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눅 10:25-37)

마라나타!!! 2012. 8. 28. 00:21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눅 10:25-37)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복음서에서 우리는 항상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고소할 기회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도 율법사가 예수님께 도전하였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수 있는지 말해 보라고 예수님께 물은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어떻게 되어있느냐고 그에게 물었고 율법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것을 대답하였습니다. 그것은 이 율법사가 율법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대답을 잘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대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사는 자기를 의롭게 잘나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 이 질문 속에는 여러 가지 의도가 숨겨져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택함을 받지 못한 버려진 인간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가서 예수님이 창녀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같이 지내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율법을 잘 아는 자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율법사는 한마디로 독선과 교만에 사로잡혀 있는 자였던 것입니다. 외식과 위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영생을 얻으니 너는 가서 그대로 행하라고 하셨을때 그는 주님 앞에서 자기가 사랑을 실천하고 있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엉뚱한 질문으로 주님께 물었습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예수님은 이에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로 대답 하신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영생을 얻은 자인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써 살고 있는지 아니면 형식뿐인 자로 레위인 제사장같은 자는 아닌지 점검하고 다시 한번 사랑의 삶을 살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 율법사의 질문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 속에는 착하고 선하게 살아감으로 영생 천국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마귀가 하는 큰 거짓말들이 몇가지가 있는데 그것중의 하나가 바로 착하게 살면 천국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절대로 나의 선한 행위로 공로를 얻어 영생천국을 얻는 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착하게 보이는 바로 그 사람이 지옥갈 위험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하다고 칭찬해주고 자신도 괞찬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은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예수님의 피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거듭나서 새생명을 가지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갈수 없습니다. 내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로움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두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흘리신 피로 내 죄값이 다 치루어 진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완전한 의로움이 내 의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죄짐을 지시고죄인이 되시고 나는 예수님의 의로움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 1:12)

(요 3:5)

(행 2:38)

(롬 10:9-10)

(행 16:31)

(롬 10:13)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갈 2:16)

(롬 3:23-24)

(롬 3:28)

(롬 6:23)

(엡 2:8-9)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바로 용서받은 죄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 4:12)

(요 14:6)

 

(2) 율법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임을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율법사가 율법을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는 하지만 결코 그것을 행할 능력은 주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돌판에 쓰여진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판에 새겨주신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성령께서 내 마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나를 정죄하지만 구원할 능력은 없습니다.

복음은 능히 할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신 30:11-14)

율법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음을 강조하지만 정작 할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갈 3:24)

복음은 새 언약이요 내가 예수님의 피와 성령으로 거듭나서 완전히 새사람이 되는 것을의미합니다. 그 새생명으로 새성품이 탄생되어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고 이웃을 사랑할수 있습니다.

(고후 5:17)

(롬 13:10)

 

(3) 우리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물론 이질문은 나는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것을 행하라고 하셨을때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이런 질문을 한것입니다.

자신은 자기 이웃을 알려주시면 기꺼이 행하겠고 행할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그에게 말씀하여 주신것입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였고 이방사람들은 결코 구원받지 못할 자들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나가서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의롭게 될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교만과 독선과 율법주의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 바리새인과 세리가 함께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을 비유로한 말씀에서도 그들의 교만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눅 18:9-14)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교만을 버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인하여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우리들입니다. 항상 겸손히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들을 통하여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깨우치게 하시고 당황하게 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1)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성경말씀에서 우리는 항상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다. 문자적인 교훈과 영적인 교훈들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는 약 20마일 거리입니다. 걸어서 가기는 조금 먼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여리고 보다 약 800미터 높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 길은 험하였고 강도들이 자주 나타났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상징적으로 오늘날 교회를 뜻하고 우리 성도들이 머물러야 하는 믿음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지켜야 하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누가 복음 24장에서 예수님 부활후에 낙심한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주님을 만난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멀어지고 말씀에서 멀어지고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일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행 1:4-5)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해야 하고 말씀안에 거해야 합니다.

(요 15:3-7)

(고전 15:58)

(요 14:23)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 40:27-31)

 

(2) 강도를 만났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에서 주님에게서 멀어지면 하나님의 보호 장막이 거두어지고 마귀의 공격을 받기 쉽습니다.

영적으로는 마귀가 바로 강도입니다.

인생의 행복을 강도질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창세기에서 우리 인간들은 마귀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들을 강도당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창 3:16-19)

(창 3:24)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인간들은 사망의 권세아래 마귀의 권세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늙어서 죽고 죽은 다움에는 영원한 죽음인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것입니다.

마귀는 인류역사에 창 3장에서 등장하여 계시록 20장에서 퇴장을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시기 까지는 마귀가 이 세상에 출현하고 역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행인은 강도를 당하여 거의 죽게 되었다 고 말씀합니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강도당하여 죽게 된 인생들을 위하여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사단의 왕국이 된 이 세상에서 마귀를 몰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것입니다.

(요일 3:8)

(골 2:15)

(마 12:28-29)

(요 10:10)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역사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영적인 싸움가운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엡 6:10-20)

 

그러므로 지금은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곳마다 마귀의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주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칠 권세를 주셨음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안에 계신 주님은 마귀보다 더 크고 강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로써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요일 4:4)

(마 10:1)

(마 28:18)

(빌 2:9-11)

(눅 10:19)

(막 16:15-20)

마귀는 이 세상에서 각종 악함과 더러움을 조장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하며 대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각종 질병 성적인 죄악 폭력 허무함 자살 마약, 이단, 우상숭배, 물질주의, 진화론, 율법주의, 등등 이루말할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일을 부추기고 속이고 있습니다. 세상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살다가 자기와 함께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결국 인생을 슬픔과 허무함과 심판과 멸망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결국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질것이지만 알고 보면 지금도 이 세상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많은 인생들이 마귀의 종으로 어두움과 죄악과 정욕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요일 2:15-17)

 

마귀에게 강도 당한 이 세상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가는 곳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하는 일에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행 10:38)

(눅 4:18-19)

 

3. 레위인과 제사장은 지나갔지만 사마리아 인은 강도 만난자를 도와 주었습니다.

(1) 레위인이 강도만나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레위 인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입니다. 제사장을 돕고 성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돕는 자들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간이유는 여러 가지 일수 잇습니다.

종교적 이유에서 죽은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 질수 있다고 생각 했기 때문일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자기가 손해볼까봐 그냥 지나갔을수도 있습니다.

자기도 강도 당할까봐 두려워서 서둘러 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은 위선이요 비겁입니다.

레위인들은 어떤 면에서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요일 3:18)

성도들은 이웃의 불행을 못본채 지나가서는 않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돕고 위로하며 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할것입니다.

 

(2) 제사장도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제사장도 그냥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제사는 드리고 율법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오늘날 목사 성직자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냥 지나간 이유는 레위인과 비숫할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하게 보여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전 13:1-3)

이 것은 또한 율법과 구약의 제사 제도로는 강도만난 이웃을 구원할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위선에 빠지고 외식에 빠진것입니다.

(마 23:15)

(마 23:25-26)

(히 9:8-10)

(히 10:15-20)

 

(3) 사마리아 인은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사마리아 인은 그 속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강도만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여기서 사마리아 인은 상징적으로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강도만난 인간들을 도와 줄수 있는 진정한 이웃은 바로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막 10:45)

(요 3:16)

(갈 1:4-5)

(눅 5:32)

예수님을 본 받아 우리는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엡 4:31-33)

(요 13:34-35)

 

(4) 포도주를 붓고 기름을 발랐습니다.

포도주는 소독제요 기름은 치료제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는 바로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요 기름은 성령님이십니다.

(눅 22:18-20)

(행 2:38)

(고전 6:9-11)

 

(5) 두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 인은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주막 주인에게 두데나리온을 주면사 잘 간수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두 데나리온은 그 당시 두달치 숙박비라고 합니다.

기꺼이 희생을 한것입니다.

찬 신기한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해석하여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주막은 교회로 값을 주신것은 피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으로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주막 주인은 목회자들이요 성도들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우리는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성도와 교회를 잘 섬겨야 할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고전 6:19-20)

(롬 14:7-8)

(행 20:28)

(고후 11:28)

값주고 사신바 된 우리들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교회를 충성되이 섬기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6) 비용이 더들면 돌아 올때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인이 전적으로 이 강도만난 사람을 책임지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비용이 더 드는 것 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들에게 상급주심을 상징할수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한없는 위로와 상급과 칭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계 7:14-17)

(마 25:23)

(딤후 4:7-8)

(계 2:10)

 

(7) 그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안 사람들은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면서 이방땅에서 이주하여온 사람들과 섞이게 되었고 혼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돌아왔을때 성전을 짖지 못하게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 하면서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결과 유대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부정한자들로 여겼고 원수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사람들은 북쪽으로 갈일이 있어도 요단을 건너 일부러 먼길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더나가서 예수님 안에서는 남녀 이방 차별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힘없고 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롬 10:12)

(엡 2:19-22)

주님은 강도만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죄악과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율법과 형식은 우리를 구원할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성령을 통하여 얻은 새 생명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우리들의 구원자 이십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충성을 다하여야 할줄로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상급 주실줄로 믿습니다.

 

4. 주님은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비유말씀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주님과 율법사의 주고 받은 이야기 속에서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도 발견 해야 합니다.

 

(1) 내가 바로 강도 만난자 였습니다.

나도 이전에 선한 사마리아 인인 예수님을 만나기전에는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던 자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귀가 나의 기쁨과 믿음을 도적질 하여 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며 주님 만을 바라 보아야 할줄로 믿습니다.

 

(2) 주님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 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 인이요 율법사는 정작 아무것도 할수 없는 비겁하게 그냥 지나가 버리는 종교인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하여 진정으로 자기를 희생할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사람 진정한 능력자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롬 5:5)

(롬 5:8)

(고후 5:14-15)

(계 1:5-6)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항상 주님을 사랑하며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나도 주님처럼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안에 계신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 처럼 살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이 내안에 있고 주님의 성품을 가지고 살게 된것입니다.

(요 14:12)

(요일 4:7-11)

오늘 본문을 자세히읽어 보면 강도만난자는 길 정 가운데 쓰러져 있었고

레위인과 제사장은 그를 옆으로 피하여 지나 갔습니다.

 

우리가 일부러 불행을 당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도외주지는 못한다고 할찌라도

우리들의 인생길을 가다가 만나는 불행한 자들을 외면하지 말고 주님의 심방으로 도와 줘야 할줄로 믿습니다.

그들은 바로 주님이 나를 시험하시려고 보낸자들이면 그들은 주님이 자신과 동일시 하시는 자들입니다.(마25)

 

(4) 예수님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밖으로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주님의 사랑, 주님의 겸손, 주님의충성을 닮아가야 합니다.

(갈 2:20)

(갈 5:22-24)

(고후 4:7-10)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 때 주님은 내 마음속에 나타나시고 내 밖으로 나타주십니다.

(요 14:21)

(요 14:23)

 

(5)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삶입니다.

(마 28:18-20)

(행 1:8)

 

(6)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기 때문에 내힘과 소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는 먼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나를 향한 그리고 이웃 인간들을 향한 주님의 삼장을 헤아리게 되고 우리도 그 마음으로 이웃을 용서하며 사랑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일 4:7-11)

 

(7) 율법사는 바로 그냥 지나간 레위인이며 제사장과 같은 입장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너는 바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율법주의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율법사 너는 하나님도 이웃도 사랑하지 않는 위선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도 이 율법사처럼 성경을 좀 안다고 종교적 교만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웃을 정죄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는 자는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수 있습니까?

그것은 절대로 우리의 힘이나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저기 중심적입니다.

사랑을 행할만한 능력과 힘이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날 때 새생명 새성품을 주시고 주님이 내안에 들어와 사시면서 내가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할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사랑의 성품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성품처럼 나도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미워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착각이요 위선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입니다.

율법사는 바로 강도 만난자입니다.

주님은 네가 바로 강도만난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사가 이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마리아 인이 바로 그에게 도움을 줄 이웃입니다.

 

율법사가 증오했던 이방인들에게 도움을 받게 될수 있다는 예언적 사건입니다.

이방인 성도들이 이제 유대인들을 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율법사가 적대시하고 미워하였던 예수님이 바로 그를 도와줄 그의 진정한 이웃입니다.

율법사는 강도만난 이웃을 만나면 자신은 도와주는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주님은 네가 바로 강도 만난자요 참된 이웃인 예수님이 필요한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사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 내가 도와 줄 것입니다.

물었지만 주님은 누가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자비를 베푼자입니다.

율법사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길에서 누구든지 강도만난자를 만나면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줄로 믿습니다.

 

(1) 종교적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2) 착한 선행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거짓말을 깨닫고 오직 예수 오직믿음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오직예수신앙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3) 율법주의 형식주의를 버리고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4) 우리는 강도 만난 이 세상에서 선한 사마리아인 예수님을 전하여 영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5) 강도 만난 나를 십자가의 희생으로 구원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죽도록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6)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7)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 얼굴 뵈옵고 창찬듣는 그 순간을 향하여 날마다 힘을 다하여 달려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나의 믿음은 형식인것은 아닙니까?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무심한자는 아닙니까?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비겁한 자는 아닙니까?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이기적인 자는 아닙니까?

나는 강도 만난 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계십니까?

내가 바로 지금 강도만난자는 아닙니까? 나의 선한 사마리아 인은 바로 예수님이심을 알고 있습니까?

 

율법사의 질문은 무엇이었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그냥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도와 주었습니다.

주님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Real Meaning of Good Samaritan Parable>

(Luke 10:25-37)

(1) The Questions

(2) Man robbed on the way to Jericho from Jerusalem.

(3) The Samaritan Helped the Robbed one.

(4) Go and Do Likew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