다. 주님은 큰 바위처럼 우리들이 믿고 기댈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특별히 아멘은 요한 복음에서 주님이 가장 확실하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실 때 쓰셨습니다.

 

(3:3, 개역)

 

(1:51, 개역)

 

(고후 1:20, 개역)

 

주님은 우리들의 아멘이십니다.

죄사함도 승리도 천국도 주님 안에서 아멘입니다.

주님이 모든 것의 해답이시며 주님은 우리들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2) 예수님은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십니다.

증인은 하나님의 본 것 아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충성된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비겁하게 위협이나 핍박에 굴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합니다.

주님은 신실하신 증인 이십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증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셨습니다.

진리를 증거하셨습니다.

허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셨습니다.

구약의 예언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참됨을 증거하셨습니다.

 

(17:20-21, 개역)

 

(22:1-5, 개역)

 

(13:1-5, 개역)

 

(5:8, 개역)

 

(요일 4:7-11, 개역)

 

(1:18, 개역)

 

주님은 또한 장래일을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되게 증거하셨습니다.

진리를 말씀하셨고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24:3-14, 개역)

 

(8:44, 개역)

 

(23:25-28, 개역)

 

우리들도 우리 안에계신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참된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2:20, 개역)

 

(1:8, 개역)

 

(고후 2:14-15, 개역)

 

(3) 예수님은 창조의 근본이십니다.

창조의 근원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자이십니다.

(1:13-17, 개역)

 

(8:22-31, 개역)

 

주님은 나의 창조자이십니다.

새 생명을 주셨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현재의 창조자이십니다.

내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주님이 나의 앞길을 창조하여 주십니다.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의 앞날을 날마다 새롭게하시며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도 확실하신 주님과 비교하여 볼 때 라오디게아 교회는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명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구분이 않되는 교회였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되지 말고 더욱 오직 예수 믿음을 지켜 나가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나다.

 

2.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칭찬만 있고 책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있고 칭찬없습니다.

 

(1) 미지근하여 내치시겠다고 하십니다.

열심이 없는 모습입니다.

안일함에 빠져 있습니다.

형식적입니다.

복음에 대한 헌신이 없고 수동적입니다.

미지근 하다라는 헬라어는 크리아로스 인데 녹는 다 용해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세상과 함께 녹아버려서 구분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소샬클럽 같이 되어서 세상과 구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을 강조하고 선한 일을 강조하다가 보면 교회가 마치 선한 일을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요즘 프로그래시브 기독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듣기에는 좋아 보이고 그럴듯 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가짜 복음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깍아 내리고 예수님의 복음 즉 십자가, 거듭남 회개, 성령의 역사하심 등등을 말하기 보다는 사회적 이슈들을 부각시키고 선한일과 도덕적인 운동등 그 운동을 더욱 중요하게 강조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여 한 생명이라도 구원하기 위하여 이세상에 존재합니다. 사명과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16:15-20, 개역)

 

(5:13-16, 개역)

 

(4:1-6, 개역)

 

(고후 4:4-6, 개역)

 

(2)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물질적으로 라오디게아 도시는 풍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곳 교인들도 물질적인 어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도 재정이 풍부하고 교인들 숫자도 많았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많았을것입니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영적으로는 가난하고 곤고하고 가련한 상태였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 서머나 교회와 대조가 됩니다.

재정과 교인의 숫자가 적었지만 그리고 환난이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부자였습니다.

 

(2:8-9, 개역)

 

외부로부터의 핍박도 없고 내부의 분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가치관이 쳐 들어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도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영적인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명의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불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으로 부자가 되어야 하고 말씀으로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일에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가지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주님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합니까?

주님의 재림을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오직 주님으로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의지할곳 없는 과부처럼 주님만을 의지하며 광야세상에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대하 16:9, 개역)

 

(요일 2:15-17, 개역)

 

(17:14-17, 개역)

 

(18:6-8, 개역)

 

(3) 곤고한것을 모름

talaivpwro"(5005, 탈라이포로스)

비참한, 괴로움받는, 곤란한, 불행한.

지쳐 있고 힘이 없는것입니다. 영적으로 파산한것이요 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기도도 말씀도 성령의 역사하심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맥박을 잃어 버렸습니다.

영적인 기쁨이 없습니다. 연극 배우들이 무대에서 떠들고 나면 다시 허무함을 느끼는 것처럼 무언가 비어있고 보람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앙망함으로 새힘을 얻어야 합니다.

(40:27-31, 개역)

 

(4) 가련한 것을 모름

ejleeinov"(1652, 엘레에이노스)

가엾은, 불쌍한

동정심을 자극하는 불쌍한 모습입니다.

길가에 앉아 있는 고아처럼 불쌍해 보이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주님이 보실 때 가련한 모습이었습니다.

영적인 회복은 말씀을 통하여 통찰력을 가지고 이 세상 보이는 것을 초월한 믿음을 가질 때 일어납니다.

내적인 영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생명이 되셔서 날마다 내 속에 나타나셔야 합니다.

기쁨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와 분명한 사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살전 5:16-18, 개역)

 

(5) 가난한 것을 모름

ptwcov"(4434, 프토코스)

가난한, 빈곤한, 구걸하는.

영적인 빈털터리 신세입니다.

기쁨 믿음 사랑 감사 말씀 성령님 등등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귀에게 다 빼앗겨 버린것입니다.

 

(2:1-3, 개역)

 

(2:6-7, 개역)

 

(3:16-17, 개역)

 

내 몸이 성전이기에 그리고 성막안에 있어야 할 것을 보여주신 것 같이 항상 기도와 말씀과 성령님이 계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식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고전 3:16, 개역)

 

(6) 눈먼것을 모름

흐리고 어둡다 보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라오디게아에는 안약이 유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의과대학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육신의 눈을 사물을 잘볼수 있었지만 영적인 실상은 모지 못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자들입니다.

믿음의 눈이 없습니다.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지 못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것에 눈이 먼것입니다.

주님은 장님들을 고쳐 주셨고 그들은 주님을 보게 되어 주님을 따랐습니다.

 

(9:25, 개역)

 

(13:14-16, 개역)

 

(11:1-3, 개역)

 

(11:24-26, 개역)

 

(3:1, 개역)

 

(고후 4:16-18, 개역)

 

(12:1-3, 개역)

 

(벧후 3:11-13, 개역)

 

말씀이 우리의 영적인 눈을 맑게 하여 주십니다.

(19:7-11, 개역)

 

지혜와 계시의 성령님을 구해야 합니다.

(1:17-19, 개역)

 

(7) 발가벗은 것을 모름

이 도시는 양모 생산이 많았고 직물생산지로 유명하였다고 합니다. 비싼 옷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영적으로는 발가 벗고 있었습니다.

옷을 입지 않은 것입니다.

의로움의 옷이요 옳은 행실의 거룩한 옷입니다.

주님 앞에서 창피한 것을 모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의로움으로 옷을 입고 날마다 주님을 나타내는 의로운 행실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 없이 자기의를 내세우며 자기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바로 율법주의요 인본주의입니다. 자기 중심이요 예수님이 인생의 주님이 되시지 못한 상태입니다. 주님의 의로우심을 힘입고 주님의 힘으로 선한 일을 행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3:26-27, 개역)

 

(4:22-24, 개역)

 

(19:8-9, 개역)

 

(22:10-15, 개역)

 

(7:14, 개역)

 

(살전 5:23-24, 개역)

 

(3:12-14, 개역)

 

(13:11-14, 개역)

 

(22:11-14, 개역)

 

우리는 나가서 주님이 주시는 전신 갑주를 입어 무장하여야 합니다.

(6:10-20, 개역)

 

(8)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이 문밖에 계셨습니다.

(3:20, 개역)

 

주님은 없고 여러 가지 인본주의와 프로그램들로 가득 찼습니다.

주님 만을 높이고 찬양하고 전파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철저히 예수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미지근 하다 눈이 멀었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앞의 여러교회의 책망이 종합하여 나타난것과 같습니다.

주님을 향한 첫사랑이 식어진것입니다.

이단을 용납한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한것입니다.

핍박에 타협한것입니다.

순교를 두려워하여 믿음을 버린것입니다.

우상을 용납한것입니다.

부도덕을 용납한것입니다.

 

거룩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오직예수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패배한 모습입니다.

새상에 아무런 선한 영향력도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름 뿐입니다.

영적인 일에 무관심합니다.

 

이 세상에 팔려고 내어 놓은 교회 건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같은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마귀는 항상 교회를 이렇게 무력화 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종말의 시대에는 이런 교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될것이며 마귀의 공격이 더욱 악랄하게 역사할것입니다.

 

진리를 의심으로 공격합니다.

선한일을 하다가 낙심하게 합니다.

여러 가지 세상 근심 걱정으로 영적인 일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기도 말씀 예배 전도입니다.

두려움입니다.

게으름입니다.

거룩함을 타협하게 합니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 줍니다.

세상 쾌락과 정욕에 물들게 합니다.

사명을 망각하게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 빛나는 황금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주님의 권고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책망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1) 내게 오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해결책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11:28-29, 개역)

 

(22:17, 개역)

 

(55:6-7, 개역)

 

(2) 안약을 사서 바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멀었을 때 그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성령님의 만지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왕하 6:14-17, 개역)

 

(24:30-32, 개역)

 

(26:18, 개역)

 

(3)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하라는 것입니다.

연단 된 믿음입니다.

조그마한 시련도 견디어내지 못한다면 믿음이 자랄수가 없습니다.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믿음이 자라나고 견고하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쉽게 시험들어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못합니다.

 

(23:10, 개역)

 

(벧전 5:10, 개역)

 

(1:2-4, 개역)

 

(벧전 1:6-9, 개역)

 

(고후 12:10, 개역)

 

(12:5-6, 개역)

 

(4) 흰옷을 사서 입으라는 것입니다.

벌거벗어 창피한 모습입니다.

(3:26-27, 개역)

 

(7:9, 개역)

 

(6:11, 개역)

 

주님의 십자가에 흘리신 피를 더욱 확실하게 믿고 구원의 확신 죄사함의 확신에 거해야 합니다.

(1:7, 개역)

 

(벧전 1:18-19, 개역)

 

(5)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주님도 베드로도 회개를 외쳤습니다.

(2:38, 개역)

 

요엘 선지자는 금식하며 마음을 찢고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2:12-14, 개역)

 

다니엘은 민족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9:7-9, 개역)

 

예레미야는 우상숭배의 죄로인하여 예루살렘에 바벨론에게 멸망한 것을 보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여 기도하였습니다.

(3:19-23, 개역)

 

(3:40, 개역)

 

학개 선지자는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고 외쳤습니다.

(1:3-6, 개역)

 

(1:15, 개역)

 

(6)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열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비참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때의 급박함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뜨거운 사랑의 권고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아야 담대함과 열심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12:9-13, 개역)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며 열심히 모이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7)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8:38-39, 개역)

 

(1:5-6, 개역)

 

(2:20, 개역)

 

(3:17-19, 개역)

 

(고후 5:14-15, 개역)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주님의 이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다시 일어나 달려가게 됩니다. 주님 만나는 그 순간을 바라볼 때 그때 까지 충성을 다할수 있습니다.

(1:8, 개역)

 

(7:14-17, 개역)

 

(8) 문을 열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고후 6:11-13, 개역)

 

우리들의 마음은 항상 주님을 향하여야 합니다.

(139:23-24, 개역)

 

주님께 항복하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나는 할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주님의 주권아래 있습니다.

(고전 15:10, 개역)

 

(9) 이기는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21:7, 개역)

 

(딤후 4:7-8, 개역)

 

(고전 9:25, 개역)

 

(4:11-13, 개역)

 

(고후 6:8-11, 개역)

 

(요일 5:18-21, 개역)

 

(고전 15:58, 개역)

 

(살전 4:16-17, 개역)

 

(살후 1:3-10, 개역)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힘을 얻어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주님의 약속입니다.

(1)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과의 더욱 깊은 사귐이 나타나게 되고 주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요일 1:1-3, 개역)

 

(2) 보좌에 함께 앉게 하리라.

권세 있는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이요 장차 주신 상급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20:4, 개역)

 

(2:6, 개역)

 

(벧전 2:9-10, 개역)

 

(3) 주님의 본을 따라야합니다.

주님의 삶은 우리들의 본이 됩니다.

주님은 철저히 자기 안에 계신 아버지를 의미하는 믿음으로 사셨고 그 음성을 들으며 순종하여 사셨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항상 바라보며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의지하고 그 뜻을 찾아 살아야 합니다.

(29:13, 개역)

 

(8:17, 개역)

 

(5:19-21, 개역)

 

(8:26, 개역)

 

5. 들을 귀가 있는자는 들으라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말씀은 각 교회에 동일하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음성을 듣고 찾아야 합니다.

말씀속에서 그리고 성령님의 주시는 세미한 음성 속에서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10:27, 개역)

 

(고후 13:1-5, 개역)

 

(13:1-3, 개역)

 

(3:1-3, 개역)

 

(벧전 4:1-2, 개역)

 

(4:6-7, 개역)

 

(14:26-27, 개역)

 

(16:13-14, 개역)

 

오늘도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는 어느교회와 같습니까?

혹시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닙니까?

주님이 이름이 높임을 받으십니까?

무슨 열심히 있습니까?

말씀 기도 전도 예배 찬양 부자입니까?

주님이 보실 때 칭찬듣는 교회입니까?

거룩함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강조 되고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열심의 심장을 부어주셔서 뜨거워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음문을 열어 주님께 항복하고 맡겨서 주님과 사귀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두운 종말의 시대에 복음과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무장하고 예수그리스도로 자랑하는 우리들이 될수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주님을 힘입어 더욱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며 주님 얼굴 만나 뵙는 그 순간 까지 사랑과 충성을 다하는 우리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