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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위대함>(고전 13:1-13)

마라나타!!! 2021. 6. 13. 03:57

                                       <사랑의 위대함>

(고전 13:1-13, 개역)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13, NKJV) [1]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but have not love, I have become sounding brass or a clanging cymbal. [2] And though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understan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though I have all faith, so that I could remove mountains, but have not love, I am nothing. [3]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but have not love, it profits me nothing. [4] Love suffers long and is kind; love does not envy; love does not parade itself, is not puffed up; [5] does not behave rudely, does not seek its own, is not provoked, thinks no evil; [6] does not rejoice in iniquity, but rejoices in the truth; [7] bears all things, believes all things, hopes all things, endures all things. [8] Love never fails. But whether there are prophecies, they will fail; whether there are tongues, they will cease; whether there is knowledge, it will vanish away. [9] 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10] But when that which is perfect has come, then that which is in part will be done away. [11] When I was a child, I spoke as a child, I understood as a child, I thought as a child; but when I became a man, I put away childish things. [12] For now we see in a mirror, dimly, but then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but then I shall know just as I also am known. [13] And now abide faith, hope, love,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고린도는 지금의 그리스에 있던 항구도시였습니다.

그 시대에 가장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세속적인 문제도 문제고 영적으로도 서로 파가 나뉘어서 분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들은 많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은사를 자신들의 유익과 자랑과 과시를 위하여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2장에서 은사를 설명하면서 더 나은 것을 보여주겠다며 그 은사들을 사랑으로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랑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사랑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을 알게 하시고 거듭난 성도들에게 부어주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삶의 원리는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사랑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닮아 사랑으로 충만한 부부였습니다. 내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단이 들어오고 타락한후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종류의 사랑은 있었을것입니다. 에로스 펠레오 등입니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이 없으면 다른 종류의 사랑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께로서 온것이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증거되었고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증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고 이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줄 알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말과 입술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하지만 우리들의 주님을 닮은 인격과 사랑의 행실로 증거하는 것이 더 강력합니다.

사랑은 강력한 치유의 능력이 있으며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며 자유를 줍니다.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사랑은 능력이며 선한 강력한 영향력입니다.

오늘도 이말씀을 통하여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더욱 확장되어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1. 사랑의 중요성.

(1) 말을 잘해도 사랑이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전 13:1-3, 개역)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NKJV) [1]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but have not love, I have become sounding brass or a clanging cymbal. [2] And though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understan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though I have all faith, so that I could remove mountains, but have not love, I am nothing. [3]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but have not love, it profits me nothing.

 

(고전 2:1-5, 개역)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1-5, NKJV) [1] And I, brethren, when I came to you, did not come with excellence of speech or of wisdom declaring to you the testimony of God. [2] For I determined not to know anything among you except Jesus Christ and Him crucified. [3] I was with you in weakness, in fear, and in much trembling. [4] And my speech and my preaching were not with persuasive words of human wisdom, but in demonstration of the Spirit and of power, [5] that your faith should not be in the wisdom of men but in the power of God.

 

(고전 4:20, 개역)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1Co 4:20, NKJV)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in word but in power.

 

(2) 은사가 많아도

(고전 13:1-3, 개역)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NKJV) [1]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but have not love, I have become sounding brass or a clanging cymbal. [2] And though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understan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though I have all faith, so that I could remove mountains, but have not love, I am nothing. [3]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but have not love, it profits me nothing.

 

(3) 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어도

(고전 13:1-3, 개역)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NKJV) [1]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but have not love, I have become sounding brass or a clanging cymbal. [2] And though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understan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though I have all faith, so that I could remove mountains, but have not love, I am nothing. [3]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but have not love, it profits me nothing.

 

(4) 구제를 많이 해도

(고전 13:3, 개역)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Co 13:3, NKJV)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but have not love, it profits me nothing.

 

(5)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사랑입니다.

(요일 4:19, 개역)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Jn 4:19, NKJV) We love Him because He first loved us.

 

(3:16, 개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Jn 3:16, NKJV)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5:8-10, 개역)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5:8-10, NKJV) [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toward us, in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9] Much more then, having now been justified by His blood, we shall be saved from wrath through Him. [10] For if when we were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God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we shall be saved by His life.

 

(6) 사랑은 구원의 표시입니다.

(요일 3:13-16, 개역)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13-16, NKJV) [13] Do not marvel, my brethren, if the world hates you. [14] We know that we have passed from death to life, because we love the brethren. H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abides in death. [15] Whoever hates his brother is a murderer, and you know that no murderer has eternal life abiding in him. [16] By this we know love, because He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also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the brethren.

 

(7)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습니다.

(고전 8:1-3, 개역)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고전 8:1-3, NKJV) [1] Now concerning things offered to idolsWe know that we all have knowledge. Knowledge puffs up, but love edifies. [2] And if anyone thinks that he knows anything, he knows nothing yet as he ought to know. [3] But if anyone loves God, this one is known by Him.

 

(8)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십니다.

(고후 5:5, 개역)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2Co 5:5, NKJV) Now He who has prepared us for this very thing is God, who also has given us the Spirit as a guarantee.

 

(9) 성령으로만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고전 2:10-12, 개역)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0-12, NKJV) [10] But God has revealed them to us through His Spirit. For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yes, the deep things of God. [11] For what man knows the things of a man except the spirit of the man which is in him? Even so no one knows the things of God except the Spirit of God. [12] Now we have received, not the spirit of the world, but the Spirit who is from God, that we might know the things that have been freely given to us by God.

 

(10)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5:4-6, 개역)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5:4-6, NKJV) [4] You have become estranged from Christ, you who attempt to be justified by law; you have fallen from grace. [5] For we through the Spirit eagerly wait for the hope of righteousness by faith. [6] For in Christ Jesus neither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avails anything, but faith working through love.

 

(11) 사랑이신 하나님

(요일 4:7-11, 개역)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7-11, NKJV) [7] Beloved,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is of God; and everyone who loves is born of God and knows God. [8] He who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for God is love. [9] In this the love of God was manifested toward us, that God has sent His only begotten Son into the world, that we might live through Him. [10] In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to be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11] Beloved, if God so loved us,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12)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Rm 10:4, NKJV) For Christ is the end of the law for righteousness to everyone who believes.

 

(13) 모든 계명의 핵심

(22:37-40, 개역)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2:37-40, NKJV) [37] Jesus said to him,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 commandment. [39] "And the second is like it'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On these two commandments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2. 사랑의 성격.

사랑장인 고전 13장에 니와 있는 사랑의 정의는 주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1) 사랑의 종류

필레오 에로스 등이 있습니다.

filevw(5368, 필레오)

좋아하다 be fond of, 사랑하다 lov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필레오(Homer 이래)는 필로스(fivlo", 5384)에서 유래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a) 필레오는 흔히 아가파오(ajgapavw, 25: 사랑하다)와 의미나 용도가 매우 유사하지만 일반 헬라어에서(70인역과 신약은 그렇치 않음) 아가파오보다 더 자주 사용되며 '좋아하다'는 의미보다 '사랑하다'라는 의미를 더 지니고 있다.

 

(b) 필레오는 중성 목적어와 함께 사용될 경우에 '좋아하다, 중히 여기다'를 의미한다.

 

(c) 필레오는 부정사와 함께 사용될 경우에 '~하기를 좋아하다, ~하는데 익숙해 있다, ~하는 것이 습관이다'를 의미한다.

 

(d) 필레오는 '입맞추다'를 의미하며, 아가파오와는 달리 애무나 특히 입맞춤과 같은 애정의 행위를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필레오는 70인역본에서 30회 나오며, 아헤브(사랑하다, 27:4; 27:9; 27:14; 37:4; 29:3; 3:8; 3:1; 56:10), 나샤크(입맞추다, 27:26; 27:27; 29:11; 29:13; 33:4; 48:10; 50:1; 3:27; 7:13; 24:26; 1:2; 8:1), 레아(친구, 1:2)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필레오는 신약성경에서 2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필레오는 마 6:5에서 그 본래 의미로 사용되었다. 거기에 보면 외식하는 자가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한다(사랑한다)고 되어 있다.

23:6과 눅 20:46도 유사한 경우들이다. 11:43에서 아가파오가 사용되고 비슷한 내용인 눅 20:46은 그렇지 않다는 점은 의미상의 차이가 항상 지켜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b) 10:37에서는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사랑을 의미한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여기서 한마디 부언하자면, 이 문장은 신학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단어가 신학적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왜냐하면 비교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문장의 표현법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하나님의 통치의 선물인 아가페로 표현되었다. 이 문장의 초두에는 친족간에 서로 나누는 타고난 사랑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사이에 끼어 들게 될 때, 보통 가정의 친교의 끈과 고리까지도 하나님의 가족 사이의 새로운 교제를 위해 풀릴 수가 있다는 점이다.

 

(c) 11:3; 11:36에서 나사로와의 예수님의 사랑의 결속을 언급한다. 여기서 친구에 대한 사랑이 언급되지만, 나사로는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며, '그는 나의 친구'가 아닌 '우리의 친구'라고 불리운다(11:11).

 

(d) 15:19에서 '자기의 소유의 것을 사랑한다'는 기본 의미가 명백히 나타나 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은 세상(코스모스),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둠의 영역으로도 묘사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코스모스 안에(in) 있는 사랑이나 코스모스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에 대한 증오와 동일하다(참조: 4:4).

요일 2:15은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하신 말씀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e) 16:27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요구에 부응하였으며, 예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에 답하여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신다. 여기서의 사랑은 요 3:16에서 언급되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사랑과는 구별되는 듯하다. 그러나 필레오와 아가파오가 모두 성자에 대한 성부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듯이(5:20; 3:35 ), 제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아가파오로 표현될 수 있다(참조: 14:21, 14:23). 하지만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13:1)이나 제자들 상호간의 사랑(13:34), 아버지께 대한 예수의 사랑(14:31)을 나타낼 때는 오직 아가파오만 사용되었다. 요한복음에는 성부에 대한 제자들의 사랑이 아무데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f) 21:15이하에서 아가파오와 필레오가 번갈아 나오는데 일부 성경 해석가들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 질문에서 필레오를 사용하셨기 때문에 베드로가 근심했다고 주장하지만(21:17), 요한복음에서 이 단어들은 거의 동의어이므로 베드로가 근심한 까닭은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물으셨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이 사람들 보다"(21:15) 자신을 더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특별한 사명을 맡기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이 위임도 부인이나 특별한 사랑의 시인과 마찬가지로 세 차례 반복된다. 이 예외적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하시는 제자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에 대응되는 것이며, 목회 사역과 죽음이라는 베드로의 이중적 사도 직분의 기초가 된다. 베드로는 '아가파오'라는 사랑은 물론 '필레오' 사랑까지 언급한 것이다.

 

(g) 고전 16:22에서 바울은 필레오를 단 한번 사용했으며, 또한 중요하기도 한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거기에서, 퀴리오스()에 대한 사랑은 구원의 조건으로 묘사되어 있다. 은혜는 오직 말과 행실로써, 즉 온전히 믿음을 바쳐 주께 사랑을 고백하는 자들에게만 임한다.

 

(h) 3:15,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찌어다". 믿음 안에서의 사랑으로 이해된 인간적인 사랑을, 아들(Son)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하여 새로이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때, 비로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믿음 안에서"라는 문구는 그리스도교적 중요성을 나타내며, "우리를"이란 단어는 특정한 배타성을 암시한다. 사도 바울에 대한 사랑은 교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연합하는 결속이 된다.

 

(i) 3:19에서 승천하신 주님은 구약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신다(3:12). 그리스도의 징계하시는 사랑(참조: 고전 11:32)은 다름아닌 하나님 자신의 사랑이다. 이 배경은 공동 식사 안에서 사귐의 성취를 이루는 하나님의 우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잘못하는 아이를 뉘우치도록 교도하는 가운데서 나타나는 부모의 사랑이다.

22:15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절대적으로 대립을 이루는 명제 가운데 앞의 개념들을 특징지어 주는 결론적 구절을 보게 된다(참조: 3:19; 요일 2:15; 4:4).

 

(j) 14:44에서 필레오는 '입맞추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참조: C. Brown; G. Stahrin).

 

(2) 오래참음

makroqumevw(3114, 마크로뒤메오)

오래 참다, 인내하다 have patienc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마크로뒤메오는 마크로스(makrov", 3117: , )와 뒤모스(qumov", 2372)에서 유래했으며, '참다, 인내하다, 기다리다'(Plut.)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마크로뒤메오는 70인역본에서 10회 나오며, '참다, 인내하다, 기다리다'(7:16; 집회서 2:4), '인내심이 강하다, 참을성이 있다'(19:11; 집회서 18:11; 집회서 29:8)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마크로뒤메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18:26; 18:29: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참조: 18:23 이하). 이 비유에서 첫째로는 왕의 오래 참음에, 둘째로는 종의 오래 참음에 호소하고 있다. 이 비유는, 결코 반제될 수 없는 빚에 대한 완전한 강요와 아울러 진노의 심판을 전제한다. 그 양을 무시하고 퀴리오스(주인)는 빚 전체를 지불 유예나 연기가 아니라 관대한 은혜로 탕감해 준다. 이러한 종류의 오래 참음은 그와 상응하는 종 편에서의 오래 참음을 요구한다. 이러한 응대의 부재는 오래 참음을 의문시하게 할 것이다. 이 신적 용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법칙이 아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이며,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 이웃에 대한 용서의 사랑이라는 응답을 야기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취소될 수도 있다.

18:7은 해석에 있어서 논란이 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의 바로 앞에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온다(18:1-6).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다. 이 비유에서 과부는 끈질긴 탄원을 통해 마침내 그 재판관으로 하여금 자기의 원한을 풀어주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하신다.

엘리스(E. E. Ellis)는 네 가지 가능한 해석을 제시하면서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평불만을 잘 참고 받아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해석을 제시했다. 자신은 마 18:26의 유사한 용례를 들면서, 이 해석을 지지한다. 또 전치사 에피(ejpiv, 1909)가 두 가지 경우로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불의한 재판관은 그 과부가 늘 와서 그를 괴롭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18:7)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었으나, 반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하시니 그의 백성과 그들의 울부짖음에 대해 더욱 더 잘 참아주실 것이다. 비유의 문맥에 이 해석이 적합하다.

J. 호스트의 다음과 같은 해석도 고려해 볼만 하다: 의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옳음을 옹호해 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지체하시는가? 물론 하나님이 이 비유(18:1 이하)의 불의한 재판관과 같기 때문이 아니라 택함받은 자들 자신들이 믿음과 기도를 위해 은혜의 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이 믿음과 기도에 의해서만 그들이 응보의 날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참조: 18:8).

 

(b) 그리스도인의 오래 참음.

살전 5:14에서 하나님의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사한 오래 참음을 가지도록 요구한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이 오래 참음은 사랑에 의해 지배되는 성령의 열매로서(5:22) 결국 상호간의 보정(補正)이 된다.

고전 13:4에서 사랑 그 자체는 오래 참음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오래 참음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자질이며(고후 6:6), 지식과 친절을 연결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그 기원을 둔 그리고 즐거운 감내로 자체를 완성하는 하나의 영적 힘이다(1:11). 택함받은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새 의복으로서 이것을 입는다(3:12-13). 이것은 그리스도의 한몸에로의 그들의 소명에 부합한다(4:1이하).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참조: 22:16 이하). 인내는 아브라함이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믿음과 소망의 한 양상이다. 모든 신자도 아브라함처럼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들을 상속받을 수 있다.

5:7에서 신자에게 요구되는 인내에는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데 필요한 것이다. 5:7-11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연결시키고 있다. 즉 하나는 우리의 이웃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시험과 환란을 극복하기 위해 재림 때까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그 편지의 수신자에게 인내하라고 권면하고 있다(5:7-5:10). 주의 강림이 가까우므로 마음을 굳게 하며(5:8),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 서로 원망하지 말고(5:9),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음과 동시에(5:10) 욥처럼 굳은 인내를 소유하라고(5:11; 참조: 1:21 이하; 2:10) 야고보는 권면하고 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이시기 때문이다(5:11; 참조: 10:38; 111:4).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장에서 재림의 외견상 지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는 막연한 연기가 아니라, 인간에게 회개의 충분한 기회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인내의 표시이다.

(참조: U. Falkenroth; C. Brown; J. Horst).

 

(3) 온유하며

crhsteu'omai(5541, 크레스튜오마이)

친절을 보이다 show kindness.

동사 크레스튜오마이는 크레스토스(crhstov", 5543)에서 유래했으며, '친절하다, 온화함을 보이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세속 헬라어 문헌에 나타나지 않으며, 기독교 문헌에만 나온다.

신약성경에서 고전 13:4에 한번 나온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그 자체를 친절로 보여준다. 왜냐하면, 친절(자비)은 사랑의 명확하고도 본질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참조: J.H.Thayer; Walter Bauer).

 

(4) 투기하지 아니하며

zhlovw(2206, 젤로오)

열정적이다, 열심이다 to be zealous.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젤로오(Homer, Hymns. Hesiod이래)는 주로 능동적으로 어떤 사람을 '칭찬하다'를 의미하며, 이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젤로오는 어떤 것을 위해 '열심이다', '칭찬하다', '본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다, 부러워하다'를 의미한다.

 

젤로오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적대적 의미에서 '시기하다', 결혼 관계에서의 '질투하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젤로오는 70인역본에서 약 4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 동사 카나(질투하다, 부러워하다, 시샘하다, 열심이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a) 젤로오는 잠언에서 가장 일관하게 '~를 하려고 노력하다'를 의미하며, 흔히 그렇게 행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나오기도 한다(3:31; 4:14; 6:6).

젤로오는 마카베오일서 2:24; 73:3에서 '격분하다', 26:14에서 '시기하다', 30:1; 37:11에서 '부러워하거나 시샘' 또는 '시기하다', 삼하 21:2에서는 '백성을 위한 열심'을 가리킨다.

결혼 관계에서의 '질투(5:14)를 의미한다.

 

(b)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을 때 이 하나님의 열심은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32:19).

의인은 기분으로가 아니라 특정한 행동으로 하나님을 위해 열심한다(25:11; 왕상 19:10, 왕상 19:14; 왕하 10:16; 마카베오일서 2:24).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젤로오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젤로오는 어떤 사람을 위하여 '열심이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고후 11:2에서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여기서 공동체에 대한 사도의 개인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바울의 강력한 관심사는 복음에 순종하도록 신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4:17에서 바울의 반대자들은 단지 이기적인 목적으로 갈라디아인들의 복지를 위하여 열심을 나타낸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이와 반대로 바울의 사도적 열심은 선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선한 목적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b) 젤로오는 '어떤 것을 ~하려고 노력하다(애쓰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전 12:31; 고전 14:1; 고전 14:39에서 은사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고전 13:4에서는 덕의 함양의 사상이 없으며 부러워하거나 혹은 열렬히 노력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4:2에서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19(TR)에서 '선을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7:9에서 '시기하다'를 의미한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참조: Walter Bauer; J.H.Thayer; A.Stumpff).

 

(5) 자랑하지 아니하며

perpereuvomai(4068, 페르페류오마이)

허풍 떨다, 자랑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페르페류오마이(M. Ant., Etym., Epict., Cicero. )는 페르페로스(pevrpero": 허영심이 강한, 허풍선이의)에서 유래했으며,

 

(a) 페르페로스하다, '자만심이 강하다, 허영심이 강하다, 허풍 떨다, 자랑하다'를 의미한다.

(b) 수사학적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남을 지나치게 극구 칭찬하는 아첨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Cic. and Attic.).

 

2.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페르페류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3:4에 한번 나온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a) 의미의 사람이 (b)의 의미로 행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6) 교만하지 아니함

fusiovw(5448, 퓌시오오)

교만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퓌시오오는 퓌사(fuvsa: 풀무)에서 유래했으며,

 

(a) '부풀리다, 부풀게 하다, 부풀어 오르게 하다',

(b) 비유적으로, '마음이 부풀게(득의 양양하게) 하다, 자만하게 하다', 수동태, '마음이 부풀어 오르다, 자만하다, 거만하게 처신하다, 교만하다'를 의미한다.

 

2.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퓌시오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고전 8:1에서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b) 고전 13:4에서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c) 고전 4:6에서 서로 대적하여 교만하지 말라고 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은 서로 대적함으로 교만하게 된다. 교회에서 지도력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지도권을 애착하는 일이 배타적인 파당을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하든가 또는 부당한 충성으로 타락해서는 안된다. 지도자를 선정하는 일과 그를 높이되 다른 지도자들에게 대립시킬 정도까지 지도자를 높이는 일은 육적인 자랑의 결과이다(D. S. Mez).

 

(d) 고전 4:18, "어떤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고린도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 신자들을 대하기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면서, 또한 바울에 대한 반발로써 스스로 교만하였던 것이다(D. S. Metz).

 

(e) 고전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클링(Kling)의 말과 같이 '몸의 지체가 타락하고 마땅히 보존되어야 할 주님의 교회가 그처럼 더러워지고 욕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참된 영적 교회라면 통한히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시치미를 떼고 신령한 것을 자랑하듯이 그 교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식과 은사를 자랑하기를 계속했으며, 파렴치한 그 죄인을 너그럽게 보아주며 동시에 교만한 마음을 계속 과시했다(D. S. Metz).

여기서 퓌시오오는 고전 4:6; 고전 4:18; 고전 4:19에서도 파벌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도 같은 당파에 속해 있는 자들은 똑같이 나쁜 마음을 품고 그의 비행을 오히려 두둔하였다(참조: Robertson).

 

(f)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거짓 선생들은 겸손해지기는커녕 자만심으로 더 우쭐해진다.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인간의 사색으로부터 나온 신앙은 필연적으로 겸손보다는 교만에 빠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만적 태도는 정당성이 전혀 결여한 헛된 것이다. 이는 그것이 근거한 가상적 지식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요, 단지 인간의 고안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교만을 드러내보이는 마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가 아니라 육체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다(참조: H. M. Carson).

 

(7)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ajschmonevw(807, 아스케모네오)

수치스런 행동을 하다, 수치스러운 것을 느끼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아스케모네오(Eur. 이래; X., Pla. )는 아스케몬(ajschvmwn, 809)에서 유래했으며,

(a) 수치스런 행동을 하다, 비열하게 행동하다, 보기 흉하게 행동하다(X. 이래; Dionys., Plut. ).

(b)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을 느끼다'(Epict. 3, 22, 15)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아스케모네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온다. 25:3에서 칼라(천시당하다, 업신여기다)를 번역하여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 16:7; 16:22; 16:39; 23:29에서 에르야(6172, 벌거벗음, 추한 행위)를 번역하여,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아스케모네오는 신약성경에서 고린도전서에 2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 용법과 같은 사용되었다.

 

(a) 고전 13:5에서 (a)의 의미를 지닌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b) 고전 7:36에서 (b)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8)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zhtevw(2212, 제테오)

찾다 seek.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제테오는 호머 이래로 나타나며, '찾다'(seek)라는 일반적 의미를 지닌다.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제테오라는 말은 '지식을 탐구하는 것' 무엇보다도 특히 '철학적인 탐구'를 의미하는 전문 용어가 되었다(Xen., Cyr. 8, 5, 13). 경우에 따라 제테오는 '법적인 조사'를 나타내는 법률 용어로도 사용되었다(Dinarchus, 18; P. Oxy. 237, 6, 41; 726, 16).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제테오는 70인역본에서 약 400회 나오며, 주로 바카쉬(찾다, 갈망하다, 요구하다, 구하다)의 피엘형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참조: H.G.Link).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제테오는 신약성경에서 82회 나온다. 이 단어의 의미 범위는 그 개념 속에 헬라적 요소와 히브리적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테오는 신약성경에서 한편으로 '어떤 것을 따르며 구하는 것'(15:8), '사상과 의견을 살피는 것'(11:18; 14:1, 14:11), 그리고 '재판상의 심리'(8:50b)를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중한 노력과 바람(6:33; 고전 10:33)에서 인간이 요구하는 주장(8:12)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지 의미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a) 제테오는 '발견하거나 얻기 위해 찾거나 구하다'를 의미한다.

보편적, 독립적으로: 7:7; 11:9; 1:37; 2:45RLmrg., 2:48;[4:42Rec.]; 6:24; 18:4, 18:7; 10:19; 9:11; 사물의 대격과 함께, 값진 진주를, 13:45; 잃어버린 어떤 것을, 18:12; 19:10; 나무의 열매를, 13:6이하; 안식처를, 12:43; 11:24.

아무개의 목숨을 찾다, 해하고자 하다, 2:20; 11:3(4:19, 기타); 보편적으로 "무엇을 구하느냐", 당신은 무엇을 구하는가? 당신은 무엇을 바라는가? 1:38[39]; [4:27].

'생각, 묵상, 추론에 의해 찾다[즉 알아 내기 위해]', '탐문하다, 묻다', 16:19; 11:18; 14:1, 14:11; 12:29; 22:2; 벧전 5:8;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의 자취를 추적하다, 17:27(보편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구하다).

'얻으려고[찾으려고] 애쓰다, '목표삼다', '얻고자 노력하다', "기회를", 26:16; 22:6; "거짓 증거를", 26:59; 14:55; 죽을 기회를, 9:6; "놓이기를", 고전 7:27; "하나님의 나라를", 6:33; 12:31; "위엣 것을", 3:1; "화평을", 벧전 3:11; "썩지 아니함을", 2:7; "영광을", 5:44; 살전 2:6; "재물", 고후 12:14.

하나님의 영광을 진척시키기 위해 힘쓰다, 7:18; 8:50; 확립시키고자 하다, 5:30. 아무개의 유익을 진척시키고자 힘쓰다, 고전 10:33, 같은 뜻으로 고전 10:24; 고전 13:5; 2:21. 너희들의 영혼을 얻고자 힘쓰다, 고후 12:14.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다, 10:20; [3:11Trmrg. WHmrg.].

부정사가 뒤따른 경우: '~하려고 노력하다' '욕구하다', '노력하다': 12:46[47(WHmrg.에서만)]; 21:46; 6:19LTrmrg.; 12:12; 5:18; 6:19; 9:9; 5:18; 7:4, 7:19; 13:8; 16:10; 10:3; 1:10; 2:17; 고전 14:12.

 

(b) 제테오는 '구하다', '요구하다'를 의미한다: "표적을", 8:12LTTrWH; 11:29TTrWH; "지혜를", 고전 1:22; "증거를", 고후 13:3; 아무개에게 어떤 것을 요망, 요구하다, 8:11; 11:16; 12:48; 아무개 안에서 구하다, 즉 아무개에게 요구하다, 고전 4:2.

(참조: J.H.Thayer; H.G.Link).

 

(9) 성내지 아니하며

paroxuvnw(3947, 파록쉬노)

분노케하다 provoke to anger.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파록쉬노(Eur., Thuc., Xen.)는 본래 `날카롭게 하다'를 의미하며

 

(a) `계속 재촉하다, 자극하다',

(b) `화나게 하다, 분노하게 하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파록쉬노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주로 나아츠(멸시하다)의 역어로(14:11; 14:23), 그리고 하크이스(화나게하다)의 역어로(9:18; 105:29; 63:3), 히크치프(분개하게 하다)의 역어로(9:7, 9:22), 하라(분노로 불타다, 분노하다)의 역어로(8:5; 10:3) 사용되었고,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

 

3. 신약성경의 용법

 

파록쉬노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만 사용되었다.

17:16에서 수동태로 바울이 분노한 것을 묘사한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바울의 심령은 격앙되어 속으로 분노하였다.

고전 13:5에서 사랑의 한 속성은 성내지 않은 것이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10)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kakov"(2556, 카코스)

나쁜 bad, 악한 evil.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형용사 카코스(Homer 이래)는 결핍하여 있는 것을 표현하며, 무능력이나 연약함을 나타낸다. 그것은 악과 같이 순수한 도덕적 의미 이상이다. 따라서,

 

(a) 카코스는

'열등한, 변변찮은, 쓸모없는, 무능력한, 초라한',

'도덕적으로 나쁜', '사악한',

'연약한, 약한 뼈'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불행한, 좋지 않는, 파산적인, 악한'을 의미한다.

 

명사 토 카콘, 타 카카(복수)'악함, 고통, 불행(), 파멸'을 의미한다

 

(b) 헬라 세계에서 카코스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견해가 발전하였다: 첫째, 악은 신의 필요에 의해 신에 의해 생겨났다. 둘째, 악은 부분적으로는 인간에 의해 생겨났다. 이러한 견해들은 죄책과 운명이라는 주제들을 통해 비극에서 중복되어 나타난다. 철학은 무지가 악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원론도 존재한다. 선은 필연적으로 악을 내포한다는 사상이나 영혼들은 형벌로서 이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었으며 따라서 지상으로부터 초지상적 선의 세계로 올라가야만 한다는 이론이 그러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인간이 무지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악을 행한다는 사상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플라톤은 또한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사용한 질료와 연관된 변증법적인 필연성에서 악에 대한 정서적 차원과 심지어는 우주적 차원을 발견한다(정신과 질료의 우주론적 이원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자체가 비난 받을 만한 무지가 도덕적 악의 원인이라는 사상에 보다 밀접한 입장을 취한다. 스토아주의 역시 형이상학적 필연성의 사상을 거부한다. 스토아주의는 악을 선의 대응물로 상대화 시키고 악을 거짓된 세계관의 탓으로 돌리며, 전체의 완전이 곧 개인의 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악을 일원론적 체계 속으로 가져오려 한다. 그러나 스토아주의는 악에 대한 심리학적 이원론을 피할 수 없다.

필로에게 있어서 악은 태어날 때부터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선을 선택할지라도 우리는 이생에서 항상 악과 싸움을 하고 있다. 악은 이 세상과 관련되어 있는 실재이다. 그러나 악은 죄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차원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하나님과의 결합으로 인해 극복된다. 플루타르크는 악을 악한 세상의 영혼에 귀속시킴으로 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플로티누스(Plotinus)는 이 불완전이라는 것이 바로 물질의 본성 속에 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물질의 본성은 결국 모든 것을 파생시킨 최고의 선과 빛에 대립이 되는 위치에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도 역시 악은 빛의 결핍, 즉 지식의 결핍이 되는 것이다.

헤르메스 문헌들은 누스(nou'", 3563)를 가지고 있느냐 가지고 있지 않느냐에 근거한 절대적인 대조를 제시한다. 플로티누스는 유일자(the One)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질료에서 악의 원리를 찾는다. 영혼은 질료 속에 침잠되어 있기는 하나, 여전히 신적인 것이며 신과의 합일을 향한 충동을 지니고 있다. 영혼의 신과의 합일은 황홀경이나 죽음에서 이루어진다. 악은 하나의 실재다. 그러나 악은 참된 존재가 없는 실재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우리는 대립되는 두 가지 원리들보다는 오히려 두 가지 대조적인 의지('신성')를 발견한다. 거짓의 영과 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서 지배권을 잡기 위해 싸움을 한다. 우리가 전생에 선과 악 사이에서 행한 선택을 이생에서 행한다. 모든 악은 귀신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악령으로부터 온다. 최후의 심판은 선인과 악인을 분리할 것이며, 최후의 싸움에서 악과 악인들은 정복되고 파멸된다. 조로아스터교에는 기독교 종말론과 유사점이 많다는 데서 특별한 흥미를 끈다. 그러나 전자는 신화일 뿐이요, 기독교는 역사인 것이다(W.Grundmann).

 

2. 70인역본의 용법

 

형용사 카코스는 70인역본에서 227회 나오며, 히브리어 라아를 번역하며, 존재에 객관적 고통을 주는 '', '재앙', 사람들이 행하는 '죄악' 등을 나타낸다.

 

3. 신약성경의 용법

 

형용사 카코스는 신약성경에서 50회 나오며, 그리 중요한 용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신정론의 문제를 대신하여 신약성경의 주요한 요지가 되었으며, 도덕적 개념으로서의 악은 하마르티아(aJmartiva, 266)와 포네로스(ponhrov", 4190)보다 훨씬 덜 중요하기 때문이다.

 

(a)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악의 자리로 생각한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7:21, 7:23와 병행구 마 15:19).

악은 사람으로부터 온다. 그렇지만 인간의 배후에 있는 포네로스(ponhrov", 4190)가 악의 궁극적인 중심지다.

1:13에 의하면 하나님 자신은 모든 악한 것들과 무관하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딤전 6:10에서 돈을 사랑하는 것은 악의 뿌리이다.

3:8에서 야고보는 혀가 "쉬지 아니하는 악"이다고 한다. 그러므로 벧전 3:10에서는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라고 말한다.

 

(b) 카코스는 한정적으로 또는 인격체의 명사형으로(21:41; 24:48; 3:2; 1:12; 2:2), 그리고 사물에 대한 수식어로(7:21; 13:3; 고전 15:33; 3:5; 16:2) 사용된다. 반면 악 또는 악한 것을 나타낼 때는 언제나 중성 명사로 쓰이는데, 이런 경우에는 '불행', '상태가 나쁜', '고통'(16:25; 16:28; 28:5), 또는 '악한 행위', ''(참조: 27:23, 병행구; 23:9; 요삼 1:11) 등의 의미로 해석되며, 바울에게 있어서 특히 그러하다(참조: 7:19, 7:21; 12:21; 13:4; 16:19). 아래서 보다 충분히 설명한다(E.Achilles).

 

(c)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임할 일시적인 파멸이나 영원한 파멸을 가리켜 타 카카(개역: "고난")를 사용한다. 나사로는 지금 타 카카를 가지고 있으며, 부자는 후에 타 카카를 갖는다(16:25). 멸망과 구원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결정은 이생에서는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의 요점은 기계적인 보상(선에는 악 악에는 선)이 아니라, 신뢰와 순종에로의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며, 단지 일시적 운명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운명에 관한 문제이다.

 

(d) 바울은 롬 13:3-13:4에서 이 세상에는 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께서 국가에게 악을 제어하는 임무를 위탁하셨다는 것을 지적한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e) 바울은 롬 7:19, 7:21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선을 요구하시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실제적으로 직면한다. 악은 "한 다른 법"처럼 그 안에서 그의 의지를 지배한다고 했다(7:21, 7:23). 그러므로 악이란 인간의 존재와 특성의 한 표현이다. 인간의 악한 성품은 행위로 나타나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심판 아래 있게 하는 것이다(2:9). 여기서 악은 도덕적인 악 이상이다. 악에는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주장, 즉 불신앙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양면성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면적으로는 선에 동의하나 우리는 선한 의도를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선 대신 끊임없이 악을 행하기 때문에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나아가며, 자신의 힘으로써 악을 정복하고자 하는 온갖 희망은 좌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발견할 수 없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악에 대해 거둔 그리스도의 승리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f) 우리가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이전의 불가능하였던 것이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5).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새로운 실재는 악한 것에 대해 우리가 미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16:19)

이제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왜냐하면 사랑은 악을 생각지도 않으며(고전 13:5) 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13:10). 악이 친교를 해치는 힘이라면,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사랑은 참된 교제를 다시 가능하게 해 준다.

(참조: J.H.Thayer; W.Grundmann; E.Achilles).

 

(12)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ajdikiva(93, 아디키아)

불의, 부정한 행위.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아디키아는 아디코스(a[diko", 94)에서 유래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디키아의 개념은 법률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a) '불의한 행위''불의'를 의미한다.

(b) 이 단어는 '부정(불공정)한 행위''위반, 범죄'를 의미하며, 여기서 절도, 사기, 근친상간 같은 특정 범죄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c) 이 단어는 또한 '상해''위해'를 의미한다.

(d) 더 나아가 불법의 요소, 의로움에 반대되는 것, 진실, 정직함에 반대된 것으로 그 의미가 정의된다.(참조: G. Schrenk, TDNT)

 

2. 70인역본의 용법.

 

(a) 명사 아디키아는 70인역본에서 약 250회 나오며, 36개의 히브리어 단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아디키아는 아원(위반, 유죄, 징벌)의 역어로 가장 자주 사용되었으나(80) 때때로 아울라(패역, 사악, : 10:13), 하마스(포악한 행동, 불의, 불공평, : 7:16[17]), 그리고 셰케르(거짓, : 119:104)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b) 아디키아는 70인역본에서 대부분 단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주의가 개별적인 행동이 아닌 범죄 현상 전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죄는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공의의 신성한 질서를 어기는 것으로 생각되었다(삼상 3:13이하). 따라서 이 죄가 공동체, 곧 그 존재가 하나님의 공의의 보존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부터 죄는 신학적, 사회적 의미의 현상, 즉 공동체를 파괴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언약의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서 악을 추방하라는 요구를 받는다(참조: 16:21이하; 17:4; 17:9). 아원이란 단어가 의식적이며 책임져야 할 행동 뿐 아니라 행동의 결과, 처벌까지 나타낸다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다(26:39). 구약성경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범죄를 초래하는 어떤 위반은 파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며, 만일 행위와 결과의 이 숙명적인 연관성이 파기되지 않는 한 파멸의 영향은 범죄자와 범죄자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되돌아 온다(4:13; 32:23).

첫째로 범죄는 그것이 실수로 저지른 것이었을 때 조차 객관적으로 유해한 사건으로 간주되었다(20:3이하; 삼상 14:24이하). 악한 행위가 미치는 이런 유해한 영향은 오로지 범죄자를 징벌하거나 또는 짐승을 대신 죽이거나 기름 부은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만 저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속죄는 형벌이 아니라 구속 사건이다"(G.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c) 구약성경의 후기 기록들과 후기 유대교에서 아디키아는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개인의 행동에 한정되어 사용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인간에게 확대되어 적용되었다. 이런 문맥에서 70인역본이 때때로 세케르(거짓말하다)를 아디키아로 번역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52:3; 119:29; 119:69; 119:104; 119:163; 144:8; 144:11).

 

(d) 후기 유대교의 묵시 사상은 메시야 도래 이전의 모든 시기를 메시야가 멸하실(에스드라하 4:51이하; 이디오피아어 에녹서 91:5이하; 솔로몬의 시 17:29; 17:36) "불의한 세계"(이디오피아 에녹서 48:7)로 간주했다. 이와 유사한 견해가 랍비 문학에 나타난다(: San. 97a; Midr. Ps. 92:10, 참조: SB 977이하).

(참조: W. Gunther).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아디키아는 신약성경에서 25회 중 바울 서신에 12, 누가복음에 4, 사도행전과 베드로후서와 요한일서에 각각 2, 요한복음, 히브리서, 야고보서에 각각 1회 사용되었다.

아디키아는 때때로 독립적으로 사용되었으며(7:18; 살후 2:12), 이런 구절에서 의미는 일반적인 용법의 의미를 따르며 도덕 규범을 따르지 않는 행동을 의미한다. 인용문에서 이 단어는 구약성경 용법을 따른다(13:27; 8:23; 8:23=31:34).

이 개념들은 디카이오쉬네(dikaiosuvnh, 1343: , 정의; 3:5)와 또는 알레데스(ajlhqhv", 227, 참된) 및 알레데이아(ajlhvqeia, 225, 진리; 7:18; 1:18; 2:8)와 대조되어 있는 문맥들에서 신학적으로 더욱 중요성을 띠게 된다.

아디키아의 속격은 셈어적인 어투에서 형용사 대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13:27; 16:9; 18:6).

 

(a) 아디키아는 고후 12:13에서 내적 강조없이 사용되었다.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는 예외적인 것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바울이 개인적 필요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페를 끼치지 않는 것을 실제적 불공평한 행위나 그 행위의 불공정성으로 말한 반어적 표현이다.

 

(b) 아디키아는 디카이오쉬네(1343, )의 반의어이다. 1:29에서 하나님의 법과 규범의 위반을 나타내는 범죄 목록에서 첫번째 나온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목록 자체는 새로운 것이다.

9:14에서("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이 단어는 '법적 부정이나 불공평', 또는 '심판에 있어서 편파적임(불공평)'이며, 그러므로 재판()에 요구되는 디카이오쉬네의 반대를 나타낸다.

3:5("[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에서 이 단어는 또한 디카오쉬네의 반대이지만 약속의 성취에 있어서 하나님의 불변하는 신실하심인 하나님의 의에 대조하여 불신실의 요소에 특별한 강조를 둠으로 이 시대를 표현한다(3:3-4). 불의의 기준은 인간의 불의를 드러내는(3:5)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이다(3:5; 3:26; 9:14).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불의의 대조에 의해 벌어진 큰 간격은 의로운 분으로서 우리의 위치에 서신 그리스도에 의해 메워졌다(참조: 3:24; 고후 5:21; 지금 고찰하고 있는 단어들을 사용한 바울 어감을 풍기는 구절인 벧전 3:18). 의와 불의의 새로운 구분은 진리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1:18; 2:8).

6:13("불의의 병기"/ "의의 병기")에서 불의는 하나님의 의의 신성한 기본 개념과 대조에서 최고점에 이른다. 아디키아와 디카이오쉬네는 사람을 콘트롤 하는 두 상대적 능력으로서 그들의 도구와 병기를 가지고 사용한다.

 

(c) 아디키아는 알레데이아(ajlhvqeia, 225, 진리)의 반대어이다. 구약성경에서 자주 아디키아가 셰케르(거짓, 허위)의 역어로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바울과 요한도 아디키아를 알레데이아와 대조적으로 사용한다.

요한 7:18"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는 표현에서 아디키아(불의)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우리 자신의 명성을 구할 때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른 한 편에 진리는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울 역시 이 위대한 대조 용법을 사용하였다. 살후 2:10에서 아폴뤼메노이(멸망하는 자들)가 주제인 아파테 아디키아스(불의의 속임)는 진리의 사랑을 받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대조된다. 살후 2:12에서 대조는 진리, 즉 복음을 믿는 것과 부정한 행위인 아디키아를 즐겨 행하는 것 간의 대조이다. 이 두 경우에서 복음(알레데이아)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디키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결과는 하나의 힘으로써 죄를 제거하는 것 뿐 아니라 의로운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다(살후 2:9-12).

고전 13: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에서, 이러한 방법으로 대조는 알레데이아와 디카이오쉬네의 관계를 보여준다. 기독교인들은 사랑에 의해 통제되며, 사랑은 아디키아의 정반대인 알레데이아(진리)에 순종하며, 따라서 아디키아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찾지 못한다.

또한 롬 2:8"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라는 표현에서 하나님의 법의 위반인 아디키아는 진리와 강조적으로 대조되어 있다. 진리와 같이(참조: 6:13), 아디키아는 '지배하는 힘'이다. 그 때문에 불의에서 진리는 저지를 받는다(1:18). 또한 딤후 2:19"불의에서 떠날찌어다"(26:13에서 부분적인 인용)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동일한 대조를 가지는데(참조: 1:18"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와 함께), 곧 아디키아에는 올바른 가르침(교훈)에 대한 거부도 포함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자에게 불의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공동체에 경고하고 있다.

 

(d) 아디키아는 아세베이아(경건치 않음)와 관련되어 있다. 1:18의 바울의 논제,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나타난다"에서 그것은 두 부분, 1:19-23(왜곡된 예배=아세베이아)와 롬 1:24-32(성적 오용과 사회의 타락=아디키아)을 이루고 있으며, 그들 사이를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문맥은 아디키아가 예배의 왜곡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미 "불의로 진리를 막은"이란 말에서 규범(표준)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본질(nature)이 근본적으로 진리에 대한 저지(suppression)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진술은 도덕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사이의 구별을 초월한다.

 

(e) 아디키아는 또한 '하나님께 대적하는 죄'로 정의된다. 8:23"불의에 매임"(쉰데스몬 아디키아)에서 그것은 분명히 죄로 유혹하는 방법으로 그물을 던진다. 요일 1:9에서 아디키아는 분명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의인 하마르티아(aJmartiva, 266)와 관련된다. 이 노선을 따른 정의는 요일 5:17에 나타난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따라서 요일 3:7이하에서 "죄를 짓는 것"(포이에인 텐 하마르티안)"의를 행하는 것"(포이에인 텐 디카이오쉬넨)의 반대이다.

8:12은 새 언약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예레미야 31장의 메시지를 채택하고 있으며, 또한 이 메시지에 기독론적 해석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불의한 자에 대한 용서를 가능케 하시지만(요일 1:9) 용서의 가능성에 대한 이런 기본적인 원칙은 나중에는 사망을 초래하지 않는 죄에 국한되어진 것 같다.

 

(f) 이 용어는 또한 묵시적으로 사용되었다. 살후 2:10에 적그리스도의 역사(operation)에 대한 묘사에서 "불의의 속임"으로 언급되어 있다. 3:6에서 혀는 종말론적으로 생각한 "불의의 세계"와 관련된다.

여기서 "세계"는 단순히 모임의 장소이지만 그 표현은 독특하다. 또 다른 종말론적 개념은 행 1:18에서 발견된다: "불의의 삯(상급)". 벧후 2:13"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는 불의를 위해 지불한 값(보상)에 의해 해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2:11:*** ~의 해를 받지). 벧후 2:15"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발람에 관하여)에서 이 용어는 같은 방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g) 16:8에서 "옳지 않은 청지기"는 자질상 불성실한 청지기를 의미한다. 또한 눅 18:6"불의한 재판관"'정의를 벗어난 불공정한 재판관'이다.

16:9"불의의 재물"은 심각한 문제들을 일으킨다. 이러한 소유물이 필연적으로 도덕적 결함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상은 오히려 고기(음식물)와 정결의 문제의 취급에서 예수님께서 그 자체 아무런 불결이 없다는 규칙을 세운 목적을 받아들이기 쉬운 천연 그대로의 개념이다. 이 비유는 확실히 재물을 "지극히 작은 것"으로(16:10), "참된 것"의 반대로(16:11), "남의 것"으로(16:12), 그리고 진실한 의미에서 우리의 것("너희의 것")이 아닌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으로 소유물을 불의한(아디코곤)으로 간주하지 아니한다. 탈검(Targum)은 이 점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탈검 합 2:9"불의의 재물", 탈검 삼상 12:3과 탈검 호세아 5:11에서 "부정한 소득"(불의의 재물)이란 표현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불의의 재물이란 말에서 자기의 재산을 거짓과 책략으로 모은 시대의 세금 징수인들에 관한 언급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언급은 눅 16장의 문맥과 거의 적합하지 않으나 본래 세리들에 관한 말이 여기서 더 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70인역본에서 셰페르의 여러가지 의미의 번역은 - 아디키아가 언어상 거짓과 속임, 또는 불신실함이나 신뢰할 수 없음을 의미한 것과 같이 - 적어도 원 셈어에서 여러가지 의미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따라서 원 의미는 자기의 주인을 속인 소유물이나 막 4:19("재리의 유혹")에서와 같이 홀리는 덧없는 소유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참조: Schrenk, TONT).

 

(13)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ajlhvqeia(225, 알레데이아)

진리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알레데이아(Homer 이래)는 어원적으로 '가리워져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은 보여지거나, 지적되거나 표현된 정도(범위)의 상태나 사태, 그것도 이러한 보임과 지적과 표현에서 나타내지거나 그 자체 사실 그대로 나타낸 정도의 상태나 사태를 지적하며, 물론 그것은 숨겨지거나 위조되거나 왜곡되거나 생략되거나 은폐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알레데이아는 사건의 진상(full or real stale of affairs)을 의미한다. 이것은

 

(a) 사법에서 여러가지 진술에 대항하여 지지될 수 있는 사건의 진상,

(b) 역사에서 신화와 완전히 구별되는 실재적 사건,

(c) 철학에서 절대적 의미의 참된 것 등을 의미한다(R. Bultmann).

그러므로 알레데이아는 일반적으로 거짓이나 거짓말에 반대되는 '진실'을 의미한다.

 

2. 구약 및 70인역본의 용법.

 

(a) 에메트의 의미와 그 역어 알레데이아.

알레데이아에 상당하는 히브리어는 에메트이다. 구약성경에서 에메트는 126회 나오는데, 85회 알레데이아로 번역되었다.

에메트는 아멘, 곧 확고한, 확실한, 신실한 것으로 생각되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진실한 것을 의미한다. 인격에 대해 사용될 때 그것은 때때로 주로 그의 말, 행동, 사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을 표현한다. 이쉬 에메트는 그의 행위가 진리의 규범에 지배를 받는 사람이며,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이다. 하나님께 적용될 때, 특별히 그의 신실성에 대해 사용된다. 이 단어는 '확고하다'를 뜻하는 어근 'mn에서 파생된 것으로 학자들은 이해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구약성경 학자들은 히브리 저술가들이 말하는 '진리'란 의미상 '불변성'(stability), '확고함'(firmness) 혹은 '확실성'(reliability)이란 개념을 시사해주는 '신실성'(faithfulness)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예프센(Jepsen) 기록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에메트는 신뢰할만한 것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영어로 이 개념을 전달하는 데에는 'Reliability'(확실성)가 가장 포괄적인 단어일 것이다. 에메트는 다른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고 했다. 예프센은 이것을 인간의 진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적용시키는 것으로 말을 맺는다. 진리의 하나님으로서 "여호와는 ... 그의 말씀과 사역 안에서 우리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TDOT 313).

 

이런 견해를 근거로 하여 구약성경에서 진리는 단순히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성에 근거한 것이라는 주장이 종종 있어 왔다. 만일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진리에 대한 히브리적 개념과 헬라적 개념 사이의 근본적으로 분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볼트만(R. Bultmann)은 쉽사리 알레데이아의 헬라어 용법이 셈어적 용법과 대조된다고 말한다(TDNT 238). 이 이론에 따르면, 고전 헬라어에서 알레데이아는 단순한 현상과 대조되는 '진리'(truth)를 의미하는데 반해, 히브리어에서 이에 병행되는 단어는 '불변성'(stability) 혹은 '신실성'(faithfulness)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대조가 어느 점에서는 타당성을 지니는 반면, 이 주장들이 조심스럽게 한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잘못될 수도 있고, 지나치게 단순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에메트는 그 사용된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 에메트가 에메트로 간주되고, 에메트에 의해 지적되는 독특한 사실들을 항상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에 이 단어는 법률적 영역을 넘어가는 불확정한 일반적인 타당성이나 정당성을 지적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진실이나 사실(reality)로 인정하기를 항상 요구하는 사실(facts), 신과 인간의 질서에 일치하여, 존중을 받는 정상 상태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유사하게 미쉬파트(4941: 공의, 심판), 체다카(6666: ), 샬롬(7965: 완전, 평화)과 같은 관련 용어에 반영되어 있다. 그 의미와 일치하여 그것은 전혀 일반적으로 진리나 진실(truth), 심지어 정상적 개념으로서 '진실성'(veracity)으로 번역할 수 있다.

요약하면 알레데이아는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에메트의 의미를 따라, '신실(), 성실(), 충실, 진리나 진실, 확실한, 정직한, 진실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b) 에메트/ 알레데이아의 법률적 용법.

 

에메트는 기본적으로 가장 확실히 법률 용어에서 '사실상의 과정이나 인과의 진실을 묘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 22:20"그 일이 참되어(에메트/ 알레데이아)..."라는 표현에서 앞의 경우와 같이 "그 일이 비방거리에 근거하지 않고 확실한 사실들, 곧 진실에 근거한다면"이란 의미를 읽는다.

 

9:16(9:19)"너희의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라는 말에서 에메트/ 알레데이아는 의와 관련되며, 그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9:15에서는 "참으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에메트가 사물에 적용되는 경우에 법률 용어의 비유적 용법을 보게 된다.

 

24:48"바른 길"이 데레크 에메트(알레데이아), 즉 제시되는 많은 길들 중에 확실히 성공하는 길이다.

 

23:28"내 말을 받는 자(선지자)는 성실함으로(에메트/ 알레데이아) 내 말을 말할 것이라"는 말에서, 에메트는 그 자체 꿈으로가 아니라 실제적 역사(operation, 29)를 나타내는 사실(a fact)을 가리킨다. 8:26에서(이상이 확실하니) 에메트/ 알레데이아는 그 계시가 실제로 일어날 명백한 것임을 확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59:14-15에서 진실이 부족하다는 불평은 13절 상반절에 "배반하는 것"에 관한 언급이 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 이스라엘의 불신실성에 대한 언급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해 보면, 불평의 참된 원인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도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로 거짓말 하기를 가르친다"고 불평하였다(9:5). 틀림없이 이런 일 때문에 결국 어느 누구도 자기 형제를 신뢰할 수 없는 것 같다(4). 그러나 여기에서 주요 문제는 거짓말 그 자체이다.

 

스가랴도 이와 같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을 베풀고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특별히 에메트/ 알레데이아의 개념에 있는 평결(judical finding)과 재판의 기준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시편의 세 구절들에서 진리는, 많은 학자들이 오로지 헬라 문헌에서만 발견된다고 주장하는 거의 그런 의미에서, 은폐(concealment)와 대조하여 나온다. 43:3에서 기자는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라고 기도한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계실 것을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간사한 자"(1)의 유혹적인 말에 직면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건의 진상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와 빛을 필요로 한다. 진리란 그를 어둠에서부터 벗어나게 하여 사건들이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 45:4에서 왕은 진리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염두에 둔 것은 왕의 확실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의심스럽고, 부정하고, 공정치 못하거나 거짓된 것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다 드러낼 그의 마음 자세이다. 왕은 고통 당하는 자들의 고통의 원인을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옹호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51:6"중심에 진실함을"이라는 유명한 언급은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앤더슨(A. A. Anderson)은 여기에서 에메트가 '신실성'(faithfulness)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Psalms, , 396). 그러나 이 개념은 시편 기자가 충실함을 간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기만으로부터의 해방을 간구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인 것 같다. 이 시편의 주제는 고백이며,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보신 그대로 사건들의 상태의 진실됨을 시인하는 것이다. 이 해석은, 만일 우리가 "중심"(inward parts)을 계시의 필요와 관련되어 있는 "덮여 있는 것"으로 의미하고(E. A. Leslie, The Psalms, 1949, 400), 이 시편의 주제를 여호와께서 공정하시다라는 것으로 이해한다면(S. Mowinckel, The Psalms in Isreal's Worship, 1967,, 214), 훨씬 더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잠언에서 진리와 거짓말(혹은 속임수) 사이의 대조를 배경으로 하여 에메트/ 알레데이아가 사용된다. 지혜가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8:7)라고 말할 때, 그 요지는 지혜가 지혜를 갖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혜는 교육과 지식을 통해서 그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것이다. 22:21에서는 진리가 참된 대답이 행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즉 그곳에 거짓이나 허위가 없도록 하기 위해 드러내어진다.

 

(c) 에메트/ 알레데이아의 종교적 용법.

법률적 영역에서 중요한 다른 표현과 같이, 진리의 개념은 특별히 구약성경의 종교적 용어에 그 자리를 잡고 있다. 에메트의 종교적 용법은 항상 비유적으로 이해하지 아니하지만, 종교적 이해(통찰)에서 생겨날 수도 있다. 어쨌든 많은 경우에 그것은 법률적 용법에 의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종교적 사실을 오로지 의미한다. 때때로 사법적으로 의인으로 묘사된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태도를 명백한 진리의 사실에 근거하며, 진리가 하나님 자신의 행위와 말씀 안에 있는 토대인 것 같이 진리를 행한다. 하나님의 진실함은 인간의 진실함을 요구한다(51:6). 여호와의 성산에 거하기에 합당한 자는 그 마음에 에메트("진실")를 말하는 자이며(15:2),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생의 질서라는 의미에서 진리에 전념하는 마음을 가진 자이다. 이 마음은 사회 생활에서 실제적으로 표현된다(참조: 18:8).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한다(참조: 18:9). 하나님은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라고 명하신다(왕상 2:4).

호세아가 호 4:1에서 이 땅에 진실(에메트)이 없다고 불평할 때, 진실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즉 생의 모든 영역에서 진실함은 하나님의 뜻을 틀림없이 아는데서 성장하고, 이러한 앎은 그것에 관한한 진실함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지혜 문학에서 문맥은 셰켈(허위, 거짓)이나 아울라(불의)와 대조시키므로, 진실의 개념을 강조하는 한편(2:6; 11:18; 9:4; 참조: 12:19), 악과 대조는 더욱 명확히 종교적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9:33):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는 진실히(에메트: 신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에메트는 자주 신실성이란 의미로 특히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31:5에서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으로 부른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으로서 일반적으로 의인과 사람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실만 하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으로서 항상 신실하게(에메트) 대하신다. 하나님은 영원히 진실함의 규범을 지키신다(146:6).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진리를 확립하고 그 자체 진리인 법, 곧 진정한 율법(토로트 에메트)을 수여하셨다(9:13).(참조: Quell).

에메트는 보통 "내가 주의 에메트를 찬양하리이다"(71:22)와 같은 특징적인 구절들에서 '신실성'이란 의미로 나온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영원히 지속된다(117:2). 앤더슨(A. A. Anderson)은 시 119:43에 나오는 "진리의 말씀"이란 어구조차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에 관한 기록이란 의미로 해석했다(The Book of Psalms). 30:9에서 하나님의 에메트에 대한 증거의 개념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오는데, 스올(Sheol)이 하나님의 신실성을 선언하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신자에게 하나님의 신실성을 새롭게 증거해 줄 계속적인 경험이 중단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그들에게는 그들이 호소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기 때문이다(30:9; 참조: 38:18).

 

에메트가 '신실성'(faithfulness)이란 의미로 사용될 때 자주 헤세드(변함없는 사랑)와 병행되어 나온다. 이런 경우에 에메트가 '신실성'을 의미하는 문맥과 '진리와 진실'을 의미하는 문맥을 구별해야 한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에게 헤세드와 에메트를 보여주기를 브두엘과 라반에게 요청하는 대목에서(24:49),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충성'(loyalty)'성실'(fidelity)로 볼 수 있겠지만 개역 표준 성서(RSV)에 따라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다라는 의미의 "deal loyally and truly"(충성스럽고 진실하게 대하다)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장(24)의 앞 부분에 나오는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맨처음 만나는 대목에서 엘리에셀을 "헤세드와 에메트를 끊이지 않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약속에 충실하고 신실했다는 것이다(24:27). 32:10에서 야곱은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그가 하나님의 모든 신실하심(에메트)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32:10).

그 특징은 시편에서 찬양과 기도가 모두 하나님의 신실성을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메트의 용법 중 반수 이상이 이런 의미를 지닌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의 모든 길은 ... 인자와 진리로다"(25:10)라고 외칠 때,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가 언약에 대한 충성으로 특징 지워지기 때문에 아주 신뢰할 만하다고 증거하는 것이다(M. Dahood). 에메트가 시 57:3; 57:10; 61:7; 69:13; 108:4; 115:1에서 헤세드와 결합되어 나올 때, "신실성"(faithfulness)이 에메트의 의미로 나온다. 흠정역 성서에 나타나 있듯이, 이런 의미에서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난다"(85:10)라고 번역된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은 그의 신실성에 대한 하나의 표현으로 명시된다. 그리고 알레데이아는 '충실, 성실'을 뜻하는 에무나(88:11-49), '신실한, 신뢰하는'을 뜻하는 에문(12:1; 31:24), '확실한, 진실한'을 뜻하는 야칩(3330; 2:8), '정직한'을 뜻하는 야샬(3474; 23:7), '완전, 성실'을 뜻하는 톰(8537, 28:6), '진실'을 뜻하는 케쇼트(7187; 2:47), '진실로'를 뜻하는 옴나(9:2; 19:4), 우림(33:8)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에메트가 사용된 여러가지 측면들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매우 많은 문맥들에서 진리가 단순히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말씀으로만 아니라 행위로 자기의 진리를 드러내시며, 이 진리는 사실상 그의 백성의 체험 속에서 입증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진리에 대한 존중을 추상적인 이론으로가 아니라 그들의 이웃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구두상의 상업적 거래에 대한 일상적인 증언으로 나타낸다.

119:142에서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단순한 실존적인 진리 이상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신자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보여줄 등이요 빛이다(105). 여기에서 그는 사실상 그와 관련될 때의 사건의 진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내발 ... 내길").

 

이러한 진리는 신뢰할 만하며 또한 확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통찰이 오로지 신학적 기초 위에서만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신자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에메트, 헤세드, 에무나)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의지할 것이다. 그러나 에메트의 이런 특별한 용법이 이 단어의 모든 용례들의 배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인들은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던 논리적 진리, 곧 참된 말은 그것이 실제와 일치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는 점, 그리고 진리의 하나님에게 있어서나 진실한 사람에게 있어서 언행이 일치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참조: 24:14; 145:18). 진리를 말과 행동의 일치로 보는 개념이 신약성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3. 알레데이아의 신약성경의 용법.

 

신약성경에서 알레데이아는 109회 사용 중, 바울 서신과 요한의 기록에서만 9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a) 알레데이아는 "확실성과 힘을 지니는"(has certainty and force)"에 대해 사용되었다(에메트의 의미로).

타당한 규범. 알레데이아는 엡 4:21에서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이 진리는 지적 진리에 대한 단순히 이론적인 감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복음에서 나타날 때는 진리에의 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와 만남으로써, 결국 삶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이 변화를 통해서 신자들은 과거의 속임수에서 벗어나게 된다.

2:5에서도 알레데이아는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함이라". 여기서 바울은 유대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문제가 된 것은 완전히 "복음의 진리"라고 선언하였다. 바울의 판단에 따르면, 복음을 더럽히도록 유혹하는 것은 곧 진리(타당한 규범)를 더럽히도록 유혹하는 것이요, 그 반대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혹에 굴복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성실의 의미에서나 구원사에서의 현재 있는 그대로의 실제 상황이라는 의미에서도 진리 곧 타당한 규범을 부인하는 것이다.

2:14에서 알레데이아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게바는 복음의 타당한 규범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고후 13:8"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는 바울의 언명에서 진리는 복음의 진리인 동시에, 더 나아가서 이 언명은 아마도 진리의 개방에 의해(그 결과야 어쨌든간에) 진리의 능력이 그리스도의 주의와 복음을 오직 보급시킬 수 있다는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다. 진리는 타당한 규범이다. 하나님의 요구는 롬 2:8과 롬 2:19에서 알레데이아이다.

 

올바름, 정직. 알레데이아는 에메트와 같이 '올바름, 정직'이라는 보다 약한 의미를 가진다. '진리를 좇는 것(행하는 것)'이란 표현에서 나타난다(3:21; 요일 1:6). 유사하게 요이 1:4; 요삼 1:1 이하에서 "진리에 행하는 것"은 정직하게 행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같은 맥락을 따라 알레데이아는 아디키아(ajdikiva, 93: 불의)의 반대이다(고전 13:6; 1:18). 이 단어는 또한 디카이오쉬네(dikaiosuvnh, 1343: )와 결합하며(4:24; 5:9; 6:14), 아마도 때때로 그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3:14; 5:19).

 

(b) 알레데이아는 '진술의 사실'(truth of statement)에 대해 사용되었다. 26:25에서 바울은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참된 ... "(레마타 알레데이아스)은 환상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엪 알레데이아스라는 문구는 일반적으로 '사실과 일치하여''사실대로'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12:32; 4:25; 22:59에 나온다. 따라서 엪 알레데이아스를 말하는 것은 단순히 그 사건의 사실을 정확하게, 혹은 바르게 진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눅 4:25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서 중요하다. 예레미아스는 주장하기를 이 문구는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을 강화하고 자기 권세를 나타내고 자기 메시지의 확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신 것이라고 한다(J. Jeremias, New Testament Theology).

 

(c) 알레데이아는 드러난 '사건의 실상이나 진상'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1:18("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서 확신하는 것은 이 경우에서 알레데이아를 하나님의 요구하는 것으로나 의(디카이오쉬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롬 1:19"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는 말을 보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된 사실(revealed reality)"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5("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단순히 프슈도스(yeu'do", 5579: 거짓, 허위), 즉 우상에 반대되는, 참된 또는 실질적인 하나님을 의미하지 않으면 위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Bultman).

좀 더 설명하면, 바울은 알레데이아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자기 의지의 계시나 혹은 심지어 율법을 통해서든 어느 순간에는 창조를 통해서든 자기 존재의 계시를 나타낸다. 이런 용법은 로마서의 처음 두 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사악함으로 인하여 "진리를 막고"(1:18),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꾼다(1:25). 그러므로 진리에 순종치 않는 자에게는 진노가 있을 것이다(2:8). 반대로 율법 그 자체는 지식과 진리의 구체화이다(2:20)("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진리는 근본적으로 복음의 진리가 아니다. 바울은, 요한의 경우와 같이 사람들이 메시야를 알아볼 수 있는 지식을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창조주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거부하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바울은 모든 이방 세계가 고의적으로 복음-진리를 거부하였다고 말하지 않고 이 세계가 창세로부터 하나님과 그의 주권적인 주장들에 대해서 고려될 수 있는 것, 즉 분명히 보여진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1:20)을 고의적으로 은폐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된 사실'이다.

유사하게 알레데이아는 다음과 같은 전치사와 함께 '실제적으로(real)'를 의미한다. 1:6(엔 알레데이아)에서 실제적인 경험을, 4:27과 행 10:34(엪 알레데이아)에서 실제적인 행위를 표현한다. 한편 롬 2:2에서 카타 알레데이안을 '사실과 일치하여, 사실대로'를 의미하며, 2:11에 프로소포렘프시아(편파적임, 불공정)와 반대되는 것이다.

요일 3:18에서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는 대조는 헬라에서는 흔한 표현이다. "행함과 진실함으로"'실제적 행위로'를 뜻한다.

또한 고전 헬라어의 표현 '진실을 말하다'70인역본에서 뿐만 아니라(대하 18:15; 8:7), 신약성경에도 나온다. 5:33에서 알레데이아는 "사실"을 의미한다. 무리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만진 혈루증 앓는 여인은 "모든 사실"을 고하였다. 즉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사실을 말했다. 9:1에서 참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반대이며,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고후 12:6에서 참말을 하는 것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8:40; 8:45 이하; 16:7에서도 역시 '진리를 말하는 것'이 나오는데, 여기서 알레데이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듣거나 본 사실들, 곧 하나님의 계시로 해석할 수 있다.

 

(e) 알레데이아는 '믿거나 의지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신뢰성이나 신뢰할만함, 3:3 이하; 15:8.

성실, 진실, 진심. 알레데이아는 '거짓말, 은폐, 속임수'와 반대되는 '진실' truth이라는 의미를 지니거나 '성실' sincerity의 의미로 나온다. 22:15 이하(12:14)에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을 올가미에 걸리게 하려고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질문을 시작한다: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알레데스) 참으로써(엔 알레데이아)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여기에서 요점은 예수님이 그 말을 함으로써 얻어질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리를 감추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그는 자기 견해를 피력하는데 정직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고후 7:14("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고후 11:10("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에도 나타난다. 따라서 그것은 고전 5:8에서 에일릭리니아(명확, 순수, 성실)와 연결되어 있으며, 1:18에서 프롭하시스(편파적임, 불공정)와 반대된다. 때때로 헨디아디스의 형태로 친족어와 관계되어 있다: "믿음과 진리"(딤전 2:7). 요이 1:1과 요삼 1:1에서 이 용법이 사용되었다: "참으로 사랑하는 자",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를 가리킨다.

 

(f) 알레데이아는 복음, '참된 가르침 또는 믿음'에 대해 사용되었다.

고후 13:8: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여기서 알레데이아는 (a)의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다른 복음(에테론 유앙겔리온)(참조: 고후 11:4)과 대립되는 참된 교리를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고후 4:2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반적으로 그의 활약으로 분명히 나타낸 알레데이아로 부르기도 한다("진리의 나타냄"). 이 경우에 알레데이아는 앞에 나온 말 로고스 투 데우("하나님의 말씀")의 개념을 포함시킨다(참조: 고후 7:14; 1:5 이하; 1:1 이하).

 

5:7에서 바울은 마치 "복음을 순종치" 아니했다고 말한 것처럼(참조: 10:16). "진리를 순종치" 않는 것에 대해 말한다.

 

벧전 1:22에 의하면 기독교의 믿음은 "진리를 순종함"이라고 할 수 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참조: 벧전 1:21 이하).

 

또한 복음의 설교(전도)는 진리의 말씀이다(고후 6:7; 1:5; 1:13 ).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진리를 아는데 이르는 것"이며(딤전 2:4; 딤후 3:7; 딤전 4:3; 10:26; 요이 1:1).

 

살후 2:10-살후 2:12에서는 알레데이아는 "거짓"(yeu'do", 5579)"불의"(ajdikiva, 93)라고 불리는 적그리스도의 계시에 대립되는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딤전 3:15에서 엑클레시아(교회)"진리의 기둥과 터"로 묘사된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벧후 1:12에서 알레데이아는 단순히 기독교 신앙이다.

 

알레데이아가 '참된 가르침'이라는 것은 특히 그릇된 교훈과 반대된다.

딤전 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후 2:18,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딤후 3: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알레데이아는 순종할 의향에 의해 결정되는 피스티스의 개념처럼 "권위있는 교훈"이다.

딤후 4: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1: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g) 알레데이아는 또한 "진짜임", "하나님의 실체", "계시"를 의미한다.

8:44에서 신적 능력으로서의 알레데이아와 반신적인(anti-divine) 것으로서의 프슈도스(거짓)가 대조되어 있다. 알레데이아와 프슈도스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진정한 가능성들로 이해된다. 이것은 말씀과 말씀의 경청에 대한 생각에 의해 결정되는 계시에 의해 보존되므로, 우리는 또 다시 진정한 존재의 가능성을 지닌다. 알레데이아는 하나님의 실체,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짐으로, 즉 죄로 말미암아 구성된 인간 존재와는 반대되고 가까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실체이며, 계시는 하나님과 조화되지 않는 존재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기적 사건이다. 계시에서 그의 고유한 존재의 참된 가능성이 그에게 드러나며, 그 때, 그와 만나는 계시의 말씀에 직면하여 그는 항복할 것을 결심한다. 그러므로 알레데이아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성이나 비교(esoteric)의 지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인 각오와 연습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순종하는 믿음 속에서 일어난다.

 

8:44에서 하나님의 실체와 반신적 실체 간의 대조가 나타난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그러나 이것은 간접적으로 알레데이아가 생명을 주며, 알레데이아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은 것은 죽음으로 인도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 말씀은 또한 알레데이아가 있을 때에 알레데이아는 그 자체가 구체적인 행위를 이루는 결정적인 힘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뒤따르는 말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거짓말" 또는 "허위"라는 첫 번째의 잠정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그 문맥은 명백히 첫째, 신성한 실체와 악마적인 실체가 모두 말로 표현되었다는 것과, 둘째, 이들 실체들이 존재의 활동 방식인으로서의 현실이라는 것, 또는 역으로 하나님의 또는 악마적인 실체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의 모든 활동 방식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요일 1:8과 요일 2:4에서 하나님의 계시된 실체로 인한 존재의 결정이 지적되어 있다: "진리가 그 속에 있지"(않다). 이것은 또한 그러한 결정이 구체적인 행위로 그 자체를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요한복음에는 특유의 다의성(ambiguity)이 생겨난다. 예수님께서 알레데이아를 말씀하실 때에 이것은 첫 번째로 "진리를 말하다"라는 표면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또한 "말씀으로 계시하다"를 의미한다(8:40; 8:45; 8:46, 반대의 개념인 프슈도스[yeu'do", 5579] 대신에 더 일반적인 하마르티아[aJmartiva, 266]가 사용된 곳, 특히 요 8:47, 알레데이아 대신 하나님의 말씀[타 레마타 투 데우]이 쓰여진 곳).

 

이 단어가 세례(침례) 요한에 대해 말해질 때 같은 이중의 의미가 나타난다: 그가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5:33). 그것은 요 18:37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여기서 빌라도의 질문이 그 말씀을 강조하고 계속되는 말씀에서 알레데이아가 스스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실체라는 것과 그것의 이해는 자유로운 존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실체로 말미암은 존재의 결정에 기초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계시로서 알레데이아는 기노스케인(아는 것, 8:32; 요이 1:1, 요일 2:21)의 대상이다. 첫번째로 표현되는 것은 이해될 수 있는 말씀(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과 같은 계시의 결정적인 능력의 특성이다.

알레데이아는 본질적으로 질문한 사실의 표면적인 진실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것을 일반적이고 표면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면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엘류데리아(ejleuqeriva, 1657: 자유)가 인간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참조: 8:34), 의미하는 바는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계시에 대한 지식이다.

17:17; 17:19의 진리도 마찬가지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즉 아버지에 의해 예수님께 위탁된 선언),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하려 함이니이다"(17:19). 계시의 말씀은 말 또는 사상의 집합체도 아니고, 구체적인 마주침으로 성취되는 말씀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예수님 개인과 그의 역사에서 성취하신 사건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에 의해 드러난다(17:17-17:19). 그는 단순히 그의 말씀에 의한 전달로서가 아니라 알레데이아를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함으로 알레데이아를 가져오므로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해질 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그러므로 계시는 목적에 이르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수단인 동시에 목적(조에: 생명)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신성이 나타날 때에 진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나님께서 계시로 나타나신다는 것은 요 1:14; 1:17에 나오는데, 거기서 "독생자의 영광""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으로, 즉 하나님의 실체는 그것 안에 나타난다고 묘사되었다.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에 대한 요구(4:23 이하)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요한에게는 알레데이아 뿐만 아니라 프뉴마도 인간과 완전히 구별되는 신성의 본질과 출현의 영역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 의미는 참된 예배는 영성과 의인화된(anthropomor- phic) 개념이 제거된 하나님의 개념에 기초한 순수한 지식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본질 즉 프뉴마에 의해 결정될 때에 일어난다. 알레데이아가 더해진다면 이것은 그러한 예배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계시(4:25)에 의해 결정될 때에, 따라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신 계시자(1:17-18; 14:6)에 의해 결정될 때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세상을 떠나시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는 요 14:17; 15:26; 16:13에서 "진리의 영"이라고 해석되며, 이것이 요한복음이 이 공동체에 주어진 "성령"의 전통적인 개념을 이해하도록 의도한 방식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참조: 특히 막 13:11; 1:8). 바로 그분 자신이 요 14:16에서 보혜사라는 용어를 선택하신다. 프뉴마 테스 알레데이아("진리의 영")가 단순히 하나님의 성령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 알레데이아 만큼이나 하기오스에 의해서도 표시되기 때문이다(참조: 17:17-17:19). 그러나 그 단어가 프뉴마에 대해 말할 때에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16:13)는 우리에게 요한에게 하나님의 진리는 항상 계시 안에서 작용하므로, "진리의 영"으로서 역사하시는 파라클레토스(보혜사)의 역할은 공동체에서 계속 역사하는 계시로 묘사되고, 요일 5:6에서 증거하시는 프뉴마는 바로 알레데이아와 같다. 같은 의미로 요일 4:6에서 "미혹의 영"과 대조되는 "진리의 영"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어떤 것이 하나님에 속한 것인지 아니면 불경한 세력에 속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은 실제적인 행위, 즉 공동체 안에서 선포된 말씀을 듣는가 또는 안듣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레데이아는, 그것이 선포된 한은, 옳은 교리이며 프슈도스(거짓, 거짓말)는 잘못된 것이다(요일 2:21). 한편 요삼 1:3의 알레데이아가 계시에 의하여 결정되는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일 1:6"진리를 행하는 것""거짓말을 하는 것"과 반대되는 삶의 방식(-->242)을 나타낸다. 참으로 요삼 1:12에서 어떤 사람이 "뭇 사람에게" 가졌다는 증거는 "진리에게도"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계시는 공동체를 결정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요삼 1:8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공동체가 훈계,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함이니라"로 그것의 구체적인 기독교적인 행위에 동기를 부여한다. 이 결정이 개개의 신자들을 결속시킨다. 그 때문에 요한이서의 저자는 편지의 표현을 사용하여 그의 지도자들에 대해서 말한다: "1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요이 1:1-요이 1:3).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Bultman; A. C. Thiselton).

 

(14) 모든 것을 참으며

stevgw(4722, 스테고)

덮다, 제지하다, 참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스테고는 '덮다, 감추다, 비밀로 하다, 보호하다, 막다, 제지하다, 참다, 견디다, 유지(지속)하다'를 의미한다.

 

2.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스테고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고린도전서와 데살로니가전서에만 사용되었다(고전 9:12; 고전 13:7; 살전 3:1; 살전 3:5).

 

(a) 살전 3:1; 살전 3:5에서 스테고는 목적어를 가지지 않으며 "참다 to endure"를 의미한다. 바울은 그의 전도의 직무에 강요 당하여 어린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바울은 메케티 스테곤테스(살전 3:1) 또는 메케티 스테곤(살전 3:5)하여 자신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낸다.

 

(b) 사도의 권리와 삶의 방식을 다룬 고전 9장에서 고전 9:12은 삽입적인 어구이다. 고전 9:1-11에서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아내를 데리고 다니고 그의 전도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갈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이것은 바로 앞과 바로 뒤의 구절들에서 그 언급은 사도들의 고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을 견딘다 또는 참는다"라고 번역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그 의미는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자제한다(즉 사도의 정당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이다.

 

(c) 고전 13:7은 여러가지 번역이 가능하다. 여기서 스테고는 '참다, 견디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용서하다, 참아주다'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사전적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a) '모든 것을 덮다'(b) '억제하다, 자제하다'라는 번역이 남는다. (b)의 의미는 중간태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추천할만한 번역은 '모든 것을 덮다'이다. 이 번역은 그 용법에 대한 우리의 비평에 비추어 볼 때 전혀 문제가 없다. 사랑의 덮개로 덮는다는 사상은 그것과 잘 맞는다. 그것은 또한 고전 9:12에 의해 입증된다. 유일한 의문은 판타 스테게이가 보다 더 엄밀히 "모든 것(입 밖에 내면 해로운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키다"로 해석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것은 "모든 것을 덮다"와 거의 다르지 않다. 따라서 믿음과 소망과 견딤에 대한 말씀에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덮는 것을 언급하여 확대한 고전 13:7은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박은, 그리고 이미 이 사망의 세계에 들어 온 사랑은 이웃에 대해 완전히 비이기적인 특징을 지니는 종말론적 실체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인 고전 13:4-6의 적절한 요약을 제시한다.

(참조: W. Kasch; Walter Bauer; J. H. Thayer).

 

(15) 모든 것을 믿으며

 

pisteuvw(4100, 피스튜오)

믿다 believ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피스튜오(Aeschyl., Soph.,이래)는 피스토스(pistov", 4103)에서 유래했으며, '신뢰하다, 의지하다, 순종하다, 믿다, 위탁하다, 신임하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피스튜오는 70인역본에서 약 90회 나오며, 주로 아만(진실하다, 의지할만하다, 신실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피스튜오는 신약성경에서 약 250회 나오며, 신약성경에서 피스튜오는 일반 헬라어 용법에서와 거의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a) 피스튜오는 '의지하다, 신뢰하다'를 의미한다. 말씀(4:50), 하나님(27:25)에 대해 사용되었다.

 

(b) 피스튜오는 '믿다'를 의미한다. 말이나 말하는 자에 대해 사용되었다(13:21; 4:21).

 

(c) 피스튜오는 인격이나 사물의 여격(4:21; 27:25; 4:17), 사물의 여격(4:50; 24:14), 사물의 대격(11:26; 고전 13:7)으로 구성되어 있다.

 

(d) 피스튜오는 수동태로(믿게되다) 나타난다(살후 1:10; 딤전 3:16).

 

(e) 피스튜오는 대격이나 여격과 더불어 에피(ejpiv, 1909)와 함께(4:5; 4:24; 27:42; 9:42; 11:17; 16:31; 22:19), (ejn, 1722)과 함께(1:15) 사용되었으며, '~을 믿다'를 의미한다.

 

(f) 피스튜오 에이스는 '~을 믿다' believe in는 의미로서(: 2:16; 1:12; 3:18) 일반 헬라어와 70인역본에서는 없는 독특한 것이며, 교회 선교의 문맥에 나타난다.

 

(g) 예수님의 역사에 있어서 특별한 사건들(살전 4:14; 10:9), 기독론적인 문장(20:31)과 믿음을 연관시키는 호티 문장들(피스튜오 호티: 을 믿다 believe that)은 헬라 교회의 언어 용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이 문장들은 특별한 역사적 내용을 기독론적 고백에 결합시킨다.

 

(h) 피스튜오는 '자신을 위탁하다'를 의미하며(16:11; 2:24), 수동태도 이와 같이 사용되었다(3:2; 고전 9:17; 2:7; 살전 2:4; 딤전 1:11; 1:3).

(참조: J.H.Thayer; R.Bultmann; O.Michel).

 

(16) 모든 것을 바라며

ejlpivzw(1679, 엘피조)

기대하다, 바라다 expect, 소망하다 hop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엘피조(Hdt. 이래)는 엘포(ejlpw: 바라다, 기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소망(희망)하다' hope, '기대하다' expect, '추측하다' suppose, '생각하다' think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엘피조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이상 나오며, 15개의 히브리어를 번역하는데 주로 히브리어 바타흐(안전감을 느끼다, 의지하다), 하사(피난하다, 숨다), 야할(기다리다), 카와(근심스럽게 기다리다)를 번역한다.

 

3. 신약성경의 용법

 

엘피조는 신약성경에서 2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소망에 대한 신약성경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구약성경의 소망의 개념에 영향을 받는다. 세속적인 소망을 가리킬 경우에만 이 어군은 (좋은) 기대를 의미한다: 6:34; 23:8; 24:21; 24:26; 15:24; 고전 16:7.

소망에 대한 구약성경의 개념의 신뢰의 요소는 고후 1:13; 고후 5:11; 고후 13:6에서 처럼 인간이 고려될 때 강하게 나타난다. 비록 소망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의존하지만 고전 13:7의 요지는 인간에 대한 신뢰이며 사랑의 산물이기도 하다.

 

(b) 소망이 하나님에 대한 것일 때, 그 소망은 기대, 신뢰 그리고 끈기있게 기다림을 포함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히 11:1에서 처럼, 믿음과 관련있다. 믿음은 우리의 소망에 "실상"을 부여해 주거나 또는 "바라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다.

8:24-25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존재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점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게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사르크스(savrx, 4561)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소망의 기초가 될 수 없다는 구체적인 점도 지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랄 수 없는 것을 소망 가운데 믿고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즉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이상 의지할 수 없고 신적인 미래를 의뢰해야 한다(참조: 4:18).

소망은 기다림으로 단련 받는다. 곧 벧전 1:13에 나오는 "은혜를 온전히 바람"이라는 말씀 앞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즉 무서운 공격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이 본문에는 미래에 대한 모든 계획들을 근본적으로 포기하고 우리의 제한된 지식을 겸손하게 인정하여 우리의 바라는 바들을 생명을 위하여 받은 전투의 명령들에 복종함이 포함되어 있다. 고전 15:19; 고후 1:10에서 소망은 확고한 확신의 요소를 지닌다. 구약성경의 소망 개념과의 주요 차이점은 구원 사역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며 따라서 소망 그 자체가 종말론적 축복이며, 바울이 고린도 교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확신을 가질 모든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고후 1:13; 참조: 고후 1:12). 소망은 구원 행동에 대한 믿음에 의존하며(8:24-25), 이 소망은 성령에 의해 지지된다(참조: 8:26-27).

딤전 4:10("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에서는 종말론적 미래에 대한 기다림의 요소가 지배적이지만, 12:21에서는 소망 그 자체가 종말론적 축복이다: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참조: 벧전 1:3)

(참조: Walter Bauer; R.Baltman; E.Hoffmann).

 

(17)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uJpomevnw(5278, 휘포메노)

머물다, 기다리다, 참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휘포메노(Homer. 이래)는 전치사 휘포(uJpov, 5259: ~에 의하여, ~아래)와 메노(mevnw, 3306: 남다, 머물다)에서 유래했으며,

 

(a) '뒤에 남아 있다, 살아 남다, 머물다'

(b) '고대하다, 기다리다'

(c) '견고히 서다, 확고부동하게 있다'

(d) '견디다, 참다, 버티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군사적인 면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 윤리적인 면에서는 원래 중립적이었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휘포메노는 70인역본에서 약 85회 나오며, 히브리어 카와(기다리다, 바라다), 야할(기다리다), 하카(끈기 있게 기다리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긴장되고 끈기 있고 참을성 있는 기대를 표현한다(3:9; 37:7; 32:4).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휘포메노는 신약성경에서 1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공관복음에서 휘포메노는 '머물다'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소년 예수님께서 홀로 남아 예루살렘에 머무심, 2:43). 인내를 구원의 전제 조건으로 언급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4:13, 병행구, 13:1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모든 자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는 말씀과 아울러 수많은 환난에 대해 예고하셨다(13:13). 이러한 가혹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24:10이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배신하며 미워할 것이라고 언급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미혹되며, 불법이 성행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에이스 텔로스를, "끝까지"(to the end)라는 뜻으로 보다는, "결국"(finally), "실패하지 않고"(without breaking down)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고 힐(D. Hill)은 말한다.

인내에 대한 경고가, 열 두 제자에 대한 선교 명령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마 10:22에서, 동일한 말씀으로 주어진다. 여기에서도 역시 모든 사람에게 미움 받을 것을 예고하셨고 종말론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인내하는 자가 받는 축복에 대해서는 단 12:12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b) 바울서신.

12:12에서 "환난 중에 참으라"고 한다. 휘포메노는 로마서에서는 소망의 특성을 띠고 있는 반면,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랑의 특성을 나타낸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목회서신에서 인내는 기독교인의 필요한 자질로 묘사된다. 택한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는 것이 필요하다(딤후 2:10). 또한 인내는 장차의 "왕 노릇"을 위한 선행 조건이다(딤후 2:12). 바울은 이곳의, 일단의 구절들을 성찬송(liturgical hymn)이나 세례송(baptismal hymn)에서 인용했는지도 모른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1이하).

히브리서 기자는 지속적 인내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즉 지난날 세상의 소유물까지 손실하면서 참았으니 지금도 참을 것이며(10:32; 참조: 10:34),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됨의 증거이니 참아야 한다(12:7).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참으라(12:2; 참조: 12:1; 살후 3:5).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12:3).

 

(c) 1:12에서 인내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참조: 2:7; 8:25). 5:11에서는 욥의 예를 들어 말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참조: 1:21이하; 2:10).

 

(d) 벧전 2:20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통과 법률상의 범죄(crime)로 인해 받는 형벌에 대한 인내를 상호 대조시키고 있다. 후자의 인내에는 칭찬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기독교인들은 그와 같은 형벌을 받으면 안 된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참조: F. Hauck; V. Falkenroth; C. Brown).

 

3. 사랑은 영원함

아하브, 헤세드, 토브

(1) 은사들은 폐함

(고전 13:8, 개역)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Co 13:8, NKJV) Love never fails. But whether there are prophecies, they will fail; whether there are tongues, they will cease; whether there is knowledge, it will vanish away.

 

(2) 사랑의 나라

(15:20-25, 개역)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15:20-25, NKJV) [20] "And he arose and came to his father. But when he was still a great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had compassion, and ran and fell on his neck and kissed him. [21] "And the son said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in your sight, and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22] "But the father said to his servants, 'Bring out the best robe and put it on him, and put a ring on his hand and sandals on his feet. [23] 'And bring the fatted calf here and kill it, and let us eat and be merry; [24] 'for this my son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And they began to be merry. [25] "Now his older son was in the field. And as he came and drew near to the house, he heard music and dancing.

 

(3) 풍요의 나라입니다.

(65:13-14, 개역) [13] 이러므로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4]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65:13-14, NKJV) [13] Therefore thus says the Lord GOD"Behold, My servants shall eat, But you shall be hungry; Behold, My servants shall drink, But you shall be thirsty; Behold, My servants shall rejoice, But you shall be ashamed; [14] Behold, My servants shall sing for joy of heart, But you shall cry for sorrow of heart, And wail for grief of spirit.

 

(4) 하나가 된 나라입니다.

(17:21-26, 개역)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17:21-26, NKJV) [21] "that they all may be one, as You, Father, are in Me, and I in You; that they also may be one in Us, that the world may believe that You sent Me. [22] "And the glory which You gave Me I have given them, that they may be one just as We are one[23] "I in them, and You in Me; that they may be made perfect in one, and that the world may know that You have sent Me, and have loved them as You have loved Me. [24] "Father, I desire that they also whom You gave Me may be with Me where I am, that they may behold My glory which You have given Me; for You loved Me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25] "O righteous Father! The world has not known You, but I have known You; and these have known that You sent Me. [26] "And I have declared to them Your name, and will declare it, that the love with which You loved Me may be in them, and I in them."

 

(4) 끊을수가 없음

(8:38-39, 개역)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8:38-39, NKJV) [38] For I am persuad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r powers,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39] nor height nor depth, nor any other created thing, sha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which is in Christ Jesus our Lord.

 

(5) 사랑의 결과

(14:30, 개역)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Pr 14:30, NKJV) A sound heart is life to the body, But envy is rottenness to the bones.

 

(17:22, 개역)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Pr 17:22, NKJV) A merry heart does good, like medicine, But a broken spirit dries the bones.

 

(6) 말과 행실

(요일 3:18, 개역)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Jn 3:18, NKJV) My little children, let us not love in word or in tongue, but in deed and in truth.

 

(7)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함

(136:1-3, 개역)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3, NKJV) [1] Oh,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For His mercy endures forever. [2] Oh, give thanks to the God of gods! For His mercy endures forever. [3] Oh, give thanks to the Lord of lords! For His mercy endures forever

 

(8) 삼위일체 하나님

(4:1-8, 개역)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 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4:1-8, NKJV) [1] After these things I looked, and behold, 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And the first voice which I heard was like a trumpet speaking with me, saying, "Come up here, and I will show you things which must take place after this." [2] Immediately I was in the Spirit; and behold, a throne set in heaven, and One sat on the throne. [3] And He who sat there was like a jasper and a sardius stone in appearance; and there was a rainbow around the throne, in appearance like an emerald. [4] Around the throne were twenty-four thrones, and on the thrones I saw twenty-four elders sitting, clothed in white robes; and they had crowns of gold on their heads. [5] And from the throne proceeded lightnings, thunderings, and voices. Seven lamps of fire were burning before the throne, which are the seven Spirits of God. [6] Before the throne there was a sea of glass, like crystal. And in the midst of the throne, and around the throne, were four living creatures full of eyes in front and in back. [7] The first living creature was like a lion, the second living creature like a calf, the third living creature had a face like a man, and the fourth living creature was like a flying eagle. [8] The four living creatures, each having six wings, were full of eyes around and within. And they do not rest day or night, saying"Holy, holy, holy, Lord God Almighty, Who was and is and is to come!"

 

(9:2-8, 개역)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2-8, NKJV) [2] Now after six days Jesus took Peter, James, and John, and led them up on a high mountain apart by themselves; and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3] His clothes became shining, exceedingly white, like snow, such as no launderer on earth can whiten them. [4] And Elijah appeared to them with Moses, and they were talking with Jesus. [5] Then Peter answered and said to Jesus, "Rabbi,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and let us make three tabernacles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6] because he did not know what to say, for they were greatly afraid. [7] And a cloud came and overshadowed them; and a voice came out of the cloud,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Hear Him!" [8] Suddenly, when they had looked around, they saw no one anymore, but only Jesus with themselves.

 

(9) 징계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12:5-8, 개역)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12:5-8, NKJV) [5] And you have forgotten the exhortation which speaks to you as to sons"My son, do not despise the chastening of the LORD, Nor be discouraged when you are rebuked by Him; [6] For whom the LORD loves He chastens, And scourges every son whom He receives." [7] If you endure chastening, God deals with you as with sons; for what son is there whom a father does not chasten? [8] But if you are without chastening, of which all have become partakers, then you are illegitimate and not sons.

 

4.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 자랑합니다.

(9:23-24, 개역)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9:23-24, NKJV) [23] Thus says the LORD"Let not the wise man glory in his wisdom, Let not the mighty man glory in his might, Nor let the rich man glory in his riches; [24] But let him who glories glory in this, That he understands and knows Me, That I am the LORD, exercising lovingkindness, judgment,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I delight," says the LORD.

 

(고전 1:30-31, 개역) [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 1:30-31, NKJV) [30] But of Him you are in Christ Jesus, who became for us wisdom from God--and righteousness and sanctification and redemption-- [31] that, as it is written, "He who glories, let him glory in the LORD."

 

(2) 미움시기

(6:16-19, 개역) [16]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6:16-19, NKJV) [16] These six things the LORD hates, Yes, seven are an abomination to Him[17] A proud look, A lying tongue, Hands that shed innocent blood, [18] A heart that devises wicked plans, Feet that are swift in running to evil, [19] A false witness who speaks lies, And one who sows discord among brethren.

 

(3) 자기중심입니다.

(18:30-35, 개역)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18:30-35, NKJV) [30] "And he would not, but went and threw him into prison till he should pay the debt. [31] "So when his fellow servants saw what had been done, they were very grieved, and came and told their master all that had been done. [32] "Then his master, after he had called him, said to him, 'You wicked servant! I forgave you all that debt because you begged me. [33] 'Should you not also have had compassion on your fellow servant, just as I had pity on you?' [34] "And his master was angry, and delivered him to the torturers until he should pay all that was due to him. [35] "So My heavenly Father also will do to you if each of you, from his heart, does not forgive his brother his trespasses."

 

(4) 고집입니다.

(2:5-10, 개역)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2:5-10, NKJV) [5] But in accordance with your hardness and your impenitent heart you are treasuring up for yourself wrath in the day of wrath and revelation of the righteous judgment of God, [6] who "will render to each one according to his deeds"[7] eternal life to those who by patient continuance in doing good seek for glory, honor, and immortality; [8] but to those who are self-seeking and do not obey the truth, but obey unrighteousness--indignation and wrath, [9] tribulation and anguish, on every soul of man who does evil, of the Jew first and also of the Greek; [10] but glory, honor, and peace to everyone who works what is good,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5) 무지함

(고전 14:20, 개역)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1Co 14:20, NKJV) Brethren, do not be children in understanding; however, in malice be babes, but in understanding be mature.

 

(4:14, 개역)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Eph 4:14, NKJV) that we should no longer be children, tossed to and fro and carried about with every wind of doctrine, by the trickery of men, in the cunning craftiness of deceitful plotting,

 

(6) 배우지 못한

(5:13, 개역)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Heb 5:13, NKJV) For everyone who partakes only of milk is unskilled in the word of righteousness, for he is a babe.

 

(7) 성숙하지 못한

(고전 3:1-3, 개역)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1-3, NKJV) [1] And I, brethren, could not speak to you as to spiritual people but as to carnal, as to babes in Christ. [2] I fed you with milk and not with solid food; for until now you were not able to receive it, and even now you are still not able; [3] for you are still carnal. For where there are envy, strife, and divisions among you, are you not carnal and behaving like mere men?

 

(8) 육신적인

(5:16-19, 개역)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16-19, NKJV) [16] I say thenWalk in the Spirit, and you shall not fulfill the lust of the flesh. [17] For the flesh lusts against the Spirit, and the Spirit against the flesh; and these are contrary to one another, so that you do not do the things that you wish. [18] But if you are led by the Spirit, you are not under the law. [19] Now the works of the flesh are evident, which areadultery, fornication, uncleanness, lewdness,

 

(9)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일 2:15-17, 개역)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5-17, NKJV) [15] Do not love the world or the things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16] For all that is in the world--the lust of the flesh, the lust of the eyes, and the pride of life--is not of the Father but is of the world. [17] And the world is passing away, and the lust of it; but he who does the will of God abides forever.

 

(10)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가

(21:15, 개역)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Jn 21:15, NKJV) So when they had eaten breakfast, Jesus said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nah,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He said to Him,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He said to him, "Feed My lambs."

 

(11) 사랑의 지경을 넓혀가자.

(3:17-19, 개역)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7-19, NKJV) [17]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faith; that you, being rooted and grounded in love, [18] may be able to comprehend with all the saints what is the width and length and depth and height-- [19] to know the love of Christ which passes knowledge; that you may be filled with all the fullness of God.

 

청년시절로?

이해가 부족, 사랑이 부족

 

5. 그때는 얼굴대 얼굴로 볼것이요.

(1) 밝혀짐

(1:7, 개역)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Rv 1:7, NKJV) Behold, He is coming with clouds, and every eye will see Him, even they who pierced Him. And all the tribes of the earth will mourn because of Him. Even so, Amen.

 

(고전 3:10-15, 개역)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0-15, NKJV) [10] According to the grace of God which was given to me, as a wise master builder I have laid the foundation, and another builds on it. But let each one take heed how he builds on it. [11] For no other foundation can anyone lay than that which is laid, which is Jesus Christ. [12] Now if anyone builds on this foundation with gold, silver, precious stones, wood, hay, straw, [13] each one's work will become clear; for the Day will declare it, because it will be revealed by fire; and the fire will test each one's work, of what sort it is. [14] If anyone's work which he has built on it endures, he will receive a reward. [15] If anyone's work is burned, he will suffer loss; but he himself will be saved, yet so as through fire.

 

(2) 천국에서는 주님의 얼굴을 보며 살개 됩니다.

(22:1-5, 개역)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22:1-5, NKJV) [1] And he showed me a pure river of water of life, clear as crystal, proceeding from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 [2] In the middle of its street, and on either side of the river, was the tree of life, which bore twelve fruits, each tree yielding its fruit every month. The leaves of the tree were for the healing of the nations. [3] And there shall be no more curse, but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 shall be in it, and His servants shall serve Him. [4] They shall see His face, and His name shall be on their foreheads. [5] There shall be no night thereThey need no lamp nor light of the sun, for the Lord God gives them light. And they shall reign forever and ever.

 

(3) 영광

(21:1-8, 개역)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1:1-8, NKJV) [1] Now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had passed away. Also there was no more sea. [2] Then I, John,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out of heaven from God, 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3] And I heard a loud voice from heaven saying, "Behold, the tabernacle of God is with men, and He will dwell with them, and they shall be His people. God Himself will be with them and be their God. [4] "And God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there shall be no more death, nor sorrow, nor crying. There shall be no more pain, for the former things have passed away." [5] Then He who sat on the throne said,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And He said to me, "Write, for these words are true and faithful." [6] And He said to me, "It is done!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the Beginning and the End. I will give of the fountain of the water of life freely to him who thirsts. [7] "He who overcomes shall inherit all things, and I will be his God and he shall be My son. [8] "But the cowardly, unbelieving, abominable, murderers, sexually immoral, sorcerers, idolaters, and all liars shall have their part in the lake which burns with fire and brimstone, which is the second death."

 

(4) 부끄러운 모습?

(고후 5:8-10, 개역)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 [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8-10, NKJV) [8] We are confident, yes, well pleased rather to be absent from the body and to be present with the Lord. [9] Therefore we make it our aim, whether present or absent, to be well pleasing to Him. [10]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that each one may receive the things done in the body, according to what he has done, whether good or bad.

 

(5) 감격의 눈물?

(고전 15:50-52, 개역)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0-52, NKJV) [50] Now this I say, brethren, that flesh and blood can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nor does corruption inherit incorruption. [51] Behold, I tell you a mysteryWe shall not all sleep, but we shall all be changed-- [52] in a moment,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last trumpet. For the trumpet will sound, and the dead will be raised incorruptible, and we shall be changed.

 

(19:1-7, 개역)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19:1-7, NKJV) [1] After these things I heard a loud voice of a great multitude in heaven, saying, "Alleluia! Salvation and glory and honor and power belong to the Lord our God! [2] "For true and righteous are His judgments, because He has judged the great harlot who corrupted the earth with her fornication; and He has avenged on her the blood of His servants shed by her." [3] Again they said, "Alleluia! Her smoke rises up forever and ever!" [4] And the twenty-four elders and the four living creatures fell down and worshiped God who sat on the throne, saying, "Amen! Alleluia!" [5] Then a voice came from the throne, saying, "Praise our God, all you His servants and those who fear Him, both small and great!" [6] And I heard, as it were, the voice of a great multitude, as the sound of many waters and as the sound of mighty thunderings, saying, "Alleluia! For the Lord God Omnipotent reigns! [7] "Let us be glad and rejoice and give Him glory, for the marriage of the Lamb has come, and His wife has made herself ready."

 

(25:20-21, 개역)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5:20-21, NKJV) [20] "So he who had received five talents came and brought five other talents, saying, 'Lord, you delivered to me five talents; look, I have gained five more talents besides them.' [21] "His lord said to him,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you were faithful over a few things, I will make you ruler over many things. Enter into the joy of your lord.'

 

(6) 인생계산

(12:16-21, 개역)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2:16-21, NKJV) [16] Then He spoke a parable to them, saying"The ground of a certain rich man yielded plentifully. [17] "And he thought within himself, saying, 'What shall I do, since I have no room to store my crops?' [18] "So he said, 'I will do thisI will pull down my barns and build greater, and there I will store all my crops and my goods. [19] 'And I will say to my soul, "Soul, you have many goods laid up for many years; take your ease; eat, drink, and be merry."' [20] "But God said to him, 'Fool! This night your soul will be required of you; then whose will those things be which you have provided?' [21] "So is he who lays up treasure for himself, and is not rich toward God."

 

(7)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고후 5:10, 개역)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2Co 5:10, NKJV)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that each one may receive the things done in the body, according to what he has done, whether good or bad.

 

(8) 상급을 쌓자.

(10:28-31, 개역) [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10:28-31, NKJV) [28] Then Peter began to say to Him, "See, we have left all and followed You." [29] So Jesus answered and said, "Assuredly, I say to you, there is no one who has left house or brothers or sisters or father or mother or wife or children or lands, for My sake and the gospel's, [30] "who shall not receive a hundredfold now in this time--houses and brothers and sisters and mothers and children and lands, with persecutions--and in the age to come, eternal life. [31] "But many who are first will be last, and the last first."

 

(9) 사랑없음은 종말의 징조

(24:12-13, 개역)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4:12-13, NKJV) [12] "And because lawlessness will abound, the love of many will grow cold. [13] "But he who endures to the end shall be saved.

 

(딤후 3:1-5, 개역)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NKJV) [1] But know this, that in the last days perilous times will come[2] For men will be lovers of themselves, lovers of money, boasters, proud, blasphemers, disobedient to parents, unthankful, unholy, [3] unloving, unforgiving, slanderers, without self-control, brutal, despisers of good, [4] traitors, headstrong, haughty, lovers of pleasure rather than lovers of God, [5] having a form of godliness but denying its power. And from such people turn away!

 

6. 그때에는 내가 온전히 알리라.

(1) 모든 것이 이해됨

(21:3-4, 개역)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21:3-4, NKJV) [3] And I heard a loud voice from heaven saying, "Behold, the tabernacle of God is with men, and He will dwell with them, and they shall be His people. God Himself will be with them and be their God. [4] "And God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there shall be no more death, nor sorrow, nor crying. There shall be no more pain, for the former things have passed away."

 

(7:9-17, 개역)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7:9-17, NKJV) [9] After these things I looked, and behold, a great multitude which no one could number, of all nations, tribes, peoples, and tongues, standing before the throne and before the Lamb, clothed with white robes, with palm branches in their hands, [10] and crying out with a loud voice, saying, "Salvation belongs to our God who sits on the throne, and to the Lamb!" [11] All the angels stood around the throne and the elders and the four living creatures, and fell on their faces before the throne and worshiped God, [12] saying"Amen! Blessing and glory and wisdom, Thanksgiving and honor and power and might, Be to our God forever and ever. Amen." [13] Then one of the elders answered, saying to me, "Who are these arrayed in white robes, and where did they come from?" [14] And I said to him, "Sir, you know." So he said to me, "These are the ones who come out of the great tribulation, and washed their robes and made them white in the blood of the Lamb. [15] "Therefore they are before the throne of God, and serve Him day and night in His temple. And He who sits on the throne will dwell among them. [16] "They shall neither hunger anymore nor thirst anymore; the sun shall not strike them, nor any heat; [17] "for the Lamb who is in the midst of the throne will shepherd them and lead them to living fountains of waters. And God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65:17-18, 개역)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65:17-18, NKJV) [17] "For behold, I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And the former shall not be remembered or come to mind. [18] But be glad and rejoice forever in what I create; For behold, I create Jerusalem as a rejoicing, And her people a joy.

 

(65:24, 개역)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Is 65:24, NKJV) "It shall come to pass That before they call, I will answer; And while they are still speaking, I will hear.

 

(2) 욥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의 자초지종을 몰랐습니다.

(1:6-12, 개역)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1:6-12, NKJV) [6] Now there was a day when the sons of God came to present themselves before the LORD, and Satan also came among them. [7] And the LORD said to Satan, "From where do you come?" So Satan answered the LORD and said, "From going to and fro on the earth, and from walking back and forth on it." [8] Then the LORD said to Satan, "Have you considered My servant Job, that there is none like him on the earth, a blameless and upright man, one who fears God and shuns evil?" [9] So Satan answered the LORD and said, "Does Job fear God for nothing? [10] "Have You not made a hedge around him, around his household, and around all that he has on every side? You have blessed the work of his hands, and his possessions have increased in the land. [11] "But now, stretch out Your hand and touch all that he has, and he will surely curse You to Your face!" [12] And the LORD said to Satan, "Behold, all that he has is in your power; only do not lay a hand on his person." So Satan went out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3) 무궁한 하나님의 지혜

(11:33-36, 개역)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11:33-36, NKJV) [33] Oh, the depth of the riches both of the wisdom and knowledge of God! How unsearchable are His judgments and His ways past finding out! [34] "For who has known the mind of the LORD? Or who has become His counselor?" [35] "Or who has first given to Him And it shall be repaid to him?" [36] For of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to whom be glory forever. Amen.

 

(4) 창조자 하나님

(1:1-3, 개역)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1:1-3, NKJV)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 [3] Then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1:13-16, 개역)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13-16, NKJV) [13] He has delivered us from the power of darkness and conveyed us into the kingdom of the Son of His love, [14]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sins. [15] He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ver all creation. [16] For by Him all things were created that are in heaven and that are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whether thrones or dominions or principalities or powers. All things were created through Him and for Him.

 

(1:8, 개역)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Rv 1:8, NKJV)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the Beginning and the End," says the Lor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5)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

(1:26-28, 개역)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1:26-28, NKJV) [26]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ccording to Our likeness;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over the birds of the air, and over the cattle,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s on the earth." [27]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28] Then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over the birds of the air,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s on the earth."

 

(6) 나를 다 알고 계심

(1:4-9, 개역)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4-9, NKJV) [4]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saying[5] "Before I formed you in the womb I knew you; Before you were born I sanctified you; I ordained you a prophet to the nations." [6] Then said I"Ah, Lord GOD! Behold, I cannot speak, for I am a youth." [7] But the LORD said to me"Do not say, 'I am a youth,' For you shall go to all to whom I send you, And whatever I command you, you shall speak. [8] Do not be afraid of their faces, For I am with you to deliver you," says the LORD. [9] Then the LORD put forth His hand and touched my mouth, and the LORD said to me"Behold, I have put My words in your mouth.

 

(139:1-7, 개역) [1]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139:1-7, NKJV) [1] For the Chief Musician. A Psalm of David. O LORD, You have searched me and known me. [2] You know my sitting down and my rising up; You understand my thought afar off. [3] You comprehend my path and my lying down, And are acquainted with all my ways. [4] For there is not a word on my tongue, But behold, O LORD, You know it altogether. [5] You have hedged me behind and before, And laid Your hand upon me. [6] Such knowledge is too wonderful for me; It is high, I cannot attain it. [7] Where can I go from Your Spirit? Or where can I flee from Your presence?

 

(7) 위대하신 하나님

(8:1-5, 개역) [1] [다윗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8:1-5, NKJV) [1] To the Chief Musician. On the instrument of Gath. A Psalm of David. O LORD, our Lord, How excellent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Who have set Your glory above the heavens! [2] Out of the mouth of babes and nursing infants You have ordained strength, Because of Your enemies, That You may silence the enemy and the avenger. [3] When I consider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ordained, [4]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And the son of man that You visit him? [5] For You have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And You have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

 

(8)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3:7, 개역)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Zph 3:7, NKJV) I said, 'Surely you will fear Me, You will receive instruction'--So that her dwelling would not be cut off, Despite everything for which I punished her. But they rose early and corrupted all their deeds.

 

(5:12, 개역)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Rv 5:12, NKJV) saying with a loud voice"Worthy is the Lamb who was slain To receive power and riches and wisdom, And strength and honor and glory and blessing!"

 

(1:5-6, 개역)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1:5-6, NKJV) [5] and from Jesus Christ, the faithful witness, the firstborn from the dead, and the ruler over the kings of the earth. To Him who loved us and washed us from our sins in His own blood, [6] and has made us kings and priests to His God and Father, to Him be glory and dominion forever and ever. Amen.

 

7.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1) 믿음은 항상있을 것입니다.

(11:1-3, 개역)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1:1-3, NKJV) [1]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2]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testimony. [3]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worlds were framed by the word of God, so that the things which are seen were not made of things which are visible.

 

(9:23,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Mk 9:23, NKJV) Jesus said to him, "If you can believe, all things are possible to him who believes."

 

(2) 소망도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5:3-4, 개역)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3-4, NKJV) [3] And not only that, but we also glory in tribulations, knowing that tribulation produces perseverance; [4] and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12:9-13, 개역) [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2:9-13, NKJV) [9] Let love be without hypocrisy. Abhor what is evil. Cling to what is good. [10] Be kindly affectionate to one another with brotherly love, in honor giving preference to one another; [11] not lagging in diligence, fervent in spirit, serving the Lord; [12] rejoicing in hope, patient in tribulation, continuing steadfastly in prayer; [13] distributing to the needs of the saints, given to hospitality.

 

(3) 사랑은 제일입니다.

(13:34-35, 개역)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3:34-35, NKJV) [34]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that you also love one another. [35] "By this all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have love for one another."

 

(4) 사랑으로 성숙하라

(벧후 1:3-7, 개역)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3-7, NKJV) [3] as His divine power has given to us all things that pertain to life and godliness, through the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glory and virtue, [4] by which have been given to us exceedingly great and precious promises, that through these you may b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through lust. [5] But also for this very reason, giving all diligence, add to your faith virtue, to virtue knowledge, [6] to knowledge self-control, to self-control perseverance, to perseverance godliness, [7] to godliness brotherly kindness, and to brotherly kindness love.

 

(5) 주의 형상으로 변화됨

(고후 3:18, 개역)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2Co 3:18, NKJV) But we all, with unveiled face, beholding as in a mirror the glory of the Lord, are being transformed into the same image from glory to glory, just as by the Spirit of the Lord.

 

(6) 사랑은 성령의 열매

(5:22-24, 개역)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5:22-24, NKJV) [22]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longsuffering,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23] gentleness, self-control. Against such there is no law. [24] And those who are Christ's have crucified the flesh with its passions and desires.

 

(7) 사랑을 부어주심

(5:5, 개역)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Rm 5:5, NKJV) Now hope does not disappoint, because the love of God has been poured out in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 was given to us.

 

(8) 먼저 사랑하셨기에

(요일 4:19, 개역)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Jn 4:19, NKJV) We love Him because He first loved us.

 

(9) 하나님은 사랑

(요일 4:7-8, 개역)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NKJV) [7] Beloved,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is of God; and everyone who loves is born of God and knows God. [8] He who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for God is love.

 

(10) 돌아온 탕자

(15:20-24, 개역)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15:20-24, NKJV) [20] "And he arose and came to his father. But when he was still a great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had compassion, and ran and fell on his neck and kissed him. [21] "And the son said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in your sight, and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22] "But the father said to his servants, 'Bring out the best robe and put it on him, and put a ring on his hand and sandals on his feet. [23] 'And bring the fatted calf here and kill it, and let us eat and be merry; [24] 'for this my son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And they began to be merry.

 

(11) 끊을수 없는 사랑

(8:38-39, 개역)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8:38-39, NKJV) [38] For I am persuad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r powers,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39] nor height nor depth, nor any other created thing, sha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which is in Christ Jesus our Lord.

 

(12) 불쌍히 여기심

(103:8-14, 개역) [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03:8-14, NKJV) [8] The LORD is merciful and gracious,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mercy. [9] He will not always strive with us, Nor will He keep His anger forever. [10] He has not dealt with us according to our sins, Nor punished us according to our iniquities. [11] For as the heavens are high above the earth, So great is His mercy toward those who fear Him; [12] As far as the east is from the west, So far has He removed our transgressions from us. [13] As a father pities his children, So the LORD pities those who fear Him. [14] For He knows our frame; He remembers that we are dust.

 

(13) 강권하시는 사랑

(고후 5:14-15, 개역)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4-15, NKJV) [14] For the love of Christ compels us, because we judge thusthat if One died for all, then all died; [15] and He died for all, that those who live should live no longer for themselves, but for Him who died for them and rose again.

 

(14) 십자가사랑

(1:4-5, 개역)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4-5, NKJV) [4] who gave Himself for our sins, that He might deliver us from this present evil age, according to the will of our God and Father, [5] to whom be glory forever and ever. Amen.

 

(15) 사랑의 능력

(12:1-3, 개역)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12:1-3, NKJV) [1] I beseech you therefore,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hat you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2] And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at you may prove what is that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will of God. [3] For I say, through the grace given to me, to everyone who is among you, not to think of himself more highly than he ought to think, but to think soberly, as God has dealt to each one a measure of faith.

 

(16) 사랑의 치유

(53:5-6, 개역)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5-6, NKJV) [5]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bruised for our iniquities; The chastisement for our peace was upon Him, And by His stripes we are healed. [6] 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We have turned, every one, to his own way; And the LORD has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17) 선하심을 맛보라

(34:8-10, 개역)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34:8-10, NKJV) [8] Oh,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in Him! [9] Oh, fear the LORD, you His saints! There is no want to those who fear Him. [10] The young lions lack and suffer hunger; But those who seek the LORD shall not lack any good thing.

 

(18) 자유함

(요일 3:20-24, 개역) [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0-24, NKJV) [20] For if our heart condemns us,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 and knows all things. [21] Beloved, if our heart does not condemn us, we have confidence toward God. [22] And whatever we ask we receive from Him, because we keep His commandments and do those things that are pleasing in His sight. [23] And this is His commandmentthat we should believe o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and love one another, as He gave us commandment. [24] Now he who keeps His commandments abides in Him, and He in him. And by this we know that He abides in us, by the Spirit whom He has given us.

 

(19) 두려움 없다.

(요일 4:17-21, 개역)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17-21, NKJV) [17] Love has been perfected among us in thisthat we may have boldness in the day of judgment; because as He is, so are we in this world. [18]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casts out fear, because fear involves torment. But he who fears has not been made perfect in love. [19] We love Him because He first loved us. [20] If someone says, "I love God," and hates his brother, he is a liar; for h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whom he has seen, how can he love God whom he has not seen? [21] And this commandment we have from Himthat he who loves God must love his brother also.

 

(20) 율법의 완성.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Rm 10:4, NKJV) For Christ is the end of the law for righteousness to everyone who believes.

 

(13:8-10, 개역)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3:8-10, NKJV) [8] Owe no one anything except to love one another, for he who loves another has fulfilled the law. [9] For the commandments,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bear false witness," "You shall not covet," and if there is any other commandment, are all summed up in this saying, namely,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10] Love does no harm to a neighbo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21) 호세아

(11:8, 개역)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Hs 11:8, NKJV) "How can I give you up, Ephraim? How can I hand you over, Israel? How can I make you like Admah? How can I set you like Zeboiim? My heart churns within Me; My sympathy is stirred.

 

(10:12-13, 개역)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3] 너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0:12-13, NKJV) [12] Sow for yourselves righteousness; Reap in mercy; Break up your fallow ground, For it is time to seek the LORD, Till He comes and rains righteousness on you. [13] You have plowed wickedness; You have reaped iniquity. You have eaten the fruit of lies, Because you trusted in your own way, In the multitude of your mighty men.

 

(22) 동정심

(4:14-16, 개역)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14-16, NKJV) [14] Seeing then that we have a great High Priest who has passed through the heavens, Jesus the Son of God, let us hold fast our confession. [15]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as in all points tempted as we are, yet without sin. [16] Let us therefore come boldly to the throne of grace, that we may obtain mercy and find grace to help in time of need.

 

(23) 불쌍히 여김

(103:8-14, 개역) [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03:8-14, NKJV) [8] The LORD is merciful and gracious,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mercy. [9] He will not always strive with us, Nor will He keep His anger forever. [10] He has not dealt with us according to our sins, Nor punished us according to our iniquities. [11] For as the heavens are high above the earth, So great is His mercy toward those who fear Him; [12] As far as the east is from the west, So far has He removed our transgressions from us. [13] As a father pities his children, So the LORD pities those who fear Him. [14] For He knows our frame; He remembers that we are dust.

 

(28:13, 개역)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Pr 28:13, NKJV) He who covers his sins will not prosper, But whoever confesses and forsakes them will have mercy.

 

(14:14, 개역)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Mt 14:14, NKJV) And when Jesus went out He saw a great multitude; and He was moved with compassion for them, and healed their sick.

 

(10:47-48, 개역)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10:47-48, NKJV) [47] And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areth, he began to cry out and say,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48] Then many warned him to be quiet; but he cried out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7:13, 개역)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Lk 7:13, NKJV) When the Lord saw her, He had compassion on her and said to her, "Do not weep."

 

(4:31-32, 개역)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31-32, NKJV) [31] Let all bitterness, wrath, anger, clamor, and evil speaking be put away from you, with all malice. [32] And be kind to one another, tenderhearted, forgiving one another, just as God in Christ forgave you.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부터 시작된 그 사랑을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나는 자신의 지식과 은사를 자랑하지만 정작 사랑은 없는 자는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까?

은사도 믿음도 소망도 천국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으로 살아온 일생만 하나님 앞에서 공로로 인정됩니다.

물론 그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궁하고 끊을수 없습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십니다.

광대하시고 아름다우시며 그 영광과 권능은 무한합니다.

놀라우신 하나님, 놀라우신 사랑입니다.

계시록 4장에서 24장로들은 자신의 면류관을 하나님 앞에 벗어드리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 얼굴을 뵙게될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감격가운데 뵙게 될것입니다.

사랑하는 독생자 아낌없이 내어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