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와서 보라>(요 1:43-51)

마라나타!!! 2018. 2. 20. 04:40

<와서 보라>

(1:43-51, 개역)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인 동시에 스카웃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바로 주님이 빌립을 부르시고 빌립이 다시 나다나엘을 부른 이야기입니다.

나다나엘은 처음에는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바로 그 분을 만났다는 빌립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께로 나올 때 주님은 그에게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너에게는 간사함이 없다. 무화고 나무아래 있을 때 이미 보았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타나엘의 기도의 내용을 알고 계심을 알고 계신 것을 의미하며 그 기도의 내용은 주님을 사랑하고 간사함에 없는 솔직함과 관계있는 것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자신의 기도내용을 알고 계시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계시는 주님앞에 엎드렸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임금이로 소이다. 주님을 알고 만나기 된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나가서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초청하기를 원하심을 알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 기도를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후에 주님은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 놓으신 구속사역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역시 한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을 빌립이 와 보라고 초청한 것 같이 우리도 이웃을 와 보라고 초청하여야 합니다.

주님께로 초청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로 초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교회로 와서 주님을 만나면 사람들은 놀라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누구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새생명과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을 알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은 빌립을 부르셨습니다.

(1:43-44, 개역)

 

주님은 빌립의 마음을 미리 아셨고 안드레와 베드로와 안면이 있고 한 동네 사람임을 아셨습니다. 벳새다는 고기 잡이의 집이라는 의미로 그 동네가 평펌한 어촌이었을 알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쫓으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주님의 제자가 되라는 초청입니다. 주님을 믿고 배우며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신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1)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9:23, 개역)

 

(2) 주님의 희생적인 삶입니다.

(벧전 1:18-19, 개역)

 

(10:45, 개역)

 

(3) 자원하는 삶입니다.

(6:6-10, 개역)

 

(10:18, 개역)

 

(4) 의로운 삶입니다.

(4:15, 개역)

 

(5)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10:38, 개역)

 

(딤전 6:17-19, 개역)

 

(6) 주님을 닮은 인격입니다.

(5:22-24, 개역)

 

(7)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도력입니다.

(8:4-8, 개역)

 

(8) 예수님은 사람들을 초청하셨습니다.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 NKJV) ["Come to Me, all you who labo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우리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은 주님이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스카웃도 주님의 본을 따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나라의 발전을 위하는 단체인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본받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1:45, 개역)

 

빌립은 확실하게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빌립의 첫 체험이 강렬하였고 확신이 있었기에 자신의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서 간증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당시 온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고 성경에 기록된 그 메시야를 만난 기쁨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간증하며 주님을 전하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모세가 율법에 기록된 예수님이십니다.

율법은 주로 모세오경을 의미합니다.

(3:15, 개역)

 

(12:1-3, 개역)

 

(49:10, 개역)

 

(18:15, 개역)

 

(2) 선지자들이 기록한 예수님이십니다.

(53:5-6, 개역)

 

(7:14, 개역)

 

(9:6-7, 개역)

 

(9:9, 개역)

 

(14:1-5, 개역)

 

(7:13, 개역)

 

(3) 모든 성경은 예수님께 관한 말씀입니다.

(24:44, 개역)

 

(24:27, 개역)

 

(4) 모든 메시야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 졌습니다.

(5:2, 개역)

 

(5) 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1:18-25, 개역)

 

(6)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고전 15:3-6, 개역)

 

(16:8-10, 개역)

 

(7) 말씀대로 다시 오십니다.

(14:1-3, 개역)

 

(1:7, 개역)

 

(살전 4:16-17, 개역)

 

(22:12, 개역)

 

(22:20, 개역)

 

우리는 빌립처럼 자신의 체험 주님을 만난 것을 간증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려면 먼저 자신에게 간증할 체험이 있어야 할것입니다.

 

3.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은 하층민들이 살던 지역이였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은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사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무시하였지만 사실 갈릴리 지역은 메시야가 오실 지역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이 우리들도 여러 가지 편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편견들을 깨트리고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긍휼함과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것입니다.

(9:1-4, 개역)

 

(1) 예수님은 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2:4-7, 개역)

 

(2)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습니다.

(2:51-52, 개역)

 

(3) 예수님의 주 사역지는 가버나움이었습니다.

(4:31-37, 개역)

 

(4)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23:39-49, 개역)

 

(5)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다시 살아셨습니다.

(24:1-6, 개역)

 

(6) 예수님은 감람산에 다시 오십니다.

(14:1-5, 개역)

 

(7) 예루살렘에서 만왕의 왕으로 역사하십니다.

(25:6-8, 개역)

 

(8) 우리는 편견으로 사람을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23:13-15, 개역)

 

(7:1-5, 개역)

 

(2:1-6, 개역)

 

(7:9-11, 개역)

 

(9)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인들의 친구다.

술을 좋아하는 자다.

단순한 선지자다.

귀신들린자다. 등등입니다.

 

(16:13-16, 개역)

 

나다나엘의 훌륭한 점은 자신의 편견을 극복하고 주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좁아진 마음을 넓혀서 이웃을 바라보고 사랑으로 대해야 할것입니다.

편견과 교만을 버리고 항상 자신을 점검하며 겸손한 사랑이 되어야 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 보아야 하겠습니다.

 

4. 빌립은 나다나엘을 와보라고 초청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믿지를 못하므로 주님께로 직접와서 주님을 만나 보라고 한것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나서 와서 직접 보라고 한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로 초청하는 것은 오늘날 주님의 몸된 교회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물론 초청하지 않더라도 주님이 얼마든지 보내주실수가 있습니다.

먼저 이웃에게 보려줄수 있는 은혜가 보이는 사랑이 충만하고 진리의 말씀이 충성스럽게 선포되고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2:41-47, 개역)

 

(11:23, 개역)

 

(1) 와 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주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딤후 3:14-17, 개역)

 

(10:23-24, 개역)

 

(2) 전도는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15:32, 개역)

 

(15:10, 개역)

 

(3)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15:28-32, 개역)

 

(4) 기도하는 마음으로 초청해야 합니다.

(4:27-31, 개역)

 

(5)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초청을 합니다.

(1:8, 개역)

 

(6) 말에는 살아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4:12, 개역)

 

(10:17, 개역)

 

(2:36-41, 개역)

 

(7) 생명의 말씀입니다.

(6:63, 개역)

 

(5:17-20, 개역)

 

(2:14-16, 개역)

 

(요일 1:1, 개역)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립니다.

나만 장군의 집에 있던 이스라엘의 여종의 말로 인하여 문둥병자 나아만이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자신있게 이웃을 우리 교회로 초청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나다나엘을 보시고 주님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속에 간사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1:47, 개역)

(1:48, 개역)

 

주님은 이미 나다나엘을 알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이 무슨 기도를 하였으며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것 같이 모든 것이 들어납니다. 주님은 나를 알고 계십니다.

 

(1)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가 없도다.

참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바로 이스라엘의 본분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거룩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였던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그 당시 존경을 받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달랐던 것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며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이 었습니다.

 

(19:1-6, 개역)

 

(43:7, 개역)

 

(18:9-14, 개역)

 

(2:25-38, 개역)

 

간사가 없다는 것은 정직하고 겸손함을 의미합니다.

(27:20-23, 개역)

 

(3:26-29, 개역)

 

(2:28-29, 개역)

 

(3:7-9, 개역)

 

(2) 무화과 나무아래 있을 때 보았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떨어져있는 상황에서도 주님은 나다나엘이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알았습니다.

무화과 나무아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씀과 기도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과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원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원하는 사람임을 주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원하십니다.

(8:17, 개역)

 

(8:34, 개역)

 

(1:1-3, 개역)

 

말씀과 기도에 항상 힘쓰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139:1-5, 개역)

 

(4) 내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다.

(1:4-9, 개역)

 

(5) 나의 미래를 알고 계십니다.

(26:33-35, 개역)

 

(6) 주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16:8, 개역)

 

(7)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39:23-24, 개역)

 

(8) 주님과 항상 사귀어 살아야 합니다.

(요일 1:1-4, 개역)

 

(14:21-23, 개역)

 

(9)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10:27, 개역)

 

주님 임재 의식을 가지고 주님과 늘 사귀어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6.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

(1:49, 개역)

나다나엘의 신앙 고백입니다.

 

나다나엘의 감격과 놀라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메시야를 만나 그 기쁨 보다 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해답을 찾은 것이요 성경말씀에 기록된 바로 그 분을 만난것입니다!

 

(1) 베드로의 신앙 고백입니다.

(16:16, 개역)

 

(2) 도마의 신앙 고백입니다.

(20:26-29, 개역)

 

(3) 나의 신앙 고백은 무엇입니까?

(1:18-21, 개역)

 

(4) 예수님은 만왕이시오 만주의 주님이십니다.(19:11-16, 개역)

 

(5)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14:6, 개역)

 

(6) 영원전부터 계신 말씀 이십니다.

(1:1-5, 개역)

 

(7) 알파와 오메가시오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22:12-13, 개역)

 

첫사랑의 감격을 회복하고 오직 주님만을 섬기며 사는 우리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7. 더 큰것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1:50-51, 개역)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는 말씀은 바로 야곱의 베델 꿈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8:10-19, 개역)

 

이것은 바로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인간들을 연결해주는 사닥다리를 말씀하며 야곱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인간들을 연결할수 있는 사닥다리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신 말씀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는 말씀도 될수 있지만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놀라운 정체를 더욱 깊이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을 단절시킨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벧전 1:18-19, 개역)

 

(1:7, 개역)

 

(2)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14:6, 개역)

 

(4:12, 개역)

(딤전 2:4-5, 개역)

 

(3)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십니다.

(20:31, 개역)

 

(1:14, 개역)

 

(4) 예수님은 우리들의 대 제사장이십니다.

(8:1, 개역)

 

(7:25, 개역)

 

(8:32-34, 개역)

 

(5) 예수님은 우리들의 생명이십니다.

(요일 5:12-13, 개역)

 

(6)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16:23-24, 개역)

 

(7)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1:1-3, 개역)

 

(2:9-11, 개역)

 

(8) 예수님은 그의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십니다.

(요일 4:12-16, 개역)

 

(고전 3:16, 개역)

 

(8:15, 개역)

 

(9) 예수님은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십니다.

(25:31-33, 개역)

 

(24:37, 개역)

 

(고전 15:51-52, 개역)

 

내몸이 결국은 성령의 전이 되어 하늘과 땅의 연결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생명과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아버지를 만난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더 큰일은 없습니다.

이런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립은 확신 가운데 나다나엘을 초청하였습니다.

나는 무슨 간증과 확신이 있습니까?

처음 주님을 만난 감격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누구신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달을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와보라고 담대하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때만이 담대해질수 있고 내 초청을 받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누구에게 이 기쁨 소식을 전하고 싶으십니까?

나다나엘처럼 편견을 극복하고 주님께로 나올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간증하며 초창하는 삶을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큰 확신과 감격과 담대함을 회복하여 이웃에게 와 보라고 외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