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예수님과 그의 양>(요 10:22-30)

마라나타!!! 2016. 11. 18. 23:23

<예수님과 그의 양>

(10:22-30, 개역)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오늘 본문은 수전절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도전을 받고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수전절은 주전 164년 경에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가 돼지 피 등으로 성전을 더럽힌 것을 정화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진정 메시야인지를 추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려는 질문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책잡아 고소할려는 의도였습니다. 내가 메시야다라고 하시면 신성 모독죄 등으로 고소하려는 의도입니다.

 

예수님은 몇가지로 대답을 하셨는데 이 대답속에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너희는 내 양이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진정한 양은 어떤 자들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진정한 양들은 예수님은 주님을 알고 그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양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이며 아무도 빼앗아갈수가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님의 말씀속에서 주님은 내 양이라고 하시면서 큰 확신과 결단과 의지를 표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의 능력과 사랑과 절대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내 일생을 던져 맡기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누구인지를 알아 보면서 나는 주님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나는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주님의 양인지를 점검하고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큰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 나를 증거한다.

(1)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셨다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아버지를 의지하고 하셨다는 뜻입니다.

자기 안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종하셨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하셨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 하셨다는 뜻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순종하셨다는 의미입니다.

 

(5:19-21, 개역)

 

그래서 주님은 항상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2)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묵상해 봅시다.

요한 복음은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다 기록하기에는 이 세상이라도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21:24-25)

**맹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습니다.

**왕의 신하를 말씀 만으로 고치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있던 불구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고치셨습니다.

 

이 외에도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며 곱추를 고치시고 중풍병자를 일으키시며 풍랑이는 바다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이런 표적들은 모두가 구약에 이미 예언 되었던 메시야 구원자의 표적이었습니다.

 

(35:5-6, 개역)

 

무엇 보다도 주님이 행하신 일의 최고 점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이것도 구약에 이미 예언 된 주님의 역사입니다. 주님은 죄와 마귀와 사망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러 오신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모든 일을 이루신것입니다.

 

(53:5-6, 개역)

 

(23:44-49, 개역)

 

(24:36-43, 개역)

 

(3)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내 지혜와 힘으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나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의 힘으로 주님을 위하여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바라보고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절대의지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2:20, 개역)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만 의지하고 사용할려고 한다면 주님이 나타나시지 않을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사랑과 순종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은 기계가 아니고 인격이십니다.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14:21-23, 개역)

 

주님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셨던 것처럼 그래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고 행하신그 일들이 아버지께서 하신것이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내안에 계신 주님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능력으로 행하며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행하신 분명한 증거들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 표적들이 바로 모두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구약의 메시야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다른이가 없습니다. 마지막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시대에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믿지 않는 자들이 되지말고 믿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8-31, 개역)

 

2. 내 양은 내음성을 듣고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른다.

주님은 이어서 주님의 양은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내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는저희를 알고 저희는 나를 따른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꺼꾸로 생각하면 사실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며 주님이 알지도 못하며 주님을 따르지도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1) 먼저 내양이라고 하셨습니다.

강한 강조입니다.

주님이 나의 창조자 이시기에 자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흘리신 피로 나를 사셨기에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고전 6:19-20, 개역)

 

(14:7-8, 개역)

 

(벧전 2:9-10, 개역)

 

(43:1-3, 개역)

 

(2)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주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과 주님의 음성은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하여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리는 의외로 간단할수 있습니다.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조건은 바로 주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이 그 속에 없으면 주님과 교통이 되지 않습니다. 죄와 사망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은 바로 단절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는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회개입니다. 주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밖아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 모습으로 내 마음에 나타나시는 것에 주의 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은 절대로 내 귀에 들려오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나타나고 들려옵니다. 주로 귀에 들려오는 것은 악령의 역사일때가 많습니다.

기쁨, 평화, 지혜, 생각, 확신, 감동, 주님을 위한 강한 소원, 등등으로 나타나십니다. 물론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좀더 정확하게 분별하게 됩니다. 성령안에서 기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아야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방언기도는 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낮선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 사랑이 아닌 것, 무례한 것 등등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음성에 민감합니까? 아니면 주님의 음성을 듣는자 입니까?

 

물론 이 말씀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행위까지 포함된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 나가서 순종하여 살아야 합니다.

 

(3:17-18, 개역)

 

(고후 13:3-5, 개역)

 

(2:7, 개역)

 

(13:2-3, 개역)

 

(18:9, 개역)

 

주님의 음성이 들려옴으로 믿음이 생기고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세상을 이깁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여 살아야 합니다.

 

(3) 나는 저희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양은 주님을 알고 있습니다. 목자들은 양들에게 각각의 이름을 붙여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자식들에게 이름을 주듯이 합니다. 목자로써의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계시고 나의 사정도 잘알고 계십니다.

마리카락까지도 세신바 되었습니다.

(10:28-33, 개역)

 

(139:1-6, 개역)

 

(23:1-6, 개역)

 

어떤 상황이 와도 두려워하지말고 오직예수 믿음을 지키고 증거해야 합니다.

 

반대로 양들도 그들의 주인 목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다른 목자가와서 자기 이름을 불러도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만 안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체험으로 안다는 말씀입니다. 인격적인 만남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처럼 안다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이 신앙생활의 척도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더욱 갈망하고 알아가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성경말씀도 잘알아야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순종을 통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여 알아야 하고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주님을 체험하여 알아가야 합니다.

 

(4:13, 개역)

 

(3:8, 개역)

 

(고전 2:1-3, 개역)

 

(8:17, 개역)

 

(29:13, 개역)

(고후 3:18, 개역)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심을 믿습니까?

주님의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심을 믿습니까?

나는 말마다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고백하며 맡기고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나는 주님을 얼마나 잘알고 있습니까?

나는 주님과 얼마나 친합니까?

(4) 내 양은 나를 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다른말로 하면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따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따라가고 마귀를 따라갑니다.

(12:1-2, 개역)

 

(2:1-3, 개역)

 

(5:19-21, 개역)

 

(8:5-8, 개역)

 

 

정과 욕심에 젖어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주님만 따라가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삽니다. 성령을 따라삽니다.

 

(14:6, 개역)

 

(16:24, 개역)

 

(벧전 2:19-21, 개역)

(5:22-24, 개역)

 

(5:13-16, 개역)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이요 양들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어라고 해도 나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주님이 보여주신 본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오직 예수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나는 내 양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모든 인간들은 영원한 생명 부활생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태어날 때 부터 죄로인하여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3:23-24, 개역)

 

(2:1-3, 개역)

(1) 첫 생명은 타락 오염됨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과 교통할수 있는 능력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수 있는 능력의 기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으로 인하여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3:1-10, 개역)

 

(3:15-19, 개역)

 

(2:17, 개역)

 

그 결과 하나님과는 단절이 되고 마귀와 교통하며 마귀를 닮아가게 되었습니다.

 

(요일 3:8-10, 개역)

 

(2) 생명이 다르면 전혀 다른 운명을 가집니다.

그런 마음과 생각으로 살기 때문이며 그런 성향으로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생명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오 생명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망가운데 처합니다. 결국 늙어 죽고 심판을 당합니다. 사망은 죽어 장사되고 지옥 심판을 당하는 일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오늘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망은 거대한 진공청소기 같아서 모든 인류를 빨아 들이고 있습니다. 그 사망의 영향력 아래 사는 사람들은 행복을 모릅 니다. 싸우고 죽이고 미워하고 절망하며 시기질투하고 여러 가지 문제와 질병가운데 삽니다. 그 삶이 허망할 뿐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아담의 생명을 이어받았고 예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이런 삶을 사망의 그늘아래 있는 인생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런 사망의 그늘아래 있는 인생들이 해방될수 있는 길은 오직 이 세상의 빛이되시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1:18-25, 개역)

 

(9:27, 개역)

(6:23, 개역)

 

(9:1-2, 개역)

 

(8:12, 개역)

 

(3)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우리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려고 그 험한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새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천국 시민이 되기 때문입니다.

(5:17-18, 개역)

 

(6:23, 개역)

 

(5:24, 개역)

 

(6:47-54, 개역)

 

 

 

(14:6, 개역)

 

(3:16, 개역)

(17:3, 개역)

 

(11:25-26, 개역)

 

(요일 5:12-13, 개역)

 

(20:31, 개역)

 

(4)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말 그대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물론 그냥 오래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오래 산다는 뜻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영원히 살지만 그곳은 지옥입니다.

 

(14:17, 개역)

 

(21:3-4, 개역)

 

(5:29, 개역)

 

(14:9-12, 개역)

 

(9:47-48, 개역)

 

(21:8, 개역)

 

(5)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의 생명과 연합된 부활생명입니다.

(11:25-26, 개역)

 

(6:4, 개역)

 

(5:17, 개역)

 

(8:1-2, 개역)

 

(고후 4:10-11, 개역)

 

(6) 이 생명은 주님의 마음을 가질수 있게 합니다.

(2:5, 개역)

(고전 2:16, 개역)

 

(4:23, 개역)

 

(5:5, 개역)

 

(7) 영원한 생명은 천국 가는 생명입니다.

(22:1-5, 개역)

새 생명을 가진 자들만이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수가 있습니다.

(고후 5:17, 개역)

 

(8) 생명은 능력입니다.

(고후 4:7-10, 개역)

 

(9) 생명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줍니다.

(2:13, 개역)

 

(1:17-19, 개역)

 

(10) 새 생명은 천국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에서 나와서 천국을 행하여 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3:19-21, 개역)

 

(6:14, 개역)

 

(3:11-13, 개역)

 

(25:21, 개역)

 

(9) 이 생명에서 아무도 줄수 없는 천국의 기쁨이 솟아납니다.

(14:17, 개역)

 

(10) 이 생명을 또한 모든 사람들은 사랑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요일 4:8, 개역)

 

(11) 이 생명은 성령안에서 활성화 됩니다.

(8:1-2, 개역)

 

(12) 새 생명은 날마다 자라나고 새로워집니다.

(4:22-24, 개역)

 

(고후 4:16-18, 개역)

 

(13)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8:15, 개역)

 

(4:6, 개역)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며 따라서 결코 멸망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생명을 성령과 주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는 죽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대하여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으로 말미암아 천국 문이 열리고 새로운 신분과 능력과 지혜와 기쁨과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4. 내 양은 아무도 내양을 빼앗을 수 없다.

주님은 절대적으로 아무도 자신의 양을 빼앗을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보다 더 크십니다. 하나님의 고아대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 인간들은 정말로 티끌과 같습니다.

우주가 너무 넓어서 우주에서 쓰이는 거리 단위는 광년입니다. 빛의 속도로 일년간 운행한 거리입니다. 우주 과학자들은 몇억광년 먼데 있는 별을 관찰합니다. 지구는 태양계에 속하여 있고 태양계같은 것 수억개가 모여 은하수를 만듭니다. 이 은하수 수억개가 모여 우주가 됩니다. 우주의 크기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우주를 만드신 우주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물리적인 세계도 영적인 세계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시편 150편은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보다 크시기에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수 없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아무도 하나님의 양을 빼앗을수가 없습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소유를 빼앗을수가 있겠습니까?(43:1-3, 개역)

 

(3)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아무도 주님의 양을 빼앗을수 없습니다.

(1:1-3, 개역)

 

(50:1, 개역)

 

(9:6, 개역)

 

(1:15, 개역)

 

(3:17, 개역)

 

(4) 하나님은 전지하시기에 주님의 양을 빼앗을수 없습니다.

(139:1-5, 개역)

 

(5)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에 아무도 양을 빼앗을수 없습니다.

(139:6-10, 개역)

 

(6) 하나님은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아무도 양을 빼앗을수 없습니다.

(8:38-39, 개역)

(7) 절대로 떠나거나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1:5-6, 개역)

 

(8)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121:1-8, 개역)

 

(9)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기에 아무도 빼앗을수 없습니다.

(32:10, 개역)

(17:8, 개역)

 

(2:8, 개역)

 

주님의 양인 우리는 절대 안전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5.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한분 하나님이시지만 세 인격으로 계십니다.

성부성자 성령이십니다.

이 삼위일체론 때문에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습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의 신정을 인정하지 않는 이단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장 거부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문제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고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가서 믿음으로 우리는 그 진리를 받아들일수가 있습니다. 아무 인간의 이론도 시원하게 삼위일체를 설명할길은 없습니다. 가장 근접한 비유는 인간의 몸과 혼과 영으로 비유될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난데 내안에 또 하나의 내가 있다고나 할까요.

 

(1) 예수님은 아버지를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볼수가 없는 분이시지만 예수님은 우리 안에 나타나신 볼수 있는 하나님 이십니다.

(1:18, 개역)

 

(2) 예수님을 본 것은 하버지를 본것입니다.

(14:9, 개역)

 

(3)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1:1-3, 개역)

 

(4)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말이 어떤 사람들의 인격과 뜻을 나타내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1:1-3, 개역)

 

(5)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등장합니다.

(고후 13:13, 개역)

 

(6) 주님은 하나님과 함께 앉아 계신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4:1-5, 개역)

 

(7:10, 개역)

 

(22:1-5, 개역)

 

(7)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6:16, 개역)

 

(20:31, 개역)

 

(8) 예수님은 하나님 만이 하실수 있는 일들을 하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는 만드심, 풍랑을 잠잠케 함, 죽은자를 살리심 등등입니다.

부활하심은 그 절정입니다.

 

(1:1-4, 개역)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능력있는 아주 좋은 분 정도로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욱 크신 분이시오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자 우주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 온우주가 찬양하며 경배드릴 그때 까지 전도와 선교와 충성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2:14, 개역)

 

(11:9, 개역)

 

(4:8, 개역)

 

(5:11-12, 개역)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되심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하시는지 알고 계십니까?주님의 절대 보호하심을 알고 계십니까?

나는 부활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진 놀라운 존재임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버리셨음을 알고 계십니까?

나는 천국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나는 천국의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확신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나는 주님을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과 신실하심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너는 내양이라는 사랑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더욱 큰 확신가운데서 큰 자유함과 기쁨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